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하위징아: 에라스뮈스


에라스뮈스 - 10점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연암서가


옮긴이의 말 

서문 G. N. 클라크 


제1장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1466-88) 

제2장 스테인 수도원(1488-95) 

제3장 파리 대학교(1495-99) 

제4장 최초의 영국 체류(1499-1500) 

제5장 휴머니스트 저자인 에라스뮈스 

제6장 신학적 열망(1501) 

제7장 루뱅, 파리, 두 번째 영국 체류 

제8장 이탈리아 체류(1506-09) 

제9장 『우신 예찬』 

제10장 세 번째 영국 체류(1509-14) 

제11장 신학의 빛(1514-16) 

제12장 에라스뮈스의 사상 1 

제13장 에라스뮈스의 사상 2 

제14장 에라스뮈스의 성품 

제15장 루뱅 대학 시절 

제16장 종교개혁의 초창기 

제17장 바젤 시절 

제18장 루터와의 논쟁과 짙어지는 보수 색채 

제19장 휴머니스트와 종교개혁가들과의 전쟁(1528-29) 

제20장 에라스뮈스의 말년 

제21장 결론 


인명·용어 풀이 

해설 둘케 데시페레 인 로코 

에라스뮈스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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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우신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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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이 엔코미움

알프스 산길을 말 타고 넘어갈 때 틀에 박힌 업무에서 자유롭게 해방된 에라스뮈스의 정신은 지난 몇 년 동안에 공부했던 것, 읽었던 것, 보았던 것을 곰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는 엄청난 야망, 지기기만, 오만, 자부심이 횡행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다시 만나게 될 토머스 모어를 생각했다. 모어는 그가 아는 친구들 중에 가장 재치있고 현명한 사람인데 기이하게도 모로스Moros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모로스는 그리스어로 바보(혹은 어리석음)라는 뜻인데, 그건 모어의 성격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토머스 모어와 대화를 하면서 나누게될 즐거운 농담을 기대하면서 에라스뮈스의 마음속에는 상쾌한 유머와 현명한 아이러니가 가득 찬 책, 모리아이 엔코미움, 즉 [우신예찬]이 구상되었다. 

이 세상은 어디에서나 어리석음이 저질러지는 무대라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인생과 사회를 돌아가게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 모든 사실이 스툴티티아(Stultitia:어리석음을 의미하는 라틴어 곧 우신)의 입을 통해서 발언된다. 스툴티티아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어리석음의 여신인데 자기 자신의 위력과 유용성에 대하여 찬사를 늘어놓으면서 계속 자신을 칭찬한다. 이 작품은 그가 라틴어로 번역한 리바니우스의 [웅변]처럼 웅변의 형식을 취한다. 주제로 말해 보자면 그가 3년 전에 변역했던 루키아노스의 [갈루스]에서 그 유희의 정신을 배워왔을 것이다. 이 작품은 에라스뮈스의 총명한 정신 속에서 오랫동안 은밀하게 숙성되어 왔다. 그가 [격언집]의 증보판을 준비하면서 읽었던 고전 작품들이 그의 엄청난 기억 창고 속에 저장되어 즉시 꺼내 쓸 수 있는 상태로 대기 중이었다. 고전 작가들의 지혜를 바로 옆에 대기시켜 놓은 상태에서 그는 자신의 논증에 필요한 핵심들만 뽑아내어 이 작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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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케 데시페레 인 로코

어리석음은 말한다.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은 단 한순간도 존재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인간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그 행위들은 바보를 위해서 바보가 하는 짓이 아닌가?" "어리석음이 없다면 그 어떤 사회, 그 어떤 동거도 유쾌하지 못하고, 또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그들이 가끔 실수를 해서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지 않는다면, 백성은 군주를, 주인은 하인을, 하녀는 여주인을, 선생은 제자를, 친구는 다른 친구를, 아내는 남편을 단 한 순간도 견뎌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현명하게도 어떤 일을 꾸며내는 데 가담하고, 어리석음의 꿀을 그들의 몸에 바르는 것이다" 이 문장에 [우신예찬]의 요약이 들어 있다. 여기서 어리석음은 세속적 지혜, 체념, 관대한 판단 등을 의미한다. 

(둘케 데시페레 인 로코dulce desipere in loco는 "때때로 바보짓을 하는 것은 즐겁다"라는 뜻의 라틴어.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서정시] 4, 12:28에 나오는 말인데, 에라스뮈스는 [우신 예찬]을 쓸 때 이 말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 옮긴이)

인생의 코메디에서 가면을 벗어 버리는 자는 추방해야 마땅하다. 한 바탕의 놀이마당이 아니라면 우리 인간의 삶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저마다 가면을 쓰고서 무대에 오르는 배우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열심히 자신의 배역을 놀이하다가 연출 감독이 그만 내려오라고 하면 내려가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기존의 생활 조건들에 자기 자신을 적응시키지 못하는 자, 놀이를 더 이상 놀이로 여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자, 이런 자들은 모두 엉뚱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현명한 자라면 모든 사람과 어울리면서 그들이 꾸며내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 이것이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 행동을 밀어붙이는 추진력은 필라우티아Philautia이다. 필라우티아는 자기애를 말하는 것인데 스툴티티아의 자매이다. 이 인생의 양념을 한번 제거해 보라. 그러면 웅변가의 말은 썰렁해질 것이고, 시인의 언어는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화가는 자신의 그림을 말아들고 조용히 사라져야 할 것이다. 오만, 허영, 허세의 외투를 입고 있는 어리석음은, 이 세상에서 높고 위대하다고 평가되는 것의 감추어진 원천이다. 명예의 전당, 애국심, 민족정신으로 무장한 국가, 의례의 장엄함, 성관과 고귀함의 망상, 이런 치장물들은 어리석음이 아니면 무엇인가? 가장 어리석은 행동인 전쟁은 모든 영웅심의 근원이다. 무엇때문에 고대 로마의 영운 데키우스와 쿠르티우스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목숨을 희생 제물로 내놓았는가? 바로 허영심이다. 이런 어리석음이 국가를 만들어 다. 그 허영심 때문에 제국, 종교, 법원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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