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신학-정치론


신학-정치론 - 10점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김호경 옮김/책세상


서문


제1장 성서 해석에 관해서


제2장 거룩한 법의 진실한 기원에 관해서. 그리고 성서는 어떤 의미에서 거룩한 문서인가. 성서가 신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는 한에서, 성서는 훼손되지 않고 우리에게 전해졌다. 


제3장 이성이 신학에, 신학이 이성에 종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어떤 근거에서 우리가 성서의 권위를 확신할 수 있는가


해제 - 스피노자, 미신과 종교, 종교와 철학의 경계에 서다





서문

14 우리는 불확실한 것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갖고 모든 형태의 미신에 빠지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해 있고 도움을 받지 못할 때 그들이 서원과 연약한 눈물로 거룩한 도움을 간청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본다. 그들은 공허한 목표에 대해 확실한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성을 맹목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인간의 지혜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긴다. 반면 환상과 꿈, 황당무계한 난센스의 산물을 신의 응답으로 생각한다. 신이 그의 방식을 벗어나 정신이 아닌 동물의 오장육부에 그의 결정을 써넣었거나, 신의 영감과 격려에 의해 바보, 멍청이, 새가 신의 결정을 알려주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인간을 이러한 광기로 몰아간다. 미신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며 풍성하게 만드는 원인 또한 두려움이다.


15 두려움이 지속되는 한에서만 인간이 미신에 의존해 행동할 것이며 인간이 잘못된 종교에 빠지는 것은 오직 의식이 슬픔에 빠져 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결과였다는 사실, 즉 그것은 곧 환상적 상태에 빠지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18 나는 사랑, 기쁨, 평화, 절제, 성실을 강조하는 기독교를 믿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증오의 태도로 서로 싸우고 매일 잔인한 미움을 서로에게 내뿜는 것에 종종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9 성직자에게 높은 존경을 표하는 것을 종교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나타난다. 교회에서 이러한 남용이 자행된 이래로, 사람들은 영적인 직무를 장악하려는 가장 저질적인 탐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거룩한 종교를 확장하려는 열망은 추잡한 탐욕과 야심으로 신의 집을 극장으로 타락시켰다.


21 나는 편견 없는 자유로운 정신으로 새롭게 성서를 시험하고, 성서 자체에서 아주 분명하게 추론할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또는 성서의 가르침으로 여기지 않을 것을 굳게 결심했다.


제1장 성서 해석에 관해서

33 나는 성서 해석의 방법이 자연 해석의 방법과 다르지 않고, 그것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자연 사물의 정의를 확실한 자료에서 이끌어내서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 자연 해석의 방법에서 본질적인 것처럼, 확실한 자료와 원칙에서 올바른 추론을 통해 성서기자의 진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성서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연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성서 해석에서도 필요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은 오류를 범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우리가 자연의 빛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34 성서의 거룩함은 오직 그것이 진실한 덕을 가르치는 것을 통해 확증될 수 있다. 그러나 성서는 오직 성서 자체로만 증명될 수 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성서를 받아들이고 성서의 거룩함을 고백하는 것은 심각한 편견이 될 것이다. 성서에 대한 우리의 모든 인식은 성서를 바탕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59 마이모니데스는 예언자들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근본적인 가르침부터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의 방법은 일반 사람들이 해석자의 증언에 만족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말을 이해했던 일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62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견해에 따라 시민법을 해석할 자유를 갖는다면 어떤 국가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당장에 소멸될 것이고 공공의 권리는 사적인 권리가 될 것이다. 종교는 그것과 전혀 다르다. 종교는 외적인 행위보다 마음의 단순함과 진실함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법이나 공공의 권위에 종속되지 않는다. 누구도 구원받는 것을 결코 권력이나 법에 의해 강요당할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의 단순함과 진실함은 율법의 통치나 공공의 권위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악의 없고 친근한 경고, 훌륭한 양육 과정, 무엇보다도 독자적이고 자유로운 판단이 요구된다. 


63 그러므로 특히 법을 해석할 수 있는 최고의 권위와 당국의 공적인 직무에 대한 제한되지 않은 판단이 허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는 공공의 권리와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모든 사람은 종교를 설명하고 종교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최고의 권위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개인의 권리에 속하기 때문이다.


63 성서 해석에 대한 최고의 권위가 각 개인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해석을 위해 공통적인 자연의 빛 외에, 초자연적인 계시든 외적인 권위든 어떤 다른 규범도 필요 없다. 이 방법은 매우 통찰력 있는 철학자만이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것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일반적인 사고력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그것에 따르는 어려움이 방법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부주의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제2장 거룩한 법의 진실한 기원에 관해서. 그리고 성서는 어떤 의미에서 거룩한 문서인가. 성서가 신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는 한에서, 성서는 훼손되지 않고 우리에게 전해졌다. 

74 예언자의 선포가 일반적인 자연의 빛에 의지하지 않고 예언자의 특별한 능력이나 그의 예언자적 천성에 의지하는 한 신의 말씀은 예언자의 모든 선포를 위해 사용되었다. 4장에서 지적한 것처럼 예언자들이 일반적으로 신을 율법 수여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은 예언자들에게 일반적인 것이었다.


74 성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에서 신의 말씀이라고 불린다. 첫째, 성서는 진실한 종교를 가르치며, 그것의 영원한 저자는 신이다. 둘째, 성서는 신의 명령으로 미래의 사건을 예언한다. 마지막으로, 성서의 실질적인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보편적인 자연의 빛이 아니라 그들이 경험한 특별한 계시에 따라서 가르치며, 그들의 가르침을 신의 말씀으로 이해한다. 이외에도 당연히 성서는 전적으로 역사적인 것과 자연의 빛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신의 말씀이라는 성서의 이름은 성서의 가장 중요한 내용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75 우리가 갖고 있는 <구약성서>를 배태하고 구성한 많은 다른 책들과 같이 뛰어난 많은 다른 문서들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신의 말씀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과는 달리, 우리가 더 적은 수의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의 말씀(이미 지적한 대로 실제로 진실한 종교를 이해하게 하는)이 우리에게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77 나는 성서가 종교나 보편적인 거룩한 법과의 관련 속에서만 실제로 신의 말씀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성서가 본래의 의미에서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사용된다면 결함을 갖거나 못 쓰게 되거나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을 덧붙여야 한다. 여기서 나는 잘못 쓰여졌고 잘못 정리한 것, 즉 이야기의 의미를 언어 용법에서 밝혀내지 않았거나 성서 자체에서 끌어내지 않은 것을 결함이 있는 것, 못 쓰게 된 것, 훼손된 것이라고 부른다. 나는 성서가 거룩한 법을 갖고 있는 한 성서는 늘 같은 표상과 같은 문자, 마침내 같은 말씀을 보존해왔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78 처음 의도되었던 말씀들이 종종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의미 - 의미와의 관련 속에서만 이야기가 거룩하다고 불릴 수 있기 때문에 - 는 거짓 없이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나는 주장한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그러한 변화가 성서의 거룩함을 파괴하지는 않는다. 지금과는 다른 이야기나 다른 언어로 씌어지더라도 여전히 성서는 거룩하기 때문이다.


제3장 이성이 신학에, 신학이 이성에 종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어떤 근거에서 우리가 성서의 권위를 확신할 수 있는가

83 나는 성서는 철학적인 것이 아니고 오직 신앙심을 가르치는 것이며, 성서의 전체 내용은 일반 사람들의 이해력과 이미 받아들인 믿음에 부합하다고 지적했다. 성서를 철학과 조화시키려는 사람은 자연히 예언자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많은 부분을 예언자 탓으로 돌려야 하며, 예언자들의 생각을 왜곡시켜야 한다. 반대로 이성과 철학을 신학의 하녀로 전락시키는 사람은 어떤 고대 민족의 편견을 거룩한 말씀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성을 경시하는 것이나 이성을 강조하는 것이나 모두 불합리하다.


86 사람들이 가장 훌륭한 선물이며 거룩한 빛인 이성을 생명이 없고 인간의 악을 통해 왜곡된 문자에 종속시키는 것에 대해, 그리고 거룩한 말씀의 진실한 원본인 정신을 무가치한 것으로 말하고, 쓸데없고 맹목적이며 배타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것을 정신에 대한 범죄로 간주하지 않는 것에 대해,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반면 거룩한 말씀의 모사인 문자에 대해 그와 같은 생각을 품는다면 그것은 커다란 범죄로 취급될 것이다. 


90 신학이 이성에 종속되지도 않고 이성이 신학에 종속되지도 않는다는 것, 그 각각이 고유의 영역- 이미 말한 대로, 진리와 지혜의 영역인 이성, 신앙과 순종의 영역인 신학 - 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확고한 진리로 주장한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성의 힘은 사람들이 대상에 대한 인식 없이, 단지 순종을 통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까지 확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제 - 스피노자, 미신과 종교, 종교와 철학의 경계에 서다

96 내가 성서나 계시의 유용성과 필연성을 고려해 그것들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여기서 분명하게 말하고자 한다.

꾸밈 없는 순종이 구원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자연의 빛을 통해 정의할 수 없고, 구원이 우리가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신의 특별한 은혜에서 생긴다는 것을 계시가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에, 성서는 인간에게 매우 큰 위로를 해줄 수 있다. 인류 전체에서 비교해보면, 오직 이성의 인도로 덕 있는 삶의 방식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소수인 반면,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기 때문에, 성서의 증언을 갖고 있지 못했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한 구원을 의심해야 했을 것이다.


107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속에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에게 신은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한 속성들로 구성된 실체다. 또한 신의 실존을 방해할 수 있는 어떤 원인이나 이유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 이러한 신적 특성은 모든 실체에 적용된다. 실체는 그 자신 안에 자신의 실존을 유지하려는 완전한 설명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실존을 유지하려는 코나투스conatus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코나투스는 사물들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성질로, 사물의 존립과 성질들을 설명할 수 잇게 하는 인과적 원리다. 이것은 사물의 본질을 이루는 것으로, 이것이 없으면 사물도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존재론적 증명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속에 있고, 신 없이는 아무것도 실존하거나 사유할 수 없다"는 스피노자의 명제를 만들어 낸다.


109 인간의 본질을 유지하게 하는 코나투스는 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사랑하게 하고, 신을 더 많이 사랑할수록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스피노자는 인식의 추구에서 필연적으로 유래하는 이 사랑을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amor intellectualis del'이라고 부른다.


113 우리가 계시나 예언이라고 느끼는 것들은 스피노자에게는 상상의 중계에 의한 것이다. 즉 계시는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자연적인 것을 신의 일로 돌려놓는 행위에 불과하다. 계시나 예언은 단순한 사상의 지평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계시에 대한 이러한 거부는 초월적인 신 이해를 부정하고 내재적인 신에서 출발하는 스피노자에게는 당연한 귀결이다. 


117 스피노자는 우리가 문서로 가지고 있는 성서가 그 자체로 신의 말씀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신의 말씀은 기록된 몇몇 문서 속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이는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이해와 맞물려 있다. 세상 속에 내재해 있는 실체로서의 신은 특정한 문서에만 그의 말씀을 놓을 필요가 없다.


119 자연적 해석은 자연에 적용하는 인과율적 이해를 성서 자체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계시와 같은 성서 외적인 권위에 의지해서 성서를 해석하지 않고, 성서의 합리적인 내적 연관성을 강조한다. 자연적 해석은 성서를 계시 문서로 보지 않고, 성서 텍스트를 역사화하거나 세속화하는 이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적 해석은 성서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 이류를 설명하고자 하며, 성서에 일관되게 흐르는 본질적 의도를 찾으려고 한다.


120 그러므로 우리가 성서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의미다. 자명한 진리는 해석이 필요 없는 반면, 성서 속의 의미는 해석이 필요하다. 즉 성서는 해석을 통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무엇이다. 그러나 성서 안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우리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들이 있기도 한데, 그것들은 성서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중요하지 않고, 그것을 모른다고 해서 구원에 영향이 미치는 것도 아니다.


123 <신학-정치론>의 의도는 종교와 미신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올바른 종교의 의미를 드러내주려는 것이다. 종교가 잘못되면 사람들에게 불화와 증오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는 진정한 종교는 사람들에게 관용과 자유를 주는 것이어야 하고, 종교가 정치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를 철학과 분리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스피노자가 이렇듯 종교를 정치에 종속시키는 것은 그의 사상과 시대적 상황의 연계성 때문이다. 스피노자에게 종교와 철학,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모두 형이상학 문제다. 


124 스피노자는 자연적 해석 방법을 사용하는 성서 해석을 통해 성서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역설한다. 이 해석 방법은 어느 특정인에게 권위를 부여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상상은 복종을 정당화함으로써, 복종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구조적 차원을 내재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종교 속에 내재화된 권위를 파기하는 것은 정치적 정의를 보편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129 <신학-정치론>의 중요성은 스피노자가 당시 권위의 근거이던 성서를 세속화시킴으로써 새운 세계관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이 책은 종교적 편견이 만연하던 시대에 편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종교와 사회에 대한 이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스피노자의 노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는 이 책을 통해 초자연적, 초월적 차원이 배제된 세계를 위한 형이상학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132 그는 자유주의에 대한 순진한 열망과 인간의 이성에 대한 낙천적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정치에 대한 종교의 종속이 종교가 정치의 본질을 해칠 수 있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이라는 생각에는 이르지 못했다.

 

139 26) (옮긴이 주) 스피노자는 거룩한 법과 인간의 법을 구분한다. 전자는 최고의 선을 지향하는 것으로 신에 대한 사랑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후자는 삶을 보호하고 안녕을 유지할 목적을 가진 행위를 위해 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전자가 보편적인 것이라면 후자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예언자들은 종종 계시를 통해 인간의 법을 신과 연결시킴으로써 사람들이 그것을 거룩한 법으로 인식하게 했다. 예를 들어 모세의 율법은 유대 민족을 위한 것이지 모든 사람을 위한 신의 법 또는 거룩한 법이 아니라고 스피노자는 강조한다. 예언자들이 그들의 예언을 절대적인 율법으로 선포한 것은 일종의 이해 방이지 진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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