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뵐플린: 미술사의 기초개념


미술사의 기초개념 - 10점
하인리히 뵐플린 지음, 박지형 옮김/시공사



서언

서문

Ⅰ. 선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

Ⅱ. 평면성과 깊이감

Ⅲ. 폐쇄된 형태와 개방된 형태

Ⅳ. 다원성과 통일성

Ⅴ. 명료성과 불명료성

결론

후기:재고(1933)

도판색인

옮긴이의 말





서문

15 양식의 이중 근원 

루드비히 리히터(1803-84)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젊은 시절 세 명의 친구와 함께 티볼리에서 동일한 풍경 한 장면을 그려보기로 하였음을 술회한 바 있다. 그들은 그때 있는 그대로의 자연 상태에서 털끝만큼도 왜곡시키지 말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대상이 동일하고 각자가 상당한 솜씨를 발휘해 그 대상에 충실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눈앞에 드러난 것은 넉 장의 판이 한 그림들이었다. 그것들은 네 사람의 성격만큼이나 서로 각각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그는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형태와 색상은 기질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르게 파악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미술사가의 입장에서 볼 때 위와 같은 사실은 전혀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화가들이 모두 자신의 기질대로 그린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주지의 사실이었던 것이다. 각 거장들과 그들 '필치' 간의 모든 차이는 결국 이 같은 형태부여상의 개인적 유형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설령 취향이 같은 방향이라 하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넉 장의 티볼리 풍경화는 우리가 보기에 일단 상당히 비슷하게, 라파엘 전파류의 소박한 낭만주의 계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여기서는 좀더 딱딱하게 느껴지는 선이 저기서는 좀더 완만한 성격을 띠는가 하면, 동세에 있어서도 때로는 정지한 듯 느리게 수용되다가 때로는 용솟음치며 치닫는 듯이 수용된다. 비례 또한 때로는 상하로 길게 나타나는가 하면 때로는 좌우로 넓게 나타나며, 인체의 모델링(명암 구사 등을 통해 대상에 볼륨감이나 재질감을 주는 것)에 있어서도 어떤 이에게는 풍만하고 비대하게 보이는 것이, 다른이에게는 그 들어가고 나온 정도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절제되고 소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곤 한다. 빛과 색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설령 있는 그대로 보아내려는 담백한 의도를 가졌다 해도 동일한 색이 한번은 따뜻하게 다른 한번은 차갑게 파악되는 것이라든지, 그림자가 때로는 부드럽게 또 때로는 날카롭게 파악되는 것, 광선이 때로는 완만하게 때로는 생동감 있게 튀는 듯이 느껴지는 것 등은 어쩔 수가 없다. 


  이와 같은 '개인 양식'은 동일 대상을 다룰 때 자연히 더 뚜렷하게 부각된다. 보티첼리(1445-1510)와 로렌초 디 크레디(1458-1537)는 둘 다 콰트로 첸토 후기의 피렌체 출신으로 시대적으로나 계통적으로 근접한 화가들이다. 그러나 여인의 신체를 그려냄에 있어 보티첼리는 로렌초도의 여인 누드 상과는 근본적으로 현격하게 다른, 자신만의 고 유한 자태와 형태를 구사한다. 그 둘 사이의 차이는 너무도 현저하여 참나무와 보리수의 차이를 연상케 할 정도이다. 보티첼리는 대담한 선을 통해 모든 형태에 독특한 활기와 생동감을 불어 넣은 반면, 로렌초는 모델링에 한층 더 신중을 기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고요한 인상을 불어 넣는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슷한 형태로 구부러진 팔의 모습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 보티첼리의 경우는 팔꿈치의 날카로움, 하박의 휘어짐이나 가슴 위에 눈부시게 벌려진 손가락들 할 것 없이 모든 선들은 에너지로 충전되어 있다. 반면 크레디의 것은 맥이 없어 보인다. 양감 측면에서 매우 능숙하게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태는 보티첼리의 윤곽선이 지니고 있는 힘을 결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기질의 차이에서 연원하며 이러한 차이는 전체를 비교하거나 부분을 비교하거나에 관계없이 늘 발견된다. 단지 콧날을 어떻게 그렸는가만 봐도 양식적 특성의 본질을 간파 할 수 있는 것이다. 

  보티첼리의 경우와는 달리 크레디의 경우는 한 특정 인물이 모델을 섰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형태 파악 면에서 어떤 특정 관념━아름다운 형체와 아름다운 운동에 관한━에 준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보티첼리는 전적으로 자신의 이상에 의거하여 늘씬하게 솟아오르는 인체를 그려냈다. 크레디 또한 비례의 측면에서 실제 모델의 특정한 신체 조건에 별로 구애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성향을 드러냈다.


  동시대에 한창 유행했던 틀에 박힌 주름 표현은 형태 심리학자들에게 특히 의미있는 정보를 많이 제공한다. 이 경우 비교적 적은 요소를 통해 개인적 표현의 엄청난 다양성이 창출되었다. 수많은 화가들이 앉아있는 성모상을 그릴 때 무릎 사이의 늘어진 치마자락을 강조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매번 그것이 누구의 작품인지 짐작 가능할 정도로 새로운 형태를 띠곤 하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구사하는 위대한 선에서뿐만 아니라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가 지닌 회화적 양식에서도 의상의 주름은 심리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테르보흐르는 특히 공단을 그리는 데 솜씨가 탁월하여 이 섬세한 직물은 그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제대로 재현해 낼 수 없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그린 것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단지 화가인 자신의 독특한 성향일뿐, 벌써 메츠만하더라도 그 주름 현상을 본질적으로 다르게 파악하였다. 즉 옷감은 더 육중하게 수용되어 무겁게 늘어지고 주름은 더 깊 숙이 패이게 되었으며 굴곡의 섬세함은 줄고 각 주름 선의 유려함과 주름결의 멋스러운 경쾌함이 결여되어서 생동감이 부족하게 되었다. 메츠가 그린 옷감은 똑같은 공단을 대상으로 한 거장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테르부르흐의 그것과 비교해볼 때 거의 둔탁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결코 우울한 정서 때문에 생긴 우연의 소산이 아니다. 그러한 특징들은 반복되어 나타나며 너무나도 전형적이어서 인물이나 인물 배치에 대해서도 모두 적용될 수 있다. 테르보르흐 작품에 등장하는 악기를 연주하는 여인의 팔뚝을 보라. 관절과 운동감의 표현에 있어 얼마나 유려한가. 반면 메츠가 그린 형태는 무척 무겁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솜씨가 서둘러서라기보다는 아예 다르게 파악한데서 기인된다. 테르보르흐 작품의 인물들은 경쾌하게 무리지어져 있고 각각 여유있어 보이는 반면, 메츠는 좀더 육중하고 응축된 인상을 준다. 테르보르흐의 작품에서는 필기구가 놓여있는 두터운 탁자용 양탄자 더미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참고 도판을 통해서는 테르보르흐 특유의 회화적 색조가 지닌 들뜬 듯한 경쾌함까지는 느껴볼 수 없지만, 전체적인 형태상의 리듬은 온전히 느껴지며 부분들이 서로 긴장을 유지하는 방식에서 주름 묘사와 밀접히 연관된 하나의 예술성을 쉽게 감지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풍경화가들이 나무를 그릴 때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우리는 나뭇가지나 그 한 부분만으로도 그것을 호베마가 그렸는지 뤼스테일이 그렸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각 작풍의 개별적인 외적 특징에 기인한다기보다는 형태 파악상의 본질적인 요소가 이미 가장 작은 부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같은 종류의 나무를 그려도 호베마는 루스테일에 비해 항상 가볍게 그린다. 호베마의 나무들은 윤곽선이 분방하고 공간 상에 가볍게 서있다. 반면 뤼스데일은 그 진지한 성향을 발휘하여 특유의 무게감을 통해 선의 흐름을 제어한다. 그는 완만하게 상승, 하강하는 실루엣을 선호하며 잎 부분을 표현함에 훨씬 간결하다. 또 화면상에서 각각의 형태를 분산시키지 않고 긴밀히 연관시키고 있음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낱개의 나뭇가지가 하늘을 배경으로 윤곽을 드러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지평선의 배경 구획은 매우 무겁게 느껴지고 나무와 산의 윤곽은 두리 뭉실 맞닿아있다. 반면 호베마는 멋들어지게 솟아 오르는 선과 산만한 덩어리, 변화무쌍한 지면, 아기자기한 부분과 전체를 선호한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에서는 각 부분들이 화면 안에서 다시금 완결된 작은 화면을 이루고 있다. 소묘 형태에서뿐만 아니라 빛의 사용이나 색채라는 측면에서 개인 양식을 결정짓기 위해서 우리는 부분과 전체의 관련을 좀더 세심히 규명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떻게 특정한 형태 파악이 특정한 색조와 필연적으로 관련을 맺는가가 파악될 것이며, 더 나아가 특정 기질의 표현으로서의 개인 양식이 갖는 전체 구조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적 미술사에 많은 것을 기대해 봄직하다. 그러나 미술의 발달 과정은 일련의 개별적 사례들로 간단히 환원될 수 만은 없다. 개인은 큰 집단에 속해 있는 것이다. 보티첼리와 로렌초 디 크레디는 각자 그렇게 판이함에도 그 둘을 베네치아 화가들과 비교하면 곧 피렌체 화가로서의 위성이 두드러지며, 호베마와 뤼스테일도 서로 그렇게 상이하지만 루벤스 같은 플랑드르 화가와 대조하여 보면 곧 그 유사성이 드러난다. 즉 개인 양식 외에도 유파와 나라와 인종의 양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플랑미술과의 대조를 통해 네덜란드 미술의 특질을 규명해보자. 안트워프 근방의 편평한 초원 경관은 네덜란드 화가들이 고요하기 이를 데 없이 드넓게 그려내곤 했던 네덜란드 목초지의 풍경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루벤스는 그것을 너무도 판이하게 그려내어 우리는 실제 대상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닌가 오해할 정도이다. 지면은 온통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있고 나무 줄기는 열정적으로 휘감아 올려져 있는가 하면 잎 부분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다루어져 뤼스테일이나 호베마 같은 화가들은 그에 비하면 극도로 꼼꼼한 묘사가로만 느껴진다. 이것이 네덜란드적인 섬세함과 플랑드르적인 육중함의 차이라 하겠다. 루벤스의 소묘에 드러난 운동감과 비교해 보면 네덜란드 작품은 언덕의 능선을 표현할 때건 꽃잎의 휘어짐을 다룰 때 건을 막론하고 모두 정적인 느낌을 준다. 네덜란드 회화에서는 플랑드르 회화에서와 같은 격정적 동세를 느끼게 하는 나뭇가지의 모습이란 찾아 볼 수 없다. 심지어 뤼스데일의 거대한 떡갈나무조차 루벤스의 나무들과 비교하여 보면 한층 정교하게만 느껴진다. 루벤스는 지평선을 높이 끌어 올리는 동시에 다양한 대상들을 등장시킴으로써 화면에 육중한 인상을 불어 넣고 있다. 반면에 네덜란드 화가들에게 있어서 하늘과 지면은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띠어서 수평선은 낮고 화면의 8할 정도를 하늘이 차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금까지의 관찰은 물론 보편화가 가능할 때만 그 가치를 지닌다. 그러므로 네덜란드 풍경화가 지닌 섬세함을 다른 분야 그림과 연관시켜보고 건축의 영역에까지 확대 적용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벽돌층이나 바구니의 짜임새 따위도 나뭇잎만큼이나 독특하게 다루었다. 두 같이 세밀하게 그리기를 즐겨하는 화가뿐만 아니라 얀 스텐 같은 서술적 화가도 산만한 장면을 그리는 와중에서도 바구니의 짜임새를 정교하게 그려낸 것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벽돌 건물의 균열을 메운 하얀 메꿈선의 얼기설기함이나 장연하게 놓여진 바닥들의 형태 등 일체의 세부적 요소들은 건축물 화가들이 진정으로 애호하는 소재들이었다. 실제 건축물의 경우 네덜란드에서는 석재에 독특한 경쾌함이 부여되어 암스테르담 시청사 같은 전형적인 예에서 확인되듯 플랑드르격 상상력이 빚어냄직한 거대한 돌덩이의 위압감은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는 형태적 취향이 정신적 내지 관습적 요소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통해 민족 정서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미술사는 이와 같은 민족적 행태 심리학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수립하는 데 일익을 담당해야만 한다.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인물화의 조용한 분위기는 건축 영역에서도 중요한 토대를 이룬다 그러나 렘브란트와 함께 그가 지닌 감각, 즉 일체의 고정된 형태를 피하며 무한한 공간에서 신비스럽게 생동감을 띠는 빛의 생명을 향한 그의 감각을 떠올리면 우리는 게르만적 요소를 라틴적 요소와 좀더 포괄적으로 비교 분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더욱더 복잡하다. 17세기의 네덜란드적 성향과 플랑드르적 성향이 그렇게 판이하다면 민족적 유형을 넘어선 포괄적 판단의 도구로서 시대적 단계를 설정하는 것에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즉, 각 시대별로도 다양한 미술이 가능하므로 시대적 성향과 민족적 성향이라는 두 계기가 교차하게 되는 양상을 띠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양식을 특정의 민족 양식으로 간주해 버리기 전에 우선 그것이 얼마만한 보편성을 띠는가 확인해야 한다. 풍경화를 통해 드러나는 루벤스의 인상이 아무리 강렬하고 아무리 많은 화가들이 그를 추종했다손 치더라도 그가 동시대 네덜란드 미술이 그랬듯 민족적 성향을 지속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에게는 시대적 요소가 더 크게 작용했으며 특수한 문화 조류. 즉 라틴적인 바로크 감각이 그의 양식을 규정한다. 그러므로 그는 '몰시대적인' 여타 네덜란드 작가들에 비해 '시대 양식'에 대해 좀더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고 하겠다. 


  '시대 양식'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이탈리아 미술을 통해 가장 잘 규명될 수 있는 테 그것은 이탈리아의 경우 일체를 독자적으로 진행시키느라 변화의 와중에서도 이탈리아적인 보편적 성향을 늘 간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르네상스로부터 바로크로의 양식 변동은, 어떻게 새로운 시대 정신이 새로운 형태를 낳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범례가 된다. 


  이미 수없이 논의되었지만, 문화사적 시대 구분과 양식 단계의 구분을 나란히 일치시켜 설정하는 것은 미술사에서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다. 전성기 르네상스의 기둥이나 아치는 라파엘이 그린 인물들과 더불어 훌륭하게 시대 정신을 표출하며, 바로크 건축은 귀도 레니 작품에 등장하는 격정적 동작을 시스틴의 마돈나가 보여주는 기품이나 위대성과 비교할 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념의 변화를 시사한다. 


  우선 건축 영역만을 살펴보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 원리는 완벽한 균형의 원리이다. 이시기에는 구상 영역에서 추구된 바 있던 고요한 완벽성이 건축에서도 적용되었다. 모든 형태는 연관성으로부터 탈피하여 완결된 그 자체로서 존재하며 당당하게 독립적으로 살아있는 부분들이다. 기둥들, 벽면의 분할, 공간 전체와 각 부수공간들의 규모 나 전체적 구성에서 받는 인상이 모든 것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완벽한 존재를 체험케 하는 당당한 형태들인 것이다. 그것들은 인간적 수준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또한 상상력에 의해 얼마든지 가능한 것들이다. 인간의 감각은 무한한 희열을 느끼며 이 예술을 자신이 관여하는 고양되고 자유로운 존재의 이미지로 파악한다. 


  바로크도 동일한 형태 체계를 표방하나 더 이상 완벽함이나 완결성이 아닌 운동감과 생동감을, 즉 규정된 틀 안에서 빤하게 드러나는 모습이 아닌 무한하게 확장된 모습을 띤다. 아름다운 비례라는 이상은 퇴색하였으며, 존재가 아닌 생성에 흥미를 두게 되었다. 형체는 움직이고 무거우며 무디게 짜여졌고 건축━르네상스시기에 그 정점에 달했던━은 부분 결합의 예술이기를 포기하였다. 과거에 극도의 독립적 인상을 추구하던 전체 구성은 독립성을 결여한 부분들의 융합으로 대체되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분석은 물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대체로 양식이 어떻게 시대의 표출이 될 수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이 보여주는 것은 분명 새로운 삶에 대한 이상이다. 건축이 가장 인상적으로 그 이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우리가 건축을 예를 들어 설명했지만 당시의 화가나 조각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양식 변동의 심리적 토대를 개념화하기 원한다면 오히려 건축에서보다 화가나 조각가에게서 더 확실히 결정적인 단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개인과 세계의 관계는 변화되었고 새로운 감성의 세계가 열렸으며, 영혼은 거대하고 무한한 것의 승화를 통해 자신을 극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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