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I,II | 08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20세기


세상의 모든 철학 - 10점
로버트 솔로몬 외 지음, 박창호 옮김/이론과실천



강유원: 철학이야기I,II | 2008

일시: 철학이야기I: 2008년 04월 07일 ~ 07월 28일, 철학이야기II: 2008년 09월 22일 ~ 12월 29일

교재 : 로버트 솔로몬 외(지음), 《세상의 모든 철학》, 이론과실천


강의 내용을 필사하지는 않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책 본문의 내용을 정리하여 올린다.


철학이야기 II

28강 12/15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29강 12/22 실용주의, 실존주의

30강 12/29 세계 철학 - 카뮈, 사르트르, 보부아르의 실존주의, 후기 비트겐슈타인




​토머스 새뮤얼 쿤, 《과학혁명의 구조》
이유선, 《실용주의》
칼 쇼르스케, 《세기말 비엔나》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
지크문트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알베르 카뮈, 《시지프스의 신화》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



장 폴 사르트르, 《구토》
프란츠 카프카, 《성》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동안의 고독》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8강 12/15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참호 속의 차라투스트라- 합리성의 한계
436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년)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천재로, 오래지 않아 러셀은 자신이 이 젊은 논리학자에게 가르칠 것을 모두 가르쳤다고 인정하게 된다.

436 비트겐슈타인은 (80쪽도 채 안 되는 간결한 책에서) '그가 말해야 할 것을 모두' 말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싸운 뒤 철학을 떠났다. 그는 초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고, 누이를 위해 집을 지었으며, 음악 몇 곡을 작곡하였고, 그러고서 철학계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1929년 그는 케임브리지로 다시 돌아왔고, 자신이 했던 모든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철학의 새로운 논리형식들과 씨름하며 이상적인 과학적 언어를 탐구하였을뿐만 아니라 인간 사유의 전 역사에 대해서도 숙고하였다.

436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1920년대에 비트겐슈타인이 케임브리지에 모습을 나타내었을 때, 그가 떠나온 빈은 새로운 세계가 빚어지고 있는 소용돌이의 도가니였다. 빈에서는 유럽의 어느 다른 곳보다도 낡은 귀족사회의 몰락, 중산계급의 불안,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 작가, 비평가들의 분노가 두드러지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437 그는 빈 학파의 예술가, 작가, 비평가 그룹에 속하였다.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그의 가족 친구였다. 아주 급진적인 저널리스트였던 카를 크라우스는 초창기의 동료였지만, 그의 저작은 억제할 수 없는 긴장으로 인해 사실상 몸부림을 치는 비트겐슈타인의 저작과는 대조적이었다.

437 이 불행한 천재 비트겐슈타인의 훌륭한 공적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신경증과 그와 유럽을 전복시키고 있던 병리현상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437 우리는 빈에서 저 무시무시한 결론으로 나아가는 분석을 추구하고 있던 뛰어난 의사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발견 할 수 있는 가장 예민한 주제로서 자기 자신을 선택하였다.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년)는 보통 철학자로 여겨지지 않는데, 이는 확실히 철학의 손실이자 수치이다. 좋건 나쁘건 간에 프로이트의 사상은 마음(혹은 정신), 인간 본성, 인간 조건, 그리고 인간 행복의 전망 등에 관한 20세기의 사유를 위한 틀을 세웠다. 우리가 종종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알지 못하고 또 알 수 없다는 그의 반계몽주의적 사상은 몇 세대의 철학자들과 사회 사상가들에게 전제(혹은 적어도 문제)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마음(혹은 정신)이란 궁극적으로는 물질적 실재 즉, 뇌로서 신경학과 에너지 회로 등에 의해 분석될 수 있으며 물리학적 용어로 심리과학을 규정할 수 있다는 아주 계몽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438 의사로서 프로이트의 이론은 신경증을 가진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실천적인 노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환자들이 가진 몇몇 문제들이 종종 그들이 어렸을 적에 받았던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하나의 심리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영아들은 쾌락에 대한 욕구와 더불어 삶을 시작한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쾌락원칙이라고 불렀다. 

438 이러한 발견은 현실원칙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데, 이 원리는 종종 실제에서 쾌락원칙과 대립하게 된다.

439 위험하거나 부적절한 욕구들이 의식에서 제거된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억압이라 불렀다. 특히, 심리학적 억압은 우리의 많은 성적 욕구들에 대하여 행해지는데, 그 욕구들은 본성상 종종 정도를 벗어난 것들이기 때문이다.

439 욕구들은 일단 억압되면 '무의식' 속에 강제로 들어박히게 되며, 거기서 의식적으로는 불분명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활동한다.

439 신경증 증상은 욕구를 뒤범벅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정신분석학자의 일은 이 뒤범벅된 것을 풀어내는 것이며, 신경증을 유발시킨 억압된 욕구를 드러냄으로써 신경증 문제의 원천을 찾아내는 것이다.

441 막스 베버(1864~1920년)는 사회학자였지만 (실제로 그는 오늘날 사회학이라고 알려진 분야를 창안하였다) 또한 사상의 보고이기도 하였다.

442 사회학에서의 그의 엄청난 지위는 그가 주창하였던 엄격한 방법들과 많은 관련이 있지만, 더욱 영향력 있는 그의 공헌은 그의 분석에 있으며, 좀더 프로이트적인 표현을 쓴다면 현대사회에 대한 진단에 있다.

443 그리고 현대의 삶에서 합리성으로 간주되었던 많은 것들이 실은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감정이 빠진 아무런 가치도 없는, 단지 사유의 '도구적' 형태일 뿐이었음을 인식하였다.

443 한 마디로 말해서, 합리성이란 관료제를 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444 『논고』는 니체의 일부 책들처럼 세심하게 정돈되고 많은 경구들로 이루어진 함축성있는 간결한 책이다.

444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최소한으로 단순한 문장으로 된 그림으로서, 최소한의 단순한 사실을 그리고 있다. 그는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다"라고 말한다.

444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동어반복이 아니라 심오한 신비주의로서 철학의 경계 너머와 이성의 한계 너머에 놓여있는 수많은 경험들 쪽으로 우리를 조용히 이끈다.

445 이것은 점점 더 철학과 삶의 가장 중요한 측면들, 즉 윤리학, 미학 및 종교를 무의미한 것으로서 기각해 버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생기를 잃은 관점에 따르면, 철학이란 논리학이며 논리학만이 철학이다. 하지만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그리 쉽사리 요약할 수는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분명 그러한 어떠한 관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 윤리학, 미학, 종교는 과학의 논리적 언어로 파악하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떠났으며, 그가 10년 뒤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매우 다른 사상을 갖고 있었다.

미국적 경험의 철학-프래그머티즘
449 20세기 프래그머티즘의 중심인물이자 결정적인 미국의 철학자는 존 듀이(1859~1951년)였다.

450 듀이는 이런 총괄적인 태도에 어울리게, 과학과 논리에 대한 피상적인 강조와 주관적 경험에 대한 지나치게 개인적인 강조와는 거리를 둔 프래그머티즘을 추구하였다. 듀이는 특히 수없이 증가하는 명백하고도 심각한 사회 문제들에 철학을 적용시키는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자신을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철학자로 규정하면서 자신이 결코 민주주의에 관하여 말하는 단순한 이론가는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철학의 주된 목표는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것이며, 이것은 그의 인식론과 교육론의 목표임은 물론 그의 정치적 사회적 이론들의 솔직한 목표이기도 하였다.

451 듀이의 견해로는, 지식에 대한 추구는 진리에 대한 추상적 탐구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연구가 시작되는 이유는 우리가 구체적인 실천적 문제들에 의해서나 혹은 우리가 호기심이라 부르는 더욱 복잡하고 모호한 일련의 감정들에 의해서나 긴장, 곧 실제적인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451 이런 관점에서, 과학과 윤리학은 본질적으로 경험된 조건들의 개선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다. 다시 한 번 경험은 듀이의 프래그머티즘 철학의 핵심 용어가 되었는데, 이것은 하나의 역동적이고도 실용적인 개념으로 이해된 경험을 말한다.



29강 12/22 실용주의, 실존주의

히틀러, 대학살, 실증주의, 실존주의
469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히틀러의 침공으로 시작되었지만, 세계는 사실상 1919년 베르사유 조약 이래 오랫동안 서사시적인 대결을 위해 준비해왔다.

469 유럽의 유대인들에 대한 나치의 대학살을 뜻하는 쇼아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유대인 시민의 자유는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후에 바로 박탈되었다. 유대인들은 1935년 제정된 법에 의해 전부 추방 명령을 받았으며 1938년에는 재산이 몰수되었다. 1938년 11월 크리스탈나흐트('수정의 밤'이라는 뜻으로 1938년 11월 9일 나치 대원들이 독일 전역 수만 개에 달하는 유대인 가게를 약탈하고 25여 개 유대교회당에 방화했던 날 - 옮긴이)때 게슈타포는 독일에 있는 유대 교회당의 대부분을 파괴하였으며 거의 10년 동안 계속되고 확산된 반유대인 테러 통치를 전면적으로 시작하였다.

470 분명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교황도 아무 말이 없었다. 사실 가톨릭교도, 집시, 동성애자 및 또 다른 소수 집단들이 함께 수용소, 처형을 맡은 군대, 가스실의 공포를 겪었다. 

470 제1차 세계대전의 공포를 포함하여 세계는 일찍이 이같이 끔찍한 사건, 즉 근대적인 기술과 경영의 효율성을 활용하여 한 민족을 계획적으로 쓸어버리려 한 일을 그렇게 명백하게 그리고 그렇게 가까이서 목격한 적이 없었다.

471 아마도 유대인에 대한 위협이 가장 심했던, 오스트리아에서는, 대부분 유대인 출신인 일단의 뛰어난 철학자들이 '빈 학파'라는 이름의 논리실증주의자 집단을 결성하였다. 빈 학파는 무엇보다도 먼저 비합리주의에 대한 응답이었다. 초기의 많은 실증주의자들은 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이었으며 동시에 철학자들이었다.

472 이러한 방법론은 우선 사실과 가치의 거친 구분, 그리고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렇게 거칠지는 않은 논리적 진리와 경험적 진리 사이의 또 하나의 구별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었다.

472 실증주의자들의 첫번째 관심사는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간주될 수 있고 또 간주되어야 하는 가설들을, 의미 없고 시간 낭비이며 해결될 수 없는 불일치의 원천일 뿐인 것들로부터 분리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표준, 즉 절단 도구를 검증가능성이란 개념에서 찾았다.

473 윤리적 발언들(혹은 '가치 판단들')이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없다는 점에서, 실증주의자들의 윤리는 정당화될 수 없는 주관주의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정서주의(emotivism)라 불리는 철학이 되었다. 좀더 정교한 설명에서도, 정서주의는 찬성(그리고 불찬성)의 말로 설명되었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는 정서주의자에게 '나는 이것에 찬성한다. 당신도 그렇게 하기를 나는 원한다'라는 의미이다. 

473 이런 관점에서는 좋음(혹은 나쁨)에 대한 어떤 증거나 논증이 있을 수 없다. 윤리적 논증은 그저 설득의 문제일 뿐이다. 더욱 급진적인 정서론 옹호자, 예를 들어 후기의 A.J. 에이어(1910-89년)에 따르면, 윤리적 발언들은 실제로 '우우!(경멸, 야유의 소리)'나 '만세!' 같은 감탄사보다 더 의미있는 것이 아니다.

473 1941년에 히틀러가 파리에 입성하면서 자부심에 차 있던 도시의 점령이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는 파리 시민들이 겪었던 모멸감, 공포, 그렇게 매일 매일 존재하는 도덕적 압박감 등을 단지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매일 유대인들과 체제전복자들이 검거되었으며, 일부 용감한 프랑스인들은 독일인에 대항하여 지속적인 '저항 운동'을 벌였다. 매일의 삶이 '누가 용감하게 자신의 목숨을 걸었는가?', '누가 지조없이 배신을 하고 비겁하게 점령군에 부역했는가'와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471 이러한 전시 상황에서 실존주의는 최고조에 달했다.

474 '실존주의'란 용어는 치열한 전쟁과 점령의 와중에 장 폴 사르트르(1905~80년)가 만들었다.

474 '실존철학'이라는 표현은 일찍이 정신과 의사였던 칼 야스퍼스(1883~1969년)가 사용했다.

474 사르트르의 어떤 주제들, 즉 극단적인 개인주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강조, 그리고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주장 등에 동조하는 한에서 실존주의자로 여겨진다.

475 잠시 일반화를 한다면, 실존주의자들은 개인과 개인적 책임에 대하여 관심을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더 큰 공공집단과 힘에 개인을 함몰시키는데 회의를 품거나 적개심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와 니체는 모두 '무리'를 공격하였으며, 하이데거는 단순한 사회적 실존과 '진정한 실존'을 구별하였다. 사르트르는 자유스러운 개인적 선택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였다. 이 개인적 선택의 자유는 우리의 욕구와 신념 및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강요하는 타인의 힘에 개의치 않는 자유이다. 여기서 특히 그는 키에르케고르를 따르는데, 키에르케고르에게는 열정적이고 개인적인 선택과 헌신이 진정한 '실존'에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475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의 가장 유명한 이미지는 흥미진진하지만 모호한 초인의 이상을 소개한다. 이상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니체의 목표는 분명하다. 그 목표는 평범하고 순종하는 삶보다 개인의 특유성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으로서, '이 세상에 만족하는' 대신 더 나은 '다른' 세계를 갈구하는 태도를 자극 한다.



30강 12/29 세계 철학 - 카뮈, 사르트르, 보부아르의 실존주의, 후기 비트겐슈타인

출구 없음-카뮈, 사르트르 및 보부아르의 실존주의
478 알베르 카뮈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알제리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저작들은 표면상으로는 정치적이지 않지만, 내란의 쓰라린 경험이 일찍이 그가 쓴 모든 것을 채웠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이방인』(1942년작)이라는 소설과 『시지프스의 신화』(1942년작)라는 수필집을 출간하였다. 그는 이 두 책으로 '삶의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새로운 근대적 도덕의 대변자가 되었다. 카뮈는 이것을 '우리 시대의 감수성'이라고 쓰고 있다.

478 부조리는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전망으로서,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과 그리고 합리성과 정의에 대한 우리의 요구 사이의 대립을 의미하며,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 자신과 무관심한 세계 사이의 대립을 뜻한다.

478 카뮈는 주요한 철학적 문제를 삶이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달리 말해 우리는 자살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첫번째 질문에 대해 열렬히 긍정적인 답을 하였으며, 두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도덕적으로 부정하는 답을 하였다.

479  『이방인』의 주인공은 이와는 대조적인 방식으로, 부조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부조리를 받아들인다.

483 시몬 드 보부아르(1908~86년)는 철학적인 소설가로서, 사르트르와 의견을 같이하여 자유 그리고 우리의 사람됨과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가는데 대한 우리의 책임을 강조했다.

483 보부아르가 철학과 사회사상에 기여한 가장 항구적인 공로는 대부분의 철학사를 통해서 결정적으로 무시되어온 한 주제, 즉 여자로 태어난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혁명적으로 논의한 것이다. 『제2의 성』(1949년)에서, 보부아르는 현대 철학에서 가장 열렬히 논의되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인 성의 의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철학에서 여성 문제는 아직은 논의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특히 영국으로 가보면 (매우 뛰어난 몇몇 여성 철학자들이 있었음에도) 더욱 그러하였다.

이상 언어에서 일상 언어로-케임브리지에서 옥스퍼드로
485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원자적 문장(또는 진술) 개념뿐만 아니라 원자력 사실 개념도 공격하였다. 세계는 단지 '사실의 총체'가 아니라, 우리의 이해관계, 행위들, 즉 우리의 '언어게임'에 의하여 규정된다.

485 플루타르코스의 한 표현을 빌려서, 비트겐슈타인은 거기에는 단지 '가족 유사성', 상사성, 그리고 비교를 위한 명백한 근거들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 게임(혹은 다른 어떤 것)으로 간주되느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오직 어떤 특정한 문맥 속에서만 결정될 수 있을 뿐이다.

486 비트겐슈타인은 데카르트 철학과 경험론에서 중요한 '정신 상태'라는 개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486 우리가 어떤 감각에 대해 '알릴' 때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분석이다.

486 이는 '사적 언어에 대한 논의'로 불리게 되었으며, 이를 좀더 신중히 설명해보면 다음의 내용으로 보인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것을 지칭하려면, 화자는 그 사물을 확인하기 위한 어떤 '판단 기준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결과 그 사물을 재차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기준은 차례로 더 큰 언어게임의 일부임에 틀림없으며,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기준들이 공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것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감각들은 본래 '사적'이다. 그것들은 오직 한 사람에 의해서만 지각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언어가 그런 감각들을 지칭할 방법이 없는데, 그렇게 지칭할 수 있는 어떠한 공적인 판단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489 우리는 아주 다른 종류의 연구 작업에 대한 희망찬 소개로서, 철학자, 언어학자, 컴퓨터 과학자, 신경 생리학자, 심리학자의 새로운 협력이 미래의 철학사에 새로운 하나의 장을 약속하리라는 사실만 간단히 언급해두도록 하자. 그런데 이것은 고맙게도 철학이 오늘날처럼 편협하거나 폐쇄적으로 전문화되지 않았던 예전의 역사 시기로 되돌아감을 말한다.

세계 철학-약속 혹은 허세 
520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완고함이 아니라 인간미와 개방성이다. 우리는 논쟁자가 아니라 더 나은 청취자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최근의 몇몇 페미니즘 이론가들의 심오한 통찰, 즉 서구가 '객관성'으로서 추구해온 것은 가치중립성이 비인격성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지적인 책임이라는 고상한 의미를 갖는다는 통찰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그것이야말로 철학이 항상 관심을 가져온 것이다. 그것은 '저 너머'에, 곧 우리 자신의 한계 저 너머에, 또한 세계와 타인들을 편향되게 볼 수밖에 없는 우리의 관점 저 너머에 도달하려는 노력이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은 '경이감'과 더불어 시작된다고 (그리고 경이감으로서 지속된다고) 주장한 이유이다. 그렇지 못한 그 어떤 것도 철학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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