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3 청일·러일전쟁 1


청일.러일전쟁 - 10점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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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1904-1905)

– 한반도와 직접 관련되는 영역들이 많은 시기이다.

– 한국과 일본의 관계라는 주제를 파악할 때 관련되는 차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추상적 차원의 평화논리와 역사적 차원의 진실 규명, 법적 차원의 책임문제 등은 각각이 가진 차원에서 논의해야만 한다.

– 역사는 온전히 인간이 행한 일의 기록이며,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다. ‘신의 뜻’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다.

– 일본과 한국의 역사왜곡, ‘자학사관'(自虐史觀)에 관한 논의는 메이지 시대에 대한 찬양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 “일본의 군대는 청일전쟁부터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종료될 때까지 50년간 아시아를 계속해서 걸어다닌 셈이다. 청일전쟁은 그 시작을 알리는 전쟁이었다. 아시아를 걸어다니면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야마다 아키라,  《일본, 군비확장의 역사

요시다 유타카, 《일본의 군대

요시다 유타카, 《일본인의 전쟁관

가토 요코, 《근대 일본의 전쟁논리



나카츠카 아키라,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야마무로 신이치, 《러일전쟁의 세기

야마무로 신이치,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시바 료타로, 《료마가 간다



오늘은 세 번째 책인 하라다 게이이치가 쓴 《청일•러일전쟁》을 읽는다. 지난 주까지 《막말•유신》과 메이지 유신을 다룬 책인 《민권과 헌법》을 읽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본이 동아시아 세계에 이른바 '진출'하는, 자기네들 말로는 진출이고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침략인, 시기가 된다. 이 시기를 읽어나가기 시작하는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다룬 이 책은 사실 얇지만 곁들여서 해야 할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다. 한반도 역사와 직접 관련되는 부분도 많고 또 본격적으로 동아시아 전반하고도 관련이 되고 더 나아가서 시베리아 지역인 유라시아 북부지역도 그렇다. 최근에 일본고대사를 다룬 책을 읽었는데 유라시아 동북부라는 것을 가지고 설명을 하니까 그동안 우리가 놓쳤던 부분들, 대개 동아시아사 그러면 한국일 삼국사만 이야기하는데, 놓쳤던 부분들을 부분들을 간명하게라도 알 수 있었다. 


각설하고 청일•러일전쟁만을 가지고도 또 이것이 한반도사와 직접 관련되는 부분만 가지고도 일년 내내 이야기 할 것이 많다. 그런데 일본사를 읽으면서 몇 가지 얘기해두고자 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추상적인 차원에서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평화롭게 지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은 인류 보편의 원리이다. 그런데 그렇게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는 것과 역사의 특정한 국면에서 벌어진 사태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문제들을 뚜렷하게 규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관련이 있지만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일본에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지금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청일전쟁부터 시작된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 이것이 피해자도 아니고 당사자도 아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일본 사람들하고 만나자마자 웬수진 사람들처럼 싸울 필요는 없다.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추상적인 인류 보편의 원리의 차원에서 논의하는 문제이고, 역사적인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 차원을 혼돈하면 우리가 역사적으로 엄연히 벌어졌던 사건들을 뭉개고 지나갈 위험이 있다. 그것을 주의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전 우주의 차원에서 한반도와 일본의 근현대사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티끌보다도 못한 일이다. 50억 년 후면 태양이 지구 있는 데까지 팽창해서 지구가 멸망한다는 천문학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천문학적 숫자다 하고 하는데 헤아려지지도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 논의하는 것이 아니다. 


그 다음에 역사적인 사건을 신의 뜻에 묻는 것은 굉장히 오만한 것이다. 신이 있다-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논의는 신학의 문제이고 신이 있다고, 신이 있다고 철썩 같이 믿는다 해도 인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에서는 인간이 책임지고 규명해야 되는 부분들은 끝까지 진실을 추구하며 해명해야 한다. 그렇게 해명하고 나서 신이 있다면 신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사람의 할 일이다. 사람이 유한한 인간으로서 유한한 입을 가지고 기껏 살아봐야 70년 사는데 신의 뜻이니 말하는 것은 굉장한 신앙인인 것 같지만 신과 맞먹는 것이다. 그것은 굉장히 비신앙적인 태도이다. 신의 이름을 유한한 인간의 입에 올리는 것은 헛된 짓이고 비신앙의 절정이다. 본인은 그 어떤 형태의 신의 섭리라도 인간의 입에 올리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두 가지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청일전쟁은 1894-95년이고, 러일전쟁이 1904-05년이다. 1894년이면 올해가 2014년이니 청일전쟁 발발 120년이다. 동시에 한반도사와 직접 관련된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 청일전쟁은 갑오농민전쟁, 흔히 동학운동이라 부르는 것과 아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게 벌써 120년이다.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다. 게다가 일본이 청일전쟁부터 1944년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할 때까지 50년 동안 전쟁을 한다. 이것을 일본사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50년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굉장히 중요한 주제이다. 그래서 현재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관련 서적만 해도 굉장히 많다. 이를테면 50년 전쟁을 이끌어간 힘이 군대에 있기 때문에 야마다 아키라라는 학자가 쓴 《일본, 군비확장의 역사》도 있고 그 과정에서 일본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개발했는가를 다룬 가토 요코의 《근대 일본의 전쟁논리》도 있고, 그렇게 해서 형성된 일본인들의 전쟁관이 무엇인가 하는 요시다 유타카, 《일본인의 전쟁관》도 있다. 요시다 유타카는 일본 전쟁, 군대, 군인 연구가 많다. 《일본의 군대》라는 얇은 책도 있다. 그리고 아주 좁게는 청일전쟁만을 다룬 나카츠카 아키라,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라는 책이 있다. 지금 거론하는 책들을 일본근현대사를 다 읽은 다음에 한번쯤은 얘기하고 싶은데 일년이 걸려서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러일전쟁을 다룬 책으로는 야마무로 신이치의 《러일전쟁의 세기》가 있다. 그리고 러일전쟁 이후 아시아-태평양전쟁까지 일본을 밀고 간 힘이 만주점령이다. 야마무로 신이치의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이 있다. 이 학자는 2014년 초에 교토대학에서 있었던 2차세계대전 100주년 기념학술 모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본 바가 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일본군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군사학적 전략이 있다. '돌격정신'을 요시다 유타카는 ‘황국 독특의 군사학’이라고 표현하는데 러일전쟁 이후로 등장한 것이다. 그게 또 어떻게 등장하였는가도 논의해 볼만한 주제가 되겠다.


청일전쟁을 기점으로 해서 일본이 흔히 말하는 잘나가는 나라가 되었는데, 근현대역사에 대해서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는 일본사람들은 메이지시대 이후 전성기였다고 말한다. 전성기였기 때문에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진 것은 메이지시대에 이루어진 일본의 전성기를 잘 계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메이지시대와 이후를 나누고, 메이지시대를 황금시대라고 생각하고 그 이후는 쇠태의 시대라고 말하게 된다. 메이지시대를 일종의 전설시대로 만들어버린다. 그게 바로 일본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된 역사관의 출발점이다. 현대의 일본인들이 또는 몇몇의 한국인들이 일본근대현사와 맞물리는 한국사에 대해서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못 배웠기 때문. 못 배운 이유는 일단 메이지시대에 대한 찬양을 공유하고 있다. 유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나카츠카 아키라의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을 읽어봐도 뚜렷하게 알 수 있듯이 또 이후로 등장하는 《러일전쟁의 세기》,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일본인의 전쟁관》 이런 책을 읽어봐도 뚜렷하게 알 수 있듯이 이미 메이지시대, 청일전쟁 때부터 일본에서는 군국주의 사관이 시작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역사 위조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초기부터 역사 위조가 시작되었고 거짓에 근거한 신화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날조해서 유포하는 과정이 50년 동안 계속됨으로 해서 근대일본의 전쟁논리는 교묘하게 왜곡된 것이었고 그에 따라 최종적인 귀결이 아시아-태평양전쟁의 패전이다. 달리 말하면 일본의 50년전쟁, 1894년에서 1944년까지의 50년 전쟁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찬란했던 메이지유산을 이어받지 못한 시기라고 말하겠지만 진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처음부터 그릇된 노선을 따라갔다는 것이다. 진실을 알고 있지 못하니까 일본의 지배층들도 역사왜곡을 자기가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런 메이지시대의 찬양이 한국으로 들어와서 근현대사의 왜곡의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일본의 극우파나 한국의 극우파 모두 자기 스스로를 학대하는 자학사관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반드시 공공영역에서 이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자학사관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 메이지시대의 찬양이다. 이런 사관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역사가가 바로 시바 료타로인데 《료마가 간다》라는 책을 쓰기도 한 사람. 이게 일본에서는 시바 사관이라고 한다. 이런 점들이 청일전쟁에서 시작된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저자 하라다 게이이치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이라는 근대국가의 전쟁을 아시아와의 50년에 걸친 전쟁으로 보고 마지막에 대영미전도 1937년 이래의 중일전쟁을 해결하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영국과 미국을 아시아에서 배제하여 일본이 아시아 맹주가 된 세력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이것이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1874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청일전쟁 이전의 대만출병이다. 근대 이전의 최초의 해외파병으로 처음에는 이 파병의 성과를 유지 확대하려는 의지나 군사력이 없었는데 일본이 계속적인 전쟁의지를 갖게 된 것은 청일전쟁부터다. 대륙의 확고한 이권이나 식민지를 유지 확대되는 것이 아시아 태평양 전쟁까지 이어진 일본의 국가목표였다. 그런 까닭에 이때 이후의 일본 근대사를 이해하려면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활용함으로써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역사연구에 있어서 군대가 중심이라는 것이다.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은 아닌데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는 것. 


1894년부터 일본은 전쟁이라는 외부의 압력과 군대라는 내부의 압력을 통해서 국가와 사회를 변화시켜나가는 과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런데 전쟁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결국 일본의 침략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아시아에서 죽어갔고 동시에 일본사람들도 죽어갔다. 그래서 저자는 "일본의 군대는 청일전쟁부터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종료될 때까지 50년간 아시아를 계속해서 걸어다닌 셈이다. 청일전쟁은 그 시작을 알리는 전쟁이었다. 아시아를 걸어다니면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라고 말을 한다.


106 일본의 군대는 청일전쟁부터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종료될 때까지 50년간 아시아를 계속해서 걸어다닌 셈이다. 청일전쟁은 그 시작을 알리는 전쟁이었다. 아시아를 걸어다니면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역사를 묻는 의미가 여기에도 있다.


우리는 한국사람이니까 아주 당연하게도 청일전쟁을 다룬 이 책을 보면서 처음에는 일본놈들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본제국의 피해자가 1차적으로는 동아시아 민족이다. 그런데 그 넓은 아시아를 걸어 다닌 일본사람들도 굉장한 피해자이다. 전쟁에 나아가서 전투에서 죽는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병 걸려 죽고 부상당해서 죽는다. 서양에서도 나폴레옹 전쟁 때 외과의사들이 따라다니면서 부상자를 치료하고 그때 처음으로 구급차라는 것이 등장했다. 그러면서 부상병의 수를 줄이고 이른바 전쟁 효율이 올라갔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된다. 일본사람들도 50년 동안 얼마나 돌아다녔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아시아 민중이나 일본 민중이나 모두 짠하다. 그 입자에서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런데 분명하게 물어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을 혼동하면 안 된다. 그것을 혼동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른다. 차원을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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