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05 맥베스/오셀로 1


맥베스 - 10점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아침이슬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0718 22강 맥베스/오셀로(1)

20130725 23강 맥베스/오셀로(2)

20130801 24강 맥베스/오셀로(3)

20130808 25강 맥베스/오셀로(4)

20130822 26강 맥베스/오셀로(5)





셰익스피어 그리고 그가 남긴 모든 것

저자
스탠리 웰스 지음
출판사
이끌리오 | 2007-02-2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 책은 1562년 셰익스피어의 출생 기록부에서 시작해,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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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 입문(개정판)

저자
테리 이글턴 지음
출판사
인간사랑 | 2006-07-29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영국의 문예 이론가이자 비평가인 저자의 고전적인 작품으로 문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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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 Tragedies

저자
William Shakespeare 지음
출판사
Penguin Classic | 1995-04-01 출간
카테고리
문학/만화
책소개
The theme of the great Shakespe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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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speare

저자
McEvoy, Sean 지음
출판사
Routledge | 2013-10-14 출간
카테고리
문학/만화
책소개
Now in its third edition Shakesp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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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8 22강 맥베스/오셀로(1)

셰익스피어 희곡은 누구 편집했느냐에 따라서 내용이 조금이 다르다. 이른바 정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어판을 보려면 맥베스,오셀로,햄릿,리어왕 4대 비극 작품을 묶은 펭귄 클레식(Penguin Classics)판의 <Four Tragedies: Hamlet, Othello, King Lear, Macbeth>이 제일 좋다. 강의는 우리말 번역본으로 하지만 배우고 나서 영어판을 사서 읽어보면 된다. 특히 맥베스는 분량이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영어판하고 번역본하고 대조해서 읽어보면 재미있다. 그런게 공부. 오셀로는 분량도 많고 구조도 좀 복잡하고 하니 사실 대조해서 읽으면 벅차다하는 사람은 맥베스만 읽어도 좋다. 


셰익스피어에 관한 책은 인문서가 없다. 스탠리 웰스 <셰익스피어 그리고 그가 남긴 모든 것>이라는 책이 있는데 진짜로 좋은 책이지만 지금은 품절. 그 다음에 셰익스피어에 관한 가장 좋은 인문서는 Routledge 출판사에서 나온 the basics 시리즈 물. 시리즈물 안에 셰익스피어 도 있고 여러 종류의 각 학문 영역의 가장 기본이 되는것들을 내놓은 것. 일단 Routledge 출판사 자체가 신뢰할 수 있는 일진급 출판사. 이 책에 들어 있는 내용을 보면 먼저 셰익스피어 텍스트를 이해한다라고 하는 understanding the text라는 파트가 있고, 그 다음에 셰익스피어 드라마의 장르를 이해한다가 있다. 크게 두 영역으로 나눠져 있는데  understanding the text 에는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어떤 것인가, 드라마 작품을 읽을 때 어떤 내용을 어떤 기준으로 읽어나갈 것인가, 영화화된 것들은 어떤 식으로 파악할 것인가로 나누어지고 드라마 장르에 관한 것에는 코메디(희극), 역사극, 비극에 대한 것, 로맨스 각각의 장르별로 설명해 놓았다. 파트2는 안읽는다 해도 파트1을 읽으면 좋다. 이종인 선생이 번역한 스탠리 웰스 <셰익스피어 그리고 그가 남긴 모든 것>이 셰익스피어 자체보다는 그가 끼친 영향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는 책이라면 이 책는 셰익스피어 텍스트와 텍스트 그 자체에 충실한 해설을 담고 있는 책. 그 다음에 셰익스피어를 시작한 김에 셰익스피어 하면 영문학과 거의 동일시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  테리 이글턴 <문학이론 입문>. 문학이란 무엇인가, 영문학의 시작, 문학 비평 이론들을 거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읽으려고 하는 셰익스피어의 17세기 영문학을 다룬다.


17세기 영문학이란 말을 썼을 때 이를 이해하려면 17세기를 알아야 한다. 영국을 가리키는 말에는 잉글랜드와 그레이트 브리튼이란 말이 있다. 17세기니까 아직 잉글랜드. 특정한 경우에는 잉글랜드라고 해야할 때가 있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제국주의 국가로서 전세계 식민지를 만들어 내기 이전의 단계를 가리킬 때도 잉글랜드라는 말을 쓴다. 17세기 영문학이면 잉글랜드라는 말을 쓴다. 예를 들어서 청소년 동화책으로 많이 읽는 <정글북>을 지은 키플링의 문학도 영국문학이라고 말하는데 키플링의 문학은 잉글랜드 문학이 아니라 그레이트 브리튼 문학. 영국 제국주의 시대의 문학이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셰익스피어 시대 잉글랜드 문학이라고 하는 것과 키플링도 포함된 영국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다르다. 17세기 영문학= 잉글랜드 문학이라고 보면 된다.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시대적인 맥락들을 꼭 봐야하기 때문에 17세기 영문학 이러면 17세기라는 시대가 어떠한 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셰익스피어가 문학/연극 대본을 썼지만 자기가 '나는 문학을 하고 있다'는 자각은 없었다. 그냥 하는 것. 일단 문학을 이해할 때는 문학을 창작하는 사람이 자기가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또는 극작가라 또는 소설가로서 자각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는가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는가. 이걸 한번 물어보면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이해할 때 다양한 백그라운드가 필요한 것. 동시에 17세기 영문학은 밀턴 <실락원> , 웹스터(John Webster)가 포함되고 프란시스 베이컨의 에세이도 있다. 존 번연(John Bunyan) <천로역정>도 17세기 영문학.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도 문학에 넣는다. 


17세기 영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영문학의 시작 시기. 한국문학은 시작된지 50년 되었다. 힌글이 만들어진지는 500년이 되었어도 조선시대 한글로 만들어진 문학은 A4지 100매도 안된다. 그러니까 한국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작품활동인데 50년 되었다. 영국문학은 300년이 넘었다. 셰익스피어부터 시작하는 것. 희랍문학은 2000년, 라틴 문학은 1000년전. 독일문학은 괴테부터 시작했으니 19세기. 문학이라는 것은 최소한 200년 이상의 전통이 있어야 뭔가가 만들어진다. 프랑스 문학이 200년. 이 연대 개념이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일본 문학은 1000년이나 된 것. 


17세기 영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라틴어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우리가 국한문혼용에서 벗어나서 순순하게 한글로만 글을 쓰는 것이 한국문학의 과재였던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말은 영어로 하는데 쓰기는 영어로 안썼다. 이제 말도 영어로 하고 쓰기도 영어로 하는 단계. 영어라는 단어가 생기기 시작하는 단계. 그래서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보면 그 때 처음 생긴 단어들이 있다. 그 단어들이 라틴어에서 나온 것도 있고 셰익스피어가 새로 만든 단어도 있다. 그래서 읽기가 어렵다. 그런데 학자들은 조선 시대 학자들은 한글로 글을 쓸줄 알았는데 다 한문으로 썼다. 마찬가지로 학자들은 라틴어로 썼다.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도 영국문학이라고 했는데 홉스는 라틴어로 먼저 글을 쓰고 그것을 가지고 대중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영어로  본인이 번역 했다. 라틴어가 익숙한 학문어이기 때문에, 사태를 가리킬 수 있는 단어가 라틴어밖에 없는 것. 우리가 관념이라고 할 때 머릿 속에 그 단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떠오른다. 순수한 우리말로 없다. 한자어로 쓸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 홉스 같은 경우는 라틴어로 글을 쓴다 그러면 글쓰는 형식이 있다. 그 형식에 따라 쓰다가 그대로 영어로 옮기면 번거롭고 잘 맞지않고 어렵다. 홉스도 그 과정에서 번역의 과정을 거쳐간다. 그래서 넓은 의미에서 영국문학에 포함시킨다. 영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더군다나 대표적인 케이스가 17세기라고 하는게 서양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인데 영문학이 생겨나는 시기이기도 하고 불문학이 생겨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파스칼 <팡세>는 철학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수필문학으로서도 읽는다. 데카르트 <방법서설>도 17세기 불문학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텍스트. 불어로 썼다. 그렇다면 도대체 문학이 무엇인가하는 구별이 모호해진다. 그래서 로만 야콥스 같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는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접근해가는 것이 아니라 형식을 가지고 접근해 가야한다라고 하는 이른바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이 등장한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기 전에 오늘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전반적인 얘기를 해본다.

우선 고전. 무엇이 문학이냐라고 물으면 문학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포괄적으로 말하면 특정한 시대의 분위기 또는 특정한 시대의 어떤 시대적인 증후 이런 것을 담고 있는 텍스트 전체를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그러면 모든 것이 문학이 된다. 그런데 그런 문학 작품들 중에서도 우리는 고전 작품이라는 것을 거론한다. 고전은 단순히 오래된 것을 고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고전은 두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형식적인 특징과 내용상의 특징인데 형식적으로는 구조적 완결성이고 내용상으로는 인물의 전형성. 이 두가지를 갖추고 있으면 고전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 두가지를 벗어나면 고전이 아닌 것인가. 이것을 모던하다고 말한다. 모던이라는 말하고 클래식이라는 말하고는 시기에 따라서 만들어진것이 아니라 구조적 완결성성과 인물의 전형성을 이 두가지 특징을 가지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구조적 완경설을 갖추고 있는 작품은 고전이라고 말한다. 이를 벗어나면 그냥 모던한 작품.요즘 우리의 대다수의 작품이 모던하다. 


구조적 완결성과 인물의 전형성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문학작품을 들어라 하면 호메로스 <일리아스>. 희곡드라마에서는 <오이디푸스 왕>. 이런 것들이 고전작품. 오래되었다고해서 고전이 아니다. <오뒷세이아>는 구조적 완결성은 갖추고 있는데 인물의 전형성은 좀 떨어진다. 인간이 좀 변한다. 겪어보니까 달라지기도 하고. 인물의 전형성이라고 하는 것은 가끔 비틀어지기도 한다. <일리아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동일한 캐릭터인데 <오뒷세이아>는 캐릭터가 네모난 성격을 가지고 있다가 변했다가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으로 간다.인물의 성격변화가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변해가는 과정, 변하게 만드는 외부의 사건들이 있다. 외부의 사건들로 인해서 이 인물들이 성격을 변화시키니까 넓은 의미에서 파토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변해가는 프로세스를 잘 추적해나아가면 다시 말해서 인물의 성격이 변화하는 과정을 남의 일처럼 잘 서술해 나가면 시간축으로 쓰던 옛날일을 회상하든 이러 이러한 성격으로 시작해서 캐릭터가 이렇게 변형되 나아가는 과정 전체를 시간순으로 잘 서술해 나가면 이것을 우리는 서사라고 한다. 


우리가 읽게되는 셰익스피어 드라마는 영문학의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이때 고전이라는 말은 흔히말하는 고전은 그냥 오래된 작품이다. 오리지널에 해당한다, 영국문학을 정초한 작품이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과연 이런 의미의 고전인가를 생각해봐야한다. 


가령 맥베스, 오셀로도 그렇다. 얼핏보기에는 인물들의 성격이 항상 똑같은 것 같다. 멕베스는 항상 갈등하고 레이비 맥베스는 남편을 갈군다. 얼핏보게되면 인물의 전형성이 확보되어서 성격의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 촘촘하게 읽으면 성격변화가 나타난다. 이게 셰익스피어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큰매력. 햄릿형 인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전형성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햄릿을 쭉 읽어보면 미세한 변화가 있다. 그러면 이제 셰익스피어 드라마의 해석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문학이론가의 해석은 어디서 나오는가. 어떤 직무를 중요한 변화로 잡아낼 것이가에서 나오는 것. 나는 이게 중요하다 생각해 또는 인물의 변화가 미세하게 나마 있는데 그 미세한 변화가 어떤 것이 계기가 되어서 변화가 일어나는가에 따라서 해석의 차이가 생겨나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그렇게 했을 때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면 영문학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문학작품으로 알려진 것을 본격적으로 배울 때 몇가지 주의해야 할 점을 말한다.

문학작품을 읽고 그것을 경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재밌네'. 재밌네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큰 경멸이다. 그 말은 이 작품은 해석할 필요가 없어, 나의 이성으로 작품이 들어오지 않았어라는 말이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보면 재미있지 않다. 항상 머리가 복잡하다. 어렵다. 재밌다는 말은 해석이 필요 없다는 말이니까 문학작품에 대한 굉장한 모독. 도스토옙스키 <죄와벌>,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재밌다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고전이라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규정들 잘 알아두어야 한다.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읽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셰익스피어은 1564~1616을 살았던 사람. 즉 17세기 사람. 17세기 그러면 '과학혁명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17세기는 '일반위기 시대'라고 말하는 게 가장 현명한 규정이다. general crisis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사회 규범들이 무너지고 아주 오래된 체제들도 해제되어 나아가고 그리고 각 나라에서 국민문학이 생겨날 즈음. 중세 유럽은 라틴어로 모든 학문적인 성과물이 쓰여졌다. 영문학이라고 하는 것, 불문학이라고 하는 것, 독문학은 아직, 이런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즉 로컬랭귀지가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 이탈리아 문학은 이미 단테에서 시작되었다. 지역 언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게 근대 국민국가 형성에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 문학의 측면에서 언어의 측면에서 보면 한반도 지역에서 로컬랭귀지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50년. 한국은 이제 문학의 측면에서 근대국가가 되기 시작한 것이 50년. 노벨문학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작품이 어떤 언어로 쓰여져 있건 작품의 탁월함에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문학에 주는 것. 그렇기때문에 노벨상을 받으려면 국민문학이 발전해야 한다.


그 다음에 17세기 셰익스피어가 창작 활동을 한 공간인 런던. 17세기 런던 그러면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곳. 엘리자베스 시대. 지방에서 올라온 노동자들도 많고. 이 사람들이 주요 관객. 지금의 셰익스피어 드라마는 넥타이를 매고 가서 보는 드라마처럼 알려져 있는데 사실 원래 야외극장에서 보던 것.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이해하는 첫 번째 규준이라는 것이 뭐냐고 한다면 17세기 잉글랜드라고 하는 시대적인 맥락과 런던이라고 하는 공간을 염두해야 한다.


두번째로 셰익스피어 작품의 관객을 생각해보자. 이 관객은 도시의 mass 대중. 대중이 등장하는 것인데 아주 일반적인 사람들. 실제로는 말을 할 수 있는데 쓰지는 못한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셰익스피어 드라마에 나오는 말들이 사람들에게 교과서이기도 했다. 멋진 말들을 알려주는 역활. TV 드라마를 생각하면 된다. 관객이 있다는 것은 당연히 셰익스피어 드라마는 상업 드라마. 돈을 벌어야한다. 셰익스피어 자신이 배우이기도 했고 극작가이기도 했고 나중에는 극장주인이기도 했기 때문에 굉장히 상업적.  상업적이라는 것은 곧 관객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관객에게 초점을 맞췄다. 잘나가는 배우가 있어야 하고, 극작가가이자 연출가이기도 하니까 대중의 취향이 함께 엮여진 일종의 연쇄고리.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읽을 때는 관객, 배우, 극작가가 굉장히 밀접했다.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읽을 때는 너무 고상하게 읽으면 안된다는 것.


셰익스피어 드라마는 원래 눈으로 읽혀지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알아두어야 한다. 다시말해서 극작가와 배우와 관객은 readership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독자라고하는 연대감이 없다. 독자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말로 떠들어지기위해 쓰여져 있다. 그래서 여기서 두번째 요소가 굉장히 중요한데 셰익스피어 드라마 해석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 여기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 상황에 따라 대본이 변경되었다는 것. 이 단어는 못알아듣는 것 같아.. 그러면 다음 연극 때 빼고,. 정해진 정본이 없다는 것.  순수한 pure 텍스트가 없다. 이게 셰익스피어 연구에 어려움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이 관객들은 굉장히 고도로 교육받은 사람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working class audience라고 말해지는데 귀족들이 보러오지는 않았다. 이런 경우에 계급에 기반 class based을 둔 드라마라고 얘기를 해야한다. 이 클래스는 working class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 한다는 것. 도시의 하녀, 하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하층민 low-class 기반의 클래스라는 것. 따라서 셰익스피어에 나오는 영어가 굉장히 고급영어다 생각하면 안된다. 그 당시는 고급/저급 영어의 구분이 없었다. 라틴에서 영어로 넘어오는 단계 였기 때문에 아직 나뉘어진 단계가 아니었다. 영어의 어휘를 늘리는 게 먼저지 다듬고 할 틈이 없었던 것. 


한국어가 국민어로서 national language로서 한국어가 사용된지가 문어와 구어가 일치되어서 사용된지가 50년. 이때 해야 할 일은 어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사람들은 번역을 백년 전부터 엄청했기 때문에 서구 문물을 가리키는 일본어가 엄청 많다. 우리는 그게 없기 때문에 어휘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 안그러면 나중에는 우리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한국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수가 생긴다.


17세기 잉글랜드라는 시기가 바로 영어의 수를 늘리는 것이고 생각해보면 하층계급 기반을 둔 드라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사용되는 어휘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 셰익스피어는 이를테면 영어교육을 한 것. 이때 하층계급의 기반을 한 드라마로서의 셰익스피어가 있었고 그것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영어의 기반이 되었지 상류층을 상대로한 드라마였으면 영어의 기반이 못되었을 것이다. 잘 유념해서 알아둘 것.


그리고 관객들은 듣기 보기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알아듣기 쉽게 말해야 한다. 쉬운 말을 해야하는 데 극의 절정이 나오면 잘 기억하기 하기 위해서 서로 대비되는 단어들을 많이 쓴다. 은율을 갖춘 대구(對句)들.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읽을 때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시적인 은율로서 대구(對句)들이 많이 나온다.


그 다음에 3번째 특징으로 영어 원문을 읽을 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영어와 17세기 영어와의 차이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7세기 영국 영어는 그 특유성이 있고 라틴어 같기는 한대 영어같은 단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셰익스피어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나 같은 철학을 하는 사람이 역사를 하는 사람이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겠는가.

17세기 잉글랜드라고 하는 시대에 이렇게 많은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으로서 셰익스피어 충분히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으로서 위대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셰익스피어 드라마의 위대함이 어디있는가를 생각해보고 굳이 철학하는 사람이 읽어야 하는 어떤 지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 햄릿의 작품 내용을 생각해보고 배경 설정을 보면 오셀로 빼고 다 왕들이 나온다. 당시 영국은 군주제 국가.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왕과 신하의 관계를 아주 독특하게 묘사하는 관계 설정하는 지점이 있다. 어떻게보면 이런 부분이 당대사람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그 내용들이 당시 관객들에게 상당히 어필했다는 것. 


맥베스를 보자. 던컹왕이 있고 맥베스가 잇다. 여기서 맥베스가 덩컨왕을 죽인다. 심각한 문제다. 만약에 KBS에서 수목드라마로 황금시간대에 대통령 시해사건을 다룬 드라마를 방영한다고 해보자. 이것은 굉장히 정치성을 띠고 있는 드라마가 된다. 17세기에 왕을 죽이는 드라마가 나왔다. 셰익스피어가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왕을 죽이는 것이 정당화 되느냐. 심각한 문제. 이 작품들의 내용을 살펴보건대 당대 사람들에게 굉장히 첨예한 이슈들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시대 때 그 어떤 소설이 왕을 죽이는 소설이 나올 수 있겠는가. 셰익스피어와 같은 시대. 1592년 임진왜란. 이 것이 문화적인 힘이다.. 이것을 용인하는 사회. 그 사회가 어쨋든 앞으로 나아가는 사회.  즉 셰익스피어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형식의 문제도 있지만 이제 내용으로 들어가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첨예하게 닥치는 문제들에 대해서 정면으로 대결해서 이것을 드라마로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핵심적인 문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갈등의 상황 속에서 얘기한 것. 인간에게 어떤 특정한 정치적 상황 속에 처해 있는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문제 삼는 존재론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사상가로서의 셰익스피어 면모. 그 사람이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알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서 길어올린 주제들인데 가장 근본적으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영원한 문제들, 양심의 가책의 문제들, 즉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한 부분이 있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 또는 사회라는 것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면할 만한 영원한 근본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게 한가지. 그 다음 두번째 17세기 일반 위기의 시대라고 하는데 체제의 문제가 있다. 셰익스피어 비극 드라마는 배경이 왕과 신하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체제의 문제 political regime가 심각하게 제기된다. regime이라고 하는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래서 앞시간에 셰익스피어를 정치사상가로서의 셰익스피어을 읽는고 했는데 이 말이 뭐냐면 셰익스피어 드라마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치체제의 문제들이 뭐가 있는가를 끄집어 내어 읽는다는 말이다.


비교를 해보자. 왕이 등장하는 드라마로 <오이디푸스 왕>과 <일리아스>가 있다. <일리아스>를 생각해보자. 아가멤놈이 왕, 아킬레우스는 장군이다. 처음에 아킬레우스의 분노에서 시작하여 이 둘이 싸운다. 장군이 왕에게 덤벼든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problem(problem between Agamemnon and Achilles)이라고 한다.


단순히 극중에 나타나는 맥베스의 성격, 덩컨왕의 성격이 아니라 사실은 체제라면 인간 사회 조직이라면 언제라도 생겨날 수 있는 문제. 그런데 <일리아스>에서 왕과 신하의 다툼이라는 측면만 가지고 작품을 읽어보면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놈을 죽이려고 칼을 뺐고, 아테네 여신이 내려와서 중재를 한다.여신의 중재가 있어야 하고 여신이 아킬레우스에게 더 많은 물질적인 보상을 약속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 이것을 살펴보면 희랍 <일리아스> 세계에서의 regime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알 수 있다. 돈으로 떼우는 것. 아킬레우스의 무공과 용맹함에 해당하는 물질적인 보상이 주어지면 justice가 실현되는 것. 올바름이라고 하는 것, 정의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보상을 균등하게 능력에 따라 나누어주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오이디푸스 왕>에서는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 왕을 자기 아버지인지도 모르고 죽였다. justice가 어떻게 실현되었나. 자기가 자기 눈을 찌르면서 실현되었다. 스스로 죽고 스스로 추방을 떠나면서 justice가 실현된다. 


그러면 희랍에서는 왕을 죽일 수 없다. 아킬레우스도 아가멤논을 죽이지 못했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왕를 죽였지만 알고 죽인게 아니라 모르고 죽였다. 모르고 죽였으니 용서가 될 법도 한데 결국에는 자기가 자기를 용서하지 못했다. 어쨌든 왕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 희랍세계다.


여기서 맥베스는 덩컨왕을 죽였다. justice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왕을 죽일 수 있나. 죽일 수 있다. 왕을 죽이려면 그에 합당한 명분을 제시되지 않은 한 반드시 댓가를 치뤄야 한다는 문제가 나온다. 그러니까 여기 regime이라고 하는 것, 정치 체제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는 과연 어떻게 이 사태를 대응할 것인가가 이제 심각한 문제로서 제기된다. 이런 부분들을 보면서 읽어야 한다. 셰익스피어가 의도했든 안했든 일단 일차적으로 맥베스를 읽을 때 닥친 문제가 뭐냐면 왕을 죽일 수 있는가, 죽였다면 그 왕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 어떤 명분이 뒷받침 될 때에 후환이 없는가를 다루게 된다.


<안티고네>에서는 안티고네가 폴리네이케스를 매장을 하는데 크레용이 안티고네에게 나라의 법을 어겼다고 하니 자신은 신이 정한 영원한 법을 지키고 있다라고 하며 국법을 완전히 무시한다. 안티고네는 자기의 행위들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뒷배경의 근거들을 마련하고 있다. 과연 맥베스는 마련했는가? 마련 못했으니 작살난 것. 덩컨왕은 과연 죽을 짓을 했는가. 이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덩컨왕은 무엇을 얕보여서 맥베스가 던컹왕을 쳤는가. 이것도 생각봐야 한다.


그 다음 <오셀로>를 읽을 때는 셰익스피어가 설정을 아주 기가막히게 했다. 가만히 보면 아주 연약해보이지만 타자에 대한 의식이 극도로 넘쳐흐르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넘쳐 흐르는 데스데모나가 있다. 이런 데스데모나와 다른 사람의 시선이 항상 걱정이 되면서도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오셀로. 주변의 평판이 늘 걱정되는 데스데모나의 아빠. 어떻게 해서든지 떡고물을 챙기러 다니는 이아고. 각자 극단적인 어떤 캐릭터들이 놓여있다. 


대사를 보면 남에게 인정받은 얘기를 계속한다.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타인이 나를 인정했을 때 행복해지는가. 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이런 문제들을 <오셀로>는 제기. 이럴 때는 아주 넓은 의미에서 존재론적 이슈들을 <오셀로>에서 읽어볼 수 있다. 그러니까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읽을 때는 '사느냐죽느냐' 만 읽을 것이 아니라 이 드라마를 이런 측면을 봐야한다. 


이제 <맥베스> 책을 펴고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덩컨 스코틀랜드 왕

맬컴 덩컨의 아들들

도널베인 덩컨의 아들들

맥베스 글래미스 경, 훗날 코더 경, 그런 다음 스코틀랜드 왕

문지기 맥베스 성의

세 명의 자객들 멕베스의 명을 따르는

시턴 맥베스의 하인

맥베스 부인 맥베스의 아내

의사 맥베스 부인의 시중을 드는

시녀 맥베스 부인의 시중을 드는

뱅쿼 스코틀랜드 귀족

플린스 뱅쿼의 아들

맥더프 파이프 영주

맥더프 부인 맥더프의 아내

맥더프의 아들

레녹스 스코틀랜드 귀족들

로스 스코틀랜드 귀족들

앵거스 스코틀랜드 귀족들

케스니스 스코틀랜드 귀족들

멘티스 스코틀랜드 귀족들

시워드 노섬벌랜드 백작

아들 시워드 시워드의 아들

잉글랜드 의사

헤카테 마녀들의 여왕

여섯 마녀들

세 망령 하나는 무장한 머리, 하나는 피 칠갑한 아이, 하나는 왕관을 쓴 아이

고양이 형용의 정령

다른 정령들

노인

전령

자객들

하인들

어덟 왕 행렬, 영주와 귀족들, 시종들, 군인들, 고수들


덩컨은 스코틀랜드 왕이다. 여기서 스코틀랜드라는 땅에 대해 유념할 필요가 있다.

맬컴과 도널베인은 덩컨의 아들들. 멕베스를 regime의 문제로 읽겠다고 말했으니 이제 등장인물을 볼때 잘봐야한다. 스코틀랜드라고 하는 이 곳의 regime은 어떻게 해서 유지가되느냐면 맬컴이 덩컨의 큰아들인데 덩컨의 큰아들이라는 것이 다음에 왕이 되는 것을 개런티하지는 않는 시대. 스코틀랜드의 체제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스코틀랜드라고 하는 지역은 예전에 신라시대 왕들이 처음에는 합의에 의해서 추대가 되다가 나중에 김씨 왕조가 되었다. 김씨 왕조 전 즉 세습왕조 전의 시대가 지금 스코틀랜드와 같다. 로마제국과도 비슷하다. 가장 실패한 후계 계승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기 아들 코모두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 준 것. 서양에서는 혈연에 의한 장자계승이라고 하는 것이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잡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그런다음 맥베스가 지금 현재는 글래미스 경이고 전공을 세워서 코더 경이 되었다가 덩컨을 죽이고 스코틀랜드 왕이 되었다.

그 다음에 맥베스 관련된 인간들이 쭈욱 나오다가 뱅쿼가 있는데 스코틀랜드 귀족. 뱅쿼의 아들 플린스가 있다.

그 다음에 맥더프가 있는데 그 밑으로 쭉 내려오면 레녹스, 로스, 앵거스, 케느니스, 맨티스 등 스코틀랜드 귀족이 나온다.

그 다음에 쭉 내려오면 하카테와 여섯 마녀들이 있다. 이들은 호메로스 <일리아스>에서 아테네 여신 같은 역할을 한다. 좋은 역할이 되었건 나쁜 역할이 되었건 초월적인 힘이라는 역할을 한다.

그 다음에 헤카테 위에 잉글랜드 의사가 있다. 그냥 의사라고 하지 않고 잉글랜드 의사라고 되어있다. 잉글랜드라는 땅하고 스코틀랜드 땅과는 서로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왜 이 의사를 잉글랜드 의사로 했는가. 맨 나중에 맥베스를 토벌하러 오는 사람들도 잉글랜드에서 온다.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읽는 비밀의 열쇠는 이 사건이 어디서 벌어지냐이다.


<햄릿>의 장소배경은 덴마크. 햄릿은 덴마크 왕자. 생각해보자. 잉글랜드가 있고, 덴마크가 있고, 스코틀랜드가 있다. 그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서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마녀를 몇번 찾느냐도 다르다. 다시 말해서 스코틀랜드는 기독교 적인 성격과 기독교와는 무관한 이교도적인 성격이 버무져져있고, 던마크는 기독교와 무관, 잉글랜드는 기독교적인 성격을 지녔다. 그러면 <오셀로>의 배경인 배네치아는 어떤가. 오셀로는 무어인. 스페인쪽에서 온 사람이다. 즉 오셀로는 베네치아의 이방인. 정착하기 되게 힘든 것. 오셀로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금방 할 수 있다. 그런 것처럼 장소가 중요하다.


잉글랜드 의사라는 것도 유념해두어야 하고 덩컨이 스코틀랜드 왕이라는 것도 유념해야한다.

그 다음에 맥베스를 쭈욱 읽어나가보면 처음에는 충선스런 신하로 나온다. 그런데 나중에는 점차로 덩컨을 죽이고 잔인해가는데 단순히 레이디 맥베스의 부추김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설득력이 약하다. 다시말해서 셰익스피어 드라마는 호메로스와는 다르게 맥베스의 내면에서 무엇이 맥베스로 하여금 그런 잔인함으로 이끌고 갔는가를 찾아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리고 덩컨왕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맥베스에게 죽었는가. 사태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인데 항상 생각해봐야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덩컨이 죽을 짓을 했네 라고 말할 수도 있고 맥베스가 과했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느 지점에서 무슨 맥락과 무슨 계기를 잡아올리느냐에 따라서 덩컨을 또는 맥베스를 옹호해 줄 수 있다.


권력을 정당화하려면 권력만 가지고는 안된다. 뭐로 하느냐. 좁은 의미의 파워가 권력. 권력은 권력으로서 정당화되느냐 그게 아니라 justice로 정당화 된다. 권력을 권력으로 정당화하는 방식은 트라시마코스 방식이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올바름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나오는데 트라시마코스가 이렇게 얘기한다. 올바름이라고 하는 것은 강한자의 이익이다. 실제로 권력을 가진자가 내 말이 법이야 라고 말하는 것이 justice라고 말한다. 더 힘이 센자가 나타나서 그를 죽인다. 권력과 justice를 일치 시켜버리는 사람. 그런 것을 가지고 마키아벨리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가지고서는 인류역사가 유지가 안되었다. 그렇게 한 사람들은 50년을 못 넘겼다. 하다못해 히틀러도 그렇게 안했다. 아리아인종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명분이 떨어지고 닳아버리면 앙상하게 파워만 남는다. 그럴듯한 정의를 내세우든 아니면 실제로 정의를 내세우든 간에 파워를 뒷받침하는 정당하 근거가 justice여야 하는데 그러면 여기서 문제는 권력을 유지하는 필연적인 계기는 justice인데 justice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의 문제가 여기서 제기 되는 것이다. 정치권력과 정의의 관계라고 하는 영원한 문제가 제기된다.. 오바해서 읽는 것인지는 몰라도 맥베스와 덩컨 사이에 벌어진다. 이것을 생각해 봐야하는 것. 이 드라마가 갑자기 궁중비화가 아니라 정치철학 테스트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이제 <맥베스>는 달라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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