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규: 이타적 인간의 출현


이타적 인간의 출현 - 10점
최정규 지음/뿌리와이파리


개정증보판 서문 

머리말: 여행을 시작하며 


제1부 죄수의 딜레마를 넘어서 

제1장 팔이 굽혀지지 않는데 밥을 어떻게 먹지? 

제2장 자백만이 살길이다! 

제3장 돕지 않는 것이 남는 장사다 

제4장 스미스 요원의 경고 

제5장 우리 마을에도 가로등을 달 수 있을까? 

제6장 암울한 이론, 따뜻한 현실 

제7장 유전자는 피보다 진하다 

제8장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제9장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 

제10장 앙갚음의 미학 

제11장 끼리끼리 노는군 

제12장 가격과 신뢰는 비례한다? 

제13장 대화는 값싼 수다떨기에 불과한가? 

제14장 뭉쳐야 산다! 

제15장 평화의 그물망으로 욕심을 가두다 

제16장 안으로는 이타적이고, 밖으로는 배타적인 

제17장 당신의 이웃은 누구인가? 

제18장 새로운 여행의 시작 


제2부 이타적 인간, 세상을 가져라! 

제19장 돈이냐 정의냐 

제20장 정글로부터 얻은 교훈 

제21장 호의에는 호의로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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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이 리그전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얻어 승리한 전략은, 제출된 전략들 중 가장 간단한 형태의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토론토 대학 심리학과의 아나톨 라포트 교수가 응보한 고작 네줄짜리 프로그래밍 코드였다.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 이하 TFT) 전략이 그것이다.

TFT 전략은 다음과 같은 아주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1) '협조'로 게임을 시작한다. (2) 게임이 반복되는 경우, 상대방의 이전 행동을 그대로 따라한다. 즉 상대방이 바로 전회에 '협조'를 했으면 자신도 이번 회에 '협조'를 하고, 상대방이 전회에 '배신'을 했으면 자신도 이번 회에 '배신'을 한다.

다시 말해 TFT 전략은 선善하게 게임을 시작한 후, 상대방의 호의에는 호의로, 악의에는 악의로 대응한다는 '상호성의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TFT 전략은 조건부 협조 전략인 셈이다. 이 전략은 상대가 협조적으로 나오기만 하면 영원히 협조적으로 대할 용의가 있지만, 상대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협조하길 그만두는 전략이다.


110 게임이 충분할 정도로 높은 확률로 반복되면, 게임은 더 이상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구조를 갖지 않는다. 이 게임은 루소가 사슴사냥에 나서는 사냥꾼들 간의 선택의 문제를 들어 얘기한 사슴사냥게임Stag Hunt Game이라는 조정 게임이 된다.

사냥꾼들이 사슴사냥을 성공리에 마치려면 각자가 자신이 맡은 길목을 충실하게 지키고 서 있어야 한다. 자기가 맡은 길목을 지키고 있는데 토키 한 마리가 자기 옆을 지나간다고 하면, 이를 본 사냥꾼이 자기 길목을 내팽개치고 토끼를 쫒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루소,<인간 불평등 기원론>)

111 이러한 구조를 갖는 게임을 조정 게임Coordination Game이라고 부른다. 조정 게임에서는 상대방과 내가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게 균형이다. 상대방과 내가 모두 사슴을 쫒는 것이 하나의 균형이고, 상대방과 내가 모두 토끼를 쫒는 것이 또 하나의 균형이다.

114 반복 - 상호성 가설에 기초한 이타적 행위 모형
두 경기가자 표11의 보수행렬로 표현되는 이타적 협조 게임을 한다. A를 보면 '배신'이 우월전략이 되는 전형적인 이타적 협조게임(혹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형태이다. 게임이 한 번 벌어지고 끝난다면 두 경기자 사이에 협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 둘 사이에 게임이 델타의 확률로 반복된다고 해보자. 

(1) 조건부 협조
첫 회 게임에 협조로 시작해서 그 다음 회부터는 상대방이 전기에 협조를 한 경우에만 협조한다. 상대방이 한 번이라도 배신하게 되면 그 이후로는 계속 배신 전략을 선택한다.

(2) 배신
첫 회부터 '배신'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계속 '배신'을 한다.(계속 무임승차하려고 한다)

TFT 전략은 상대방이 배신을 하면 배신으로 응징을 하는데, 언젠가 상대방이 다시 협조적으로 나오면 자신도 협조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반면,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전략은 일단 상대방이 배신을 하면, 앞으로 영원히 배신하는 것으로 응징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형태의 조건부 전략을 '방아쇠 전략trigger strategy'이라고 부른다. 

140 따라서 거래가 반복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반복 - 상호성 가설대로 협조적인 행위를 한다. 더욱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긴밀해서 내가 직접 당하지 않았더라도 내 이웃으로부터 동네 과일가게의 횡포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다면, 나도 내 이웃과 동일하게 그 과일가게의 횡포에 보복하게 될 것이다. 이를 '간법적 상호성inderect reciprocity'이라고 부른다. 
요약하자면, 거래가 반복해서 이루어지고 사람들 사이에 관계가 긴밀해서 정보가 잘 소통되는 경우일수록 그만큼 반복 - 상호성에 기초한 협조적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반복 - 상호성 가설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반복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협조적 행위다.

161 사람들은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때때로 그를 징계하거나 보복한다. 이때 보복을 통해 얻게 되는 이득이 자신등레게 돌아오지 않을지라도,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비용이 들게됨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그대로 놔두지만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상호적 인간Homo reciprocan이라고 부른다.
반복 - 상호성 가설에서 전제하고 있는 주체는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여기서는 오직 장기적 이익이냐 단기적 이익이냐가 문제가 된다) 행동한다는 의미에서 '보수대응적' 인간형이다. 반면 상호적 인간이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만 행동하지 않으며,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즉 상대방이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나오거나 사회적 합의나 규범을 어기면 보복한다는 의미에서 '행위대응적'이다.

205 유전적 전수와 문화적 전수
어떤 특성(혹은 전략)이 한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과정을 전수transmission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유전적 과정으로도 혹은 문화적 과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유전적 전수: 어떤 환경하에서 X라는 유전적 특성을 갖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살아남는 데 더 적합하다면, X라는 유전적 특성을 가진 개인들은 더 많은 자식들을 갖게 되고, 이렇게 태어난 자식들은 부모의 유전적 특성을 이어받기 때문에 이들 역시 X라는 특성을 갖게 된다. 결과적으로 다음세대에는 X라는 특성을 가진 개인들이 점점 늘어난다.

문화적 전수: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전략을 학습하고 답습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환경하에서 X라는 문화적 특성들을 갖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더 많은 보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사람들은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의 전략을 배우려 할 것이고, 따라서 X라는 전략은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빈번히 모방 혹은 '복제' 된다. 이렇게 그 전략을 배우 사람들이 여전히 높은 성공도를 보인다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X라는 성공적인 전략을 배워나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X라는 전략을 갖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어떤 특정한 환경하에서 더 성공적이라는 것이 판명되면, 그 전략은 사회 구성원들의 학습과정을 통해서 점점 사회의 더 많은 부분으로 전파된다.

268 독재자 게임은 기본적은 틀에서는 최후통첩 게임과 동일하다. 다만 제안자는 얼마의 금액을 응답자에게 제안하고, 그것으로 게임이 끝난다. 응답자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 즉 이 게임에서는 제안자가 최소한의 금액을 제안했다고 해서 그 제안이 거절당한 위험이 없다. 따라서 제안자가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그에게 최적이 되는 선택은 최소한의 금액을 제안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독재자 게임에서도 제안자가 높은 금액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그의 제안이 거부될 위험을 고려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임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298 흔히 노동계약을 '불완전한 계약incomplete contract'이라고 말한다. 컴퓨터를 둘러싼 계약과 달리 노동계약은 계약시점에 모든 계약조건을 완벽하게 서술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컴퓨터를 사려고 할 때 그 컴퓨터가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안정적인지 등이 중요한 것처럼, 노동자를 고용하려고 할 때는 그 노동자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컴퓨터 구매와는 달리, 노동자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할 것인지를 계약을 통해 약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경우 계약은 아주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작성된다. 정작 중요한 구체적인 부분은 계약을 통해서 약속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와 기업가 간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맺음말
305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타적 행위 속성 및 강한 상호성이 어떻게 진화해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오래도록 이야기해왔다. 그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타적 속성은 혈연선택 과정을 통해서 진화했을 수 있다.
둘째, 이타적 속성은 관계가 오래 지속될수록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이후 계속되는 만남에서 얻게 될 장기적 이득을 고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 행동이 사람들에게 어떤 평판을 얻을 것인지를 고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상의 두 이론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받아들여진 이론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가설들을 우리 사회에 곧바로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발견되는 이타적인 행동들은 친족관계를 뛰어넘는 훨씬 넓은 범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많고, 또 미래에 반복될 가능성이 그다지 크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유유상종, 집단선택 그리고 국지화 모두가, 진정한(즉, 이타적으로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 이타적 행위가 진화할 수 있는 유리한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인간이기 때문에 지닐 수 있었던 의사소통능력, 그리고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발전시킬 수 있었던 사회적 제도 등도 역시 이타적 행위의 진화에 빼놓을 수 없는 주체적 혹은 환경적 요인들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인류는 친족의 범위를 넘어서, 그리고 게임이 반복되지 않은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행위적 특성을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적 특성은 이타적 협조행위뿐 아니라, 사회규범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들을 징게하고 그들에게 보복하는 행위적 특성까지 포함하여 진화해왔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309 우리의 만족감을 U로 표시하고, 자신의 물질적 이득으로부터 얻게 되는 만족감의 정도를 M, 그리고 타인의 행복으로부터 얻게 되는 만족감의 정도를 V로 표시해 보자. 이것을 수식으로 표현하면, U = M + aV가 된다. 만일 a가 0 보다 큰 사람이라면 그는 타인이 행복할 때 그로부터 심리적 만족감을 느낄 것이고, 만일 a가 0보다 작은 사람이라면 그는 타인이 행복할 때 배가 아픈, 혹은 상대가 불행해지는 것을 보고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a가 0인 사람의 경우 그의 만족감은 자기 자신의 물질적 이득이 얼마나 되는지에 의해서만 결정되므로, 그 사람이 바로 호모 에코노미쿠스 Homo economicus일 것이다.

311 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만을 고려하여 행동한다. 이 경우 사람들의 행위를 이끄는 것은 물질적·금전적 유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경우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전혀' 돌아오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행동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공평성 내지는 형평성을 중요한 행동과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강한 상호성에 따라 행동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물질적·금전적 유인보다는 규범, 관습, 그리고 제도가 사람들의 행위를 인도하는 나침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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