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바티스타 비코: 새로운 학문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22. 1. 4.
새로운 학문 - 잠바티스타 비코 지음, 조한욱 옮김/아카넷 |
이 저작의 개념
이 저작의 서론 몫을 하면서 안표지에 있는 그림에 대한 설명
제1권 원리의 확립에 관하여
제2권 시적 지혜에 관하여
제3권 참된 호메로스의 발견에 관하여
제4권 민족들이 밟는 과정
제5권 민족이 다시 일어났을 때 인간사의 반복
옮긴이 해제
옮기면서
[1] 테베 사람 케베스가 도덕에 관한 도판을 만들었던 것처럼 여기에서 우리는 문명에 관한 도판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그것은 독자가 이 저작을 읽기 전에 그 개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고, 책을 읽은 뒤에도 상상력이 제공할 수 있는 도움을 통해 이 책의 개념을 더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2] 지구의 또는 자연의 세계 위에 올라서 있으며, 관자놀이에 날개가 달린 여자는 형이상학이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은 바로 그런 의미를 뜻하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눈을 내부에 갖고 있는 빛나는 삼각형은 섭리의 시선을 갖춘 신이다. 그 시선을 통해 형이상학은 황홀경에 빠져 자연의 질서 위에 있는 신을 바라본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신을 보아왔을 뿐이다. 반면 이 저작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형이상학이 신 안에서 인간 정신의 세계를 바라본다. 그 세계는 형이상학적인 세계로서 인간 영혼의 세계에서 섭리를 증명하려 하며, 그 형이상학적인 세계는 문명의 세계이자 여러 민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 이 저작에서는 그러한 사회적 본성이 인간의 진정한 본성이며, 또한 자연 속에 법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려 한다. 그렇게 신의 섭리가 이끄는 길이야말로 우리의 『새로운 학문』이 애써 논증하려고 하는 일차적인 주제이며, 『새로운 학문』은 이런 측면에서 신의 섭리에 대한 합리적인 문명 신학이 된다.
[3] 지구의를 둘러싸고 있는 황도대 가운데 사자자리와 처녀자리의 두 별자리만이 위엄이나 이를테면 균형에 있어 다른 것들에 비해 두드러진다. [...] 여기에서 말하는 이 사자는 대지에 있던 태고의 거대한 삼림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것은 헤라클레스에 의해 불태워져 경작지가 된 것인데, 헤라클레스는 전쟁의 영웅에 앞서 나타났던 정치적 영웅의 인격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 그리스 사람들에게 시간은 그들이 밭을 경작하기 시작한 것과 함께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5] 형이상학의 가슴을 장식하는 볼록한 보석을 비추고 있는 신의 섭리의 빛줄기는 형이상학이 갖고 있는 것이 확실한 맑고 순수한 마음을 뜻하는데, 그 마음은 정신의 오만함이나 육체적 쾌락의 천박함에 더렵혀지거나 혼탁해지지 않았음을 뜻한다. 첫 번째로 제논은 정신의 오만함 때문에 운명에 헌신했고, 두 번째로 에피쿠로스는 육체적 쾌락 때문에 우연에 헌신했는데, 그 둘은 실로 신의 섭리를 부정한 것이었다.
[6] 형이상학의 가슴에서 반사된 바로 그 빛줄기는 호메로스의 동상을 비추는데, 그는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최초의 저자이다. 형이상학은 애초에 인간 사상의 역사 위에 만들어졌으며 형이상학 이후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인데, 그 덕분에 아주 강건한 감각과 방대한 상상력이 여러 민족의 최초 건립지들의 조야한 정선 속으로 마침내 침투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 금이 간 받침대 위에 있는 호메로스의 동상은 참된 호메로스의 발견을 의미한다. 『새로운 학문』의 초판본에서 우리는 이것을 감지하긴 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7] 게다가 이 저작에서 지금 지적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즉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비판의 기술의 도움을 얻어 바로 그 민족의 창건자들과 관련된 진리의 탐구에 들어서면서 철학은 문헌학을 검토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9] 제단 위 왼쪽에서 처음 눈에 띄는 것은 지팡이 또는 막대기인데, 그것으로 신관이 전조를 예언하거나 길흉을 점쳤다. 그것은 점복을 상징하는데, 여러 이교도 민족들 사이에서는 여기에서 신에 관한 최초의 생각이 시작되었다.
[10] 제단 위에 있는 지팡이 옆에 불과 항아리에 담긴 물이 보이는데, 그것은 희생물을 바치는 점복에 필요한 것이다.
[11] 최초의 인간사는 혼례이며, 그것은 제단 위에 있는 항아리에 기대 타오르고 있는 횃불로 상징된다. 모든 정치학지들이 동의하듯 가족이 국가의 씨앗인 것처럼 결혼은 가족의 씨앗이다.
[12] 두 번째의 인간사는 매장이다. 라틴 사람들이 말하는 '후마니타스'(humanitas)는 매장을 뜻하는 라틴어 '후만도'(humando) 에서 비롯되었음이 확실하다. 매장은 숲의 한쪽에 떨어져 있는 뼈로 된 항아리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인간이 아직 여름에는 과일을, 겨울에는 도토리를 먹던 시절로 매장 관습이 거슬러 올라감을 의미한다.
[13] 그 뼈 항아리는 민족들 사이의 농지 분할의 기원을 말해주기도 한다. 도시와 민중, 그리고 궁극적으로 국가가 구분된 것은 이것으로부터 비롯된다.
[14] 항아리가 놓여 있는 숲에는 쟁기가 하나 눈에 띄는데, 그것은 최초 민족의 아버지들이 역사 최초의 강한 사람들이었음을 의미한다.
[17] 제단의 왼편에는 방향타가 보이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이동이 항해를 수단으로 하여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제단의 아래쪽에 구부러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방향타는 훗날 이동을 주도했던 자들의 조상을 의미한다. 이들은 처음에 신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불경한 사람들이었다.
[19] 방향타가 제단의 아래쪽에 굽어져 있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선을 모르는 사람들인 예속민들은 신과 관련된 일들에 대해 어떤 몫도 차지하지 못했고, 따라서 귀족들과 함께하는 인간사에도 참여할 수 없었으며, 특히 엄숙한 혼례를 거행할 근거도 찾을 수 없었다.
[21] 약간 더 바깥쪽으로 쟁기의 앞에는 고대 라틴어의 알파벳이 쓰여 있는 널빤지가 놓여 있다. 타키투스가 말한 것처럼 그것은 고대 그리스어를 닮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우리에게 전해지는 최근의 알파벳이 있다. 이 널빤지는 민중적이라 불리는 언어와 문자의 기원을 상징하는데, 그것은 민족의 기원이 확립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일어났던 일로서 문자는 언어보다 훨씬 늦게 생겼다.
[22] 널빤지가 쟁기의 바로 옆에, 방향타로부터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놓여 있는 것은 토속 언어의 기원을 의미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각기 그 자체의 땅에서 최초로 형성되었다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대지의 큰 삼림 곳곳에 흩어져 퍼져 있던 여러 민족의 창건자들은 마침내 우연히 정착하게 되어 야수적인 방랑을 끝냈다.
[24] 마지막으로 그림에서 가장 밝은 표면에는 상형문자가 펼쳐져 있는데 그것은 잘 알려진 인간사를 의미한다. 이 천재적인 화가는 로마의 파스키스와 칼과 파스키스에 걸쳐진 손가방과 저울과 메르쿠리우스의 지팡이를 재치 있게 배치하여 보여주고 있다.
[27] 파스키스에 기대어 있는 칼은 귀족의 법이 힘의 법이었음을 뜻하지만, 힘보다 종교가 선행했으며, 아직 법이 없던 시대에, 혹은 있더라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에, 종교만이 힘과 무기를 관리할 수 있었다. 귄족의 법은 곧바로 아킬레우스의 법이었는데, 아킬레우스는 호메로스가 그리스 사람들에게 영웅적 덕성의 귀감이라고 노래했던 인물로서, 권리에 관한 모든 다툼을 무력으로 해결했다.
[28] 파스키스 위에 놓여 있는 손가방은 화폐를 매개로 한 교역이 상당히 늦게, 즉 시민 주권이 확립된 이후 시작되었음을 나타낸다.
[31] 이렇듯 신의 섭리에 비추어 여러 민족의 공통적인 본성을 연구하는 나의 『새로운 학문』 또는 나의 형이상학은 신의 일과 인간의 일의 기원을 발견하여 여러 민족들의 자연법의 체계를 확립하려고 한다. 그것은 이집트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세 시대를 말하는데, 이전까지 세계의 모든 역사는 항상 일정하게 그 세 시대를 거쳐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32] 이 세 가지 종류의 본성 및 정치 체제에 부합하며 세 가지 종류의 언어가 사용되는데, 그것이 이 『새로운 학문』의 어휘를 구성한다.
[36] 민족들마다 그 과정을 밟을 때 변화하는 세 종류의 사회적 본성에 부합하는 세 종류의 정부가 지배했던 세 종류의 시대에 고유한 세 종류의 언어가 존재하며, 그것과 같은 순서로 그 시대에 적합한 [세 종류의] 법학이 같은 순서로 진행되어왔다.
[41] 따라서 이 저작의 개념 전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그림의 배경에 있는 암흑은 이 『새로운 학문』의 소재로서, 그것은 불확실하고 형체가 없고 모호한데, 연표와 그것에 대한 주에서 설명하고 있다. 신의 섭리가 형이상학의 가슴을 비추고 있는 빛줄기는 공리와 정의와 준거를 뜻한다. 이 『새로운 학문』은 그것들을 요인으로 삼아 그것의 근거가 되는 원리와 그것이 진행되는 방법을 추론하려 한다.
[42]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개념을 가장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그림 전체는 여러 민족의 인간 정신이 땅으로부터 하늘로 격상되는 세 가지 세계의 순서를 표현한다. 땅 위에 보이는 모든 상형문자는 인류가 가장 먼저 몰두했던 여러 민족의 세계를 뜻한다. 기운데에 있는 지구의는 이후 물리학자들이 관찰한 자연의 세계를 나타낸다. 위에 있는 상형 문자는 정신의 세계와 형이상학자들이 마침내 관조하게 되는 신의 세계를 의미한다.
[51] 이집트인들을 필두로 이교도 민족들마다 자신의 역사가 대단히 길다는 허황한 견해에 대해 논의한 다음에야 우리는 이교도 지식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중요한 출발점은 다음을 학문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언제 그 지식은 이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났을까? 또한 참된 신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었을 때 창조된 아담이 군주였던 히브리인들이 세계 최초의 민족이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 그리스도교 신앙에 도움이 될 인간적 근거는 무엇일까?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이교도의 모든 역사는 출발점에 신화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최초로 배워야 할 학문은 선화 또는 신화의 해석이어야 하며, 신화는 이교도 민족의 최초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130] 이 공리는 감각을 말살시키려 하는 스토아학파나 그것을 기준으로 만들려고 하는 에피쿠로스학파 모두를 우리의 『새로운 학문』의 학파로부터 배제시킨다. 왜냐하면 스토아학파는 스스로를 운명에 끌려가게 만듦으로써, 에피쿠로스학파는 우연에 스스로를 맡김으로써 모두 신의 섭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에피쿠로스학파는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함께 죽는다고 주장한다. 그 둘 모두는 "수도원의 철학자 또는 고독한 철학자"로 불려 마땅하다. 반면 [이 공리는] 정치철학자들이 인정한다. 먼저 플라톤주의자들인데, 그들은 다음 세 가지 중요한 논점에 관하여 모든 입법자들과 견해를 같이한다. 첫 번째로 신의 섭리는 존재한다. 두 번째로 인간의 감정은 조절하여 인간 덕성으로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로 인간의 영혼은 불멸이다. 따라서 이 공리로부터 『새로운 학문』의 세 가지 원리가 주어질 것이다.
[141]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간의 필요성과 유용성에 대한 인간의 공통적인 인식에 의해 확실하고 확정적인 것이 된다. 필요성과 유용성은 민족들 자연법의 두 원천이다.
[144] 서로 알지 못하는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발생한 동일한 관념은 진리의 공통적인 근거를 갖고 있음이 확실하다.
[145] 이 책의 저자가 끈질기게 공을 들여 하려고 하는 일 중의 하나는 각 민족들이 서로를 알지 못할 때 자연법은 그 민족들에게서 개별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후에 자연법은 전쟁, 사절 교환, 동맹, 교역의 결과로 모든 인류에 공통적인 것이라고 인정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180] 사람들은 사물을 발생시키는 자연적 원인을 알지 못하고 비슷한 사물을 통해서조차 설명하지 못할 때 자신들의 속성을 그 물에 부여한다. 자석이 철을 사랑한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그 예이다.
[367] 그러나 형이상학은 장엄한 학문으로서 "하위 학문"이라고 불리는 다른 모든 학문에게 확실한 주제를 할당한다. 고대인들의 지혜는 신학 시인의 지혜였고, 공리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그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교 민족 최초의 현자였다. 모든 사물의 기원은 본성적으로 조야했던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모든 이유로 우리는 시적 지혜의 출발점을 조야한 형이상학에 부여하여야 한다.
[1111] 그러나 섭리는 이 저작을 통해 논했던 인간사의 순서를 따라 세 가지 감정을 통해 그것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첫 번째는 경이이고, 두 번째는 고대인들의 비견될 바 없는 지혜에 대해 학자들이 느껴왔던 존경이며, 세 번째는 그것을 열렬히 추구하고 획득하려 했던 열정적인 욕망이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섭리가 밝힌 세 개의 등불로서, 그것을 통해 앞서 말했던 세 가지의 정당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고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그러한 감정은 첫 번째의 공리에서 제기하여 이 책 전체를 통해 비판하였던 학자의 자만심과 민족의 자만심에 의해 타락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타락되지 않은 그 감정은 모든 학자들이 찬양하고 존중하여 신의 무한한 지혜로 함께 나아가기 위해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1112] 요약하자면 이 저작에서 논한 모든 것을 통해 다음과 같 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새로운 학문』은 경건심의 연구와 분리될 수 없으며, 경건하지 않은 사람은 참되게 현명하지 못하다.
'책 밑줄긋기 > 책 2012-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0) | 2022.01.16 |
---|---|
하워드 P. 케인즈: 헤겔 근대 철학사 강의 - 근대 철학의 문제와 흐름 (0) | 2022.01.16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0) | 2022.01.11 |
프리드리히 엥겔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 (0) | 2022.01.11 |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0) | 2022.01.03 |
책정리 | 2021년 밑줄긋기 (0) | 2021.12.14 |
야콥 부르크하르트: 치체로네 : 회화편 ━ 이탈리아 미술을 즐기기 위한 안내 (0) | 2021.12.14 |
강유원: 서양문명의 기반 ━ 철학적 탐구 (0) | 2021.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