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 10점
최승자 지음/난다

1부 배고픔과 꿈
2부 헤매는 꿈
3부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4부 모든 물은 사막에 닿아 죽는다

시인의 말 183
개정판 시인의 말 187

 


 

최근의 한 10여 년

* 내 병의 정식 이름은 정신분열증이다.
거진 다 나았어도 아직은 약을 먹어야 한다.
12년째 정신분열증과 싸우다보니 몸도 마음도 말이 아니다.

내가 했었던 일은 어떤 비밀스러운 다리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이었는데
그 다리는 해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내게 그 구조를 보여주지 않았다.

정신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것은 한 5년.
퇴원하여 두세 달 후에 보면 약을 안 먹고 밥도 안 먹고 있는 꼴을 보게 된다. 그럴 때 외숙이 오시면 한번 휘둘러보고 일견에 상황을 눈치채고 강제로 입원시킨다. 다시 입원하면 두세 달 후엔 좀 볼만한 얼굴이 되어 퇴원해 나온다. 이 짓을 최근 몇 년간 되풀이하고 있다. 어린아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
내가 몇 가지 신비 체계를 공부한 것은 발병(1998년, 시집 『연인들』을 펴내던 과정 중) 5년 전부터였다. 몇 가지 체계를 기웃거려보면서(그것도 학자 머리가 아니라서 시인 머리로서 직감이 더 많이 이용되는 공부였다) 그 속에서 놀이를 하고 더 나아가 그 체계들 사이의 연관성을 캐어보는 유희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역시 머리가 나빠서인지 별 소득은 얻지 못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해소되지 않는 의구심뿐이었다.

내가 조금 끈질기게 해본 것은 동서 체계들의 연관성이었는데 처음에는 괜찮아 보였으나 그 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져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그 점은 아마도 동양 체계들과 서양 체계들 사이에 많은 층위적 단절이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그 점 때문에 더 지치기 시작했던 것 같고, 그래서 지친 심신을 위해서 'letting go'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유의 책들을 안 보기 시작한 게 꽤 되어 지금은 별로 크게 생각나지도 않지만 가끔씩 심심해지면 책들을 펴놓고 또 셈을 해보는 놀이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
어느 날 우연히 『노자』를 다시 읽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신비 체계로서 신비주의를 공부했던 것인데 『노자』에 이르러서 전혀 다른 층위의 신비주의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예감에 휩싸였다.

어쩌면 노자는 『도덕경』, 그 한 권의 책을 쓰기 전에 남몰래 신비 체계들을 공부하고, 그뒤엔 그것들을 초월하는 전대미문의, 층위를 전혀 달리하는 어떤 신비 사상에 도달했는지도 모르고,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돌이를 일으킬지도 몰라 개조극으로 만들기로 작정했는지 모른다(나의 억측). 그러면서도 그는 의식적으로 제1편을 쓰고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낳고 3은 만물을 낳도다'라는 구절을 집어넣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다른 개조극(?)으로 전환하게 만든 것은, 신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요지의 여파가 중요하고, 그래서 차라리 신비를 모르는게 낫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현재 삶인(또한 언제까지나 그런 방식으로 영위되어갈 것처럼 보이는 미래의 삶인)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부문에 대해서 그토록 간절한 말들을 더 많이 되풀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자의 개조극 설을 무슨 미스터리소설처럼 곱씹다가 결국엔 그것도 'letting go' 할 수밖에 없었다.

*
나를 병에 지치게 한 것들에서 손을 뗀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시는 그대로 쓸 것이고, 그러나 문학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는 나는 이미 옛날의 내가 아니어서 다른 꿈을 슬쩍 품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어떤 시원성始原性에 젖줄을 대고 있는 푸근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이상하고 슬픈 설화 형식의 아주 짧은 소설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2010)


 

시인의 말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에서 나는, 이름하여 수필집이라는 것을 내지 않겠다고 결심한 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필집을 엮게 된 것은 책세상 출판사와 나의 어떤 관계 때문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책세상에 대한 나의 채무감(번역 불이행에서 비롯된)을 덜어버려야겠다는(그것도 단시일 내에, 그리고 시간과 수고를 새로이 들일 필요 없이) 나의 얌체 같은 속셈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나 이제 이렇게 되고 보니, 이왕 수필집을 낼 것이었다면 차라리 더 빨리 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든다. 왜냐하면 여기 수록된 잡문들의 대부분이 비문학 잡지나 사보가 요구하는 바에 맞추어서 쓰인 것들이긴 하지만 그 글들에서 보이는 내 지난날의 치기 같은 것을, 오랜 세월 뒤에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새로이 드러내보인다는 것은 부끄러움만 불러일으킬 뿐이고, 그런 부끄러움이라면 좀더 빨리 드러내보여 지금쯤엔 그것을 다 탈탈 털어버리고 잊어버린 상태가 되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령 데뷔 3년 전인 25세의 나이에 모 월간지에 발표했던 한 수필을 읽다가 부딪힌, "다시 나는 젊음이라는 열차를 타려 한다"라는 나 자신의 발언에 38세인 지금의 나는 웃음이 나올 뿐이다. 25세에 자신이 조금은 늙었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면 38세의 나는 자신이 이미 꼬부랑 할머니의 세계로 들어섰다는 느낌을 가져야 할 게 아닌가!

그러나 어쩌랴. 그 모든 편린이, 그 모든 편린의 집합체가 나였으니. 그러므로 이 가벼운 잡문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아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부정확한 기억들에 근거하여 원고들을 찾아내느라 애쓰신 책세상 편집진에게 감사를 드리자.


1989년 11월 20일
최승자

 

 

개정판 시인의 말

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갸
그만쓰자
끝.


2021년 11월 11일
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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