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니: 피렌체 찬가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3. 3. 13.
피렌체 찬가 - 레오나르도 브루니 지음, 임병철 옮김/책세상 |
제1장 피렌체 찬가 ...11
1. 피렌체는 어떤 도시인가 ...15
2. 피렌체인들은 어떠한 선조들에게서 유래했는가 ...38
3. 피렌체는 이탈리아 최고의 도시가 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49
4. 왜 피렌체의 내부 조직과 제도가 존경받는가 ...73
해제 - 레오나르도 부루니의 시민적 휴머니즘과 <피렌체 찬가> ...85
1. 서론 - 레오나르도 부르니와 시민적 휴머니즘 ...85
2. 공화주의적 자유와 새로운 역사 인식 ...90
3. 레오나르도 부루니의 생애와 주요 저작 ...110
4. 결론 - 레오나르도 부루니, 최초의 근대인 ...118
<피렌체 찬가>
74 무엇보다도 이 도시는 '정의ius'를 신성하게 유지하기 위해 모든 문제들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의 없이는 어떠한 도시도 존립할 수 없고, 심지어 피렌체조차 정의 없이는 하나의 도시라고 불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자유libertas'가 있습니다. 자유 없이는 이 위대한 사람들도 결코 삶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의와 자유라는 이 두 원리는 거의 하나의 상징이나 목적으로서 피렌체가 지향하는 모든 제도와 법률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80 따라서 피렌체는 누구나 부당하게 해를 입거나,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재산을 잃지 않습니다. 법관들과 행정 관료들이 언제나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법정과 최고 법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피렌체에서는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법정에 소환될 수 있으며, 법은 항상 공공선에 현명하게 봉사하고 시민들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운용됩니다. 따라서 세상 어디에도 피렌체보다 모든 사람에게 더 동등하게 정의를 구현하는 곳은 없습니다. 즉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이보다 더 자유가 생기 있게 자랄 수 없으며, 그 어느 곳에서도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가 이보다 더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사람들은 다른 어느 도시보다 더 훌륭한 피렌체의 분별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힘 있는 자들이 그들의 부와 지위를 약용해 약자를 위협하거나 경멸할 경우, 피렌체에서는 정부가 개입해 약자를 보호하고 가난한 자보다 부유한 이들에게 더 많은 벌을 부과함으로써 약자와 그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들마다 지위가 다르므로 그에 따라 사람들에게 부과되는 벌도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따른 것입니다. 피렌체는 이 원리를 정의와 분별력의 이상에 맞게 운용하여, 가장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도움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형평의 개념에 따라 다루어져, 피렌체에서는 상층 계급은 자신의 부를 통해 보호 받고, 하층 계급은 국가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이 두 계급은 모두 법적 처벌의 두려움으로 일탈을 피하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약자들이 강자에게 위협을 받을 때, 우리가 자주 듣게 되는 강자를 향한 약자의 "나도 피렌체 시민이다!"라는 외침이 생겨났습니다. 어느 누구도 피렌체에서는 자신들이 약하기 때문에 멸시 받을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힘이 강하다고 해서 그렇지 못한 누군가를 위협할 권리가 없다는 점을, 그들은 이러한 외침을 통해 명백하게 지적하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피렌체에서는 약자들이 국가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모두가 동등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피렌체는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시민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보호하고 있습니다. 피렌체에서는 시민이든 외국인이든 누구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으며, 도시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합당한 대우를 정당하게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공손하게 행동하며 누구도 오만하게 타인을 경멸할 수 없기 때문에, 정의와 형평의 정신이 시민들 사이에 관용과 인간적 유대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해제>
85 정치 사상가로서의 브루니는 일반적으로 공화주의자로 이해되고 있다. 공화주의republicanism는 개인주의에 기반한 자유주의 정치 이념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개인이 누려야 할 사적 권리보다는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시민의 덕을 강조하는 정치이념이다. 브루니는 공화주의를 통해 대내적으로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강조하고, 대외적으로는 피렌체의 독립과 자유를 주장했다.
그러므로 브루니는 르네상스 당대에는 무엇보다도 번역가, 수사가, 역사가로 더 널리 알려지고 평가되었던 반면, 현대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근대 공화주의 전통의 씨앗을 뿌린 '시민적 휴머니스트civic humanists'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브루니에 대한 평가는 무엇보다도 한스 바론의 선국적인 연구 덕분이다. 바론은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위기>에서 '구엘피즘Guelfism 전통과 공화정 로마의 공동체적 가치에 기반한 시민적 애국심', 그리고 '고전고대에 대한 열정'이라는 서로 다른 두 요소를 결합시켜 '시민적 휴머니즘'이라는 테제를 제시했다. 15세기 초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의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시민적 휴머니즘의 등장은 밀라노의 전제군주 지안갈레아쪼 비스콘티의 군사적 팽창으로 불거진 정치적 위기 상황이 빚어낸 지적 풍토의 혁명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바론에 따르면, 밀라노의 파상 공세로 도시의 존립 자체마저 불투명했던 1402년의 위기 상황이야말로 전통적인 중세적 가치 개념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시민적 이데올로기가 제공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93 브루니의 정치 사상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가 생각했던 자유에 대한 관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는 브루니의 정치 사상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관념이었다. 브루니는 자유를 인간의 자기 계발의 원천이자 공화주의적 덕의 사원으로 인식했다. 그는 <피렌체 찬가>에서 자유가 손상되지 않고 완전히 구현되었을 때 피렌체가 건설되었고, 이것이 왜 피렌체가 전제정의 가장 강력한 반대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그는 피렌체의 기원을 모든 시민들의 자유가 구현되었던 공화정 로마에서 발견함으로써, 자유가 공화국의 기본 요소임을 강조한다. 브루니는 자유를 통해 공화주의를 옹호했으며, 공화국의 모든 덕성은 어떠한 조건에서도 침해받지 않고 완전한 자유를 구가하는 건강한 시민 의식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했다. <피렌체 찬가>에서 브루니가 예찬했던 피렌체의 위대함은 결국 자유의 결실이며, 피렌체인들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94 브루니 이전 세대의 자유는 도시의 성립과 함께 발전해온 집단적•공동체적 개념으로서, 개인의 권리보다는 외세의 위협에 대한 도시민의 집단 안보와 도시와 공동체의 합의에 따라 운용되어야 한다는 정치 공동체의 자유, 즉 '독립'과 '자치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위트의 주장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1세 시대에서 브루니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자유libertas는 정치적 독립과 공화주의적 자치정부의 수립을 의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브루니의 자유 개념에서도 코뮌적 전통에 입각한 집단적 개념이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브루니는 피렌체 대 밀라노 전쟁을 공화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으로 묘사했는데, 이때의 자유는 도시국가로서의 피렌체의 독립과 자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집단적 개념 외에, 브루니에게 더욱더 중요한 것은 법적 평등과 정치 참여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자유였다.
96 브루니가 주장한 법적 평등은 단순히 모든 시민이 동등한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의 획일적 평등을 뜻한다기보다는, 법이 정의의 원리에 따라 운용되어야 한다는 '형평'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그는 피렌체에서는 지위와 신분의 차이에 따라 시민에게 서로 다른 법적 처벌을 적용함으로써 정의가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98 브루니에게 자유란 법 앞의 평등과 정치 권력의 평등이라는 두 원리를 바탕으로 달성될 수 있는 관념이었다. 그러나 브루니는 이와 같은 자유를 개인의 권리 추구를 강조하는 개인주의 또는 이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보다는,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기여라는 공화주의적 시각에서 규정한다. 브루니의 자유관이 담고 있는 공화주의적 요소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난니 스트로찌를 위한 추도사>의 한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며, 단지 법에 따라서만 제약을 받을 뿐 어떤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구속받지 않는다. 만일 노력하고 재능이 있으며, 건실하고 성실하게 생활한다면, 공직에 참여하고 자기 자신을 고양시킬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 우리 공화국은 시민들의 덕성과 성실성probitas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이고, 이것이 공화국의 평등이다.
118 시민적 휴머니즘은 정치 체제로서의 공화정에 대한 옹호, 이에 따른 역사의 재해석, 시민적 애국심과 이에 바탕한 자신의 도시에 대한 헌신적 예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행동 윤리로서의 활동적•참여적 또는 시민적 삶에 대한 강조라는 몇가지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여러 가치는 브루니의 여러 작품에서 나타나는 한결같은 주제였다. 특히 그의 <피렌체 찬가>는 이와 같은 시민적 휴머니즘과 공화주의 정치 이념의 원초적 형태가 발아한 최초의 저작이었다. 물론 브루니 이전에도 피렌체인의 정치 담론을 지배했던 것이 공화주의라는 말이었으며, 피렌체인들이 대내외적으로 자신들의 정치 이념과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해왔던 명제도 공화주의였다. 이렇게 본다면 공화주의는 중세 이래 몇 백 년 동안 지속되어온 정치 이념이라고 할 수 잇다. 그러나 브루니는 관념적으로 사용되어오던 공화주의라는 주제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이것을 현실 정치 이념으로 정립했다.
'책 밑줄긋기 > 책 2012-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마천: 사기 열전 1 (0) | 2013.03.26 |
---|---|
최정규: 이타적 인간의 출현 (0) | 2013.03.25 |
라인하르트 코젤렉,크리스티안 마이어: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0) | 2013.03.22 |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 (0) | 2013.03.18 |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0) | 2013.03.13 |
루이 앙드레 도리옹: 소크라테스 (1) | 2013.03.06 |
샬롯 히긴스: 한권으로 읽는 그리스 고전 (0) | 2013.03.06 |
사마천: 사기본기 (0) | 2013.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