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5 파시즘 9


파시즘 - 10점
케빈 패스모어 지음, 이지원 옮김/교유서가


책읽기 20분 | 파시즘  [ 원문보기]

파시즘의 원형으로서의 참주정


20세기 서구 사회의 낯선 상황: 대중이라는, 주권을 가진 인민 집단의 등장과 그 집단을 통제하는 문제에서 생겨난 nationalism(국민·민족·국가주의)


플라톤, <<국가>>

“민중(dēmos)의 선봉에 선 자”로서의 참주와 그를 “아주 잘 따르는 군중(ochlos)”(565e)

민중: “이들은 손수 일을 하고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재산을 그다지 많이 갖지 못한 사람”(565a)


참조

소포클레스, <<참주 오이디푸스 Oidipous Tyrannos>>






이 책은 입문서이기 때문에 파시즘에 대한 정의를 한 다음에 그에 따라서 파시즘을 역사적인 순서로 검토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순서대로 읽지 않은 이유는 사실 파시즘이라는 말을 들으면 파시즘이라는 말만큼 여기저기 쓰이는 그런 정치 이데올로기도 드물다. 웬만한 것들은 다 파시즘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 이를테면 대중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면서 하나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를 추종하고, 그 지도자에 대한 무작정의 숭배를 보이고 준군사적인 집단까지 형성하면 파시즘이라고 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과 국가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에 충성을 요구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를 파시즘이라 말하기도 한다. 또한 아주 느슨하게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국민들의 삶에 개입하여 국가주도의 복지를 한다든가 하는 것도 파시즘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정치적인 사조는 대체로 봐서 1930년대 유럽에서 기인하는데 이 사조의 주창자들은 사실은 그 당시 유럽의 파시즘적인 경제정책 또는 정치 이데올로기에 반대해서 등장했던 사람들이다. 각각의 개인이 가진 의사결정 능력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여 나아가는 시장질서를 존중하자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1930년대에는 굉장히 강력한 개인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늘날에는 개인만이 아니라 기업도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기업의 무한한 자유를 용인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실은 변질되었다 보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1930년대 등장했던 국가주도의 복지정책이나 또는 미국의 뉴딜정책 이런 것들도 어떻게 보면 국가주도이기 때문에 파시즘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파시즘은 여러 국면에 가져다 붙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파시즘이라는 말을 사실 쓸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파시즘이라는 사태를 이해하기 전에 왜 이런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용어로서 설명할 수 밖에 없는, 모호한 규정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는 사태가 등장한 이유를 생각해보니 20세기 초 서구사회에서 아주 독특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바로 대중이라고 하는 하나의 집당 덩어리가 등장하는 것. 조지 모스의 《대중의 국민화》라는 책을 보면 나치의 경우에는 대중을 독일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로 똘똘 뭉친 국민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나치즘의 과정이었다. 대중이 등장한 것이 중요한 사태다


이 대중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곤란했다. 서구사를 살펴보면 대규모로 대중이 등장했던 경우가 없다. 하나의 의사결정을 위해서 또는 기성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대중들이 모였던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런 점에서 서구사에서는 대중의 등장이 낯선 사태였을 것. 가령 동아시아만 해도 중국사의 경우만 봐도 농민전쟁이 굉장히 많이 있었는데 유럽에서는 없었던 것. 그런데 파시즘이라는 말을 쓰거나 쓰지 않거나 기본적으로 그 사태를 지칭하고, 말할 때는 대중이 있다. 파시즘은 국가, 국민, 민족으로 결집하려는 국가주도의 어떤 집단주의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유념해야 하는 점은 이들이 파시즘이라는 용어 밑에 대중을 묶어서 말할 때는 대중은 배우지 못하고 무지한 집단이라는 것을 무의식 중에 깔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서 지식인 엘리트들이 이끌고 가야만 하는 집단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대중이라는 집단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생각해본 사람은 플라톤이 처음이 아닐 까 한다. 플라톤의 《국가》를 보면 나쁜 것의 네 가지 정체 중에 참주정을 거론하고 있다. 참주정이 현대 서구사회에서 파시즘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의 어떤 머나 먼 기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래서 오늘 1장 파시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파시즘의 원형으로서의 참주정에 대해서 한번 이해하고 들어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 한다.


흔히 우리는 참주라고 하면 독재자만을 생각하는데 아테나이에서 참주를 말할 때는 그냥 독재자가 아니다. 곰곰이 참주를 보면 파시즘에서 말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국가》를 보면 565e에 민중의 선봉에 선 자가 아주 잘 따르는 군중을 규합해서 뭔가를 한다는 얘기가 있다. “민중의 선봉에 선 자”가 참주이고, “아주 잘 따르는 군중”이 있다. 이 참주가 성립하려면 반드시 참주를 아주 잘 따르는 군중이 있어야 한다. 아테나이 정체는 민주정이었다. 민주정이라고 하는 것은 시민들에게 주권이 있는 정체이다. 시민들의 의사결정에 따라 나라일이 결정되는 정체가 민주정인데 이 시민들을 완전히 규합해서 자기 말을 듣게하는 사람, 그렇게 해서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여 가는 사람이 참주다. 사실 참주정이라고 하는 것은 민주정에서 생겨나는 변종된 형태다. 합법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민중을 "이들은 손수 일을 하고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재산을 그다지 많이 갖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정리한다. "손수 일을 하고", 즉 유한 계급이 아니라는 것, 그에 따라 정치에 관여할 여유가 없다. 재산이 별로 없으니 계속 일을 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빈민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아테나이 정체에 따르면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들은 손수 일을 하고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재산을 그다지 많이 갖지 못한 사람들"이지만 주권자들이다. 참주는 이들 무식한 주권자들을 규합한다.


그럼 플라톤이 아테나이 민주정에 반대한 사람이다 라고 말할 때 정확하게 말하면 아테나이 민주정이 도달할 수 있는 나쁜 상태, 즉 참주정에 반대한 사람이다. 이것에 대해서 플라톤이 내놓은 대안은 소수의 철학적 통치자들이 다스리는 나라다. 철학적 통치자들이란 알고 있는 사람, 지적인 사람이다. 그러니까 플라톤이 내놓은 참주정에 대한 대안은 지식 귀족들, 즉 지식 엘리트 소수정치를 대안으로 내놓았던 것이다.


참주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예를 들어보면 일반적으로 오이디푸스 왕이라고 번역하는 소포클레스 희곡이 있다. 이 본래 제목은 Oidipous Tyrannos, 즉 “참주 오이디푸스”이다. 왕은 혈통에 의해서 정당성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테바이는 왕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나라가 곤란에 처해있을 때 오이디푸스가 와서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추대를 받아서 통치를 하게 된다. 그러니까 오이디푸스는 본래는 왕의 혈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당시 추대할 때 사람들은 왕의 자손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니까 오이디푸스를 잘 따르는 군중이 되었던 것. 테바이 시민들의 뜻에 따라서 통치를 할 때는 참주라고 불리지 않았지만 제멋대로 통치를 하면서부터는 참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민주정에 있어서 시민들의 뜻을 잘 따른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그 시민이 맹목적으로 따를 때에는 참주라고 부르게 된다. 훌륭하고 인기 있는 정치지도자와 참주 사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그런데 이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플라톤의 규정에 해답이 있다. "이들은 손수 일을 하고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재산을 그다지 많이 갖지 못한 사람들"이 민중인데 간단히 말해서, 유식한 주권자들이 생겨나게 되면 민주정이 잘 굴러갈 것이다.


플라톤의 이야기를 그대로 현대에 가져와보면, 현대사회에서 대중이라는 집단을 이야기할 때는 20세기 초반만 해도 대중을 플라톤이 말하는 민중처럼 이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민주국가인데도 불구하고 파시즘적인 뭔가가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주권자들인 시민을 무식한자라고 생각하는게 아닌가 한다. 어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국가에 대한 소속을 벗어날 수 없다. 각가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는 국민주의자이고 국가주의자이다. 그렇다 해서 민족주의까지 가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세하게 되면 배제의 정치학이 작동하는 것이니까.


대중을 어떻게 대할 것이고, 파악할 것인가가 파시즘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가장 심각한 초점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서구사회에서의 하나의 전통이 있었는데 아테나이에서 플라톤이 말한 참주정이 원형으로 작용하지 않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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