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I,II | 01 세계질서에 대한 탐구-고대 철학
- 강의노트/라디오인문학外 2013
- 2016. 5. 2.
일시: 철학이야기I: 2008년 04월 07일 ~ 07월 28일, 철학이야기II: 2008년 09월 22일 ~ 12월 29일
교재 : 로버트 솔로몬 외(지음), 《세상의 모든 철학》, 이론과실천
철학이야기 I
01강 04/07 '축(軸)의 시기'와 철학의 기원 / 그리스의 '기적' / 철학, 신화, 종교, 그리고 과학
02강 04/14 의미와 창조-우주창조론과 철학의 기원/<<베다>>와 베단타-고대인도 철학
03강 04/21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 /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1/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2
04강 04/28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3 - 다원론자들/소피스트의 등장/소크라테스
05강 05/19 플라톤 - 형이상학자 혹은 숭고한 해학가?
06강 05/26 철학자 중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각주
07강 06/02 험난한 시대 - 스토아 철학, 회의주의, 에피쿠로스의 철학/고대 인도의 신비주의와 논리학 - 나가르주나와 니야야 철학
08강 06/09 종교와 정신성 - 세 개의 철학적 주제/동양의 지혜 1-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09강 06/16 동양의 지혜 2 - 공자와 유교/동양의 지혜 3- 노자, 장자, 도교
10강 06/23 조로아스터교/아테네에서 예루살렘까지-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11강 06/30 그리스도교의 탄생 / 초기 그리스도교-사도 바울로/신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 / 성 아우구스티누스
12강 07/07 이슬람교의 발흥 / 신비주의 / 페르시아와 소요학파의 전통 / 디아스포라, 변증법, 유대교 내의 신비주의
13강 07/14 생각하는 신 - 안셀무스, 아벨라르두스, 아퀴나스, 스콜라 철학
14강 07/21 후기 스콜라 철학 - 둔스 스코투스와 오컴의 윌리엄/본질을 찾아서-연금술사들
15강 07/28 서양 밖에서의 철학적 종합
철학이야기 II
16강 09/22 근대철학의 시작, 루터
17강 09/29 르네상스 그리고 베이컨, 홉스, 마키아벨리
18강 10/06 데카르트와 근대철학
19강 10/13 데카르트_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뉴턴
20강 10/20 스피노자, 뉴턴(1)
21강 10/27 스피노자, 뉴턴(2)
22강 11/03 로크, 흄, 경험론 그리고 아담 스미스
23강 11/10 칸트
24강 11/17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헤겔
25강 11/24 헤겔
26강 12/01 키에르케고르,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밀
27강 12/08 쇼펜하우어, 니체
28강 12/15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29강 12/22 실용주의, 실존주의
30강 12/29 세계 철학 - 카뮈, 사르트르, 보부아르의 실존주의,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문제
+ 강의 내용을 필사하지는 않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책 본문의 내용을 정리하여 올린다.
01강 04/07 '축(軸)의 시기'와 철학의 기원 / 그리스의 '기적' / 철학, 신화, 종교, 그리고 과학
02강 04/14 의미와 창조-우주창조론과 철학의 기원/<<베다>>와 베단타-고대인도 철학
03강 04/21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 /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1/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2
브라이언 사이키스 《이브의 일곱 딸들》
플라톤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플라톤 《티마이오스》
콜린 윌슨 《잔혹》
블레즈 파스칼 《팡세》
01강 04/07 '축(軸)의 시기'와 철학의 기원 / 그리스의 '기적' / 철학, 신화, 종교, 그리고 과학
'축(軸)의 시기'와 철학의 기원
23 기원전 6세기와 4세기 사이에, 지구상의 몇몇 광대한 지역에서 중요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중해의 북쪽, 남쪽 및 동쪽 지역에서, 또 중국과 인도에서,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지역에서,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상가들이 그들 사회가 지닌 기존의 믿음과 신화, 그리고 민간전승을 넘어 나아가는 도전을 시작하였다. 그들의 생각은 더욱 추상화되고 질문은 더욱 탐색적인 것이 되었다.
24 그들 중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소크라테스(기원전 470 ~ 399년)로서, 그는 그의 가르침과 정치적 신념 때문에 처형되었다.
24 대략 같은 시기에 고타마 싯다르타(기원전 564 ~ 483년)라는 이름의 불행한 한 젊은 귀족은, 도처에서 볼 수 있었던 엄청난 불행과 죽음의 고통에 맞서는 길을 찾아 인도 전역을 방황하고 있었다.
25 현세의 부귀와 쾌락을 멀리한 채, 그는 오랜 구도자 전통을 따랐다. 붓다는 힌두교의 경전인 『베다』와 『우파니샤드』(베단타)의 오랜 명제들로부터 우주와 우리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들이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발전시켰다.
25 한편, 중국에서는 공자(기원전 551 ~ 479년)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작은 나라의 정치가였던 그는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교육자들의 한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26 중국 문화의 기초는 가족이다. 그러나 가족과 오늘날 우리가 '전통적인 가족적 가치'라고 부르는 것이, 공자의 시대에는(즉, 기원전 500년경에는!) 정치권력의 부패로 인해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공자의 철학은 적절한 지배와 통치,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 같은 거의 전적으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조화로운 관계, 위정자의 지도력과 통솔력, 타인들과 함께 잘 지내고 또 그들을 격려해주는 것, 자기반성과 자기혁신, 개인적인 덕을 배양하고 악을 피하는 것 등을 말하였다.
26 기원전 6세기의 중국에 노자(老子)라고 불리는 또 한 사람의 전설적인 현자가 있었다(혹은 여러 명의 현자일 수도 있다). 그는 평화와 깨달음의 길(道)에 관해 매우 다른 견해를 발전시켰다.
27 중국 철학은 공자와 노자 사이에서 규정될 수 있다. 둘 다 조화야말로 사회와 개인 모두에게 이상적인 상태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인생에 대해 넓은 시야를 가질 것을 주장하였다. 인격이 삶의 목표지만, 그러나 개인은 고립된 개별 조건 속에서 정의(定義)될 수 없다. 유교철학자에게 개인적인 것은 곧 사회적인 것이다. 도교철학자에게 개인적인 것은 자연과의 일치이다. 자연과 사회가 갖는 상대적 가치들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다르기는 하지만, 중국의 사상가들은 이와 같은 공통적인 문제의 틀을 공유하고 있었다.
28 중동 지역의 페르시아(오늘날의 이란)로 다시 돌아오면, 발흐의 자라투스트라 혹은 조로아스터(기원전 628년경 ~ 551년경)라는 인물이 하나의 포괄적인 도덕적 일신론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29 자라투스트라에 따르면, 선과 악이 함께 우리 모두의 안에서 태어난다. 그는 오래 전 북아프리카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문제를 다루기 천 년 전에 무엇이 '악의 문제'로 불릴 수 있는가에 관해 고심하였다. 전능하신 신께서 어떻게 이 세상에 그렇게도 많은 고통과 악행을 허용할 수 있단 말인가? 자라투스트라의 해답은 선과 악이 모두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29 히브리 성서 혹은 『구약성서』(특히 「창세기」)는, 확실히 무엇보다도 하나의 종교적 저작이지만, 이것은 철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책들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또한 역사, 신화 그리고 누군가 말했듯이 과학이기도 하다.
30 이렇게 하여 넓은 의미의 철학이 태어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단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였다.
그리스의 ‘기적’
33 그리스인들은 지중해의 전 지역과 교역하면서 다른 문화들로부터 자유로이 많은 것들을 빌려왔다. 페니키아인들로부터는 알파벳, 몇몇 기술들, 그리고 대담하고 새로운 종교적 관념들을 습득하였다. 이집트로부터는 우리가 오늘날 그리스 건축으로 부르는 것을 규정짓는 관념들을 획득하였고, 기하학의 기초, 그리고 그 외의 많은 것들을 얻었다. 바빌론(현재의 이라크)을 통해서는 천문학, 수학, 기하학, 또한 더욱 많은 종교적 사상들에 접하였다. 그리스는 '기적'이 아니다(고대 인도도 기적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우연한 행운이며, 이웃나라들이나 선행자들로부터 얻은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많은 학습들의 산물이다.
33 그리스 철학은 신화, 신비주의, 수학,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만은 않다는 혼란스러운 인식이 서로 뒤섞이며 발생하였다.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자신들이 부럽지만 동시에 극히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의 문화는 풍요롭고 창조적이었지만, 질투에 찬 경쟁적인 적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34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세상에서는 자연스럽게 운명이란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트로이의 그리스인들과 이어서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운명을 신들의 변덕스러운 결정에 귀속시켰던 반면, 기원전 6세기의 철학자들은 사물들을 지배하는 질서와 존재를 떠받치고 있는 지속적이고 이해 가능한 기초를 찾았다. 종교가 수천 년 동안, 아마도 수만 년 동안 '저 너머 세계'로의 길을 열었지만, 저 너머의 질서를 요구했던 것은 철학이었다. 거기에는 신들의 변덕과 열정 대신 원리들이 있어야 했다. 운명의 명백한 불확실성 대신에, 로고스, 즉 이성 혹은 운명을 지배하는 논리가 있어야 했다.
36 초기의 히브리 철학자들은 확실히 그 후의 그리스도교 사상에 비해서 신학, 형이상학, 혹은 신앙의 인식론에 그리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쪽 끝에 있었던 공자처럼, 그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들과 정의(正義)및 좋은 사회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어떻게 전능하고 언제나 예견할 수는 없는 신을 기쁘게 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37 그리스와 가까이 있는 함무라비 왕 치하의 바빌로니아인들 역시 오래 전에 인류 최초의 성문법전과 사법제도를 개발하였다. 이미 잘 알려져 있던 히브리의 십계명은 좀더 큰 법규집의 일부분이었을 것이다.
37 이 고대 이야기의 정점이야 중심적인 영웅은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다. 어떤 의미로든지 그는 최초의 철학자는 아니었다.
38 플라톤은 훌륭한 학생으로 소크라테스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그는 또한 날카로운 경청자, 재치 있는 저널리스트, 능숙한 선전자, 완숙한 극작가, 그리고 타고나 천재적인 철학자였다.
39 그리고 플라톤이 없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를 갖지 못하였을 것인데, 우리는 그를 통해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에 관해 대부분 알게 되었다.
철학, 신화, 종교, 그리고 과학
40 철학 특히 고대 그리스의 초기 철학을 소개할 때, 철학은 그리스 대중문화의 민속종교였던 신화로부터 분리되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제는 표준적이다.
41 서구 철학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남용된 철학과 신화의 구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의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중요성과 독창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구분을 조장하였다. 물론 그리스의 세련된 철학은 대중적인(즉, '통속적'인) 신화로부터 나와서 그것을 대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비사유적인 신화와 사유적인 철학의 차이는 한 시대의 종말과 또 다른 시대의 시작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자는 신들을 강조하였으며 후자는 자연주의적인 설명을 옹호하였다. 신화는 신인동형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생명 없는 자연의 힘들에 인간적 속성을 투사 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고대의 이집트인들과 지중해 동쪽의 대부분 다른 문화들은 전형적으로 우주의 기원과 본성을 인간을 닮은 존재들의 행위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탈레스(기원전 625년? ~ 547년?) 및 소크라테스 이전의 다른 그리스 철학자들과 함께 진부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설명은 더욱 과학적이고 더욱 '자연주의적'이며 더욱 물질론적인 것이 되었다. 이 초기 그리스 사상가들은 사변적인 시와 배후에 있는 신들의 작용 대신 물질적 원인을 강조하고 냉정한 합리성을 찬양하였다.
43 초기 인도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복잡하다. 힌두교는 적어도 그리스 신화에 못지 않게 상상력이 풍부한 신들과 환상적인 피조물들로 가득 차 있다. 중심적인 신들의 삼위일체는 고전적인 힌두교 신화에서는 기본적인 현상이다. 이들은 곧 브라마(창조의 신), 비슈누(우주를 유지하는 신) 그리고 시바(파괴의 신)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러 신이 아닌 단 하나의 신이 갖는 여러 얼굴들이라고 한다.
45 신화에서 철학으로의 이행은 논리적 도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좀더 산문적인 언어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45 신화는 하나의 설화를(즉 하나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는데, 신화 속의 기발한 인물들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야기 자체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신화 속의 인물로 상정하게 될 때 이야기는 특히 중요해진다. 철학은 이야기보다는 체계적 이론에 더 많이 관여한다. 그러나 철학이 역사적 설화를 떠나게 되면, 즉 철학이 신화의 무대를 완전히 벗어나게 되면 그 결과 종종 영원한 진리로 여겨지는 잘못 구성된 개념들만이 문맥에서 벗어나 뎅그러니 남게 된다.
46 신화는 덕성의 교화가 목표이고 철학은 이해를 위한 것이지만, 또한 가장 훌륭한 신화나 철학은 모두 이 두 가지 목표를 다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확히 알아야 한다.
46 마찬가지로, 종교와 철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일부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둘을 주의깊게 분리시켰다. 하지만 과거 2천 년 동안 서양 철학은 유대-그리스도 종교 전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47 또한 우리는 과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주의깊게 고려해보아야 한다. 철학을 종교로부터 구분하려고 노력하면서, 철학이 종교가 아니라면 과학이어야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과학적이어야 한다고 성급하게 단정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삶에는 생각해보아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 한 사람의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정체성, 타인과의 관계, 우리의 정치적 책임과 관심, 미(美) 혹은 예술작품의 매혹적인 복잡성, 그리고 자연의 경이로움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과학이나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철학이 과학이어야 한다는 근대적인 생각은 사실상 몇 백 년 전에 제기된 것으로서, 주로 유럽 계몽주의 시대의 산물이었다.
48 그럼에도 철학과 과학 사이를 이어주는 유익하고도 본질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객관성과 합리성에 대한 공통적인 강조와 진리에 대한 공통된 추구 이상의 것이다.
49 철학은 신화와 종교에 연계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에 연계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곧 그들이 서로 똑같은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와 같이 신화, 종교 및 과학 등과 철학 사이의 조심스러운 구분을 염두에 두고서야 비로소 철학의 시초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서양에서 철학은 우주론, 혹은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창조론, 즉 세계가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관한 탐구 속에서 자라났다.
02강 04/14 의미와 창조-우주창조론과 철학의 기원/<<베다>>와 베단타-고대인도 철학
의미와 창조-우주창조론과 철학의 기원
49 이집트와 비옥한 초승달 지역(메소포타미아)에서처럼, 농업에 의존하던 그리스인들은 지리학과 기후학을 연구하고, 무엇이 대지의 여신 가이아로 하여금 자신의 풍부한 산물을 산출하도록 유혹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바다에서는 천문학이 항해에 효과적인 새로운 도구들을 제공하였다.
50 그와 같은 사색들로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우주 창조의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어떻게 이 세계가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을까? 이러한 문제들이 과학에서 중심적인 것들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모든 과학 혹은 원시 과학의 문제들 가운데 최초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최초의 우주 창조론자들은 이 세계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의미와 교화를 추구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만나는 모든 것에 대해 물었다. 이것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 이것의 목적은 무엇이며, 이것은 무엇의 징조인가? 그리스들인과 고대인들에게 우주의 기원 설명을 위한 탐구는 인간 행위의 설명을 위한 탐구와 동일한 형태를 취하였다. 그것은 곧 작용원인에 관한 질문이었다. 즉 누가 이것을 하였으며, 왜 하였을까? 하나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하나의 의도. 즉 이해될 필요가 있는 근본적인 계획이다.
50 죽음이라는 현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에게 신비스럽고 혼란스러운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선사시대의 네안데르탈인들은 죽은 사람을 묻으면서 그 초상화를 만들었다. 이것은 지중해의 철학자들이 영혼의 불멸에 관해 사색을 하기 시작한 때보다 십만 년 전의 일이었다. 이와 같이 경이로운 외경심에서 철학은 탄생하였다.
51 그리스의 우주 창조론에서 이 세계는 평평하고 둥근 원반이며, 우리가 하늘로 보는 둥근 주발이 그 위를 덮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 밑에 있는 세계는 나무 등걸을 닮은 하데스, 즉 '지하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지하 세계의 맨 아래쪽 구렁은 '타르타로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구 주위를 '거대한 바다'인 오케아노스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런 이미지는 아마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빌려온 것 같다.
51 그리스인들은 밤 혹은 어둠의 의미에 대해서도 사색하였다. 호메로스는 이를 무시무시한 인물로 의인화하였으며, 제우스 신조차 이를 두려워하였다.
51 시인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최초에는 카오스(혼돈)가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보통 그렇게 믿고 있듯이) '절대적인 혼돈'이 아니라 오히려 형태 없음 혹은 엄밀히 말하자면 공백, 하늘과 땅 사이의 공백 같은 것이다. 카오스와 더불어 가이아, 즉 대지가 생기고 에로스 혹은 사랑이 생겨났다. 카오스로부터 밤이 나오고 밤으로부터 에테르(불타고 있는 높은 대기층)와 낮이 나타났다. 대지로부터 하늘, 즉 우라노스가 생겼으며 대지와 하늘의 결합으로 바다인 오케아노스가 탄생하였다.
하늘과 대지의 관계는 분리와 결합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우주 창조론을 해독하는 열쇠이다. 헤시오도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위대한 우라노스는 밤과 함께 와서는 사랑을 갈구하면서 가이아 위로 자신의 몸을 펼쳐서 그녀를 뒤덮었다." 섹스와 신체 상해가 우주의 기원에 관한 고대의 생각들 속에 많이 나타난다. 그들의 결합 후에 하늘과 땅은 다시 분리된다. 그들의 결합에서 탄생한 모든 자식들은 그들 아버지의 미움을 산다. 그 결과 아버지는 자식들을 죽이려 한다. 그래서 아들 중의 하나 가 '뾰족한 날이 달린 낫'으로 아버지를 거세하였으며, 그 '절단된 몸'으로부터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
52 이집트 신화에서 세트 신은 그의 아버지인 오시리스를 절단해 죽인다. 과부가 된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남편의 절단된 신체들을 다시 붙여서 그의 생명을 부활시킨다. 힌두의 『리그 베다』에서는 창조의 신인 브라마가 두 번째 존재를 창조 하는데, 그 존재는 바로 그의 딸이다. '하늘'과 '땅'인 그들은 근친상간을 통해 다른 존재들을 낳는다.
53 고대의 어떤 우주창조론에서도 이 세계가 무로부터 생겼다는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세계는 어떤 원초적인 창조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53 이와 비슷하게 「창세기」에 따르면, 이 세계는 단 하나의 영원한 신의 작품이다. 창조는 신이 대낮을 밤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대지로부터 하늘을 분리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유일한 창조주라는 이론은 원초적인 섹스와 싸움의 필요 없이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커다란 이점을 가진다.
54 우주창조론 혹은 과거의 기원들에 관한 문제는 또한 미래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유대 그리스도 전통에서는 단지 세계의 기원에 관한 것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종말에 관한 관심과 논의가 많다. 그리스도교에서 세계의 종말은 역사에서 유일하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힌두의 우주창조론에서 세계는 종말로부터 다시 회귀하여 끊임없이 재창조된다. 신들도 시간이 다하면 죽는다. 하지만 그들도 다른 모든 것들처럼 다시 태어난다. 재탄생의 개별적 형태는 각각의 카르마(karma, 업)에 달려 있다. 카르마란 이전의 생에서 이루어진 성향들이다.
54 힌두 신화는 이런 식으로 개인의 (건강, 병, 빈부 같은) 사회적 상황을 행운의 결과로 보지 않고, 실재 자체의 본성에 의해 직접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개인이 다르마(dharma), 즉 각 개인의 특정한 사회적 역할이 요구하는 의무들을 완수하는 것이 우주의 질서를 유지 하는 데 절대로 필요한 일이다.
54 많은 사회는 시간을 가리키는 이름을 갖고 있거나, 혹은 적어도 시간을 관장하는 존재를 갖고 있다(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가 그 예이다). 그러나 이들 중 어떤 것도 시간 개념과 완전히 같은 것은 없다.
55 예를 들어, 고대 아메리카 사회에서 시간은 역사적 시간, 신적인 시간 그리고 신화적 시간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된 현상이었다.
55 유가(yuga, 힌두교 우주관에서 말하는 인류의 한 시기)라 불리는 시간의 한 주기는 432만 년으로, 이것의 1천배가 바로 절대적 실재인 브라마의 하루와 같다고 하였다. 브라마 신이 100년(약 300조 년)동안 생존한 후에 새로운 브라마(신)가 나타나서 새로운 시간의 주기가 시작된다.
55 영혼은 말할 필요도 없이, 철학사에서 언제나 거듭해서 논의되는 주제들 중의 하나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영혼은 별개의 것, 그리고 아주 비실제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실로 영혼은 정서적인 것으로, 단지 몸 속에 구현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삶의 원천으로서 간주되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영혼은 그림자, 비실체적인 것, 단지 하나의 '숨'과 같은 것이다. 특히,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이집트인들은 육체가 보존되었을 때만 사후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죽은 자의 육체를 보존하기 위해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였다.
55 많은 고대 문화들의 생각 속에서 영혼 개념은 다소 '엷다.' 이것은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이 육체의 부활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를 말해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대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관심을 개개인의 구체적 성격에 한정하고 추상적인 영혼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베다』와 베단타-고대 인도 철학
57 고대 인도 철학하면 특히 '힌두교'로 불리는 것에 대해 언급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좀더 정학하게 언급해 두어야 한다. 엄밀히 말해서, 힌두교라 불리는 단일한 철학적 체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며, 같은 이유로 단일한 종교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힌두'라는 말은 원래 아랍어로서 단순히 어떤 장소(인더스 강의 동쪽)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힌두교는 오히려 매우 다양한 신앙들을 무차별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이 다양한 신앙들 중에는, 신을 믿는 신앙과 그렇지 않은 신앙, 매우 정신적인 신앙과 그렇지 않은 신앙, 고대 인도의 신화에 뿌리 박은 신앙과 그렇지 않은 신앙 등 이 있다. 그리고 카스트 제도라는 하나의 특정한 사회 제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카스트 제도는 종종 우주론과 더불어 정당화(혹은 합리화)되곤 하였다.
03강 04/21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 /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1/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2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
62 최초의 서양 철학자는 누구일까? 질문의 범위를 고대 그리스의 바위 많은 해안가에 국한시킨다 하더라도 후보자가 아주 많기 때문에 그 답은 결코 분명하지 않다. 이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대답은 탈레스이다.
62 탈레스는 자연의 모든 것을 신과 여신 및 다른 정령들과 연관시켜 설명했던 신화 전통과 결별하고서, 우리가 자연주의적인 조망이라 부를 수 있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런 방법은 과학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며, 또 자연 현상을 다른 자연 현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또는 적어도 그가 보여주는 몇몇 특징에 의해서, 그는 최초의 철학자로 불릴만하다. ━ ① 자연주의적 조망
63 그러나 그에게 이런 칭호가 부여되는데 의문이 제기될 만한 이유는 충분하며, 이것은 또한 '철학'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철학이란 것이 세계의 질서를 이해하고 왜 사물들이 생기며 또 생겨야만 하는 것인지를 설명하려는 시도라면, 또한 철학이란 것이 예를 들어 인간이란 무엇이고 우리가 우주의 어디에 적합한 존재이며 우리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면, 철학은 분명히 탈레스의 시대보다 몇 세기나 앞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철학이 시작된 시기는 고대의 시인들인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 ② 인간학적 조망
63 그렇지만 철학이란 것이 자연과학의 모델을 통해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또한 신, 정령들에 의존하지 않고서 세계를 설명하려는 시도라면 이 경우에도 최초의 철학자는 탈레스가 아니다. ━ ③ 자연과학적인 설명모형
64 그러나 많은 현대의 철학자들은 철학에 대해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철학은 실재의 본성에 관한 논증과 깊은 사고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형이상학'이라 불리는 철학적 기획).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최초의 철학자라는 타이틀은 파르메니데스에게 주어질 것이다. ━ ④ 형이상학으로서의 철학
64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의 본성과,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견해들을 옹호하였다. 그는 과학적인 선배들과는 달리 사물의 특정한 구성에는 관심이 없었다. 해서 사물들이 궁극적으로는 물로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다른 종류의 원소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과 논증들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제기된 추상적인 것들이었다.
65 반면에 우리가 찾는 것이 심오한 모호함이라면, '최초의 철학자'라는 명칭은 파르메니데스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상가인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40~480 년)에게 주어진다.
66 그렇지만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라는 명칭을 대부분의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친숙한 인물에게 부여해야 한다면, 그는 바로 피타고라스(기원전 581 ~ 507년)일 것이다.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그리고 동시대의 탈레스와 그의 밀레투스 학파의 학생들보다 한 세대 이전의 사람이었다.
67 그의 기하학 연구는 세계와 우주에 대한 웅대한 견해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수학이 만물의 기본적인 질서를 규정한다고 하였다. 만물은 수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67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비율에 관한 이론으로 음악의 본성과 천체의 움직임 등을 설명하였다. 그는 별들이(신들에게만 들리는) 엄청난 소리를 만들어 낸다고 추측하고, 이 소리를 '천체의 음악'이라고 불렀다. 피타고라스가 발전시킨 사상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에 관한 복합적인 통찰, 사후의 삶, 그리고 올바르게 사는 법 등이다. ━ ⑤ 종합학으로서의 철학
69 간략히 말해서, 탈레스 뒤에 아낙시만드로스(기원전 610 ~ 547년)가 나타났고, 그 다음에는 아낙시메네스가 뒤따랐으며, 다시 그의 뒤에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그리고 모든 것을 혼란에 빠뜨린 그의 제자 제논이 나타났다. 그런 다음에 원자론자들인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및 소크라테스의 동시대인이었던 데모크리토스가 나타났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뒤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었다.
69 표준화된 철학사 기술에서 말하는 점진적 발전은 하나의 착각에 불과하다. 실제 철학은 꾸준한 발전을 보인 대신에 서로 모순되는 관점들, 흥미진진한 논쟁, 거친 추론, 그리고 심한 의견 차이 등으로 가득 찬 다채롭고 찢겨지고 서로 뒤엉킨 이미지의 태피스트리 같다. 헤겔은 지혜의 올빼미가 황혼 무렵에 조용히 난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공격적이고 겁이 없어 보이는 이 노래하는 새들이 새롭고도 낯선 새벽을 몰아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1- 세계의 질료
71 탈레스에 의해 창안되었다고 추정되는 과학적 사색은 지적 혹은 사회적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와 유사한 (과학적인) 사상들이 지중해 동쪽 지역에서 오랫동안 성행하고 있었다. 특히 철학적 사색은 테크네(techne, 기술)에 대한 당시 사회의 새로운 매혹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과학 기술을 밑받침해주는 새로운 기술들은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하였으며, 자연을 바라보는 새롭고 더욱 실제적인 방식을 자극하는데 영감을 불어넣었다.
71 아테네는 다시 폭군 정치로 돌아가고, 스파르타의 침입을 받아 유린당하며, 지방의 혁명으로 고통을 받는다. 민주주의가 다시 등장하지만, 우리가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 과정은 쉽거나 비폭력적이 지 않았다. 최초 철학자들의 질서와 분별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려면 그들을 당시의 폭력적인 사회 상황 속에 두고 보아야 한다.
71 우주를 물이라는 기본 원소로 설명하는 탈레스의 자연주의적인 방식이 우리에게는 특별히 전도유망하거나 심오해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은 이전의 설명방식과 달리 과학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방식으로, 곧 비(非)신인동형설적으로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탈레스의 설명은 여러 신들 및 그들의 공훈에 관한 일반적으로 다채롭지만 아주 특별한 이야기들과는 달리, 세계에 대한 통일되고 단일한 전망을 보여준다. 세계가 물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사상도 하나의 극적인 착상이었다.
72 서구 전통은 카리스마적인 인격과 화려한 기행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사상들 자체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서구 철학의 특징이다. 사상들이 그 철학자의 깊은 관심사에 위배된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 생명력을 유지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공자와 붓다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들의 철학과 거의 분리 될 수 없다. 유교(혹은 유가철학)와 불교(혹은 불가철학)가 어떤 의미로는 공자와 붓다에 관한 것인 데 반해, 그리스 철학은 탈레스와 그의 뒤를 잇는 철학자들 혹은 이들 중 가장 모범적인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라 하더라도 이들 철학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철학이란 사상에 관한 것이었으며, 몇 세기가 지난 후에도 사상들이 스스로 생명력을 지속하여 철학적 관심의 중심이 되고 있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73 이런 점은 고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철학은 언제나 의문에 열려 있다. 이것이 서구 철학이 신화 및 종교와 구분되는 가장 극적이고 중요한 사항들 중의 하나이다. 서구 철학은 내놓고 도전과 수정을 청한다. 이것은 변증법과 비(非) 독단주의라는 두 가지 중요한 태도를 예견한다. 특히 탈레스는 그보다 젊은 동시대인으로 밀레투스에 살았던 아낙시만드로스로부터 비난 받았다. 그는 세계가 물로 만들어졌다는 선배 철학자의 견해를 거부하고 다른 견해를 제안하였다.
74 아낙시만드로스는 전통적인 그리스의 우주론을 구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는 자연의 구성성분을 흙, 물, 불, 바람 등 네 가지 원소로 구분하고, 그들의 (뜨겁고 차가우며 축축하고 마른) 다양한 속성들이 자연(physis)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어떻게 서로 작용하고 대립하는가를 설명하였다. 이들 중 어느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요소냐고 묻는 탈레스의 물음에 몰린 아낙시만드로스는 '어떤 것도 아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우주의 궁극적인 원천과 만물의 기본적인 구성성분은 그 자체만으로는 우리에게 지각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아페이론(apeiron)이라고 불렀다. 이 그리스 단어는 '무한한' 혹은 '무제한'이라는 뜻을 가졌지만, 우리는 이를 기본적인 질료라 불러야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2-기초 질서
75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및 아낙시메네스는 우주에 대한 '자연주의적' 설명을 제공하였다. 즉, 이것은 세계의 현재 상태에 대한 설명에서 지각할 수 있는 요소를 (혹은 아낙시만드로스의 경우에는 가정된 요소를) 강조하는 설명이었다.
75 이와는 대조적으로 피타고라스는 우주의 기본 구성요소는 수와 비율로서, 이것은 결코 '물질'이 아니며 오히려 형태와 관계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철학적 관심을 끄는 질서 자체로, 물질적인 질서가 아니었다. (정령 숭배가 계속되었으나) 밀레투스 학파의 유물론자들은 확실히 전통적인 초자연적 설명을 피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자연적이라는 말은 단지 물질적인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물론 현대 화학의 생명이 없는 물질보다는 훨씬 덜 물질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것은 특히 피타고라스와 더불어 고대 (이어서 중세) 존재론의 중심문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것은 추상적인 질서나 사물의 형상이 어떻게 세상의 무수한 실제 사물들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가 하는 문제이며, 또 종종 '다자 속의 일자의 문제' (혹은 때로 '일자와 다자의 문제')로 간단히 요약되는 관심사이다.
76 피타고라스 정리의 증명은 특정한 곳에서만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유효하였다. 피타고라스 이래 수학의 우아함, 순수성 및 확실성은 철학자들의 이상이었다. 이 이상은 최고의 합리성에 대한 궁극적인 증명, 완전한 철학의 추상적 형태의 체계적인 표명 같은 것이었다.
77 헤라클레이토스에 따르면, 세계는 하나이다. 만물은 처음에는 대립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세계의 수많은 사물 뒤에는 하나의 단일한 통일체인 로고스가 있다. 로고스는 명백히 대립하는 모든 것들을 결합하며, 이 결합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또한 변화에 법칙을 제공한다.
78 파르메니데스의 선배들의 활동을 다시 살펴보면 몇몇 중심 주제들이 떠오른다. 첫째, ① 결코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우주에 대한 초자연적이고도 신화적인 설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시도이다. 둘째는, ② 한편으로는 실제 혹은 진리가 있고 또 다른 한편에는 보통 사람들이 보는 현상으로서의 세계가 있는데, 이 둘을 구분하는 분별력이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셋째는, ③ 자주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사상가들의 단일성(혹은 통일성)에 대한 강박적인 주장으로서, 이는 밀레투스 학파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일한 근본적인 요소일 수도 있고, 혹은 헤라클레이토스의 경우처럼 로고스라는 만물의 근본적인 통일체일 수도 있다.
79 넷째는, ④ 다시 헤라클레이토스와 피타고라스의 경우에, 신화와 물질론 모두를 비물질적 형태의 질서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스스로는 물질적 것과 비물질적인 것 사이의 이러한 차이를 알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다섯째는, ⑤ 수학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러한 우주적 질서와 로고스에 대한 끈질긴 요구이다. 하지만 운명에 대한 그리스들의 믿음 또한 분명하다. 여섯번째는, ⑥ 분명 사물들이 (예를 들어, 변형과 재배열에 의해) 변화될 수 있지만, 존재하는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무엇이든 영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로부터의 창조나 무로 돌리는 파괴를 단순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⑦ 이성과 합리성의 개념은 이런 역사를 통해서, 아마도 처음에는 사고와 대화의 강조로서, 그러다가 점점 진리를 이해하는 특별한 재능이나 매개체라는 개념으로서 발전하였다.
━ ①~⑥: 대상세계에 대한 이야기 → 존재론, ⑦: 진리의 세계를 알아내는 인간의 주관적 능력 → 인식론
━ 파르메니데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존재론과 인식론의 기초적인 범주들을 발전시켰다
79 파르메니데스가 동사 '존재하다'를 바탕으로 전개한 논증의 세부적 내용은 극히 복잡하고 모호하다. 그리고 그 의미는 아직까지 학자들 간의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다. 그의 전체 논증은 문법, 논리학, 형이상학 간의 엄청난 혼동에 근거하고 있다.
79 어떤 것이 생각될 수 있다면 그것은 마땅히 존재해야 하며, 무 (혹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과 아직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것, 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원한 것임에 틀림없으며, 그것은 무로부터 존재하게 될 수 있고 또 파괴될 수도 없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런 논증으로부터 변화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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