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10 논어 2

 

 

논어 - 10점
미야자키 이치사다 해석, 박영철 옮김/이산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1121 37강 논어(1)

20131128 38강 논어(2)

20131205 39강 논어(3)

20131212 40강 논어(4)

 

20131128 38강 논어(2)

324페이지에 논어 관련 지도가 있다. 

지도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춘추전국시대 지도인데 중국사를 열심히 하지 않더라도 이 지도 정도는 머릿속에 항상 담고 있어야 한다. 도대체 진나라가 어디에 있었는지 주나라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아야 한다. 진(秦)나라에서 조금 동쪽으로 오면 주나라, 진나라 밑에 보면 종주 라고 되어있는 것이 서주시대 도읍이고, 오른쪽으로 온 것이 동주. 동주 시대부터 춘추시대. 오른쪽 산동반도 옆에 태산과 곡부가 있다. 곡부는 공자가 태어난 곳. 그연나라 위쪽은 한반도와 많이 엮여 있는 나라. 양자강에서 황하 사이인 곡부, 송, 진이 위치한 것을  중원이라고 불렀다. 양자강 아래로 오나라. 오나라 밑으로 월나라. 월나라 밑이 월남이니 베트남. 월남이라는 말 자체가 중국 중심의 언어.  동아시아 문명은 이 시대에 형성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풍요롭고도 오래된 문명의 세계가 여기서 형성되어서 주변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그냥 국가의 경계선에 얽매이지 말고 사실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한테 정체성을 말해보라고 하면 말하기가 쉽지 않다. 문화적인 정체성을 따지고 보면 한반도 문화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만들어져서 유입되어 들어와서 일종의 변형된 형태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냥 동아시아 문명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라고 하면된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문명이 근본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생각하고 지도를 봐야한다.

국민으로서의 중국 사람하고 동아시아 문명권에 사는 사람들로서의 문명 개념을 가지고 그들을 생각하는 것은 별개로 해야 한다. 산동반도는 특히 제나라가 물산이 풍부하고 해서 번창한 곳.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는 이름도 써있지 않다. 그만큼 작은 날. 곡부 아래보면 조나라가 있고 그 아래 송나라가 있다. 옛날에 황화 유역에 있던 은(상)나라가 주나라에 멸망하면서 은나라의 귀족들이 주로 노나라와 송나라에 내려와서 살았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주로 송나라 사람이라고 부른다. 宋人(송나라 송, 사람인) 맨 왼쪽에 있는 나라가 진(秦) 나라. 결국엔 전국 시대에 중국을 통일했다.

 

그러면 317페이지 공자 연보를 보자. 

공자의 생애와 그 생애에 따라서 주요한 사건과 어떠한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자 평전과 연보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을 떠올리면 좋겠다. 우선 공자는 70세이 넘게 살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일생 자체가 천재적인 일생이 아니라 끝없이 자기 스스로를 갈고 닦아서 형성해나가는 형성 중에 있는 인생이었다는 것을 특징으로 생가해 볼 수 있다. 특히나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이니 50세면 많이 사는 것. 50세가 되면 생물학적 수명자체가 죽을 때가 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람이 맨정신으로 50세까지 살기가 어렵다는 얘기. 

 

공자님 일생을 보면 

3세(B.C 549, 양공 24년) 어릴 때 제기(祭器)를 갖고 놀기를 놓아하다. ([世家])

라고 되어 있다.

 

사마천 <사기>는 본가-왕들의 일대기, 세가-제후의 일대기인데 공자는 제후가 아니었음에도 열전에 안들어가고 세가에 들어가는 것은 공자가 그만큼 급수가 높다는 것을 말한다. 사마천 사기가 어떤 텍스트냐에 대한 것은 서울대학 이성규 교수가 <

사마천 사기: 중국고대사회의 형성> 앞 부분 설명해 놓은 것을 참조하면 된다.

 

제기(祭器) 제사할 때 쓰는 그릇이며, 모친 안씨(顔氏)는 무당이었다. 안씨 집안은 무당 집안으로 안연도 외가집 식구이다. 

 

헤겔은  역사를 크게 원천적/반성석/철학적 역사 이렇게 세가지로 나누었다. 사만천의 <사기>를 읽을 때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한 원천적 역사의 측면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사마천의 평가도 들어있다. 다시말해서 반성하고 있는 것. 서술과 평가가 동시에 들어있는 역사책. 사기를 읽을 때는 주의를 해야한다. 실제로 공자가 제기를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다는 뜻도 있고 스며들어있는 함축이 있다. 왜 멀쩡한 어린아이가 제기를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는가를 생각해 봐야한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 일 수도 있고 공자가 속해있는 儒라는 집단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는 것일 수도 있다. 공자가 유가를 창시했다는 말이 없다. 이것은 儒라는 하는 집단 자체가 제자백가에서의 다른 집단들과는 조금 다른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儒에서 사람인변을 빼면 需 기다릴 수가 된다.. 원래 비를 기다린다는 의미. 雨 비우 자에 而 말이을 이. 무당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 儒라고 하는 집단이 기우제를 지내는 집단과 관련이 있다. 

 

이 집단들은 초월적인 세계에 관여를 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관혼상제를 주관 해주는 사람. 관혼상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런 것을 하는 사람들은 장례를 치르면 어떻게 염을 하는지를 알고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쁘게 보면 사람이 죽어야 먹고 산다. 묵자하고 유가하고 학설 대립이 굉장히 심하다. 묵가에서 유가를 비난할 때 사람이 죽어야 먹고 산다는 그런 얘기를 했었다. 상을 치르는 일을 관여하면서 정형화된 예를 전습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만 계속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 집단을 둘로 나뉘는데 그 일에 계속 관여하는 사람이 있고 공자는 이 전통을 혁신해서 禮라고 하는 것을 형식적인 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을 갈고 닦는 일에 신경써야한다고 하는 일종의 도덕철학과 사회정치철학으로 발전시켜 나간 측면이 있다. 이것이 공자의 업적.

 

그래서 유라는 집단을 크게 보면 君子儒와 小人儒로 나눌 수 있다.

君이라면 높은 귀족 집안을 가리키는 말인데 君子라는 말 자체도 공자시대에 오면서 세습되어 오던 귀족 공경대부들이 무너져 나가면서 이제 학문을 익히고 도덕을 익혀서 벼슬에 나아가는 사람들을 君子라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람들을 君子儒라고  부르고 여전히 전통적인 일에 얽매여 사는 사람을 小人儒라고 부른다. 물론 공자는 학문 그 자체를 탐구한 사람은 아니다. 동아시아 사람은 기본적으로 실용적인 힉문 즉 실직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을 익히는 목적이 따로 있다. 개인의 내면의 수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즉 순수한 사변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항상 사회 공동체의 규율과 발전에 기여해야 한나다는 목표가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나중에 송명 때 사대부라고 하기도 한다. 마지막 시간에 다시 설명 하기로 하겠다.

 

두 가지점을 유념해야 한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儒 집단의 형식성과 무속성 이런 것을 혁신해서 이것을 하나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켜야할 받아들일 수 있는 도덕철학으로 새롭게 개선해냈다는 점이 공자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고, 두 번째로는 누구나 다 학문을 익힌다면 전통적인 의미에서 세습된 귀족이 아니더라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놨다는 것. 이 것에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공자 연대가 BC 551년이고 이때 세계사의 맥락을 살펴보면 세습 귀족이라는 아이디어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동아시아 문명이 최초이다. 항우, 유방이 쟁투를 벌이다가 유방이 천하를 잡았다. 하지만 둘다 귀족의 자제가 아니었다. 평민이 천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젖힌 것이 동아시아 세계가 가지고 있는 탁월한 부분. 조선왕조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예를 익히고 학문을 익히면 君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아이디어. 신분제도가 타파된 것. 

 

조선 시대 때 퇴계 이황의 후예들이 동인이고 율곡 이이의 후예가 서인인데 이 둘은 어떻게 다른가. 조선은 예학이 발전한 나라인데 조선 성리학의 기본 뼈대인 예를 어떻게 볼 것인냐의 문제이다. 왕들의 예와 사대부의 예가 구별된다고 하는 것이 동인의 기본 개념. 이를 내려받은 사람들이 남인.정약용은 남인이었다. 왕은 철저하게 왕이고, 사대부는 사대부라는 것으로 신분의 구별은 넘어 갈 수 없다. 정약용만큼 왕조주의자가 없다. 서인은 율골 이이의 휴예들인데 서인이 주장한 것이 天下通禮 천하통례. 왕에게 해당하는 예와 사대부에게 해당하는 예가 따로 있지 않다고 생각한 것. 신분 질서라고 하는 것은 고정적적으로 세계를 규율하는 질서일 수 없다고 생각이다. 이를 극단적으로 가면 왕에게 맞먹는것이고, 예라는 것이 어디까지 적용되는가를 따져 묻는 것. 사실 이런 사상을 왕 앞에서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챙기는 데에만 써먹었다는 것이 문제이지 사상은 굉장히 탁월한 것이다. 당시 기득권의 핵심문제는 노비문제. 조선사를 읽을 때는 노비문제를 잘 집어서 읽어야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동원 가능한 병력이 4.5만이 넘지 않았다. 노비가 많았기 때문. 조선시대 사대부들과 왕이 항상 부딪치는 문제가 노비문제. 왕은 노비 수를 줄이려고 하고 사대부는 늘리려고한 것, 천하통례를 주장하면서 기득권의 이데올로기로 가는데 유가의 이론 자체로는 굉장히 현대적인 것이며, 이 아이디어가 공자부터 있었던 것. 공자가 말하는 내용과 율골 이이가 말하는 내용과 어느 지점에서 같은가. 율골 이이를 유가라고 할 수 있느냐. 이런 질문에는 사서삼경을 읽었기 때문에 유가가 아니라 이념적인 동일성이 있어야 한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항상 똑같이 유지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君子儒 아이디어. 

 

학문을 익힘으로써 신분질서를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이게 이 때 나온 것이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것을 넣어을 때 역사적 상황을 볼 때 이것이 얼마나 당시 사람들에게 혁신적인 생각이었을까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사대부들이 조선을 건국하는데 힘을 바친 것이다. 고려는 신분 질서의 귀족국가였는데 조선은 체제를 바꾼 것. 건국 혁명. 정도전 같은 사람들. 

 

유가임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무언인가 라고 집약해서 말한다면 君子儒 개념이다.

유가의 근본이념은 무엇인가 / 공자가 말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 그들은 어떤 세계를 만들려고 했던 것인가. 君子儒 개념에서 시작한다.

 

공부를 중심으로 삶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결단을 해야 하는 일이다.

직장 생활은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투여하고, 남은 시간은 온통 공부에 쏟는 것이 좋다.

 

15세(B.C 537, 昭公 5년) 배움에 뜻을 두다(<論語>)

30세(B.C 522, 소공 20년)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고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30세에 자신을 얻다(<論語>)

노나라에 온 제(齊)나라 경공(景公)과 안영을 만나다. 경공이 진(秦)나라 묵공이 패자가 된 원인을 물어 이에 답하다(<世家>)

30세에 자신을 얻었는데 노나라 안영 만났다. 제나라 경공하고 안영은 정치가들. 공자가 처음 세상사람들과 대화한 사람들이 정치가들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때는 정치야 말로 세상사. 

 

34세(B.C 518, 소공 24년) 노나라의 대부 맹희자가 아들 맹의자와 남궁경숙에게 공자를 스승으로 삼아 예를 배우라고 유언을 남겨 두 사람이 공자에게 입문하다(<世家>)

34살에 제자를 받았다는 얘기. 선생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15년 동안 공부를 한 다음에 34세부터 선생노릇을 했다는 것에 유념. 지금 34세부터 73세까지니 40년 동안 가르쳤다. 일찌감치 공자의 제자가 된 사람이 있을 것고 나중에 제자가 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선진과 후진이 이렇게 갈리는 것. 

 

36세(B.C 516, 소공 26년) 제나라 경공이 정치를 묻다(<世家>)

제나라 경공이 정치의 본질을 물었다.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신하는 군주를 군주로 섬기고 군주는 신하를 신하로 대우하고 자식은 어버이를 어버이로 섬기고 어버이는 자식을 자식으로 돌보는 것이 정치의 본질입니다.

정치의 본질을 물었다고 되어 있는데 261페이지를 보자.

 

[계씨편 ]

十二. 齊景公 有馬千駟 死之日 民無德而稱焉 伯夷叔齊 餓于首陽之下 民到于今稱之 其斯之謂與

        제경공 유마천사 사지일 민무덕이칭언 백이숙제 아우수양지하 민도우금칭지 기사지위여

"진실로 부는 만능이 아니며, 부 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다"는 옛말이 있다. 제나라 경공은 자신의 재산으로 마을 사천 필이나 갖고 있었다. 그러나 죽었을 때 누구 한 사람 그 은혜를 칭송하는 사람이 없었다. 주나라 초기의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지만 천하의 백성은 지금까지 그 덕을 칭송해 마지 않는다. 옛말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논어>를 보면 몇 살 때 한 말인지 안나와 있다. 앞에서 부터 읽으면 젊을 때 한 얘기인지 구별이 안된다. 즉 사상의 형성 과정에 따라 읽을 수가 없다. 따라서 연보를 먼저 봐야한다. 공자가 처음한 말이 그 유명한 君君臣臣父父子子 이게 바로 공자 정치철학의 1번 아이디어이다.

 

[안연편]

十一. 齊景公 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臣臣父父子子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제경공 문정어공자 공자대왈 군군신신부부자자 공왈 선재 신여군불군 신불신 부불부 자불자 수유속 오득이식제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제나라 경공이 말했다."좋은 말이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며,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며,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면, 비록 곡식이 아무리 많다하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겠는가."

 

'임금은 임금답고'는 현실의 임금과 당위로서의 임금. 똑같은 글자가 써 있다 해도 각각이 똑같은 뜻이 아니라 앞에 있는 것은 플라톤적으로 얘기하자면 임금의 이데아가이고 이를 현실의 이데아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 현실적인 모습과 당위가 합해졌을 때 올바름에 이르는 것. 임금에게도 신하에게도 어버이에게도 자식에게도 다 통용되는 즉 다 아우르는 상위의 당위 개념이 하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아직 못한 것인데 거기까지 가면 공자의 일종의 형이상학론이 되는 것이다.

 

정치에 대해서 물었는데 공자는 정치는 얘기하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한다는 당위에 대해서 얘기했다. 공자의 <논어>에서 읽는 것은 후대사람들이 자기 아이디어를 덧붙이고 주석을 단 것이 아니라 유가가 가지고 있는 핵심아이디어만 뽑아서 읽는 것.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이 사람들은 공자를 제외하고 또는 유가를 제외하고는 현실세계에서 작동하는 실질적인 수단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런데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니까 정치라고 하는 것은 정치를 하지 않음으로서 잘된다는 얘기를 하며 올바름을 먼저 얘기헌더, 정치라고 하는 말을 리얼 폴리틱 즉 현실정치라는 의미에서 이해한다면 결국 반정치적 정치철학인 것이다. 또는 포지티브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도덕적인 정치철학이다. 우리는 도덕과 정치를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는데 이 사람들은 그렇지 않고 도덕의 연장성산에서 이해하는 것.  반정치철학 또는 도덕적 정치철학.  이것이 유가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사상. 아이덴티티 중에 1번. 공자는 '어질게 살아라'부터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것. 항상 표면에 나와 있는 것이 뭐고 그것을 파고들어가서 맨 뒤에 놓아여있는게 뭐냐를 말하는 것. 플라톤은 이데아부터 말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어지로우니까 올바름 기준이 있어야한다. 따져묻다 보니 이데아까지 간 것이지 이데아 사상을 먼저 내놓고 연역을 해서 내려온 것이 아니다.

 

유가는 우선 정치부터 봐야한다.

공자가 정치가 무엇이냐에 대해 말할 때 정치는 올바름이다 말을 한다. 이 말로 집약된다. 출발점이 이것. 여기서 仁 어질 인자까지 가는 것.유가의 정체성을 만들어낸 핵심요소.

君君臣臣父父子子 이것을 공자의 정명론이라고 부른다. 정명론은 반정치적 정치철학임을 명심.

 

연보를 따라가 초창기 생각을 보면 실제로 현실정치속에서도 실현해보려고도 했다. 이 생각을 심화 발전하여 이론적인 뒷받침을 하고 이 생각을 가진 제자들을 양성해서 각나라에 보내고 한 일을 평생 한 것. 현실적으로 기초적으로는 누구나 다 열심히 노력해서 덕을 닦으면 군자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어떤 도를 어떻게 닦아야 됩니까라는 방법론에 들어왔을 때 이걸 하는 것. 나쁘게 말하면 명분론인데 마키아벨리처럼 무력과 설득과는 다르다. 다른 영역에 놓여 있는 것. 대충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이것을 사람들 마음에 심어놓으면 노자도 부러워 하는 신성정치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36세(B.C 516, 소공 26년) 이 무렵 소악(韶樂)을 듣고 침식을 잊을 정도로 음악에 심취하다.

소악이라는 음악에 대한 생각을 상식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문명세계에서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꼭 악기를 연주하는 것들이 아니라 우주의 진리를 드러내는 시가 이런 것들도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정치론이 하나 나와 있는데 그 다음에 공자가 '음악에 심취하다' 소악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정치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 보안더. 우선 피타고라스 학파가 음악을 중요하게 여긴 것처럼 우주적 진리와 관련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자의 기초 교양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계속 儒者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냐 儒者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두번째가 이 것. 현실정치에 대한 아이디어가 하나 있고 소악을 읽고 침식을 잊을 정도로 음악에 심취하는 것이 있다. 기본적으로 시를 읽고 시문에 달통해야 한다는 것. 시문을 잘 지으려면 <시경>, <서경>처럼 옛날에 나온 시문에 통달해야 한다. 요즘의 용어로 말하면 '고급의 고전 텍스트'를 잘 알아야 한다. 노자의 <도덕경>을 보면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사회가 더러워진다고 하고, 장자는 책 근처에도 못가게 한다. <한비자>를 아무리 아무리 열심히 읽어봐도 시를 읽고 교양을 쌓으라는 것은 없다. 유가의 교양이라고 하는 것의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소동파 같은 사람도 시나 읊고 술이나 먹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탁월한 유자, 정치가. 학자적 관료이면서 동시에 관료적 학자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그것이 중요한 것. 유자의 아이덴티티라고 하는 것은 두 번째에 있다.

 

40세(B.C 512, 소공 30년) 마흔이 되니 혹하지 아니하다(<論語>)

48세(B.C 504, 정공 6년) 계손씨의 가신인 양호가 정권을 잡자 공자는 벼슬하지 않고 물러나 시서예약을 가르치니 제자가 멀리서도 모여들다(<世家>)

시라카와 시즈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리라>를 보면 양호와의 관계가 중요하게 다뤄져 있다. 이 부분은 시즈카 선생의 책을 참조할 필요도 있다. 시서예약을 가르친다에 부분에 초점을 맞춰보자.

 

현재 유가의 정치론과 교양 또는 유자의 기본교양애 댜해 얘기했다. 크게 외면적인 것과 내면적인 것이 가닥이 잡힌다. 이 지점에서 공자가 48세쯤이 되니까 시서예약을 가르쳤다. 즉 커리큘럼을 짰다.

 

113페이지

[술이편]

24. 子以四敎 文行忠信

      자이사교 문행충신

선생께서는 네 가지를 가르치셨다. 표현력(文), 실천력(行(), 개인에 대한 덕의(德義, 忠)와 사회상의 규칙(信)이다.

 

이게 공자 아카데미의 네 과목. 그러니까 시서예약을 가르치니 구체적으로 말하면 [술이편]에 나왔다.

文은 고전 텍스트, 行은 실천력. 즉 윤리적인 실천력을 가르킨다. 윤리학. 忠은 정치학. 信은 레토릭. 말하기. 교언영색은 좋아하지 않지만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굉자히 중요히 여겼다.

고전학, 윤리학, 정치학,수사학(올바로 말하기 정확하게 말하기)를 가르쳤다. 이게 기본 커리큘럼. 

 

문과 행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반성하는 것. 그렇게 되었을 때에야 사회적으로 올바름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이 상황에서 적절한 말이 무엇인지를 알게되는 것.

왜 충신 이전에 문행을 논하였는가. 문행을 통해서 자기반성을 거쳐야만 사회적 정치적인 식견이 가능하다는 것.

이런 자기 반성이 일어나려면 지금 자기가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을 한발자국 물러나야 하는데 한 발자국 물러난 자리에 시문에서 나오는 것. 여기 나와있는 정명론·교양론 두 가지가 큰 축이 되어서 이것을 구체화 해보면 결국 뒷부분에 나와있는 문행으로 구체화 되는 것이고 이것을 바탕으로 했을 때 정치론이 가능해 지는 것. 이것이 공장님이 말씀하신 전부라고 할 수 있다. 仁은 나중 얘기. 이 전체를 다 아우러서 올바름이라고 표현되는 것. 그래서 유가는 올바름의 철학이다. 

 

올바름이라고 하는 것을 형식적인 측면으로 드러내 보이면 禮가 되는 것이고 끊임없이 올바름에 이르려하는 하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는데 지금의 나를 반성해서 내면적으로나 또는는 타자 관계적으로나 끊임없이 올바름에 이르려는 어떤 액티비티, 그 활동, 올바름의 이르려는 활동을 仁이라고 부르는 것. 仁은 고정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어질'은 형용사다. 악해진 것을 계속 가다듬어어야 어진 것이 된다. 악해졌다는 것은 올바름에서 벗어난 상태. 이 상태를 벗어나 다시 올바름으로 다시 원래의 올바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 仁한 것.

 

54세(B.C 498, 정공 12년) 공자가 노나라의 사구로써 계씨에게 건의하여 계씨 등 삼환씨의 무력을 해체시키려다 실패하다(이때부터 14년간의 기나긴 유랑생활이 시작된다.)

55세(B.C 497, 정공 13년) 위(衛)나라에서 10개월을 머물로 진(陳)나라로 가는 도중 광(匡)에서 광인(匡人)들에게 포위되는 재난을 당하다(<世家>)

공자는 재난을 겪으면서도 문화전통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굴하지 않다. "선생이 광에서 재난을 당하셨다. 그때 말씀하셨다. 문왕의 사후 문화 전통은 내 몸에 있지 않은가? 하늘이 이 문화를 멸망시키려고 한다면 나를 이곳에서 죽게하여 후세사람들이 이 문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이 문화를 보존하려고 한다면 광인들이 나를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다(<論語>)

'하늘이 이 문화를 멸망시키려 한다면' 이 문화는 斯文 사문, this culture 이 얘기는 공자 학문의 전수 관계. 이어받고 남겨준 것을 말하는 부분.

이 것과 322페이지를 보면 사문과 연결된다. 

 

70세(B.C 482, 애공 13년) 노나라가 공자를 정치에 쓰지 않자 제자를 가르치고 문헌을 정리하는 일에 전념하다(<世家>)

71세(B.C 481, 애공 14년) "그렇지 않느냐, 그렇지 않느냐? 군자는 죽은 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것을 걱정한다 함이. 내 도는 행해지지 않았으니 나는 무엇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길 것인가?"하고 역사 기록을 정리하여 <춘춘>를 짓다((<世家>)

제자들이 <춘추>의 수업을 받을 때 말하기를, "후세에 나를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춘추>로써 할 것이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 또한 <춘추>로서 하리라(<世家>

 

[안연편]을 보자.

175페이지

顔淵 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안연 문인 자왈 극기복례위인

안연이 인이란 무엇인지 여쭈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사심을 이겨내고 보편적인 예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인은 어떤 상태. 사심을 이겨내고 예로 돌아간 상태가 인이다. 그러면 돌아간다고 하면 원래 있던 것. 이것은 선재하는 것 먼저 잇는 것. 예라는 것이 있는데 예는 먼저 있는 것. 사람이 예라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빠져나온 상태가 己. 나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회복하고 돌아가는 것을 인.

 

공부를 계속하는 법은 절대 척도에 이르지 못했다는 궁핍함이 있어야 계속 하는 것. 

절대 기준에 비추었을 때 여전히 네가 그것에 못미치기고 있다면 계속해서 그 활동을 해야한다.이 밑바닥에 놓여 잇는 것이 義. 義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내가 사악하다면 극복활동을 해야한다.

절대척도를 얼마나 의식하느냐 높게 잡느냐가 공부를 계속 밀고 나가는 힘.

 

여기서 이제 克己라고 하는 것은 네거티브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好學.

好學이라는 말과 克己라는 말은 같은 것이다. 

 

克己라는 것을 好學과 연결시켜 보면 답이 안나오는 것. 답이 안나온다. 그래서 계속 하는 것. 그러면 이렇게 해서 禮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義를 기준으로 삼아서 자기를 이기는 것. 결국엔 이 모든 극기복례위인 모든 밑바닥에 놓여있는 것이 義. 이런 것을 계속하는 활동이 仁이고 예는 禮으로 드러나 있는 상태. 禮는 표면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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