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09 모비딕 3

 

 

모비 딕 - 10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작가정신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1031 34강 모비딕

20131107 35강 모비딕

20131114 36강 모비딕

 

20131114 36강 모비딕

독일어로 학문은 Wissenschaft. 문학이다라는 할때 구조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모비딕> 강의에서 제시하는 독법은 '에이해브의 이야기' 라는 것.  에이해브가 인간이 할 수있는 신에 대한 도전을 계속해 나가는 것. 그런데 그 이야기를 <욥기>의 틀을 가지고 푼다. 위대한 문학은 위대한 문학을 모방한다. 

mimesis.  진리를 모방하는 것. 우리가 진리를 모방할 수 있느냐, 배낄 수 있느냐고 할 때 플라톤 적인 예술관에 따르면 진리는 모방할 수 없다. 우리는 초월자에 이를 수 없다. 그것을 넘어가려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리는 인간의 노고를 통해서 진리에 이를 수 있다.  여기서 서양 사상의 두 흐름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온다.

 

성서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은 플라톤 적인 것. 서양 사람들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나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비되는 희랍로마적인 전통. 근대 이후의 프로테스탄트에서 말하는 Paganism, 비기독교적인적. 그 다음에 로마에서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로마시대 기독교라는 것은 로마화된 기독교이기 때문에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격을 드러내지 못한다. 중세시대도 마찬가지로 서부 유럽의 게르만 전통과 섞여서 쉽게 로컬라이즈가 되었다. 사실상 프로테스탄트 이후로 본격적으로 기독교적인 전통들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기독교적 전통이라는 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를 뚜렷하게 자각하게 되고 물론 <오뒷세우스>를 보면 hybris, 오만함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영악함을 무시하진 않는다. 신 앞에서 전적으로 굴종하고 무릎을 끓고 기도를 해야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프로테스탄트 이후. 전혀 다른 인간관이 놓여있다. 

 

그런 맥락을 전제로 할 때 기본적으로 <모비딕>의 주인공은 에이해브다. 에이해브가 모비딕이라고 하는 알수 없는 거대한 실체에 부딪혀서 그냥 죽음을 불사하고 분투하는 이야기를 욥기의 틀을 가지고 써낸 것.  

 

오늘은 두번째 파트인 23-45장으로 시작하겠다.

22장 [메리 크리스마스] 맨마지막에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서 곧바로 바다로 간다.

 

163 (22장) 배와 보트가 멀어지고 그 사이로 차갑고 축축한 밤바람이 불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끼룩거리며 머리 위로 날아갔다. 배와 보트가 사납게 요동쳤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만세 삼창을 했고, 드넓은 대서양에 운명처럼 무작정 몸을 던졌다.

여기서 부터 바다의 시작이며, 23장이 시작되는데 멜빌이 바다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 지 봐야 한다.

 

26,27장 [기사와 종자]는 바다인 무대를 세팅하는 부분. 선원들이 나온다.

바다가 세계이고 세계의 집약판이 피쿼드호. 피쿼드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전세계 인간들을 대표하는 유형들. 3명의 항해사가 있고, 작살꾼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전세계의 인간들을 축약된 형태로 나온다.

 

28장 [에이해브]은 그 세계 안에도 속하지 않고 홀로 우뚝 서서 이 세계에서 언젠가는 버림받을 인간인 에이해브가 나오는 장.

에이해브를 어떻게 생각하면 되냐, 바로 오이디푸스처럼 생각하면 된다.  소포클레스가 지은 테베 3부작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보면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콜로노스로 갔다. 희랍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인데도 죽은자나 다름없다 할 때 눈을 감은 것으로 표현했다. 눈을 감으면 죽은 것. 산송장이 되었다. 에이해브도 마찬가지. 이미 비극적 영웅. 여기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다. 

 

23장 [바람이 닿는 해안]은 멜빌이 바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26,27장 [가시와 종자]를 읽을 때는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는가, 28장 [에이해브]를 읽을 때는 비극적 영웅인 어이해브에 대해서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가를 잘봐야 한다.

 

이슈마엘이 계속해서 진리에 관해서 얘기를 한다. 고래잡이라는 포경선에 탄 것 같지만 진리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한다. 고래를 잡는 것 자체가 진리탐구의 길이기 때문. 진리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그 부분에 유념해서 봐야 한다.

 

165 (23장) 이제 알겠는가, 벌킹턴? 깊고 진지한 생각이란 모두 바다의 광활한 독립성을 지키려는 영혼의 용맹한 노력에 다름 아니며, 하늘과 땅의 거친 바람이 서로 힘을 합쳐 위험하고 비열한 해안으로 배를 내동댕이치려 한다는 것을, 도저히 감내하기 힘든 그 진실을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가장 숭고한 진리, 신처럼 가없고 무한한 진리는 망망대해에만 존재한다. 그러니 바람이 아우성치는 무한한 바다에서 죽어 없어지는 편이 바람이 불어 가는 해안에 수치스럽게 내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설사 그곳이 안전하다 할지라도 누가 벌레처럼 뭍으로 기어가겠는가? 끔찍한 그 공포! 이 모든 고통이 다 부질없단 말인가? 굳세어라, 벌킹턴, 굳세어라! 불굴의 의지로 버텨라, 영웅이여! 그대가 죽어 묻힐 바다의 물보라, 그곳에서 그대는 신이 되어 솟아오르리!

가장 숭고한 진리는 육지가 없는 망망대해에 있다는 것. 바다가 바로 진리가 있는 곳이라고 얘기하는 부분이다.

진리가 인간의 몸을 가.. 신이되어 솟아오르리! 신이되어 아포테오시스,

 

26장을 보자. 일등 행해사 스타벅이 나온다. 스타벅은 에이해브와 정반대에 놓여있는 사람. 복종하고 신중하고 인간으로해야 할 도리를 잘지키고 신을 모독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에이해브의 성격을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이 둘 사이의 대조를 잘 지켜보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둘은 계속 대조를 보이며 132장 [교향곡]까지 이어진다.

 

119장 [양초] 부분을 보자.

299 (119장) 나도 그대와 함께 도약하고, 그대와 함께 불타며, 기꺼이 그대와 하나가 되리라. 저항의 몸짓으로 그대를 경배하노니!」

「보트! 보트!」 스타벅이 외쳤다. 「당신 보트를 좀 봐요, 선장!」

에이해브가 성질을 부릴 때 그러지 말라고하는 스타벅. 서로 대조되는 부분.

 

132장 교향곡 부분을 보자

349 (132장)「오오, 선장님! 선장님! 고귀한 영혼이여! 이토록 위대하고 지혜로운 가슴이여! 왜 그 가증스러운 고래를 뒤쫓아야 합니까! 저와 함께 갑시다! 이 죽음의 바다를 벗어납시다! 우리 고향으로 갑시다! 스타벅에게도 처자식이 있습니다. 형제자매 같고 어릴 적 소꿉친구 같은 처자식이 있습니다. 선장님도 늙어서 얻은 처자식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그립겠어요! 갑시다! 우리 함께 갑시다!

끝까지 밀고가는 에이해브와 는 달리 스타버벅의 다정다감한 것과 계속 대조가 된다.

 

350 「이건 뭐지? 뭐라 형언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고 섬뜩한 이것, 모습을 숨긴 기만적인 주인, 잔인하고 무자비한 황제가 내게 명령하는 것은? 

바다에 있는 진리를 추구하는 에이해브

 

다시 돌아와서 26장 [기사와 종자]를 보자.

 

176 (26장)그가 용감했을지는 몰라도, 주로 대담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용맹함이어서 바다와 폭풍, 또는 고래, 이른바 통상의 비이성적인 공포와 맞설 때는 굳건히 버티지만, 정신을 공략하기 때문에 더 무시무시한 공포, 이를테면 분노한 권력자의 찌푸린 이마에서 느껴지는 공포는 이겨 내지 못한다.

스타벅에 대해서 에이해브와 대조되어서 가장 잘나와 있는 부분이다.

스타벅은 합리와 불합리라는 영역을 넘어는 구석은 견디지 못한다. 공포라기보다는 불안을 못견디는 것. 나에게 두려움을 주는 대상을 특정할 수 있으면 공포. 무엇때문에 두려운지 모르면 불안. 합리와 불합리를 넘어서는 것. 키에르케로그가 직면했던 것이 바로 불안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스타벅이 견뎌내지 못한다.

 

179 (27장) 스터브는 이등 항해사였다.

180 (27장) 삼등 항해사 플래스크는 마서즈비니어드섬 티스베리 출신이었다. [...] 고래에 대해 몹시 호전적이어서, 어쩐지 그 커다란 바다 괴물을 개인적으로 악감정이 있는 조상의 원수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181 (27장) 이 세 항해사, 스타벅과 스터브, 플래스크는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181 (27장) 이 고매한 포경업계에서는 항해사나 보트장이 옛날 중세 기사처럼 보트의 키잡이나 작살잡이를 항상 데리고 다녔고,

182 (27장) 우선 퀴케그는 일등 항해사인 스타벅이 자신의 종자로 선택했다.

182 (27장) 타슈테고는 이등 항해사 스터브의 종자였다.

등장 인물 분석을 할 때 3명하고 3명 밑에 붙은 종자들 6명 등장인물에 대해서 그들의 캐릭터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텍스트를 잡아서 정리를 해야한다.

 

이슈마엘이 에이해브에 대해 얘기할 때 2가지 갈래로 간다.

185 (28장) 나는 아래에서 당직을 마치고 갑판에 올라갈 때마다 낯선 얼굴이 보일까싶어, 올라가는 즉시 고물 쪽을 쳐다보곤 했다. 처음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선장이 막연하게 거리끼는 정도였는데, 고립된 먼 바다에 나오고 보니 마음이 요동치는 지경이 되었다.

처음에는, 지금은  = 불안감

 

187 (28장) 에이해브의 섬뜩한 모습과 거기에 그어진 납빛 낙인이 너무 충격적인 탓에 처음 얼마 동안은 이 압도적인 섬뜩함이 거의 전적으로 그가 몸의 한 부분을 의지하는 거칠고 하얀 다리 때문이라는 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압도적으로 섬뜩함 - 공포

이슈마엘은 사실상 순수한 화자이기에 때문에 이슈마엘의 입을 빌려 에이해브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

 

188 (28장) 에이해브는 십자가에 못 벅한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태산 같은 비통함에 뭐라 형용할 수 없이 당당하고 압도적인 위엄이 어렸다.

강력한 슬픔이 지닌 위엄이라는 말을 주위해야 한다. 서로 반대되는 감정들. 모순이 공존하고 있는 사태. 이런 것들이 비극적 영웅들의 전형적인 특징.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이 불안감이 묘하게 고조되고 있다가 그 불안감이 그 사람에게서 풍겨나는 섬뜩한 기분하고 만났을 때 그게 암도적으로 섬뜩함 집약된다. 

이게 에이해브가 가지고 있는 이슈마엘의 표현. 

 

189 (28장) 에이해브도 마침내 소녀 같은 공기의 쾌활한 유혹에 약간은 반응을 보였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미소의 꽃이 활짝 피었을 테지만, 희미하나마 꽃봉오리 같은 표정을 지은 적도 여러번 있었다.

인생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이 아닌데 엄청난 억제를 하고 있는 것. 이런 부분들이 에이해브에 대한 인상을 강력하게 보여준다.우리로 하여금 그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36장 [뒤쪽 갑판]을 보자

236 (36장) 선원들은 방수모를 벗어 흔들며 돛대에 금화를 박는 선장을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스페인 금화를 돛대에 박는다. 여기서 스타벅과의 대립이 일차적으로 나온다. 두번째로는 그동안 말이없던 에이해브가 말이 많아진다. 무엇을 하려하는지 보여준다.

 

238 (36장) 어떤가, 나와 힘을 합칠 텐가? 모두 용감해 보이는데

사람들을 흥분시키는데 스타벅을 보며 말한다. 

 

239 (36장) 자네는 어째서 그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나, 스타벅? 자네는 흰 고래를 쫓지 않을 건가? 모비딕에 맞설 담력이 없는 거야?

스타벅에게 슬슬 시비를 건다.

 

239 (36장) 저는 녀석의 굽은 아가리쯤은, 아니 죽음의 아가리라고 겁나지 않습니다, 에이해브 선장. 그게 우리의 정당한 용무라면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고래를 잡으러 여기 왔지, 선장님의 복수를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

 

239 (36장) 그걸 잡아봐야 낸터컷 시장에서 큰 벌이가 되지 않을거란 말입니다.

239 (36장) 말 못하는 짐승을 상대로 복수라뇨!

여기서부터 에이해브가 말을 뿜는다.

 

239 (36장) 이성적인 뭔가가 허무맹랑한 가면 뒤에서 이목구비를 내미는 법이거든. 일격을 가하려면 가면을 뚫어야 해!

240 (36장) 나는 놈에게서 포악한 힘을, 그 속에 불끈거리는 불가사의한 악의를 느낀다네. 내가 증오하는 건 무엇보다 불가사의한 그것이야.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증오하는 것. 사실은 증오가 아닌 헤아릴 수 없는 것, 내가 알지 못하는 것, 그것을 계속 가는 것.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악마에게도 영혼을 팔 수 있다는 파우스트. 

 

에이해브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고 했던 것 - 바로 모비딕

<모비딕> 처음 1장에는 내 이름은 그냥 이슈마엘이라고 해두자라고 시작했지만 이제 41장 [모비딕] 첫머리를 보면

262 (41장) 나 이슈마엘도 그 선원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나의 외침도 다른 선원들의 목소리와 함께 높아졌고, 나의 맹세도 모두의 맹세와 뒤섞였다. 더 큰 소리로 외치고 맹세를 더 힘껏 망치질해서 더 단단히 다지고 조인 건 영혼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면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격렬한 공감이 느껴졌다. 억누를 수 없는 에이해브의 원한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다른 선원들과 함께 격렬한 복수를 맹세한 흉악한 괴물의 내력을 알기 위해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에이해브의  기세가 스타벅을 제외한 모든 선원 그리고 이슈마엘에게 번졌다.

 

272 (41장) 그리하여 지금 백발의 불경한 노인은 저주를 퍼부으며 욥의 고래를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고, 

지리할 정도로 모비딕에 대해 자세히 얘기한 다음에 '신조차 두려워 하지 않는 백발 노인은 증오심에 가득차서 욥의 고래를 찾아 세상을 돌아다고' 갑자기 욥의 고래가 됨으로써 바다에 떠돌아 다니는 that 모비딕이 아니라 고래 일반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도대체 헤아릴 수 없는 증오심의 보편적 대상으로 질적으로 변형 된 것. 이쯤 되면 고래 한마리가 중요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고래를 다 죽이겠다는 기세가 된다.

 

272 (41장) 스타벅은 미덕과 곧은 마음을 가졌으나 동조해 주는 사람이 없어 영향력이 없고, 스터브는 언제나 명랑하지만 매사에 무관심하고 무모하며, 플래스크는 평범하기 짝이 없다 보니, 오사리잡놈의 배교자와 추방자와 식인종이 대부분인 선원들을 도덕적으로 이끌 만한 인물이 없었다. 이런 항해사들의 지휘를 받는 선원들은 애초에 에이해브의 편집증적인 복수를 돕기 위해 악마 같은 운명이 특별히 골라 뽑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노인의 분노에 어떻게 그토록 열광적으로 반응했을까. 어떤 사악한 마력이 영혼을 사로잡았기에 그의 증오가 고스란히 그들의 것이 되어 하나같이 흰 고래를 자신의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것처럼 보였을까. 어떻게 이 모든 일이 벌어졌을까. 

'그의 부하들은 주로 더러운 배반자와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 그리고 식인종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슈마엘도 증오심을 갖게 되었다. 

 

273 (41장) 이 모든 것을 설명하려면 이슈마엘이 내려갈 수 있는 곳보다 더 깊이 내려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음 장에서 고래의 흰색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42장 [고래의 흰색]

274 (42장) 흰 고래가 에이해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서는 얼추 얘기했지만 내게 그것이 때때로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게된 증오심에 대한 이슈마엘의 자기 해명을 시작한다. 흰색에 대한 공포의 역사가 42장. 장황하게 설명함으로써 공포를 극대화하는 효과.

 

멜빌의 <모비딕>이 1914년 이후의 세계를 예견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보여주는 악마성을 보여준 건 사실이다.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 수도사가 '가장 경계할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순수함에 이르려는 조급함'이다라고 말을 한다. 조급함이 사실은 악마성. 보편적인 심성이 아닌 것 같지만 잘 읽어둘 필요가 있다. 감히 우리같이 일상생활에서 파뭍혀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감히 감당해내기 어려운 정서적인 파토스들을 여기서 집어넣는 것. 

 

적어도 두번째 파트에서는 여기까지 얘기가 진행되었다. 

그러면 증오가 있으니까 모비딕과 한바탕 붙을 준비가 된것 이렇게까지 한껏 고조를 시켜놓고 중간에 기나긴 고래학에 대한 얘기가 들어가고 네번째 파트으로 고래와 고래잡이가 시작된다.

 

95장 [사제복]

182 (95장) 고래 시체를 해부하는 중에 피쿼드호에 올라가 양묘기 근처를 지나간다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주 이상한 물건이 바람 불어 가는 쪽 배수구를 따라 길게 놓인 것을 보고 적잖은 호기심이 동하여 살펴보게 될 터다. 

이 장은 일종의 코믹하게 패러디보다는 페이소스를 담고 있는 장이다.

 

182 (95장) 동료 둘의 부축을 받으며, 뱃사람들이 대물(大物)이라고 부르는 걸 무겁게 짊어지고 어깨를 잔뜩 구부린 채, 전장에서 죽은 전우를 둘러메고 오는 척탄병마냥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썰기 담당 선원을 보라. 그걸 앞 갑판에 내려놓고는 아프리카 사냥꾼이 보아 뱀의 가죽을 벗기듯이 검은 가죽을 원통형으로 벗기기 시작한다. 일을 마친 다음에는 가죽을 바짓가랑이 뒤집듯 뒤집어 지름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나도록 힘껏 당긴다.

성적인 은유를 갖고 있다.

 

183 (95장 이제야 썰기 담당 선원은 자신의 소임에 딱 맞는 사제복을 차려입었다. 이 일을 해온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 독특한 소임을 맡아 일하는 동안 그를 제대로 보호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이 옷뿐이다. 그의 소임은 지방층에서 떼어 낸 백마를 솥에 넣기 위해 잘게 써는 것이다. 

페이소스가 있는 부분

 

183 (95장 근사한 검은 옷을 차려입고 눈에 확 띄는 설교단에 올라 성서의 책장에 온 정신을 집중하다니, 고기를 써는 이 선원은 그럴싸한 대주교 후보이자 교황감이 아닌가!

굉장히 신성한 작업을 희화화한 것. 멜빌은 정말 문장을 잘 쓰는 사람.

 

96장 [정유 화덕]

187 (96장) 야만인들과 불을 싣고 시체를 태우며 검은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하듯 돌진하는 피쿼드호는 선장의 편집광적인 영혼에 대응하는 물질처럼 보였다.

'시체를 태우고 기름을 짜내고 있는' 말 그대로 원시적인 날 것, 그대로의 것. 원어를 보면 단어 선택을 굉장히 잘한 것을 볼 수 있다. '편집광적인 선장의 영혼과 물질적으로 한쌍을 이룬 것 같다' 에이해브를 규정하는 또 다른 말 중 하나. 

이 부분을 지나가면 에이해브는 거의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이고, 극도의 관념론자가 되는 것. 그래서 에이해브는 이제는 하나의 육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188 인간들이여, 불의 얼굴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마라! 절대로 키를 잡은 채 꿈나라로 가지 마라! 나침반에 등을 돌리지 말고, 와락 잡아당기는 손잡이의 첫 번째 암시를 거부하지 말고, 사람이 피운 불의 붉은 기운이 모든 사물을 요괴처럼 만드는 걸 믿지 마라. 내일이면 자연의 햇빛 속에 하늘이 밝게 빛나고, 넘실대는 화염에 악마처럼 번득이던 자들도 아침이면 딴사람 같거나 적어도 더 다정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금빛 찬란한 아름다운 태양만이 유일한 진짜 등불이며, 나머지는 전부 거짓말쟁이다!

 

99장 [스페인 금화]

201 (99장) 또 다른 해석이 나왔네. 원문은 그대로 하나인데. 하나뿐인 세상에 인간은 오만 가지니. 

전체의 흐름과는 무관해 보이지만 사실은 중요한 흐름이 있는데 이번 강의에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읽은 부분은 진리로서의 또는 증오하는 모비딕과 그것을 니힐리스틱하게 추구하는 에이해브의 축이었다.  

첫시간에 이슈마엘이 이 사건을 경험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해설을 하는 사람이라고 애기했다. 한번 더 모비딕을 읽는다면 어떤 사태가 우리 눈앞에 놓여있을 때 그 사태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멜빌에 의해서 제시된다. 그 흐름이 하나있다. 다시말해서 진리라고 하는 것은 헤아릴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다양한 해석을 허용할 수 밖에 없고 다양한 해석들이 모여서 진리 전체를 이룬다는 하는 생각이 멜빌에게 있다. 그것을 드러내고 있는 문장.

다시말해서 진리의 해설, 진리에 대한 설명으로서 총체로서의 진리. 멜빌의 진리에 대한 아이디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하는 서술에 대한 방법에 대한 생각들이 <모비딕>에 여기저기 숨어있다.

 

114장 [황금빛 바다]

그 다음에 에이해브가 가지고 있는 니힐리스틱한 세계관이라고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되는가. 도대체 왜 밀고 가는가. 세계가 어떻다고 생각하는 것인가를 보자

 

276 (114장) 오, 풀이 무성한 오솔길이여! 오, 영혼 속에 펼쳐진 끝없는 상춘의 풍경이여. 비록 지상의 삶은 지독한 가뭄에 바싹 마른 지 오래지만, 그대 안에서 사람들은 이른 아침 클로버 밭의 어린 망아지마냥 뒹굴고, 무상한 찰나 동안 영원한 생명의 차가운 이슬이 몸을 적시는 것을 느낄 터다. 신이여, 이 평온함의 축복이 오래 지속되게 하시옵소서. 

거짓말이다.

 

276 (114장) 하지만 뒤엉키고 뒤엉킨 삶의 가닥들은 씨실과 날실로 짜이고, 평온은 폭풍을 만나며, 폭풍은 반드시 평온을 가로지른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 꾸준한 전진 같은 건 우리네 삶에 없다. 우리는 정해진 단계를 점진적으로 밟아 가다가 마지막에야 한 번 쉬는 게 아니다. 즉, 아무것도 모르던 유아기, 무작정 맹신하는 소년기, 청년기의 의심(모두에게 공통된 운명), 이어서 회의를 거치고 불신의 단계를 지나 마침내 <만약에>를 곰곰이 따져 보는 성년기에 머무는 게 아니다. 일단 이 과정을 다 지나면 우리는 그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해서 유아기와 소년기와 <만약에>를 영원히 돌고 돈다. 

'영원히 돌고 돈다' 바로 영겁회귀.

영겁회귀라는 단어를 자신의 주장의 핵심적인 술어로서 제시하고 책을 쓴 사람이 니체이다. 니체의 니힐리즘이 영겁회귀. 니체가 말하는 니힐리즘이 바로 에이해브의 니힐리즘. 니체가 말하는 진리관과 형이상학하고 헤겔이나 칸트가 말하는 진리의 형이상학은 완전히 대립된다. 

 

니체의 저서 중 <비극의 탄생>은 고대 희랍 비극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연구한 책 . 

에이해브의 세계관이 바로 여기에 나온다. 니힐리스트의 선언. 영겁회귀다.

영겁회귀의 수레바퀴를 깨는 그 사람이 바로 초인. 영겁회귀의 굴레를 깨버리는 사람이 Übermensch

 

276 (114장) 우리가 더는 닻을 올리지 않을 마지막 항구는 어디에 있는가? 지칠 대로 지친 자들이 끝내 싫증 내지 않을 세계는 어느 황홀한 창공을 떠도는가? 

여기서부터 에이해브의 세계관. 에이해브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에이해브의 비통함. 한탄이 나온다.

 

276 (114장) 버려진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 숨었는가? 우리의 영혼은 아이를 낳다가 고아로 남기고 죽은 미혼모 같고, 생부의 비밀은 어미와 함께 무덤에 묻혔으니, 그걸 알려면 그곳으로 가야 한다.

여기서 니힐리스트 선언을 하고 죽는다.

 

그리고 나서 132장 [교향곡]

오이디푸스가 눈을 찌르고 나서 크레온에게 '내 고통으로 말하면 나 이외의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테니까' 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 부분이 바로 에이해브와 스타벅이 대화를 주고 받는 정조가 깔려있는 것. 비극적 영웅의 최후는 어떤 식의 정조가 있는지를 보겠다.

 

348 (132장) 「아, 스타벅! 이 얼마나 잔잔하기 그지없는 바람과 잔잔해 보이는 하늘인가. 나는 이런 날, 이만큼이나 청명하던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래를 잡았다네. 어릴 때였지. 열여덟 살짜리 작살잡이였으니! 40, 40, 40년 전 일이야! 오래전 일이지! 40년 동안 쉬지 않고 고래를 잡으러 다녔네! 40년 동안 궁핍과 위험과 폭풍을 견디며, 이 가혹한 바다에서 40년을 보냈어! 40년 동안 에이해브는 평화로운 땅을 저버리고 40년 동안 심해의 공포와 맞서 싸운 거야! 그래, 맞아, 스타벅. 그 40년 동안 내가 육지에서 보낸 시간은 3년도 되지 않는다네. 

40년을 여러번 되풀이하면서 비통함을 전하는 것.반복으로써 정념을 드러내는 것. 40년은 여러번 3년은 한번 나왔다.

 

348 (132장) 사람이라기보다 차라리 악마처럼! 그래, 그래. 이 늙은 에이해브는 40년 동안 얼마나 어리석게 살아온 건지! 왜 이토록 힘들여 추격을 하는 걸까? 지쳐 마비된 팔로 노를 젓고 작살과 창을 던지는 걸까?

그런데 에이해브가 이렇게 말할 때 에이해브는 이미 죽어 있는 것.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와 마찬가지.

이때 스타벅은 철도 없이 집에 돌아가자고 한다.

 

350 (132장) 하지만 에이해브는 눈을 돌렸고, 말라붙은 과일나무처럼 부르르 몸을 떨다가 타버린 재 같은 눈을 끝내 아래로 떨어뜨렸다.

「이건 뭐지? 뭐라 형언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고 섬뜩한 이것, 모습을 숨긴 기만적인 주인, 잔인하고 무자비한 황제가 내게 명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사랑과 갈망을 모두 거역하며, 나는 항상 스스로를 몰아치고 강요하며 밀어붙인다. 내 본연의 타고난 가슴으로는 차마 하지 못할 짓을 무모하게 하도록 만든다. 

결국은 알아내지 못했다. 에이해브는 그냥 thrive 하고 계속 온 것. 과정 자체가 이 사람에게는 삶의 알리바이. 

 

350 (132장) 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해브인가? 이 팔을 들어 올리는 건 나인가, 신인가, 아니면 누구인가? 하지만 위대한 태양도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하늘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면, 단 하나의 별도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서만 회전할 수 있다면, 이 작은 심장은 어떻게 고동치고 이 작은 뇌는 어떻게 생각이라는 걸 하는가?

지금 인간이 물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최후의 물음이 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해브인가 라고 묻는다.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끝까지 갔는데 이제는 이런 물음. 

 

351 (132장) 우리 인간은 저기 양묘기처럼 이 세상에서 빙빙 돌고, 그걸 돌리는 나무 지레는 바로 운명이다. 그리고 보라! 언제나 미소 짓는 하늘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351 (132장) 하지만 절망한 항해사는 송장처럼 창백하게 질린 채 그곳을 몰래 벗어난 뒤였다.

 

 

이제 마지막을 보자.

135장 [추격 - 셋째 날]

 

381 (135장) 「내 영혼의 배가 세 번째로 항해를 시작하네, 스타벅.」

「네, 선장님. 그걸 바라시잖아요.」

「어떤 배들은 항구를 떠나 영영 사라진다네, 스타벅!」

「맞습니다, 선장님.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이죠.」

「어떤 자는 썰물에 죽고, 어떤 자는 얕은 물에서 죽고, 어떤 자는 만조에 죽지. 그리고 나는 지금 가장 높은 물마루로 일어선 파도 같은 심정일세, 스타벅. 나는 늙었어. 자, 악수를 하세.」

그들은 손을 맞잡고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스타벅의 눈물은 두 사람의 시선을 붙여 놓는 아교였다.

 

392 (135장) 침울한 흰 파도가 소용돌이의 가파른 측면에 와서 부딪혔다. 이윽고 모든 것이 무너졌으며, 바다라는 광대한 수의는 5천 년 전에 그런 것처럼 쉬지 않고 굽이쳤다.

이렇게 에이해브는 죽는다. 욥은 마지막까지 잘 살다 죽었다. 그러니까 에이해브는 욥이 아닌 것. 살아남은 이슈마엘.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에이해브가 졌느냐 생각해봐야 한다. 에이해브는 자기가 에이해브인걸 알고 죽었을까. 지금 합리와 불합리를 에이해브가 넘어가는 것.

 

<비극의 탄생>은 니체의 철학의 출발점이, <선악을 넘어서>를 읽으면 끝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읽지 않아도 된다. 한국에서 니체에 관해서 읽을 만한 책이 백승영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모비딕>에 나타나는 니힐리즘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강력한 것이다. 1800년대 후반에 서양 사람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기술문명이 가지고 있는 끝점에 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끝점에는 부서져 가고 있는 인간의 모습, 한없이 기술에 의해서 작아지는 인간들의 모습이 있다. 거기서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계몽주의라는 목적을 가지고 계몽적 정서가 아닌 '인간은 뭔가를 추구하는 그 자체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위대함이 있다' 라고 말한 사람이 니체이며 그것을 역설적으로 니힐이라고 했다. 멜빌이 얘기한 것을 철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면 니체를 참조해서 읽으면 된다. 

 

다른 저서로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 <아주 평범한 사람들>도 읽어보길 바란다. 제목이 굉장히 역설적인데 유대인학살을 저지른 사람드을 조사해보니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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