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해서 머나먼 | 문학과지성 시인선 372 | 최승자 - 최승자 (지은이)문학과지성사 세월의 학교에서 거리가 멀어지면 먼 바다여서 연락선 오고 가도 바다는 바다 섬은 섬 그 섬에서 문득 문득 하늘 보고 삽니다 세월의 학교에서 세월을 낚으며 삽니다 건너야 할 바다가 점점 커져 걱정입니다 쓸쓸해서 머나먼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먼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저기 기독교가 지나가고 불교가 지나가고 道家가 지나간다)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
즐거운 일기 | 문학과지성 시인선 40 | 최승자 - 최승자 (지은이)문학과지성사散散하게, 仙에게 한밤중 문득 잠에서 깨어날 때 여기가 어디일까 하는 당혹감, 그리고 족쇄 같은 기억들을 이끌고 지나온 모든 길 모든 도시를 더듬어 마침내 거기가 이국 어느 도시의 기숙사 방임을 깨닫게 될 너의 한밤중. 내가 예감하는 너의 한밤중. 하지만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으랴. 위장이 간장을? 심장이 허파를? 고통의 물물교환은 말처럼 그렇게 쉽게는…… 일찌기 나는 흘러가는 것은 마찬가지했었다 다른 사람들이 길이로 넓이로 흘러가는 동안 나는 깊이로 흘러가는 것뿐이라고. 그러나 깨닫고 보면 참으로 엄청나구나. 내가 파놓은 이 심연 드디어는 내 발목을 나꿔 챌 무지몽매한 이 심연. 깊이와 넓이와 길이로 동시에 흐르기 위..
이 시대의 사랑 | 문학과지성 시인선 16 | 최승자 - 최승자 (지은이)문학과지성사 일찌기 나는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땅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 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삼십세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 최승자 지음/난다 1부 배고픔과 꿈 2부 헤매는 꿈 3부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4부 모든 물은 사막에 닿아 죽는다 시인의 말 183 개정판 시인의 말 187 최근의 한 10여 년 * 내 병의 정식 이름은 정신분열증이다. 거진 다 나았어도 아직은 약을 먹어야 한다. 12년째 정신분열증과 싸우다보니 몸도 마음도 말이 아니다. 내가 했었던 일은 어떤 비밀스러운 다리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이었는데 그 다리는 해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내게 그 구조를 보여주지 않았다. 정신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것은 한 5년. 퇴원하여 두세 달 후에 보면 약을 안 먹고 밥도 안 먹고 있는 꼴을 보게 된다. 그럴 때 외숙이 오시면 한번 휘둘러보고 일견에 상황을 눈치채고 강제로 입원시킨다. 다시 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