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D. 퍼트넘: 나홀로 볼링


나 홀로 볼링 (보급판) - 10점
로버트 D. 퍼트넘 지음, 정승현 옮김/페이퍼로드



제1부 서론 

제2부 시민적 참여와 사회적 자본의 변화 경향 

제3부 사회적 참여의 쇠퇴 원인 

제4부 사회적 자본의 기능 크리스틴 A. 고스의 도움을 받음 

제5부 무엇을 할 것인가?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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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볼링

17 최근 사회과학자들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통해 미국 사회의 성격 변화를 분석하는 틀을 만들었다. 개인적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도구와 훈련이라는 의미의 물리적 자본과 인적 자본에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사회적 자본 이론의 핵심은 사회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스크루드라이버(물리적 자본) 혹은 대학 교육(인적 자본)이 (개인적, 집단적) 생산성을 모두 향상시킬 수 있듯, 사회적 접촉 역시 개인과 집단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102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올리는 신앙 공동체는 미국에서 단일 부문으로는 사회적 자본의 가장 중요한 보고라는 사실은 틀림 없다. [...] 어림잡아서 말하자면 우리가 입수한 자료들은 미국에서 모든 단체의 회원 중 거의 절반이 교회와 관련 있으며,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자선 행위의 절반이 그 성격에서 종교적이고, 모든 자원봉사 활동의 절반이 종교와 관계를 갖고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종교에 참여하고 있는가의 문제는 미국의 사회적 자본에 매우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152 유대인 언어에는, 공식적 단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마허macher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동체에서 어떤 일을 실제로 일궈지도록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대화와 친교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쉬무저schmoozer라고 부른다. 이 구분법은 미국 사회생활의 중요한 실상을 그대로 비춰준다. 마허는 시사 문제에 관심을 갖고, 클럽 모임과 교회에 참석하며, 자원봉사 활동에 나서고, 자선행사에 기부하며, 지역 공동체의 프로젝트를 위해 일하고, 모임에서 발언하며, 정치에 관심을 갖고, 헌혈・신문 구독・지역 모임의 참석에서도 더 적극적이다.


183 리그 볼링의 지속적 하락세가 앞으로 15년 동안 이 추세로 계속되면, 2010년이 되기 전에 리그 볼링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까짓 볼링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를. '미국 볼링연맹'에 따르면 1996년의 어느날 9천 1백만 명의 미국이 볼링을 쳤는데, 이 수치는 199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한 사람들보다 25퍼센트 이상 더 많았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223 여기서 우리의 주제는 사회적 신뢰이지 정부를 비롯한 그 밖의 사회적 제도에 대한 신뢰가 아니다. 타인에 대한 신뢰는 제도와 정치 권위에 대한 신뢰와 논리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이웃을 쉽게 신뢰하는 반면 당국은 불신할 수 있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사회적 신뢰와 정치적 신뢰는 상관관계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이론적으로는 이 둘은 별개로 다루어야 한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사회적 신뢰의 원인일 수도 있고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 신뢰와 같은 것은 아니다.


456 20세기의 마지막 3분의 1 기간 동안 미국에서 시민적 참여의 하락의 대부분은 시민 활동에 유별나게 충실했던 세대가 공동체 생활에 뿌리를 덜 내리고 있는 여러 세대(즉 그들의 자녀와 손자)들로 교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뚜렷한 세대의 불연속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고민하는 가운데, 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시민 참여의 활력은 부분적으로 사회적 습관과 가치관에 의해 일어났으며, 이 습관과 가치관은 다시 20세기 중반의 세계적 위기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결론으로 이끌리게 되었다. 


469 지금까지 시민적 참여와 사회적 자본의 쇠퇴를 불러일으켰던 여러 요소들에 관해 우리가 확인한 사실들을 요약하자.

첫째, 맞벌이 가족이 받는 압박을 포함해서 시간과 돈의 압박은 이 기간 동안 우리의 사회적 참여와 지역사회 참여율의 감소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만 아무리 높게 보아도 이 요소들은 전체 감소분에서 10퍼센트 정도밖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 내 계산이다.

둘째, 교외 지역의 도시화, 장거리 출퇴근, 도시의 팽창 역시 보조 역할을 했다. 이 요소들을 모두 합치면 역시 전체 하락의 10퍼센트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계산법이다.

셋째, 여가 시간을 혼자서 소비하게 만드는 전자화된 오락 수단, 특히 텔레비전의 영향은 상당히 컸다. 이 요소는 전체 하락의 아마 25퍼센트 정도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내 대략적 추산이다.

가장 중요한 넷째, 오랫동안 시민 활동에 헌신적이었던 세대가 자녀・손자 세대로 느리지만 불가항력적으로 꾸준히 대체되고 있는 현상, 즉 세대교체가 가장 강력한 요소로 밝혀졌다. 세대교체의 영향은 시민적 참여에서는 크게 나타났고, 개인의 사적인 사교 활동에서는 그 영향력이 작았다. 그러나 어림잡아 이 요소는 전체 하락의 약 절반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을 14장에서 내린바 있다.


590 사회적 자본과 시민적 관용성의 연계는 공동체 수준에서는 훨씬 더 정正 관계를 나타난다. [...] 자유와 박애는 양립 불가능하기는 커녕 상호 보완적이며, 이 사실은 우리가 교육, 소득, 도시주의 등의 여러 요소들을 통제한 경우에도 계속 타당하다. 미국에서 가장 관용적인 공동체들은 시민 참여가 가장 활발한 곳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반대로 나 홀로 볼링을 치는 공동체들은 미국에서 관용성이 가장 떨어지는 곳이다.

또한 참여와 관용의 상관관계를 세밀히 조사하면, 지난 30년 동안 시민적 불참과 관용의 동시적 학대는 단순히 동전의 양면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관용과 시민 불참에 나타났던 변화의 대부분은 세대교체의 탓으로 볼 수 있다. 즉 사람들이 점점 참여를 않으면서 관용성은 늘어난 주요 원인은, 참여에 적극적이지만 관용도가 낮은 나이 든 코호트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보다 관용적이지만 참여도가 떨어지는 새로운 세대들이 점진적으로 대체해왔다는 사실이다.


668 21세기이의 문턱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보이스카우트 없는 시절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남북전쟁 이전 미시시피 강의 모래톱에서 놀던 톰 소여 패거리가 엄숙히 선서하고 베레모와 배지를 착용한 보이스카우트로 20세기에 되살아나리라는 생각은 한 세기 전에는 틀림없이 공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이스카우트 같은 제도들은 청소년 공동체의 형성에 새롭고 성공적인 광장을 마련해주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시민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일부는 처음에는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낯익은 전통적 방식에 사로잡혀 우리의 새로운 시민적 창조성을 차단하는 일은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진보의 시대의 특유한 개혁들은 우리의 시대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 시대의 실용적이고 열정적인 이상주의 그리고 그 업적으로부터 영감을 끌어내야 한다.


674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루소,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에 이르는 철학자들은 시민의 문제를 논할 때 청소년 교육에서 시작했다. 그들은 민주적 시민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품성, 노력, 지식, 습관, 그리고 그것들을 시민에게 주입시키는 방법에 관해 깊이 생각했다. 우리가 현재 처한 곤경을 만들어낸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으라면 세대 변수이다. 세대에 따른 참여의 하락은 거의 모든 형태의 시민 참여에 지금까지도 계속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이 출발점은 오늘날의 개혁가들에게 특히 적합하다. 미국인의 사회적 자본의 감소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시작되지 않았다. 부모 세대가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초에 성인이 될 세대 사이에 시민 참여의 불을 다시 붙이는 것은 모든 세대의 미국인의 의무이다.


692 우리가 피해야 할 잘못된 토론 중 마지막 것은 미국에서 신뢰와 공동체 유대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것이 개인의 변호인가 아니면 제도의 변화인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서도 솔직한 대답은 역시 '둘 다'이다. 미국의 주요 공적・사적인 시민적 제도는 모두 설립된 지 한 세기가 지나 다소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내가 제도 개혁을 위해 제시한 특정한 제안들이 과연 설득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제도를 보다 사회적 자본 친화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를 놓고 국가적 토론을 개최할 수 있는 가능서이다. 그렇지만 결국 여러분과 나 그리고 우리 동료 시민들이 친구와 이웃들과 다시 연계를 맺으려고 마음먹지 않는 한 아무리 제도 개혁이 되어도 효과가 없다는 사실, 아니 아예 제도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세기 전 '소풍을 많이 가라'는 성직자 헨리 비처의 충고는 오늘날에도 그렇게 우스꽝스럽게만 보이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그런 일이, 그렇게 되기는 하겠지만, 미국에게 좋을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좋을 것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


옮긴이의 말 

700 퍼트넘에 따르면 사회 변화를 측정하는 데는 동일 특성을 지닌 인구 집단, 즉 '코호트cohort내'의 변화와 '코호트 사이'의 변호를 구분해야 한다. 현재 미국이 당면한 시민적 불참의 가장 큰 원인은 1910년대와 40년대 사이에 출생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혹은 참전한) 세대들이 고령으로 인해 사라졌다는 점이다. 1960년대에 인구의 중심으로 성장하여 각종 부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시민사회의 활력을 불어넣었던 이 '오랜 시민 활동 세대long civic generation'는 사망하고 그 뒤를 이은 베이비붐 세대(1945~1964년 출생)와 X세대(1965~1980년 출생)는 보다 관용적이기는 하지만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우위를 보이며 참여를 회피함에 따라 미국의 공동체는 "속이 텅 비었다"는 것이다. 느리지만 한번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는 코호트 사이의 변화가 바로 그 주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무엇이 이 세대를, 시민으로서의 공식적인 활동은 물론 개인적인 사교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헌신하도록 만들었는가? 말을 바꾸자면 무엇이 이들의 사회적 자본을 풍부하게 만들었는가? 퍼트넘은 이 세대의 역사적 경험, 즉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집단적 기억 혹은 세대의 성장 경험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적한다. 이 시기를 겪으며 형성된 공동체의 유대감, 타인에 대한 배려, 호혜성과 신뢰, 활발한 참여, 고통을 나누고 슬픔을 같이하는 공감대가 바로 사회적 자본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구성원의 주관적 경험, 가치관, 인식 등에 초점을 맞추는 문화적 접근법과도 일치한다.


705 시장의 과잉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보통 시민의 경제적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시민은 과거처럼 자발적 결사체를 비롯한 지역 공동체의 나설 이유가 사라졌고 실업의 위협 앞에 장시간 근무도 감수한다. '투잡족'이라는 말에서 보듯 시간제 근무 직장을 여럿 가져야 하지만 구조조정 바람에 떠밀린 고용불안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지위 경쟁'을 위해 자식에게는 보다 좋은 교육 환경을 마련하고자 그래도 '괜찮은' 공립학교에 보내려 애쓰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지역의 재산세와 공립학교의 질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빚을 내 비싼 주택으로 옮겨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시민 역시 공동체에 대한 봉사나 시민사회의 참여보다는 부부가 함께 돈벌이에 매달려야 하고 자신의 이익을 단기간에 극대화하려는 행동에 나섬으로써 공동체 규범의 해체가 뒤따르는 것인데, 퍼트넘은 사회경제적 조건과 구조적 변수를 무시하고 이를 세대 변수로만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반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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