책읽기 20분 | 05 파시즘 7


파시즘 - 10점
케빈 패스모어 지음, 이지원 옮김/교유서가


책읽기 20분 | 파시즘  [ 원문보기]

제3장 이탈리아: ‘철권으로 만든 역사’


집권에 이르는 과정

1차 세계대전 이후 세 계파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 함

보수주의: 권위주의가 가미된 구체제

내셔널리즘(국가주의): 더욱 권위주의적인 국가

급진주의: ‘제2의 혁명’ 주장. 생디칼리슴 지식인, 파시스트 노동조합 지도부, 페미니스트, 지방당 간부, 경제근대화 주창자


파시즘은 “의회정치적 수완과 대중동원을 결합”하여 성공하였고 무솔리니는 “대중운동과 의회정치를 연결”함으로써 권좌에 올랐다.


독재

‘위로부터 동원된 국가’: “책임감있는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온종일 새 나라 건설에 매진했고, 그의 아내는 이탈리아를 위해 아이를 낳았다.” — 보수주의와 국가주의 이념의 실현

급진주의자들은 주변화하지 않고 당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했다.


무솔리니 개인의 대외모험주의

독일 히틀러 집권 이후에는 나치와의 관계 속에서 본래의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읽었던 파시즘에 관한 여러가지 논의들은 대체로 봐서는 아직 권력을 잡지 못한, 즉 집권에 이르지 못한 다양한 급진적 극우운동에 대해서 얘기했다. 어떻게 보면 편리하게 파시즘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으려면 그냥 급진적 극우운동을 파시즘으로 불러도 큰 무리가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을 파시즘으로 부르려면 저자의 논지는 집권을 한 다음에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가 중요한 요소처럼 간주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파시즘이 집권에 이르러서 국가권력을 장악한 경우는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의 경우 이렇게 두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각각 독립된 챕터로 둔 것 같다. 거듭 정리를 하자면 급진적 극우 운동을 파시즘의 핵심적인 요소로 이해할 수 있지만 막상 급진적 극우운동만 가지고는 국가권력을 잡지는 못했다. 그것이 우리가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요소다.


이탈리아의 경우를 살펴보면 파시즘이 어떻게 해서 권력을 잡았는가를 보겠다. 제3장은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집권에 이르는 과정, 권좌의 파시즘, 독재로 섹션이 되어있다. 마찬가지로 독일도 그런 순서로 되어있다. 그러면 3장과 4장의 소제목을 비교해 보면 독재가 이들의 핵심적인 요소임을 부각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2장에서 "1차세계대전이라는 대격변과 뒤이은 위기의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는 파시즘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1차세계대전 이후에 이탈리아는 어떤 상황이었는가. 간단히 말하면 계속된 사회불안의 상태에 있었다. 92페이지를 보면 "참전파들의 뜻대로, 이탈리아는 1915년 1차세계대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평화조약을 통해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로부터 많은 영토를 할양 받지만, 내셔널리스트들이 기대한 만큼은 물론 아니었다." "계속된 사회불안이 내셔널리스트들의 분노를 더욱 돋웠다." 사회불안의 주원인 중 하나가 '붉은 해'라고 불리는 "북부 도시에서는 공장 점거를 동반한 파업이 빈번했고, 포 계곡 지역에서는 소작농들과 농촌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했으며, 남부 지방에서는 땅 없는 노동자들이 미개간지를 점유했다." 그리고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의 선거권을 얻어내는 상황, 이런 상황을 다 묶어서 말하면 1차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된 사회불안이 있었다는 것이 첫 번째 주목할 점이라고 하겠다.


92 참전파들의 뜻대로, 이탈리아는 1915년 1차세계대전에 뛰어들었다.


92 평화조약을 통해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로부터 많은 영토를 할양 받지만, 내셔널리스트들이 기대한 만큼은 물론 아니었다.


92 계속된 사회불안이 내셔널리스트들의 분노를 더욱 돋웠다. 1918~1920년 이른바 '붉은 해' 시기에, 북부 도시에서는 공장 점거를 동반한 파업이 빈번했고, 포 계곡 지역에서는 소작농들과 농촌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했으며, 남부 지방에서는 땅 없는 노동자들이 미개간지를 점유했다.


"젊은 농촌 부르주아지 중에서 많은 사람이 파시즘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22년까지 파시스트들은 여러 농촌지역에서 사실상 행정 기능을 접수했고, 25만 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파시스트당이 정식으로 출범하고 군주제와 자유경제 체제를 지지하자, 보수주의자들은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급진적 우파 행세를 한다 해도 구체적으로 현실적인 정치권력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그것을 파시즘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여기서 유념할 수 있다. "1922년 여름에 이르자, 권력 장악을 요구하는 파시스트 운동 기층으로부터의 압력이 거세졌고, '로마 진군'을 위한 계획이 수립되었다." 여기에 이탈리아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등장한다. 물론 젊은 부르주아지이기 때문에 단순한 기층민중 또는 대중들과는 동일시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런데 파시즘이라는 것은 정말로 서로 과연 한자리에 이들이 모여있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다양한 정치세력이 서로 모여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이 운동에 자신이 투신함으로써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이 기대가 파시스트 운동에서 사람들을 결합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급진적 우파들만 아니라 좌파들도 가담했고, 그 좌파를 형성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인 대중들도 가담했다. 이것을 결합한 사람이 무솔리니이다. 그래서 파시스트 운동은 일종의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굉장히 중요하게 되고, 그 지도자의 독재가 운동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고 하겠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만이 대중운동과 의회 정치를 연결했기 때문이다. 무솔리니는 그의 언론 활동을 이탈리아의 국제적 위상에 관련된 내용으로 국한함으로써 조심스럽게 국가적 인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런 무솔리니가 1922년 10월 29일에 총리가 되었다.


95 젊은 농촌 부르주아지 중에서 많은 사람이 파시즘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95 1922년까지 파시스트들은 여러 농촌지역에서 사실상 행정 기능을 접수했고, 25만 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96 1921년 말에 파시스트당이 정식으로 출범하고 군주제와 자유경제 체제를 지지하자, 보수주의자들은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96 1922년 여름에 이르자, 권력 장악을 요구하는 파시스트 운동 기층으로부터의 압력이 거세졌고, '로마 진군'을 위한 계획이 수립되었다.


96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만이 대중운동과 의회 정치를 연결했기 때문이다. 무솔리니는 그의 언론 활동을 이탈리아의 국제적 위상에 관련된 내용으로 국한함으로써 조심스럽게 국가적 인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97 무솔리니는 1922년 10월 29일에 총리가 되었다.


계속 읽어보면 다양한 운동 조류들이 자신들의 주장과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서 사회운동으로 분출되어 나오지만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을 잡아야 하는데, 정치권력을 잡으려면 탁월한 능력을 가진 독재자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독재자에게 투사시키는 것. 그래서 파시즘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독재자 한 사람에게 투사되는 급진 우파, 급진 좌파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의 권력을 원하는 잡탕덩어리가 아닌가 하는 아주 편리하고도 손쉬운 규정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탈리아에서건 독일에서건 독재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권좌에 올랐으니 자신들을 지지한 사람들을 만족시킨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 무솔리니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크게 세 부류가 정권을 유지하는 핵심 부류가 되었다. 첫째가 보수주의, 둘째가 내셔널리즘, 셋째가 급진주의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은 권위주의가 가미된 구체제를 원했고, 그 안에서 자신들의 사회적·정치적 힘이 보장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의원내각제와 다소간의 정치적 자유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권위주의가 가미된 구체제, 전형적인 보수주의자들이다. 둘째인 내셔널리즘(국가주의)은 "가톨릭교도를 국가 안으로 통합할 것으로 오랫동안 주장했고, 더욱 권위주의적인 국가를 원했다." 이 부분은 내셔널리즘이 보수주의와 서로 연결된 지점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권위주의가 가미된 구체제를 원했고", 이탈리아 내셔널리스트 연합(INA)은 "더욱 권위주의적인 국가를 원했다." 귄위주의적인 국가라는 지점에서 이탈리아 내셔널리스트 연합과 보수주의가 결합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이탈리아 파시즘을 규정하는 요소가 되겠다.


99 그들은 권위주의가 가미된 구체제를 원했고, 그 안에서 자신들의 사회적·정치적 힘이 보장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의원내각제와 다소간의 정치적 자유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99 INA는 가톨릭교도를 국가 안으로 통합할 것으로 오랫동안 주장했고, 더욱 권위주의적인 국가를 원했다.


그 다음에 급진주의라고 하는 것은 내용이 어쨌든 간에 과격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급진적 공부가 된다. 극단적, 급진적 radical 이라는 것은 그 뒤에 들어가는 수식어에 상관없이 이념 내용이 무엇이건간에 그냥 극단적으로 하면 급진주의다. "다른 무리의 파시스트들은 기성 정치인을 축출할 '제2의 혁명'을 주장했다. 여기에는 생디칼리슴 지식인, 파시스트 노동조합 지도부, 페미니스트, 권력에 목마른 지방 당 간부, 경제 근대화 주창자 등 다양한 급진주의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이탈리아 파시즘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이념내용은 급진주의자들이 결합된 권위주의적 국가주의다.


99 다른 무리의 파시스트들은 기성 정치인을 축출할 '제2의 혁명'을 주장했다. 여기에는 생디칼리슴 지식인, 파시스트 노동조합 지도부, 페미니스트, 권력에 목마른 지방 당 간부, 경제 근대화 주창자 등 다양한 급진주의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독재"라는 파트를 들어가보면 "무솔리니는 어느 계파도 확실하게 편들어주지 않았다." 독재체제가 되었지만 계파 갈등은 계속되었고, 점차 폭력은 사라졌고, 폭력이 사라졌다고 하는 것은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는 폭력이 필요했겠지만 말 그대로 국가폭력을 장악했으니 사적인 폭력은 사라졌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위로부터 동원된 국가'이다. 사적 폭력은 억압을 하면서 권위주의적인 국가를 중심에 두고 가게 된다. 그래서 "파시스트는 책임감 있는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온종일 새 나라 건설에 매진했고, 그의 아내는 이탈리아를 위해 아이들을 낳았다." 이게 바로 귄위주의적인 국가주의가 구체적인 현실에서 등장하게 된 모습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급진주의는 사그러들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파시스트 당을 또 하나의 관료조직으로 팽창시키고 당원증이 공직 진출의 필수요건이 되게 하였다. 그리고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정치 아카데미 졸업생들이 공직에 기용되도록 요구했다." 당을 중심으로 한 급진적인 운동들이 계속되어왔다는 것이다. 사실 급진주의가 주변화되어 갈 위험에 처해있다. 권위주의적인 국가주의 아래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급진적 계파는 사실 설 땅이 별로 없는데 그게 당을 통해서 급진성이 어느정도 관철되었다는 뜻이다.


100 무솔리니는 어느 계파도 확실하게 편들어주지 않았다.


101 파시즘은 독재 체제로 변했지만, 계파 갈등은 계속되었다.


101 파시스트의 폭력은 점차 사라졌다. 정부는 INA가 꿈꾸는 '위로부터 동원된 국가'를 실현하려는 방안의 하나로, 자체적인 청년단체와 여성단체를 설립했다.


102 파시스트는 책임감 있는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온종일 새 나라 건설에 매진했고, 그의 아내는 이탈리아를 위해 아이들을 낳았다.


103 파시스트당은 또 하나의 관료 조직으로 팽창했고, 당원증이 공직 진출의 필수 요건이 되었다.


103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정치 아카데미 졸업생들이 공직에 기용되도록 요구했다.


무솔리니의 대외적인 모험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독일에서는 대외적인 모험주의가 분명하게 독일 민족생활공간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 때문에 이념인데, 이탈리아에서는 다르다. 사실 이탈리아 파시즘은 집권하고 어느 정도 독재를 하는 동안에는 그럭저럭 파시즘적인 품격을 갖고 있었지만 히틀러가 집권하고 나치즘이 영향을 미치면서부터는 급격하게 다른 방식으로 성격이 바뀐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탈리아가 독일 나치즘에 영향을 미쳤으나 이제 히틀러가 집권을 하면서 영향관계가 전도된다. 그리고 무솔리니 자신도 히틀러와 동맹을 하면서 이탈리아의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105페이지의 "히틀러의 집권이 상황을 바꾸어놓았다." 여기서부터 이탈리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105 히틀러의 집권이 상황을 바꾸어놓았다.


105 무솔리니 자신도, 히틀러와 동맹이 지중해와 아프리카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누르고 이탈리아의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민주정 체제에서는 파시즘이 등장하기 쉽다. 다양한 이행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자기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들어줄 것 같은 사람을 독재자로 추대할 가능성이 있다. '제왕적 대통령'도 파시스트로 전환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얼핏 생각해보면 급진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지 않나 한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본래 인종주의가 뚜렷하지 않았는데 아비시니아를 침공했을 때 뚜렷하게 드러났고, 나치즘을 모방하고 경쟁하고 하다보니 서로 닮아가고 결국 이탈리아도 홀로코스트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전쟁에 패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었고, 2차세계대전 이후에도 여전히 급진적인 주장들이 내세우는 것들이 남아있다.


107 많은 이들이 반유대주의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지만, 파시스트 정권은 결국 홀로코스트에 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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