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I,II | 03 신과 철학자들-종교적인 중세 철학


세상의 모든 철학 - 10점
로버트 솔로몬 외 지음, 박창호 옮김/이론과실천



강유원: 철학이야기I,II | 2008

일시: 철학이야기I: 2008년 04월 07일 ~ 07월 28일, 철학이야기II: 2008년 09월 22일 ~ 12월 29일

교재 : 로버트 솔로몬 외(지음), 《세상의 모든 철학》, 이론과실천


강의 내용을 필사하지는 않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책 본문의 내용을 정리하여 올린다.


08강 06/09 종교와 정신성 - 세 개의 철학적 주제/동양의 지혜 1-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09강 06/16 동양의 지혜 2 - 공자와 유교/동양의 지혜 3- 노자, 장자, 도교

10강 06/23 조로아스터교/아테네에서 예루살렘까지-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11강 06/30 그리스도교의 탄생 / 초기 그리스도교-사도 바울로/신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 / 성 아우구스티누스

12강 07/07 이슬람교의 발흥 / 신비주의 / 페르시아와 소요학파의 전통 / 디아스포라, 변증법, 유대교 내의 신비주의

13강 07/14 생각하는 신 - 안셀무스, 아벨라르두스, 아퀴나스, 스콜라 철학

14강 07/21 후기 스콜라 철학 - 둔스 스코투스와 오컴의 윌리엄/본질을 찾아서-연금술사들

15강 07/28 서양 밖에서의 철학적 종합





뤼디거 자프란스키, 《악 또는 자유의 드라마

윌리엄 시어도어 드 배리, 《다섯 단계의 대화로 본 동아시아 문명》



08강 06/09 종교와 정신성 - 세 개의 철학적 주제/동양의 지혜 1-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155 철학과 종교의 관계는 언제나 은밀하고도 미묘한 것이었다. 전적으로 좁은 의미에서 본다면 종교는 철학을 수천 년 앞설 것이다. 즉, 철학을 근본적으로 비판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것으로, 그리고 종교를 그저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믿음으로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실은 종교적 믿음이란 언제나 의심과 논쟁으로 둘러싸여져 있었고 또 그것들에 의해 침투되어 있었다. 그리고 철학도 거의 언제나 세계의 좀더 크고, 초자연적이거나 초인간적인 양상에 눈을 돌려왔다. 어느 시기에는 철학을 과학과 거의 동일시하는 경향이 철학과 종교를 첨예하게 대립하게 했다. 하지만 많은 위대한 과학자와 철학자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와 아이작 뉴턴은 이러한 대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55 철학과 종교의 차이는 종종 이성과 신앙의 구분으로 다루어 진다. 하지만 이 구분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곧 와해된다. 중세 시대 대부분에 걸치는 논리학의 역사는 신학적인 문제들에 의해 촉진되었고 또 종종 이런 문제들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이 문제들은 가장 정교하고 정밀한 추론 능력을 요구하였다. 많은 위대한 철학자들은 이성과 산앙을 화해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는 신앙이 이성적이거나 혹은 이성적일 수 있음을, 또는 어쨌든 이성과 신앙이 함께 작용하여 우리에게 좀더 확실한 세계의 모습을 제시해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156 철학과 종교의 이런 구분은, 이성과 신앙의 개념 구분과 더불어 다소 서구적인 개념이다. 인도의 사상은 신화적으로 표명된 것이든 극히 정교하게 논리적으로 표명된 것이든 그러한 구분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성과 신앙에 관한 이같이 좁은 개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예 를 들어, 나가르주나 같은) 인도의 신비주의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날카로운 논리학자들이었다. 유교나 도교 또한 세계의 위대한 종교로 꼽히지만, 서양의 종교에서 그러는 것처럼 신앙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는다.


종교와 정신성 - 세 개의 철학적 주제

157 첫번째 주제는 의심할 것 없이 우리가 다른 존재들과 이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선사시대의 원시적인 느낌이다. 이른바 '원시 종교들에서 이러한 존재들은 우리 주위에 있는, 주의 깊게 관찰되고 아마도 창조 설화 속에 들어 있는 친숙한 생명체들일 것이다.


159 두번째 주요한 주제는 서양적인 한 마디 말로 하면 정의(justice)이다. 이 것은 곧 세계가 우리와 우리의 노력에 영향을 받으며 또 우리는 세계로부터 우리가 끼친 영향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는다는 개념이다. 많은 문화 들에서 선조라는 존재는 정당한 교환, 빚과 복수에 관한 전통을 성립시키는 근거가 된다. 실제로 고대 노르웨이의 전설과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서는 신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연관성과 가능성이 유지되었다. 유대 -그리스도-이슬람교 전통에서 정의란 전능하고 인간을 사랑하며 때로 분노에 찬 신의 의해 보장된다, 힌두교에서는 카르마(karma)의 법칙에 의해 정의가 발생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카르마란 준 것만큼 받는다는 것이다. 즉 선행과 악행에 각각 같은 방법으로 보상이 뒤따르며, 또한 한 사람의 행위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초시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159 정의라는 주제는 또한 사회 질서에 대한 요구를 암시한다. 모든 종교는 그것이 아무리 속세를 초월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추종하는 이들의 삶에서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다른 쪽 측면을 갖는다. 이집트의 파라오들과 대부분의 왕족들은 신적인 통치귄을 주장했다. 히브리인들과 그들의 신 사이의 최초의 관계는 모세의 율법이 있으며, 이슬람교도들이 그들을 이어 받아 그랬듯이 이들은 일상적인 삶의 세부적인 사항을 신의 의지에 따라서 살았다.


161 마지막 세번째 주제는 실제로 모든 종교들이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서, 개인의 본질이 죽음 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다. 이것은 아마도 다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게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이런 가능성을 명백하게 포용하였다. 고대 그리스 종교에서는 이런 사상이 다소 애매한 상태로 남아 있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몇몇 고대의 히브리인들과 사실상 모든 그리스도교도들, 이슬람교도들, 그리고 힌두교도들은 육신의 생물학적 죽음 후에도 영혼의 형태로 살아남는다고 믿었다. 


161 고대 이집트인들에서부터 현대의 그리스도교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기대에 찬 추측이 엄청난 수의 기발한 이론들을 만들어내었다. 이집트인들은 모든 장신구, 도구, 장난감들과 함께 원래의 육체를 보존하여, 죽은 자가 다시 삶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였다.


161 그리스도교도들은 영생하는 존재의 본성에 대해 오랫동안 사색해왔으며, 육체의 궁극적인 부활에 관한 고의는 죽음 후에도 불멸하는 영혼이 어떤 육식 속에 적절히 살게 된다고 암시하고 있다.


162 힌두교도들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영혼이 다른 인간으로나 혹은 동물로나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래서 윤희는 영혼이나 정신의 본성에 대해 그리고 그 지속적인 존재 가능성에 관해 온갖 종류의 매혹적인 질문들을 야기하였다.



09강 06/16 동양의 지혜 2 - 공자와 유교/동양의 지혜 3- 노자, 장자, 도교

동양의 지혜 1-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 동양의 지혜 2 - 공자와 유교 / 동양의 지혜 3- 노자, 장자, 도교




10강 06/23 조로아스터교/아테네에서 예루살렘까지-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 아테네에서 예루살렘까지-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아테네에서 예루살렘까지-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189 서양세계의 세 주요 종교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및 이슬람교는 하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세 종교 모두 중동이라는 같은 지역에서 성장했으며, 세 종교 모두 예루살렘이라는 하나의 도시에 그 구심점을 두고 있다. 세 종교 모두 아브라함을 공통된 선조로 주장한다. 그리고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 종교 모두가 심오한 일신교로서 단 하나의 신만을 믿는다는 점이다.


189 철학적으로 이 세 종교는 많은 중요 관심사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 점은 단지 그들의 일신교적인 특성과 중첩되는 역사와 관련해서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아, 전능한 유일신 사상이 얼마나 혁명적이었으며 또 철학적으로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89 이집트의 한 파라오는 커다란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일신 사상을 옹호하였다. 아멘호테프 4세는 기원전 14세기에 태양신 아톤(Aton)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이름을 '아크나톤'으로 바꾸었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언제 항구적으로 유일신 개념을 채택하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후 한동안 다수의 경쟁적인 신들을 인정하는 기간이 지속되었다.


190 다양한 사회들이 교역과 전쟁을 통해서 그리고 다른 통로를 통해서 서로 섞이면서, 다양한 신들에 대한 인식, 확인, 개념화에서 상당한 수렴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종교적 다원론과 다신교가 상당한 다양성을 보장하였다. 그러나 일신교는 믿음과 사상의 수렴을 요구하였다. 


190 예를 들면 '신', '여호와', '야훼' 및 '알라'라는 이름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실제적인 차이도 없다고 인정되고 있다. 이들은 단 하나의 동일한 신에 대한 다른 이름들에 불과하다.


190 그렇지만 유대교, 그리스도교 및 이슬람교에 가장 긴요한 철학적 문제들은 이 세 종교 모두 유일하고도 사랑에 차 있는 동일한 창조주 신을 숭배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한다.


191 가장 피해갈 수 없는 문제들 중의 하나는 우리가 일찍이 다뤘던 문제이며 또 이 세 종교에 대한 철학적 저작들 속에 침투되어 있는 문제로서, 이것은 바로 우주를 창조하기에 충분히 강력하며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민족을 사랑하는 신이라는 개념에서 유래하였다. 이 것은 바로 악의 문제이며, 조로아스터교에서처럼 만일 선의를 지녔고 전능한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보살 피는 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불필요한 고통과 죽음이 존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192 악의 문제를 우회하는 한 가지 방법은 두 번째로 강력한 존재인 사탄, 즉 악마로 알려진 존재를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악의에 찬 존재가 신의 의지에 맞설 만큼 충분히 강하다면, 서양의 위대한 세 종교의 신들은 전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유일한 신도 아닐 것이다. 반대로 만일 사탄이 신의 의지에 맞설 만큼 강하지 못하다면, 그때는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 어떻게 악이 일어나도록 허용할 수 있을까?


193 아마도 훨씬 더 기본적인 질문은 신의 본성은 무엇일까? 이다. 많은 '원시' 종교들에는 아주 친숙하고 잘 알려져 있으며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있는 그 지역의 동물들, 즉 어떤 특권적인 동물들이 그 지역의 신이기도 했다.


193 유대교, 그리스도교 및 이슬람교는 신이 자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었다(계시하였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점에서 비슷한데, 그의 계시는 성스러운 경전(혹은 원전)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세 종교 모두 때로 '성문화된' 종교로 기술된다.


194 성서의 중요성이 세 종교 모두에 공동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누가 성서를 해석하는 권위를 지녔는가? 누구든지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해석자는 특별히 훈련을 받아야 할까? 해석자는 특별한 재능이나 감수성을 타고나야만 할까? 이런 문제들은 다음의 의문을 낳는다. 이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인간의 이성은 해석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성서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와 다르게 해석할 때, 우리는 성서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일까? 만일 어떤 개념 혹은 주장이 문자 그대로 이해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것들을 재해석하도록 허락되는 것일까? 성서를 읽기 위해서 신앙이나 어떤 특별한 태도 혹은 전망이 전제되어야만 할까? 진리를 이해하는 데서 이성과 계시 중에서 어느 것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할까? 계시라는 개념은 그보다 더 세속적이고 합리주의적인('이성적인') 사유의 전통과 양립될까? 예를 들면, 성서에 기술된 기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거나, 이 사람들이 왜 무슨 동기로 어느 특정한 시점에 이 명제를 믿게 되었는가에 대해 사회 역사학적으로 설명하는 일이 가능할까? 누가 성서를 썼느냐고 묻는 것이 의미 있는 (혹은 허용되는) 일일까? 성서를 이해하는 데서 성서를 써 내려간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까? 이로부터 좀더 일반적인 의문이 제기된 다. "그 철학을 이해하는 데 그 철학자를 알거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까(혹은 관련이 있을까)?"


196 그리스 철학이 이성과 합리성에 아주 높은 우위를 두는 데 반해, 우리가 논의하려고 하는 이 세 위대한 종교는 신앙도 똑같이 강조하는 경향을 가졌다. 또한 이 종교 전통들은 자신의 문제들을 비역사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을 지닌 그리스인들과는 대조적인 입장을 지녔다.


196 이들 모두는 그들 백성의 시간적인 역사와 고유한 예언자들에 관한 이야기들에 매우 커다란 중요성을 두고 있다. 이렇게 하여 히브리인들의 역사, 예수의 생애, 마호메트의 이야기는 그들 종교의 중심적인 관심사가 된다.



히브리인들과 유대교의 기원 

198 고대 히브리 철학은 크게 보아 유일신의 존재, 신의 총애를 받거나 '선택된' 민족의 지위 그리고 신의 율법의 중요성이라는 세 가지 핵심적인 개념에 의해 정의되었다. 


198 즉 유일신과 그의 율법은 고대 히브리 철학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서양의 역사와 철학의 전 과정을 위한 틀을 제공하고 있다. 


199 신과 그의 선택된 백성 사이의 관계는 히브리 성서의 중심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히브리 성서의 첫 경전 인 「창세기」는 신을 전능한 창조주로 묘사하고 있다.


201 히브리 성서는 신학에는 거의 의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신의 인격을 마치 소설에서처럼 명확히 묘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히브리인들의 신은 그 자신이 인정하듯이 질투심 많은 신이다. 그는 때로 분노하는 신이다. 가장 커다란 철학적 논제(숙명에 관한 그리스적인 관점을 적지 않게 생각나게 하는 논제이다)는 히브리의 전능하고 백성을 보호하는 신이 지극히 예측 불가능하고 성정이 조급하며 변덕스럽기까지 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쉽사리 분노해서, 히브리인들에게 닥친 재난들은 그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강력한 신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보호는 결코 전적으로 의지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신의 보호의 부재는 설명되어야 하는 문제였다.


201 유대교의 핵심과 그 지속성은 이런 커다란 공포에 의하여 이해될 수 있다. 유대인들은 율법이라는 커다란 멍에를 스스로 진다고 주장되어 왔다. 사실상 삶의 모든 측면에 관한 엄격한 유대의 율법을 그리스도교 측에서 비판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6 하지만 이 파괴불가능성은 계속해서 수많은 시험에 직면하였으며, 서기 70년에 로마에 항거하면서 사원은 다시 한 번 파괴되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 즉 지중해 및 다른 지역으로 유대인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라고 대부분 학자들은 생각한다. 



그리스의 유대인-알렉산드리아의 필론

207 성서 해석에서 이성이 하는 역할에 관해 특히 중요한 난처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208 기원전 마지막 세기의 한 그리스 철학자가 유대 종교를 접했을 때 이 철학자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이런 문제들이 떠올랐다. 필론(기원전 20년경 ~ 서기 40년)은 적절한 성서 해석 방법을 위해 그리스 사상을 도입한 최초의 유대 사상가들 중 하나였다. 그는 특히 신앙과 이성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208 필론의 철학적 해답은 유대 사상을 그리스적 용어로 체계화하고 이것을 이성적인 논증과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208 필론 이전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 역시 우화적 해석, 특히 「창세기」에 대한 우화적 해석의 전통을 발전시켰다.


208 그는 성서 이야기의 인물들을 추상적 개념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면, 아담은 이성을, 이브는 감각을, 뱀은 욕망을 각각 표상한다고 해석하였다. 필론은 최초의 죄(원죄)를 욕망의 힘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하였다. 우선 욕망이 감각을 유혹하지만, 일단 감각이 굴복당하면 이성도 추락할 수 있다.


209 필론은 나아가 그리스 철학자들도 성서를 통해 자신을 계시했던 신과 동일한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성적인 논증과 성서 모두에서 진리를 발견 할 수 있다.


209 그는 유대인을 유일하게 '선택된' 민족으로 구별하는 성서의 기적적인 양상들은 소극적으로 다루면서 대신에 신의 권능은 자연의 원리들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강조하였다.


209 스토아학파처럼 필론은 신이 온 세계에 스며들어 있어, 모든 인간의 내부에는 신적인 섬광이 내재한다고 보았다. 


209 로고스는 신의 이미지로 판명되고, 이어서 인간은 로고스의 이미지대로 만들어졌다. (그리스도교 의 「요한의 복음서」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면서 시작한다.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 이 계셨다.")


210 이렇게 필론은 이성을 찬양하면서도 그것이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신비적인 황홀경의 체험이 철학적 신학적 사변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필론은 여기에서도 플라톤을 자신의 동맹자로 보았다. 둘 다 정확한 합리성의 가치를 인정하였으나, 플라톤과 필론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로 보았던 것은 실재 세계에 대한 통찰이었다.


210 육체에 대한 멸시와 연관된 영혼의 내적 삶에 대한 필론의 주장은 그와 동시대인이던 초기 그리스도교도들과 연결된다.




11강 06/30 그리스도교의 탄생 / 초기 그리스도교-사도 바울로/신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 / 성 아우구스티누스

신플라톤주의

223 그는 플라톤의 선의 형상을 일종의 인격으로 해석하였는데, 이 것은 후에 선을 그리스도교적인 신으로 해석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플로티노스에 따르면, 선이란 최고의 정신으로서 이 세계를 창조한 분할할 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이다. 이 최고 정신은 지성으로서 스스로를 관조하며, 창조는 그의 사유로부터 넘쳐 흘러 생겨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창조란 신의 사유로부터 유출(流出)되는 것이 거나 유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플로티노스의 이론을 종종 유출설이라고 한다.


223 플라톤이 물질 세계를(동굴의 비유에서 동굴의 그림자에 비유하면서) 더 저급한 현실로 폄하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플로티노스는 물질 세계 자체가 정신적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완전히 영적인 정신에 대한 그의 사유를 나타낸다. 그렇지만 유출에는 하나의 위계 질서가 구성되어 있으며 존재의 한 위격은 다른 위격으로부터 생긴다고 플로티노스는 믿었다.


224 물질계와 신계(神界)를 구분한 플라톤은 그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의 주장은 일상적인 사물들이 형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유출설은 그 두 세계가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가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225 자라투스트라, 붓다, 그리고 욥 및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세계의 악 특히, 인간에 의해 고의적으로 저질러지는 악의 문제를 해명하고자 전념하였다. 


225 마니는 그리스도교의 요소와 조로아스터교의 요소를 결합하여 양쪽 사람들을 한꺼번에 매료시키고자 하였다.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첫 번째 교리는 이 세계는 똑같은 힘을 가진 두 가지 신적 원리, 즉 선과 악 사이의 거대한 투쟁의 현시라는 것이다. 이 들의 전쟁과정에서, 선한 빛(빛의 신)의 파편들이 악한 신(어둠의 신)의 파편들과 뒤섞이게 되었다.


225 물질세계로부터 선의 파편들을 해방시키는 일이 인간의 의무였다.


226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의 교리가 인간의 악에 대한 설명으로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악한 신의 파편들이 인간의 영혼에 들어와 인간의 영혼을 지배하기 때문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226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내 마니교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마니교의 주교에게 자신이 모색하던 종교적 질문들을 던졌으나 이 주교의 단순하기 그지없는 학식에 실망하였다.


227 『고백록』은 서양의 저작 가운데서 자아에 대한 가장 대담하고도 솔직한 하나의 탐구로 남아있다.


227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과 인간 영혼의 관계를 종교의 중심적인 관심사로 보았다. 영혼은 '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자기인식은 신을 알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더불어 철학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의 하나인 '내면으로의' 전환을 이루게 된다.


228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더불어 개인적이고도 내면적인 정신의 삶이 서양사상계 무대의 중앙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인간 실존의 궁극적 목표는 외경과 숭배 속에서 신을 관조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228 종교 개혁은 내면의 정신적 삶을 한층 더 강조하였으며, 근대 철학 역시 주관성과 경험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데카르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서 그 절정을 맞이하였다. 


228 아우구스티누스가 죽고 1500년 후에 자신들을 낭만주의 철학자로 불렀던 독일 철학자들은 그러한 내면적 경험을 '절대적인 것'으로 까지 끌어 올렸다.


228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 지식을 보는 관점에서는, 신은 창조주일 뿐만 아니라 우주의 능동적인 작용원인이기도 하다. 신은 인간의 영혼을 조명(illumination)하며, 신의 정신이 품은 관념들은 인간 의 영혼과 공유된다.


229 무엇보다도 먼저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악을 존재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노력하였다. 악이란 단지 선의 부재라는 플로티노스의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러므로 신은 악의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악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것의 결핍이다.


230 신은 세계를 창조하면서 인간과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완벽하게 만들어 내었다. 신은 그들에게 그들의 자연적이고도 (인간의 경우) 초자연적인 목표를 추구하게끔 천성을 부여하였다. 


230 그렇지만 우주에 관한 신의 계획 중 주요한 한 부분은 신이 인간들에게 자신의 본성을 은밀히 공유하게끔 허용하였다는 점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커다란 은총을 내린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김없이 신의 계획을 따르는 창조의 다른 양상들과는 달리,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게끔 허용되었다. 


230 인간이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한, 신이 인간들에게 죄를 짓게 했다고 말할 수 없다. 죄의 가능성은 자유의지의 필연적인 특징이다. 그러므로 신은 인간적으로 야기된 악을 허용하지만, 신 자신이 악의 원인은 아니다.



12강 07/07 이슬람교의 발흥 / 신비주의 / 페르시아와 소요학파의 전통 / 디아스포라, 변증법, 유대교 내의 신비주의

13강 07/14 생각하는 신 - 안셀무스, 아벨라르두스, 아퀴나스, 스콜라 철학

생각하는 신 - 안셀무스, 아벨라르두스, 아퀴나스, 스콜라 철학

258 스콜라 철학은 1050-1350년의 중세 서양의 그리스도교 사상을 가리키는 일반적 용어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당시 서구의 '학파들'에서 지배적이던 철학적 사변의 방법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근거로 하고 그 추론에 변증론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258 스콜라 철학자들은 공통적으로 가톨릭 신앙의 근본적인 전제들과 인간의 이성이 계시를 통해 배운 진리들을 확장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는 믿음을 수용한다.


28 스콜라 철학 초기의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안셀무스(1033~1109년)였다. = 보편개념실재론


259 안셀무스의 가장 유명한 논증은 (나중에 칸트가 그렇게 불렀던 것처럼) 신의 존재에 관한 존재론적 증명이다. 존재론적 증명은 어떤 것의 개념 자체가 그것의 존재를 수반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259 안셀무스에 따르면, 신은 '그보다 더 위대한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신'의 의미를 바로 이렇게 이해한다. 신은 정의(定義)상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존재이다. 그 결과 그렇게 이해된 신은 마땅히 존재해야만 한다. 신이 단지 하나의 가능성, 지칭 대상이 없는 영광스러운 관념에 불과하다면, 신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존재가 아니게 된다.


259 피에르 아벨라르두스(1079~1144년?)는 스콜라 철학의 시기에 가장 뛰어난 논리학자였다.


260 그러나 철학자로서 아벨라르두스는 주로 논리학에, 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가 언어철학이라고 부르는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오늘날의 많은 철학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대부분의 신학적 철학적 혼동은 언어에 관한 혼동, 즉 단어들의 의미들에 관한 혼동의 결과라고 그는 믿었다. 그의 철학적 평판은 이름에 관한 이론 혹은 유명론(唯名論)과 관련이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말은 단지 이름, 즉 기호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261 실재론자들로 불리는 논리학자들은 고유한 실제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유명론자들로 불리는 다른 사람들은 보편적 실재는 오직 우리 마음 속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 보편개념유명론(명칭론)


261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벨라르두스는 개별자들만이 존재한다는 혁신적인 견해를 취하였다. 그는 보편자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사물이 사물일 수 있도록 하는 본질을 갖고 있다는 실재론자들의 주장도 거부한다. 플라톤의 형상이나 혹은 고양이의 본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많은 고양이들이 존재할 뿐이다.


261 아벨라르두스는 더 나아가 하나의 사물이 그 사물일 수 있는 것은 그 사물의 모든 성질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 보편개념개체내재론


262 토마스 아퀴나스(1225~74년)는 스콜라 철학의 최고 인물이다. 


262 그는 이성과 철학적 탐구가 그리스도교 신앙과 양립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관심을 가져, 이성과 계시는 각각의 고유한 영역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성은 자연 세계에 대한 진리를 배우는 데 적합한 도구였다. 그러나 계시는 초자연적인 세계에 관여하며, 그리고 자연 세계가 실재의 전부는 아니었다. 자연 세계의 진정한 위치는 오직 초자연적인 것을 참조함으로써만 알려질 수 있을 뿐이다.


264 일반적으로, 그의 논증들은 우주론적 증명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이것은 실제 존재로부터 궁극적인 설명을 이끌어내는 추론이다. 예를 들어, 우연한 사물들의 운동은 그들을 움직인 다른 사물들에 인과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더불어, 그러한 역행을 무한히 계속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 토마스는 이런 깨달음이 우리의 정신으로 하여금 제1 원동자를 구하게 한다고 확신하였다. 토마스에 따르면, 정신이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이 최초의 원동자로 결론짓는 것은 바로 신이다.


14강 07/21 후기 스콜라 철학 - 둔스 스코투스와 오컴의 윌리엄/본질을 찾아서-연금술사들

후기 스콜라 철학 - 둔스 스코투스와 오컴의 윌리엄

266 14세기에는 상당히 많은 반론들이 일어났으며, 아마도 다음 세기에 확실히 따라오게 될 사회적 붕괴의 때 이른 조짐도 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후기 스콜라 철학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언어와 논리에 대한 강조일 것이다. 


266 이와 더불어 아퀴나스가 그렇게 확신에 차서 요약하였던 자연적 이성의 확실성에 대한 회의가 높아졌다.


266 그렇지만 후기 스콜라 철학에서 분명해진 것은 종교 사상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복잡해졌다는 점이었다. 


266 둔스 스코투스(1266?~1308년)와 오컴의 윌리엄(1285~1349?년)은 둘 다 브리튼의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도사들(이들은 각각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출신이다)로서, 도미니쿠스 수도회 수도사 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동의 하지 않았다.


267 스코투스에 따르면 하나의 진리, 즉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였다. 이성은, 최초의 원리에서 출발하여 그 결과까지 이르는 진리들의 위계 질서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스코투스는 신앙과 이성에 대한 끝없는 토론에서 '이성'에만 전적으로 의지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그의 복잡한 사유로부터 이끌어 낸 가장 극적인 결론은 신앙에 대한 새로운 강조의 필요성 이었다. 


267 그 결과 스코투스는 의지, 특히 신의 의지의 본성에 관한 논의에 열중했다.


268 스코투스는 지식보다는 오히려 신의 사랑을 강조하였다. 그는 지식의 일차적 중요성에 의문을 제기하였으며, 이 점에서 그가 스콜라 철학 내에서 커져가던 회의주의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268 오컴의 윌리엄은 유명론에 가까웠다. 그는 반실재론자로서, 그와 같은 보편자들의 실존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아벨라르두스처럼 말의 다수성으로부터 낯선 대상들의 다수성을 추론해내는 것을 거부하였다. "복수성이란 필연성 없이 가정될 수는 없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특히 개별자들에 공통 되지만 개별자들과 구별되는 보편자들의 존재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오직 개별자와 개별 사물만이 있을 뿐이다.


269 그는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인'을 포기하였다. 그는 지금도 '오컴의 면도날'로 알려진 절제(단순성)의 원리로 유명하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은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더 복잡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컴에게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15강 07/28 서양 밖에서의 철학적 종합

서양 밖에서의 철학적 종합

274 이 시기에 여러 전통들을 종합하고자 하는 갈망이 서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몇 세기에 걸쳐 일어난 중국의 신유학(성리학) 운동은 도교와 불교의 사상을 유교에 동화시키려고 하였다. 이 운 

동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은 주희(1130-1200년)로서 그는 토마스보다 단지 1세기전에 살았다. 주희는 사회적 조화에 관한 유교의 관심을 자연에 대한 도교의 관심 그리고 깨우침에 대한 불교의 관심과  

통합하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주희는 근본적으로 유교학자였다. 깨우침에 관한 그의 개념은 유교적인 현자의 그것으로서 유교적 현자의 정신성은 인간사회라는 문맥 내에서 계발되고 실행되는 것이지,  

도교도들이나 몇몇 불교도들의 방법처럼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주희는 정신과 자연을 융합시켜 자연을 공허한 것으로 만든 불교도들을 비판하였다.)


274 도교의 영향은 유기적인 자연이라는 주희의 관점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이 관점에 따르면, 모든 사물들은 연결되어 있다. 사물과 인간은 각각 고유한 본성을 갖고 있다. 이 것을 이라고 하며, 같은 종류의 모든 사물에 공통되는 것이다. 또한 사물과 인간의 특정한 물질적 생명력을 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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