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10 논어 3

 

논어 - 10점
미야자키 이치사다 해석, 박영철 옮김/이산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1121 37강 논어(1)

20131128 38강 논어(2)

20131205 39강 논어(3)

20131212 40강 논어(4)

 

20131205 39강 논어(3)

유가는 왜 계속 고귀한 것에 대해서 자꾸 애기하는가. 그것이 없으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한없이 전락할 수 있기 때문. 현실 정치에 대해서만 계속하게 되면 나중에는 현실 정치 자체가 망가진다.. 그래서 막스베버도 Politik als Beruf, 직업이 아닌 소명이라는 의미로도 썼던 것. 그냥 계속해서 나아가야하는 ideal한 이상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막스베버가 아주 현실적인 권력정치론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뒤에 비합리적으로 말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얘기하는 것이다.

 

318페이지

50세(B.C 502, 정공 8년) 천명을 알다. (<論語>)

天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주 일차적인 의미에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의 소명을 스스로 갖게 되는 것. 중국 사상에서 天이라는 것은 인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고, 하늘의 이치를 말하는 것. 命이라고 하는 것도 본래는 임금이 내리는 명령, 즉 인격적인 권위를 가진 존재로 부터 내려오는 命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비인격적인 개념으로 되어서 하늘의 것으로 귀속된다. 天命을 알다는 말은 내가 무슨 일을 해야하는 것인지 깨달았다라는 뜻도 되지만 동시에 하늘의 이치를 알았다는 뜻도 된다. 공자의 사상이 플라톤적인 우주론은 아니지만 드디어 天下學에 나아가게된 계기. 天下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 

 

50세가 되면서 공자는 끊임없이 공부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50세에서 전진하고 60세에 늘어나고 70세에에 더 커질 것 같지만 시라카와 시즈카 책에 따르면 사람의 생물학적인 면을 볼 때 15세 志于學, 30세 而立,  40세 不惑, 50세 知天命 이렇게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서 70세에 돌아가신 것으로 봐야한다. 50세 때가 바로 학문의 정점에 이른 시기. 이때부터는 계속 해서 업그레이드가 되기 보다는 업데이트, 판올림을 하기 보다는 보완하고 자신이 터득한 바를 펼쳐보이고 널리 두텁게 한 것으로 봐야한다.

 

공자는 50세 이후를 보면 학문적인 정진을 계속해 나아가기 보다는 그것을 투텁게 하고 자신이 중국의 사상의 역사 속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가에 대한 자각을 끊임없이 있었던 것 같다. 즉 스스로 개인의 삶에서 공부라고 하는 과정을 지나서 사회 속에서 역사 속에서 내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역사적·사회적 존재로서의 학문하는 자에 대해 보여주었다. 이것이 공자가 보여주는 탁월한 모습.

 

50세 天命을 알다. 이때를 우리는 어느정도 절정이라고 보고 이때부터 자신이 터득한 바를 정치로 실현하려고도 하고,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해보려고도 하고 했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 이른바 그때 50-54세에 노나라에서 무언가를 했다. 현실정치에서 실패했다. 그랬을 때 공자가 계속해서 정치를 해봐야지 했으면 지금 우리가 논어를 읽는 일도 없었을 것, 

3-4년을 해보고 공자는 다른 길을 갔다. 54세를 보자. 선생은 단념하고 노나라를 떠나셨다.

 

54세(B.C 498, 정공 12년) 

공자가 노나라의 사구로써 계씨에게 건의하여 계씨 등 삼환씨의 무력을 해체시키려다 실패하다(이때부터 14년간의 기나긴 유랑생활이 시작된다.)

 

사상의 형성과정도 중요하지만 공자의 일생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공부하는 시절이 기록에 없다. 공자님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어쨌든 기록이 나와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적인 삶 속에서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가가 나와있다. 공자 나이 50세에 노나라를 떠나셨다.정치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에 대해서, "進退" 생각하게 된다. "出處"라고 한다. 出 [출 = 나아갈, 관직에 나아간다]와 처  處 [처 = 낙향해서 은거한다] 유가적인 지식인들이 조정에 나아가느냐, 물러나느냐 출처 문제가 여기서 부터 나온 것이고, 공자는 전형적인 모범사례들을 보여준다.

 

54세 노나라를 떠나면서 14년간의 기나긴 유랑 생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봐야한다. 공자가 이 시기에 무엇을 했나. 유랑생활을 하면서 얻어낸 경험들을 직접적인 경험을 이 사람이 머릿속으로 들여와서 이것을 가지고 변화시켜서 자신의 삶과 자신의 학문의 원천자료로 삼는 과정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고생을 하더라도 내가 고생을 하면서 하고 있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지를 생객하고, 내 인생이라고 하는 것의 전체로서의 내 인생 life as a whole이라고 하는 것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사건과는 무관하게 세팅되어 있는 것.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지금 이것이 있고, 그것과 지금 눈 앞에 지나가고 있는 사태를 겪고 있는 일들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끊임없이 조회하면서 생각을 해보는 것. 그래야 이 경험들이 말하자면 변화되어서 점액질로 되어서 내 삶에 흡수되는 것. 이것이 없는 상태로 겪고 지나가버리면 겪으나 마나한 것이다.

 

공자가 보여주는 면모. life as a whole. 우리는 그냥 내 한몸 내인생을 생각해 본다 하지만 공자는 天命을 알았다. 자신의 역사적인 위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 것. 중국 사상 문화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고, 자기가 하는 일이 눈 앞에 펼쳐치는 일을 겪는것.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 공자가 지금부터 보여준 것은 전체로서의 삶  life as a whole보다도 더 높은 경지이다.

 

55세(B.C 497, 정공 13년) 위(衛)나라에서 10개월을 머물로 진(陳)나라로 가는 도중 광(匡)에서 광인(匡人)들에게 포위되는 재난을 당하다(<世家>)

 

공자는 재난을 겪으면서도 문화전통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굴하지 않다. "선생이 광에서 재난을 당하셨다. 그때 말씀하셨다. 문왕의 사후 문화 전통은 내 몸에 있지 않은가? 하늘이 이 문화를 멸망시키려고 한다면 나를 이곳에서 죽게하여 후세사람들이 이 문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이 문화를 보존하려고 한다면 광인들이 나를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다"(<論語>)

 

이 말은 말하자면 공자의 50세 이후에 나온 말 중에 제일 중요한 말.

 

133 페이지 210번을 보자

 

五. 子 畏於匡 曰 文王 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자 외어광 왈 문왕 기몰 문불재자호 천지장상사문야

     後死者 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 其如予何

     후사자 부득여어사문야 천지미상사문야 광인 기여여하

선생이 광에서 재난을 당하셨다. 그때 말씀하셨다. 문왕의 사후 문화 전통은 내 몸에 있지 않은가? 하늘이 이 문화를 멸망시키려고 한다면 나를 이곳에서 죽게하여 후세사람들이 이 문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이 문화를 보존하려고 한다면 광인들이 나를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다

 

"斯文 이 문화 "

영어번역본을 보면 this culture라고 되어 있다.

주나라 문화 이후의 모든 문화를 내가 이어받았다. 문왕의 사후 문화 전통은 내 몸에 있지 않은가. 

여기서 斯 this, 공자가 주 문왕이후에 내려 받은 모든 문화를 자신이 가지고 있고 그것을 후대에 전해준다고 했다. 본인이 세웠다고 하지는 않는다.

 

斯文의 의미

공자 개인이 역사적인 사회적인 중국 사회 전반적인 맥락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한 것. 곧 자부심이 있는 것. personal study의 차원에서 public education의 차원을 내 보이고자 하는 것. 이제 공자에게는 life as a whole이 아니라 중국의 모든문화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 것. 좌절할 수없는 사람이 된 것. 누구한테 배우지도 않았는데 되었다는 것이 무시무시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 학문을 만들어 놓았는가. 미스테리다. 결국엔 好學. 독단에 빠지지 않았다. 

 

첫번째 의미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공부를 해오던 것을 역사·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자기 공부를 위치시키면서 동시에 권위를 만들어 내는 과정. 주나라의 인문주의 전통 속에서 세워진 문화를 자기가 전수하겠다는 그런 권위를 만들어 내는 것. 이런 전통을 공자가 만들어놨기 때문에 후대 주희, 맹자가 공자의 전통에 기대는 것이다. 저 옛날 공자님의 전통을 이어 받아서 계속한다는 것이 만들어 진 것. 한국은 그런 것이 없으니까 한국 사상사를 쓰기 어렵다.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이셨던 현상윤 선생이 <조선사상사>를 쓰셨는데 내용을 보면 유가는 없고 거의 다 불교 얘기다. 불교가 사실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이른바 사문의 전통이 있다. 그런데 <조선사상사> 보면 불교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지만 유가에 대해서는 거의 없다. 왜냐 전통이 없기 때문.

 

두번째 의미의 斯라고 하는 것이, this 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가르키는 지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 this라는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여기에 뭔가를 새로 집어넣을 가능성을 열어둔 것 이 때부터 나오는 것은 자기 이야기. 전승과 창조를 한꺼번에 아우루고 있는 것.  군자라고 하는 것. 보통 사람이 덕을 닦아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을 열어놨다고 하는 것은 주나라 문화가 아니다. 주나라 문화는 철저하게 귀족들의 문화. 세습문화. 그런데 공자가 말한 것은 귀족 문화가 아니다. 출발점부터 다르다. this culture라는 말을 씀으로 해서 그 안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여지를 구했다는 것.

 

70세 때를 보자.

 

70세(B.C 482, 애공 13년) 

 무엇을 하건 별로 애쓰지 않고도 정도를 지나치는 일이 없어지다. (<論語>)

 노나라가 공자를 정치에 쓰지 않자 제자를 가르치고 문헌을 정리하는 일에 전념하다(<世家>)

 애공이 물었다. 제자 중에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 선생께서 대답하였다. 안회라는 제자가 있어 학문을 좋아했습니다만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論語>)

 

공자가 50세가 되어서 this culture가 나에게 있는데라고 말했어도 독단에 빠지지 않은 이유는 밑에 공부하는 제가가 있었기 때문. 독단에 빠지지 못하는 것. 자기도 공부하고 학생도 공부하는 황금 공동체 속에 있었기 때문에 이게 가능했던 것. 

안회는 선생님으로는 가장 힘든 제자. 공부를 안할 수가 없다.

 

71세(B.C 481, 애공 14년) 

"그렇지 않느냐, 그렇지 않느냐? 군자는 죽은 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것을 걱정한다 함이. 내 도는 행해지지 않았으니 나는 무엇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길 것인가?"하고 역사 기록을 정리하여 <춘춘>를 짓다((<世家>)

제자들이 <춘추>의 수업을 받을 때 말하기를, "후세에 나를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춘추>로써 할 것이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 또한 <춘추>로서 하리라(<世家>

 

역사에 대해 스스로를 묻은 것. 잘 생각해보면 처음에 50세라고 하는 나이를 볼 때 생각해보면 처음에 禮라고 하는 부분에서 출발한다. 禮라고 하는 것은 禮를 회복해야 하는 克己復禮爲仁, 올바름이 겉으로 들어난 형태. 이 밑에는 義가 있는것. 義를 기준으로 禮를 회복하는 것. 그 활동을 仁. 최종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禮이지만 禮라는 표상으로 represent되는 것 밑바탕에는 justice. 그 다음에 義를 기준으로 삼아서 끊임없이 義를 드러내 보이려는 활동이 仁. 우리 눈에 겉으로 보기에는 禮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義가 먼저 있는 것.

존재론 적으로는 義가 먼저다. 철학적 용어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자면 본성상 먼저 인것과 우리에게 먼저 인 것이 구별되어야 한다. for us, for itself 를 구별한다고 한다. 항상 이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철학 공부가 시작되는 것. 그게 형이상학인것. 현상과 본질인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에게 형이상학적 사유가 시작되는 것이다.

 

공자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여기까지 오면 personal한 차원에서의 하나의 철학적인 태도, 올바름을 실천하는 태도가 완성이 되는데 공자는 여기서 天命 이후의 시대. 역사를 얘기한다. 춘추를 얘기한다. 

공자가 말한 춘추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한국사,중국사가 아니라 춘추를 역사의 다른 의미로 쓴다는 것은 봄과 가을이 계속해서 순환한다는 것. 그래서 그것이 역사. 이 의미 자체가 우주의 순환을 가리킨다. 두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역사라는말에다가 붙여서 쓰는 의미도 있고, 우주의 순환의 의미도 있다.

 

나를 역사 속에서 평가할 것이다는 것은 인문주의적인 fundamental 토대 속으로 둘어갔다고 말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자가 여기서 형이상학의 단계로 들어갔다고 말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형이상학 단계로 들어갔다는 추측만 있을 뿐 의문이 많았다. 최근에 마왕태 마왕 무덤에서 나온 것을 보니 공자가 여기에 대해서 상당한 공부를 했다는 것이 그런 문서들 속에서 나타났다. 그래서 공자의 형이상학에 대해서 요즘 연구하는 단계.

 

<논어>는 참으로 완성도가 높은 학문. 노자 <도덕경> 같은 경우 형이상학에 대해서만 있고 구체적인 것이 없이 막연한 것만 있다. 공자는 아주 현실적인 禮부터 시작해서 공부하는 방법 그리고 실존 인물의 일대기가 <논어>에 들어있음으로 해서 예학이나 역사, 역학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상의 3대 요소를 다 갖춘 것. 이론 철학과 실천철학 그리고 아주 중요하게는 교육학까지 다 갖춘 체계. 동서양을 털어봐도 몇 안되는 인물이다. 형이상학 부분은 당시에도 취약하다 싶어서 이 부분을 보안하고 나온 것이 성리학. 정확하게 표현하면 송나라 명나라 때 전개되었던 송명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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