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ε. Gilson(6), God & Philosophy, preface

 

2024.04.21 ε. Gilson(6), God & Philosophy, preface


질송이 God & Philosophy 강연에서 자신이 제시한 탐구 방법론은 지난번에 우리가 읽은 바에 따르면 extract & determine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사에서 철학적 문제를 올바르게 정립하기 위해서 자료를 추출한다. 이것은 당연히 선행하는 철학자들에 대해서 그들의 이론을 살펴보는 것인데, 그냥 살펴봐서 저 사람 말도 옳고 이 사람 말도 옳다 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질송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 보면 "이 같은 타락의 형태는 아카데메이아의 철학적 방법에서 나타났고, 신아카데메이아에서 최고조에 이릅니다." 신아카데메이아는 조금 이따 설명을 하겠는데, 가장 마지막 단계가 신아카데메이아, 정확하게 무엇을 지칭하는지를, 철학사에서 사용하는 명칭은 아니다, 새롭다는 게 과연 무엇이 얼마나 새로운 건지는 모르겠다. 필론과 안티오코스의 경우가 신아카데메이아이고, 529년에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폐쇄하기 직전까지 있던 것, 대개 아카데미아는 고 아카데미아라고 하기도 하고 또 중기 아카데미아라고 하기도 하고, 아르케실라오스의 다음을 신 아카데미아라고 말하는데, 어쨌든 이것은 철학적 dogma가 opinion으로 변질되는 변증론의 유희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철학사를 검토하면서 철학자들이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탐구한 것들을 자료로 만들고 correct formulation of a philosophical problem, 자료를 검토할 때 선행하는 뭔가 있어야 된다. 무작정 검토하는 것은 변증론의 유희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dialectical game으로 전락하는 것, 너의 말도 옳고 저 사람 말도 옳다 그렇게 되면 철학사라고 하는 것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에서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적 dogma를, 교조적 철학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그러면 질송이 탐구방법론의 선례로서 든 것이 플라톤이 《테아이테토스》, 《필레보스》, 《파르메니데스》 대화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1권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 아주 잘 다루고 있다고 말했는데 오늘은 《테아이테토스》, 《필레보스》, 《파르메니데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1권, 내용보다도, 지금 우리가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다, 이 텍스트들이 어떤 방법을 가지고 학문적인 탐구를 하는가, 그 방법론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그 방법론에 대해서만 검토를 해보기로 하겠다.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는, 테아이테토스는 플라톤의 친구인데, 《테아이테토스》 대화편도 마찬가지지만 테아이테토스는 프로타고라스 명제를 비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티움어로 homo mensura라고 하는데, anthrōpos metron pantōn, 인간이 모든 것의 척도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하는 명제를 비판한 것이다. 프로타고라스의 anthrōpos metron pantōn은, 인간이 만물의 척도다 라고 하는 것은 주관주의적인 진리, 주체적 진리를 주장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각각의 사람들이 각각의 사람들이 진리의 담지자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도 진리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완전한 의미에서의 상대주의적 인식론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것과 비슷하게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이론flux theory이 있다. 만물은 항상 흐른다. 물론 헤라클레이토스의 텍스트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The Fragments of Presocratic Philosophers》을 읽어보면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사태들이 항상 변화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검토하면서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들 배후에 어떤 불변의 법칙이 있는가에 대해서 결코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 비판은 사실 헤라클레이토스와 프로타고라스를 같은 레벨에다 놓고 말할 수는 없다. 같은 유파라고 보기는 어렵고 다른 영역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두 사람 모두 다 뭔가 불변의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전혀 안 했던 사람들은 아니다. 불변이라고 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상대적인 것을 얘기한다. 애초에 불변의 것을 전제하지 않는 사람들, 그것 자체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사람들은 상대적인 것 자체도 말하기가 어렵다. 달리 말해서 악한 것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선을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선을 알기 때문에 악을 말하는 것인데, 아주 순진무구한 사람들은 악이 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얘기한다. 그게 이제 자기 확신에 차 있어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테아이테토스는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의 논리학, 이것 역시 회의주의인데, 퓌론주의적인 회의주의적인 논리학이고, 아리스팁포스Aristippos의 감각주의, 감각주의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영국경험론'이라고 말하는 것, 그것으로부터 진리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진리의 원천이 경험에 있다, 감각에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이 감각주의인데, 아리스팁포스의 감각주의는 그런 영역은 아니다.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 주해 3-3에 아리스팁포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비판이 있다. 이것은 정치사상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감각주의라고 하는 것, 우리의 감각이 다가오는 것이 그때그때 진리이다. 그리고 감각을 넘어선 진리라고 하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러면 뭐가 되겠는가. 오늘 나는 맛있는 것을 먹었다. 이 맛있는 것이 나에게 굉장히 쾌락hēdonē을 주었다. 쾌락을 주었기 때문에 이 쾌락이 참된 것이다. 이렇게 확실하게 나에게 쾌락을 주는 곳이 어디 있는가, 이런 쾌락을 느끼고 있다는 것, 내가 이 쾌락으로부터 어떤 만족을 얻었다는 것, fulfillment가 일어나고 그렇다는 것이 진리 아니겠는가 그러면 이게 올바른 쾌락인가 아니면 내가 이 쾌락을 얻기 위해서 어떠한 대가를 치렀는가 이런 것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쾌락을 얻었다고 하는 것만이 중요한 사태로 제시된다면 이제 영원한 쾌락을 계속 추구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아리스팁포스를 비판하고 있는, 비판 정도가 아니라 아주 노골적으로 모멸적으로 그을 비난하고 있는, 모멸적으로 비난하는 게 말로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일 텐데, 노골적으로 그를 비난하고 있는 지점을 보면 절대적 진리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어쨌든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에서는 상대주의를 비판하고 그것에 근거를 두고 절대적 앎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규정을 하려고 했으나 실패한다. 《테아이테토스》의 목표는 절대적 앎을 정초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했다. 그런데 그것에 이르는 방법을 보면 homo mensura와 같은 인간만물 척도론을 거론하면서 그것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이야기한다. 지금 에티엔 질송이 정확하게 《테아이테토스》, 《필레보스》, 《파르메니데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사용되었다 라고 하는 이 방법이 이러이러한 방법을 사용했다 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는다. 그런데 질송의 이야기를 보면 선대 철학자들에서의 찬반 논의들을 검토해보고, 그 검토한 것 위에서 일정한 정도의 규준criteria을 가지고 그 규준에 근거하여 그것들을 선별한 다음 무엇이 correct한 것인가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를 논변으로 확정지으려고 한다. 그러니까 일단 《테아이테토스》도 그런 방식을 쓰고 있다. 인식의 이데아, 즉 절대적 앎을 규정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하는 것이 내용이기는 해도, 그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선행하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 1장 주해 3-3. 아리스팁포스
아리스팁포스Aristippos는 퀴레네(오늘날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샤하트) 출신으로, 퀴레네 학파의 창시자 아리스팁포스는 그가 아니라 같은 이름을 가진 그의 손자이다. 이 학파는 극단적인 쾌락주의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 져 있다. 아리스팁포스가 눈길을 끄는 장면은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Phaidon(박종현 옮김, 서광사, 2003) 첫머리에 있다. 이 대화편은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날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대화편의 제목과 같은 파이돈이다. 그는 아테나이에서 소크라테스와 함께 있다가 고향 엘리스로 돌아가던 길에 코린토스 근처 플리우스에 들렀고, 거기에서 소크라테스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에케크라테스Ekhekratēs에게 감옥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해준다. [···] 그런데 대화 상대자들을 거론하는 장면에서 유심히 보아야 할 점은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이름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네 명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파이돈에게 에케크라테스가 "아리스티포스와 클레옴브로토스도 거기에 있었나요?"라고 묻자 파이돈은 "확실히 없었습니다"(59c)라고 대답한다. 이는 그들은 "확실히" 제외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필레보스》는 선행하는 철학자가 거론되거나 그러지는 않는데, 《필레보스》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절대적 앎이라고 하는 것, 절대적 규준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논의가 《필레보스》에서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절대적인 좋음to agathon, 좋은 것의 규준을 탐색하고 그러려면 어떤 것이 좋은 것에 속하는가, 가령 hēdonē가 좋은 것에 속하는가 아니면 epistēmē가 좋은 것에 속하는가를 묻는다. 이게 바로 일hen과 다polla의 문제가 여기에서 제시된다. 하나와 여럿, 하나 아래에 무엇이 포섭될 수 있는가. 좋은 것 아래에, 좋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고, 이 것 아래에 포섭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하나의 이데아mia idea 아래에 무엇이 포섭되는가. hēdonē가 포섭될 수 있는가, epistēmē, pronēsis, nous가 포섭될 수 있는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필레보스》 대화편은 선행하는 이론을 탐구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절대적 규준이라고 하는 것, 선행하는 이론들을 검토할 때 절대적 규준이 필요한데, 그 절대적 규준의 필요성 그리고 그 절대적 규준을 놓고 여러 polla를 검토하는 방식, 이것이 《필레보스》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필레보스》 대화편은 굉장히 재미있다. 일단 수많은 젊은이들이 나타나서 소크라테스에게 요구를 한다. 지금 소크라테스 당신은, epistēmē는 철학적 인식, pronēsis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고, nous는 정신인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나 이런 데를 보면 epistēmē와 pronēsis는 서로 구별해서 쓰인다. epistēmē는 이론적 인식이고 pronēsis는 실천적 앎이고 nous는 직관적인 것과 epistēmē를 합해서 nous라고 부르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구별되어서 쓰이지만 플라톤에서는 같은 의미로 쓰인다. 이를 묶어서 지혜sophia라고 말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의미로 통용되는데, 오히려 플라톤은 pronēsis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 같다. 제가 촘촘하게 이 용례를 세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겠는데, 어쨌든 젊은이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요구한다. epistēmē, pronēsis, nous가 hēdonē보다 좋은 것에 가깝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설득해라.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설득에 실패한다. 설득에 실패하면 돌아갈 수 없다고 애초에 말을 했다. 그래서 갈 수 없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이제 난문aporia에 빠진 것이다. 《테아이테토스》, 《필레보스》 모두 다 논변이 완성되지 못하고 난문에 빠져버렸다. 이렇게 난문에 빠져버린 상태, 그렇지만 둘 다 절대적 규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만한 것은 청중을 기쁘게 하는 것이 진리의 척도인가를 물어볼 수 있다. 이것은 지적 엘리트주의의 문제일 수도 있겠는데, 많은 사람에게 가 닿았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인가. 이건 민주정 국가에서는 그렇다. 이런 걸 가지고 플라톤이 민주정에 대해서 반대했다 그렇게 말하는 근거를 삼을 수도 있겠는데 꼭 그렇겠는가 싶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안다고 해서 진리는 아니다. 그건 우리의 삶에서도 겪어봤던 것이다. 《필레보스》 대화편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에 하나가, 《정체Politeia(Pol.)》나 《정치가Politikos(Polit.)》에서는 어떤 apodeixis, 논변적인 논증이 한계에 달했을 때는 mythos를 동원한다. 즉 신화를 이야기한다. 플라톤은 신화를 동원해서 뭔가 이야기를 해 나가는데 《필레보스》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런 점에서는 《필레보스》는 순수하게 추상적 논변만을 제시하고 있으니까 플라톤의 대화편들 중에서, 더군다나 플라톤이 사람 이름을 가지고 대화편 제목을 달아놓은 것들은 실존 인물들인데, 필레보스라는 사람은 실제로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가상의 인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는 《필레보스》가 플라톤의 대화편들 중에 가장 추상적인 대화편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필레보스》는 예전에 「철학 고전 강의」를 할 때 강의를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철학 고전 강의》 책으로 묶어내지는 않았다. 어쨌든 《필레보스》는 읽을 만한 텍스트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텍스트 중에 하나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중에서 현실적인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그다음에 순전히 추상적인 논변만을 가지고 설득을 해보려고 하는 시도가 있다, mythos가 없다 라고 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형식적인 특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설득할 때는 논변만 가지고 안 되다. 정확한 자연과학적인 노변만을 가지고는 안 되고 어느 선에서는 믿음pistis이 요구되는데, 그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mythos를 가지고 제시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서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파르메니데스》편에 대해서는 이건 굉장히 많은 논변들이 있다. 왜 질송이 왜 《파르메니데스》편도 거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스러운데, 이것 역시 있음과 있지 않음과 관련된 파르메니데스의 논변들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이것 역시 뭔가를 판별하는 절대적 규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당장 필요하기로는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편을 읽기보다는 딜스하고 크란츠의 그러니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Diels & Kranz, DK28에 있는 파르메니데스 단편집을 참조하고, 《철학 고전 강의》에서 파르메니데스에 대해서 강의해놓은 것을 참조하는 게 적당치 않겠는가 한다. 《테아이테토스》 152a에서 homo mensura 명제가 비판이 되고, 그것에 대해서는 비판만 하고, 인간이 만물의 척도다 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하는데, 그것에 대한 플라톤의 대답은 신이 만물의 척도다 라고 하는 것을 얘기하는데, 그게 《법률》 715c에서 제시된다. 이것을 보면 플라톤의 대화편은 전체가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고, 그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대화편들은 그런 큰 그림을 쪼개서 이렇게 제시한 것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으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형이상학》 1권의 논의를 전개한 방식을 보면 질송이 말한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대체로 6가지 정도의 내용으로 우리가 전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데, 첫째가 탐구 대상을 규정하고 sophia의 성격이 무엇이고, 선대 철학자들이 어떠 어떠한 논의를 하고 있는가 그런 것을 크게 다루는데 그렇게 얘기한다. "선대 철학자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질료인, 작용인, 목적인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원인들을 다루는 방식은 적절치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는 항상 이렇게 전개를 한다. 선대 철학자들이 뭐라고 얘기했는가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다룬 방식은 어떠했는가 라고 하는 이런 적절한 선대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이 먼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내놓는 4원인, 질료인, 작용인 그리고 형상인, 목적인을 얘기하는데, 이것 중에서 선대 철학자들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질료인, 작용인, 목적인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형상인은 얘기가 안 되어 있다. 일단 알았는데 그들이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하나 검토를 한다. 그래서 자신의 텍스트를 남기지 않은 철학자들의 학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서 《켈소스 논박》이라는 책은 오리게네스가 쓴 것인데, 오리게네스가 쓴 켈소스 논박은 케르소스는 이렇게 말했다 라고 한 줄 써놓고 그것에 대해서 자신의 논박을 써놓는다. 그렇다면 켈소스가 이렇게 말했다 라고 하는 것을 오리게네스가 적어놨기 때문에 그것을 신뢰한다면, 오리게네스가 논박의 대상을 적어놓은 것을 통해서 켈소스가 뭐라고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에서 켈소스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그 켈소스를 검토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다음에 선대 철학자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질료인, 작용인, 목적인을 알게 되었다 라고 했는데 그다음에 바로 피타고라스학파와 엘레아학파 얘기를 했는데, 피타고라스학파는 "모호하게나마 형상인을 알았다"라고 본다. 그러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기에는 형상인을 알고 있는 것이 좀 더 추상적이고 철학적으로 수준 있는 이론인 것이다. 그다음에 네 가지가 있는데, 질료인과 형상인이 한 묶음이고 그다음에 작용인과 목적인도 한묶음이고 이렇게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럴 것 없이 질료인과 형상인만을 플라톤은 활용한다. 즉 작용인과 목적인을 활용하지 않는다. 이게 지금 플라톤에 대한 검토인데, 여기서부터 플라톤에 대한 비판이 들어가는데, 왜 이렇게 얘기를 했을까를 읽어보면 플라톤을 정확하게 읽어서 비판하는 지점도 있지만 자신의 논변을 위해서 자기가 주장하는 바를 위해서 플라톤이 한 얘기를 온전히 가져오기보다는 플라톤을 선택적으로 인용하는 부분이 있다. 왜 질료인과 형상인만을 활용한다 라고 했는지를 한번 의문을 품어보면 운동에 관한 논의에 플라톤이 결함을 가지고 있다, 플라톤은 운동을 적절하게 다뤄지고 있지 못하다. 이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형상과 현상세계, 즉 이데아와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관여인가 아니면 그 안에 내재해 있는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보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려져 있는데, 플라톤은 손가락을 들어서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래쪽을 가리키고 있다. 그게 철학적인 이론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얘기가 많이 있긴 한데 약간은 상징적인 측면이 있다. 다시 말해서 플라톤은 형상을 중시하였고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가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형상을 일정한 정도로 나눠 가지고 분유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가상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내재론을 주장한다. 그러면 어떤 것을 주장하는가에 따라서 그것의 운동에 관한 논의가 달라지는데, 플라톤은 질료인과 형상인만을 활용한다 라고 하는 것은 플라톤은 운동kinesis에 대해서 제대로 된 논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 말을 미리 전제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 지점들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네 가지 원인에 대한 여러 철학 이론의 관계, 이런 것들이 지금 질송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1권에서 나온 탐구방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플라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 이런 것들이다. 여기까지가 질송의 선례에 대해서 얘기한 것이고, 오늘 선례에 대해서 참조해서 말해야겠다 라고 한 부분이다. 

《형이상학》 I권(A) 목차
3. 선대 철학자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질료인, 작용인, 목적인을 알게 되었다 
4. 하지만 그들이 그런 원인들을 다루는 방식은 적절치 않았다 
5. 피타고라스학파와 엘레아학파. 피타고라스학파는 모호하게나마 형상인을 알았다 


참고로 변증론의 유희에 빠져들어간 아카데미아Akadēmeia 학파에 대해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DL이라고 일반적으로 줄여서 쓰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참조해서 좀 보겠다. 플라톤이 죽은 다음에 조카인 스페우시포스Speusippus에게 아카데미아 원장을 계승시킨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이 사람은 처음으로 학문들 간의 학문들 간의 공통점을 간파하고 가능한 한에서 서로 연계시켰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학문들 간의 공통점을 간파하고", 질송이 말하는 어떤 학문들 간의 공통점, 그런 비교 철학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연계시켰다"는 것에 좋은 점도 있고 유의할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맹점이 하나 있는데 지금 아직 Speusippus와 크세노크라테스Xenokrates의 단계에서는 변증론의 유희가 아직은 나타나지 않는다. 변증론의 유희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르케실라오스Arkesilaos인데, 어쨌든 여기서 서로 연계시켰다 라고 하는 말에 한번 초점을 두고 보면, 서로 연계시킨다고 하는 것은, 공통점은 있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다른 점도 있다. 다시 말해서 연계를 시킨다고 하는 것은 공통점을 찾아내서 연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공통점을 찾아서 연계를 시키려면 서로 다른 지점, 차이가 나는 부분을 일정한 정도로 추상화abstract시켜야 된다. 즉 빼버려야 된다. 사상捨象시킨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세상의 모든 학문들이 서로 비슷한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들 수가 있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이 이론도 옳고 저 이론도 옳다, 서로 비슷하지 않는가 라고 하는 그런 아주 만능의 공통점으로 함몰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것이 결코 옳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헤겔이 쉘링을 비난해서 말했듯이 모든 소가 검게 보이는 밤, 밤이니까 컴컴하니까 소가 그 안에 아무리 서로 구별되는 소가 있고 한다 하더라도 그런 것들이 검게 보일 것이다. 그렇게 공통점만을 간파해내는 것에는 그런 한계가 있다. 그래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서로 연계시켰다 라고 이렇게 얘기를 했을 때 이것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도 읽을 때 한 번쯤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DL, 4.2 디오도로스가 《회상록》 1권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이 사람은 처음으로 학문들 간의 공통점을 간파하고 가능한 한에서 서로 연계시 켰다. 또한 카이네우스가 말하듯이 그는 처음으로 이소크라테스의 이른바 숨겨진 가르침을 책으로 냈다. 

그다음에 Xenokrates가 Speusippus 다음으로 아카데미아를 이어받은 사람인데, 이 사람에 대해서는 뭐 그냥 학문적인 평판은 없다. 여기에 재미있는 표현이, 이 사람도 역시 플라톤 아카데미에 대해서 배운 사람인데, "그는 천성이 둔한 탓에 사람들은 플라톤이 그를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플라톤이 Xenokrates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 이렇게 품평을 한 것이 여기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Xenokrates는 천성이 둔하다고 했다. 그러면 뭘 가르쳐줘도 조금 영특하게 알아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한쪽엔 몰이 막대가 필요한데, 다른 한쪽엔 재갈이 필요하군"이라고 했다. 재갈이 필요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여기서 생각을 해볼 것이 있다. 제갈이라고 하는 것은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이 많다는 얘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이 많은데 말이 많은 것도 그냥 아무 말이나 헛소리를 마구 하는 것이 아니라 논변을 굉장히 세밀하게 많이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게 칭찬일 수도 있고 칭찬이 아닐 수도 있겠다. 재갈이 필요하다를 좀 나쁘게 말하면 나댔다는 것이겠다. 지나치게 말을 많이 했다는 것이 된다. 플라톤이 보기에 딱 필요한 만큼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겠다. Speusippus에게 아카데미아를 물려준 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사람이니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아테나이에 있는 어떤 부동산을 물려준다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가 하나 있고, 두 번째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것을 물려받았을 때 플라톤이 자신의 이론, 자신의 사상을 아리스토텔레스가 과연 온전히 잘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1권을 보면 플라톤에 대한 아주 강력한 비판, 사실 플라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을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다. 그런 비판이 있기 때문에 플라톤이 눈치를 챘을 수도 있다. 그다음에 세 번째로는 그런 학문적인 것을 다 떠나서 당대의 상황에서 마케도니아 출신인 누구에게 이것을 물려주었을 때 과연 아테나이 사람들이 그가 수장으로 있는 학원에 다닐 것인가 이런 현실적인 유지 관리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또 마음 한편으로는 플라톤이 나는 그래도 본토 사람인데 저 변두리에서 온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걸 물려주는 게 약간은 걱정스럽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상상을 많이 해보게 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이 기록을 신뢰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어쨌든 재갈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DL, 4.6 크세노크라테스는 아가타노르의 아들로서 칼케돈 사람이다. 이 사람은 젊어서부터 플라톤의 강의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시켈리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천성이 둔한 탓에 사람들은 플라톤이 그를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 쪽엔 몰이 막대가 필요한데, 다른 한쪽엔 재갈이 필요하군." 또 "말과 같은 자를 상대로 나는 당나귀와 같은 자를 준비시키고 있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 밖의 점에서는 크세노크라테스는 위엄 있고 언제나 과묵해서 플라톤은 그에게 항상 "크세노크라테스, 카리스 여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게나"라고 자주 말했었다. 또한 그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아카데미아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가 시내로 올라갈 참이면 시끌벅적한 사람들과 짐꾼들이 모두 그에게 언제든지 길을 내주었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변증론의 유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중기 아카데미아이다. 아카데미아에 의한 회의주의라고 불리는 퓌론으로부터, 퓌론주의로부터 뭔가를 당겨온 것인데 Arkesilaos가 대표적인 사람이다. 이 사람은 중기 아카데미아 학파의 창시자이고, "논의들 간의 상호모순 때문에 판단을 유보했던 최초의 사람이다."  이게 바로 판단중지에 들어가는 것이다. A라는 논변이 있고 B라는 논변이 있는데, A와 B를 이렇게 동시에 살펴볼 때 서로 충돌되는 지점이 있다, 모순이 있다. 그러니까 A가 옳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B가 옳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게 바로 판단을 유보하는 그런 이유가 된다. 그러다 보면 어떤 한 물음에 대해서 찬성의 논의도 있을 수 있고 반대의 논의도 있을 수 있다. 지금 계속 이어진다. 논의들 간의 상호모순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하나의 물음에 대해서 그것을 찬성하는 대답도 있고 반대하는 대답도 있는데, 찬성은 찬성대로 반대는 반대로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Arkesilaos는 그런 모순과 찬반의 양립에서 어떤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고 했던 간단히 말해서, 여긴 회의주의는 아니다, 일단 판단보류라고 하는 입장에 섰다는 것이다. 이게 회의주의로 가는 전 단계이다. 그리고 "플라톤에 의해 전해져 온 이론을 다듬었으며, 묻고 답하는 방법을 통해 그 이론을 더욱더 논쟁적으로 만든 최초의 사람이다." "논쟁적으로 만든", 논쟁적으로라는 말의 헬라스 원문을 보면 eris라는 희랍어로 쓰여 있는데, 논쟁적으로 라는 뜻이다. 어떤 주장들에 대해서 상호 모순 때문에 판단을 유보했다고 했다. 그런데 상호 모순이 있으면 내버려 둔 게 아니라 사실은 찬반 입장에 서서 약간은 격렬하게 서로 상대방을 논파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논쟁적인데, 논쟁이 계속되면 어느 한쪽이 논쟁에서 승리자가 되기보다는 결국 서로가 다 자신의 각각의 한계와 강점을 인정한 채로 끝나기 때문에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질송이 변증론의 유희로 빠지게 될 것이다 라고 얘기했던 지점이 여기 있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DL, 4.28 아르케실라오스는 세우테스의 아들(이거나 혹은 아폴로도로스가 《연대기> 3권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스퀴테스의 아들)로서 아이 올리스의 피타네 출신이다. 이 사람은 중기 아카데미아학파의 창시자이다. 그는 논의들 간의 상호모순 때문에 판단을 유보했던 최초의 사람이다. 또한 그는 맨 처음으로 한 물음에 대해 찬성과 반대 양편에서 논의를 전개했고, 플라톤에 의해 전해져온 이론을 다듬었으며, 묻고 답하는 방법을 통해 그 이론을 더욱더 논쟁적으로 만든 최초의 사람이다. 

중기 아카데미아 학파의 또 이어지는 사람은 카르네아데스Karneādes인데, Karneādes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부지런한 사람이었지만, 자연학쪽으로는 성취가 덜하고 윤리학쪽으로는 성취가 더 했다"고 되어 있다.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뜻의 함축을 살펴보면 자연학physica과 metaphysica는 이론적 학이다. 이론적 학으로는 성취가 덜하다는 것은 이 사람 똑똑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윤리학 쪽은 그냥 살아가는 것은 반듯하게 산 사람이다. 학자로서의 입지는 굉장히 약한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이는 간단하게 말하면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다는 얘기이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DL, 4.62 한편, 그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부지런한 사람이었지만, 자연학 쪽으로는 성취가 덜하고, 윤리학 쪽에서 성취가 더했다. 때문에 그는 논구(logos)에 바빠 머리카락이 자라게 내버려 두고 손발톱을 길렀다. 한편 그는 철학에서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에 수사학자들마저도 자기들의 강의를 접고 그에게 와서 강의를 들을 정도였다.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신 아카데미아, Philōn ho Larissaios, Antiokhos ho Askalōnios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미 이때쯤 오면 지리멸렬한 상태가 되고, 529년에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아카데미아를 폐쇄한다. 이 해가 바로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에서 이 해를 지적했다. 고대 세계가 상징적으로 끝난, 사상사의 측면에서는 이 시기가 고대 세계가 끝난 때라고 볼 수 있다. 

다음번에는 서문 22페이지, "저는 프랑스의 가톨릭 대학교에서 교육받았습니다." 질송의 교육 내용을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될 것 같고, 공부 방법,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그다음에 철학적 훈련을 해서 방법을 얘기하고 preface를 마무리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신과 그리스 철학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 서문 주해 1. 서양 고전 고대
고전 시대 전반부는 헬라스의 정치적 공동체인 폴리스로 특징지어지는 시기이며, 후반부는 사상사에서 일반적으로 '헬레니즘 시대'라 불리는 때부터 시작되는데, 이 시대는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재위 BCE 336~323)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망한 서기전 322년부터 서기 146년까지를 말한다. 헬레니즘 시대 이후로도 고전 시대는 지속되었으며, 우리가 고전 시대의 끝을 알리는 의미 있는 연대로 삼을 수 있는 것은 529년이다. 이 해에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Flavius Petrus Sabbatius Iustinianus I, 재위 527~565)는 철학 강의를 금지하는 칙령을 아테나이에서 공표하였다. 이것이 고전 철학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이 칙령은 고대의 고전 철학 문화의 황혼과 새로운 문화, 즉 기독교 문화의 등장을 동시에 알리는 사건이었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칙령을 공표한 해는 성 베네딕투스(Sanctus Benedictus de Nursia, 480~547)가 몬테 카시노에 수도원을 세운 해이기도 하다. 현세의 삶에서는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메이아의 폐쇄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529년에 일어난 더 중요한 사건은 황제가 트리보니아누스 Tribonianus를 법무관으로 임명하고, 특별위원회에서 '로마법 대전' 또는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이라 불리는 《시민법 대전》(Corpus Iuris Civilis)을 편찬한 사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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