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에라스무스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 - 10점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아롬미디어



옮긴이의 글 


1장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삶 

2장 탐험의 시대, 열광의 시대 

3장 신학교에서 보낸 어두운 청년시절 

4장 시대를 밝히는 위대한 스승의 초상 

5장 종교의 르네상스를 꿈꾸던 시절 

6장 인문주의의 위대성과 한계 

7장 투쟁가의 천성을 타고난 루터와의 갈등 

8장 종교전쟁에서 중립을 지키려는 고독한 투쟁 

9장 루터와의 위대한 논쟁 

10장 에라스무스의 패배와 방랑 

11장 에라스무스의 유산




27 "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신의 좌우명을 마지막까지 사실로 만들며 그는 자기 자신만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자세를 끝까지 지킨다. 예술가나 에라스무스의 뜻에 따르는 정신적 인간은 정치가들이나 지도자들, 그리고 일방적인 열광 쪽으로 유혹하는 사람들을 상대해 이해하고 중재하며 절제와 중용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할 과제를 갖는다. 그는 선봉에 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유로운 사상의 적, 즉 광신에 전적으로 홀로 맞서야 한다.


78 에라스무스는 위험이 닥치면 죽은 척 꼼짝도 않거나 보호색으로 몸색깔을 변화시키는 작은 동물의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할 뿐이다. 그가 불안을 느꼈을 때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자신의 달팽이껍데기 안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연구실 안으로 숨는 것이다. 그는 책으로 된 벽 뒤에서만 내적으로 안전하다고 알고 있다.


134 인문주의에는 민중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인문주의는 민중을 천하게 간주하고, 대중에게 은혜를 구한다는 것, 교육받지 못한 '야만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교양인으로서 체면이 깎이는 일로 간주했기 때문에 항상 얼마 안 되는 행복한 몇 사람만을 위해 존재했고 결코 민중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았다. 단지 잠시 동안만 온 세상을 비추고 그 높은 위치에서 은총을 내리는 태도로 어두워진 세상을 굽어보면서 창조 정신의 순수한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던 인문주의의 플라톤적 인류 제국은 구름의 제국으로 남아야 했다. 이 차갑고 인위적인 형상은 현실의 폭풍을 견디지 못할 것이며 - 인문주의는 이미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 싸워 보지도 못하고 허무의 소유가 돼 버릴 것이다.


138 그러나 그것은 어두운 땅 위에 천천히 떠오르는 성스러운 여명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이상세계를 파괴할 불덩이다. 게르만족이 그 멋진 로마에 침입했듯이, 그렇게 광신적 행동의 인간 루터는 국가 민중운동의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그들의 초국가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꿈에 침입한다. 그리고 인문주의가 세계 융화의 작업을 진정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종교개혁은 유럽의 마지막 정신의 합일, 우주의 통일체를 쇠망치로 산산이 부숴 버린다.


155 한 국가가 억지로 참아내야 하는 일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외부 세력이 강요하는 배상금이다. 이와 같은 경우로, 교회가 백분율로 나누어 파견한 대리인들이나 직업적인 면죄부 상인을 이용해 피조물의 원초적 불안을 돈으로 환산하며 미리 인쇄한 전표로 독일 농민과 시민들에게 쥐어짜낸 돈이 나라 밖으로 흘러나가 로마로 간다는 국가적 분노가, 보이지는 않지만 온 나라에 말없이 쌓여가고 있었다. 루터는 자신의 단호한 행동으로 그 분노에 불을 붙였을 뿐이다. 여기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결정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악습에 대한 비난 자체가 아니라 그 비난의 형식이라는 점이다.


155 에라스무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여러가지 조롱과 비판으로 정신적인 사람들의 주의를 일깨웠으나, 대중의 열광적인 영역에까지는 들어가지 못했던 곳에서 루터는 단번에 민중 감정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다. 그는 2년 만에 독일의 상징이 되고, 국가의 모든 반로마 요구와 희망의 사령관이 된다. 모든 저항의 힘이 그에게 응집되는 것이다.


241 루터는 단호하게 결론을 내린다. "이제 전쟁이 일어나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충분히 기도했고, 할 만큼 했다."

에라스무스도 비극적 결론을 내린다. "이 세상에서 끔찍한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때, 에라스무스가 그것을 예고했다는 점을 상기하시오."

자신의 '에라스무스적' 이념이 마지막으로, 또 결정적으로 패배한 바로 그 날부터 프라이부르크의 자기 서재에 들어앉은 이 늙은 사내는 불필요한 존재일 뿐이며, 한 때 찬란했던 명성의 빛바랜 그림자일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 시끄러운 시대에'에, 좀더 정확하기 말하자면 '미친 듯 광포한 이 시대'에, 조용한 관용의 인간은 무의미하다는 사실 자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평화의 신념을 전혀 모르는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이 허약하고 관절염 앓는 몸뚱이를 아직도 끌고 다녀야 하는가? 한때, 그토록 사랑받던 삶이었지만 에라스무스는 이제 지쳐 버렸다. 그의 입술에서는 비애를 느낄 정도로 애절한 호소가 흘러나온다.

"신이시여, 이 광란의 세상에서 절 당신 곁으로 데려가 주소서!"


249 죽어가는 에라스무스가 유럽의 화합이라는 자신의 정신적 유산을 후대 사람들에게 가장 고귀한 과제로 맡기던 바로 그 시간에 피렌체에서는 세계사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이고 가장 무모한 책 중의 하나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그 악명높은 <군주론>이 출간된다. 수학처럼 명확한, 이 무자비한 권력 정치 및 성공 정치의 교과서에는 에라스무스와 반대되는 원칙이 마치 교리문답처럼 분명하게 공식화돼 있다.


250 마키아벨리의 마지막 목표는 권력관 권력 신장이고, 에라스무스의 마지막 목표는 정당성이다.

이로써 전 시대에 걸쳐 모든 세계 정치의 거대하고 영원한 두 가지 기본 형식, 즉 실리정치와 이상정치, 외교정치와 윤리정치, 국가정치와 인류정치라는 두 가지 형식이 정신의 형식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252 모든 대립은 정신세계에서도 그 존재 공간을 갖는다. 현실공간에서 결코 승리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도 정신 세계에서는 역동적인 힘으로 남아 있고, 이뤄지지 못한 이상도 가장 강력한 이상으로 입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념이 드러나지 않는다 해서 그 이념이 패배한 것이 아니면 잘못된 것으로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어떤 필수적인 일이 지체된다 해서 그 필수성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모든 새로운 세대에 도덕의 추진 요소로 계속 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 실현을 통해 이미 힘이 소진했거나 웃음거리가 돼버린 이상이 아니라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상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상만이 영원한 회귀성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에서는 인문주의의 이상, 에라스무스의 이상, 유럽의 화합을 위한 그 분명한 첫 번째 시도가 집권하지 못하고 정치적 영향을 거의 끼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평가절하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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