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3 영락제 2


영락제 - 10점
단죠 히로시 지음, 한종수 옮김/아이필드


책읽기 20분 | 영락제 2 [ 원문보기]

중화中華의 의미
하夏, 화華, 제하諸夏, 화하華夏: 우월성을 드러내는 문화적 의미
중국中國, 중주中州, 중토中土: 지리적 관점에서 나온 말
이에 대비되는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또한 지리적 개념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개념

“이적이라도 예의를 알면 중화의 백성이 되고 중화의 백성조차도 예와 의를 실추시키면 이적으로 취급되었다.”

화이華夷
화이華夷 질서는 동아시아 국제 관계를 규정하는 개념
당나라 때 책봉冊封 체제로 구체화
“절대적인 무력과 경제력과 정치력으로 동아시아 세계에 군림”
참조: 박한제, <<대당제국과 그 유산>>

宋은 漢族이 건국했지만 군사력이 열세여서 화이질서를 내세우지 못했다.
元은 몽골족이 건국했고 막강한 군사력과 국제무역을 행했지만 화이질서를 표방하지 않았다.
원이 멸망하고 명이 건국되기 전 동아시아는 혼란한 상태였다.
참조: 윤성익, <<명대 왜구의 연구>>

한족이 세운 명에 들어서면서 다시 화이질서가 제창되었다.





지난 주에 이 책의 저자 서문, 저자 후기를 읽으면서 이 책을 왜 읽는지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이 어떤 내용인지를 살펴보았다. 이 책은 10개의 챕터로 되어 있는데 오늘은 우선 제1장 중화라는 이름의 세계를 읽겠다.


저자 서문에 따르면 "14, 15세기 무렵의 중국과 이에 휘말린 동아시아 각 나라들의 관계를 축으로, 영락제 시대를 재현하고 그에게 부여된 역할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점인데 그러면서 영락제가 가지고 있었던 국가이념인 중화라고 하는 것, 화이질서의 완성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인데 그러려면 도대체 중화라는 것이 무언인가에 대해서 알아봐야 한다.

13 14, 15세기 무렵의 중국과 이에 휘말린 동아시아 각 나라들의 관계를 축으로, 영락제 시대를 재현하고 그에게 부여된 역할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제1장은 중화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고 그리고 명나라가 건국되기 이전에 동아시아 질서가 어떠했는지를 주로 살펴보는 것이 제1장의 내용이다. 중화라는 말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저자가 지금 여기서 중화라는 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확립된 정설은 아니다. 사상사에서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논의가 많은데 일단 그런 것들을 검토하기 전에 먼저 하나 표준도서로서 읽어보자는 것. 중화라는 말은 후한에서 삼국시대 사이에 생겨났다. 다시 말해서 진나라, 한나라 때만해도 중화라는 말이 없었다. 물론 그전에도 '화'라는 말은 있었다. 주나라 이전에는 하나라가 있었는데 중국은 자기네 나라는 중국, 중주, 중토와 같은 말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지리적인 관점에서 나온 말이고, 화려할 화華를 사용하면서 자기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중과 화가 따로 있다가 이것이 합쳐지면서 중화라는 말로 결합이 되었다. 가운데 있는 땅인데 화려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중국문화의 우월성을 나타나는 호칭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중화라고 하는 것은 지리적 개념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개념이다 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15 중화라는 말이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후한에서 삼국시대 사이에 생겨난 조어인 듯하다. 그 이전인 서주(西周) 대에는 하夏, 화華, 제하諸夏, 화하華夏. 중국中國, 중주中州, 중토中土 같은 호칭들을 사용했다.


16 화華는 '화려하다'는 뜻에서 문화가 우월하다는 뜻으로 바뀌었다. 결국 제하諸夏, 화하華夏는 중국문화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호칭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중국, 중주, 중토는 자국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지리적 관점에서 나온 호칭이다.


17 이렇듯 다른 계통의 관념이었던 '화(하)'와 '중'이 그대로 결합되어 '중화'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지리적으로 중국 땅과 멀어지면 야만족이겠다. 또 문화적으로는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야만족이다. 설사 멀리 있는 나라라고 하더라도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으면 야만족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중화라는 말 자체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 지리적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꼭 유념해야 한다. 그래서 중화를 둘러싼 사방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북적北狄, 남만南蠻이라고 해서 이른바 '이적夷狄'이라는 이름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그들과 구별해 중화세계의 우월성을 지켜 나갔다고 말했는데 '중화'와 '이적'을 묶으면 '화이華夷'가 된다.

17 그들은 중화를 둘러싼 사방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북적北狄, 남만南蠻이라고 해서 이른바 '이적夷狄'이라는 이름으로 배치하고, 스스로를 그들과 구별해 중화세계의 우월성을 지켜 나갔다.


18 중화는 이적이 있어야 비로소 중심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 중화사상을 다른 이름인 '화이사상華夷思想'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런 사상은 중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 이것을 하나의 사상으로 끌어올렸다는 것이고, 이것을 만들어내는데 큰 영향을 끼친 학파는 유가이다. 중사상, 화사상을 묶어서 중화사상, 그리고 주변을 싸고 있는 이적이 있고, 이것을 묶어서 화이사상으로 전개되어갔다는 것이 한 묶음이다.

18 중국이 그들과 다른 점은, 단순히 중화와 이적 간의 차별에 머물지 않고 중국을 위에 두면서 양자가 공존하는 세계를 하나의 사상으로까지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그러 사상을 형성하는 데 큰 공헌한 것은 다름 아닌 차별을 조장하는 데 앞장선 유가 사상이다.


구체적으로 중국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천명사상이다. 하늘의 명을 받은 천자가 다스린다는 것. 천자가 중화를 다스린다. 천자의 덕이 넘쳐 흘러서 이적의 지역까지 넘쳐흐르면 중화와 이적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맺어진다. 천명사상은 수직적인 것으로 통치자를 정당화하는 개념이다. 중국 내부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중화사상과 필연적 관계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한다.

19 중국 사상을 근간을 이루는 '천명사상天命思想'이 중화와 이적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냈다.


19 천자의 덕은 이미 그가 통치하는 중화의 땅을 넘어 당연히 사방의 이적에게도 파급될 것이다. 천자의 덕을 입은 이적은 천자의 덕을 사모해 중화에 조공을 바치게 되고, 이로써 중화와 이적 간에 새로운 관계가 맺어진다.


그러면 중화라는 것과 이적이라는 것이 묶여서 화이질서가 되는데 이것을 도해로서 그려놓은 것이 오복도이다. 전복, 후복, 수복, 요복, 황복 이런 식으로 나눈다. 그 너머가 바다가 있고 사막이 있다. 천리에 해당하는 사방은 천자가 직할하는 기내이다. 재미있는 것은 《순자》 〈정론편〉을 보면 지역이 가깝고 먼 것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화라고 하는 것도 지리적인 개념에서 동시에 문화적인 개념이듯이 천자에게 행하는 예법의 관계에 따라서 지역도 나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논리에 입각해보면 멀리있다 해서 야만족은 아니고 또 가까이 산다 해서 반드시 중화는 아니다. "천자의 덕에 감화되고 중화의 예와 도를 받아들이면 이적도 중화의 민과 동일하게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령 중화에 살고 있다 해도 천자의 예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적이 되는 것이다. "이적이라도 예와 의를 알면 중화의 백성이 되고 중화의 백성조차도 예와 의를 실추시키면 이적으로 취득되었다. 중화사상에는 차별의 논리와 포용의 논리가 늘 동전의 양면처럼 세워져 있었다." 이것이 중요한 포인트.

20 오복도는 중화 천자의 위엄이 미치는 지역을 천자를 중심으로 5단계의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묘사한 것이다. 천자에게 복속하는 정도에 따라 5단계로 나누어서 나타낸 개념도라고 보아도 좋다.


21 천하의 중앙에 위치한 전복은 천자가 직할하는 기내이고 그곳 주민들은 경작에 종사하면서 천자가 쓸 물품을 마련한다.


22 천자의 덕에 감화되고 중화의 예와 도를 받아들이면 이적도 중화의 민과 동일하게 간주했기 때문이다.


23 이적이라도 예와 의를 알면 중화의 백성이 되고 중화의 백성조차도 예와 의를 실추시키면 이적으로 취득되었다. 중화사상에는 차별의 논리와 포용의 논리가 늘 동전의 양면처럼 세워져 있었다.


지금까지는 중화와 이적의 개념이 어떤 관계가 있고, 어떤 연관성이 성립되는가를 말했고, 제1장의 두 번째 섹션을 보면 중화세계의 변천이 있다. 후한부터 당나라 무렵에 이 개념이 성립되었다고 말했는데 사실상 한나라 때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가 한나라 때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당나라는 물론 한족이 세운 나라는 아니지만 당나라가 화이질서를 본격적으로 세운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어떤 민족이 중국을 지배하느냐가 중요한가가 아니라 사실상 하나의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규정하는 개념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 당나라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얘기는 박한제 교수가 쓴 《대당제국과 그 유산》에서 나온다. 국제정치의 측면에서는 화이보다는 책봉으로 구체화 된다. 그래서 당나라 때 책봉체제로 겉모습을 띠면서 화이질서가 완성된 형태로 기능했다. 책에 따르면 "세계제국이라 일컫는 당나라는 절대적인 무력과 경제력과 정치력으로 동아시아세계에 군림했다." 무력, 경제력, 정치력에 다가 문화적 이데올로기 힘을 덧붙이면 지난번 읽었던 《제국》에서 제시한 4개의 요소가 된다.

25 화이질서는 당나라 때 더욱 완성된 형태로 기능했다. 세계제국이라 일컫는 당나라는 절대적인 무력과 경제력과 정치력으로 동아시아세계에 군림했다.


사실 화이질서라고 하는 것은 문화적인 측면도 있지만 문화적인 것, 지리적인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군사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것만이 아니라 정치력, 경제력도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당나라가 세계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정치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군사력이 밑바탕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라고 부르는 지역이 당나라에 전성기에 이르렀는데 발레리 한센이 쓴 《실크로드 ━ 7개의 도시》을 읽어보면 그 도시들은 당나라의 군대가 주둔하면서 이른바 군사경제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실크로드가 유지되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다.


즉 당나라가 세계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고 또 실크로드가 발전할 수 있었고, 당왕조가 가지고 있었던 군사력이 사실은 화이질서의 절정기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점에서 함축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명나라가 화이질서의 완성이었다 하는 것은 영락제 시대의 군사력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즉 이 책에 따르면 "중화사상의 화이질서는 국제정치에서 중국의 왕조들과 주변의 국가-민족들 간의 '책봉'으로 구체화되었다." 당나라와 명나라의 군사력이 다른 지역을 지배할 수 있을만큼 우월했다는 말이다.

24 중화사상의 화이질서는 국제정치에서 중국의 왕조들과 주변의 국가-민족들 간의 '책봉'으로 구체화되었다.


당나라가 멸망하면서 중국은 분열시대로 접어들었는데 그러면서 송나라가 건국되었다.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군사적으로 요약한 나라였다. 요와 금나라에 비해 군사력이 약세여서, 요나라와 송나라는 형제관계인데, 금나라와 남송은 군신관계였다. 금나라가 군이었다. 그러니까 송나라 때는 당연히 화이질서라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보면 국제질서가 화이질서로 규정될 때는 반드시 군사력이 뒷받침되던 때였다 라는 말이 아주 타당한 말이 된다. 송나라 다음에 등장한 중국의 세력은 원나라이다.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전역을 통일했는데 그렇게 됨으로써 "이로써 중화와 이적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적이 중화를 지배하는, 고금에 전례가 없는 경천동지할 대사건이었다."라고 했는데 사실 이것은 당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당나라도 이적이다 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29 양국 간의 관계를 보면, 요나라와 송나라와는 형제관계인데 비해 금나라와 남송은 군신관계로 규정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송나라는 국제질서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만한 정치력도 군사력도 지니고 있지 못했다.


30 13세기 초, 새롭게 몽골족이 대두해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전역을 통일했다. 이로써 중화와 이적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적이 중화를 지배하는, 고금에 전례가 없는 경천동지할 대사건이었다.


원나라는 '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지는 않았다. 부수적으로 알아둘 만한 것은 송나라까지는 중국의 나라이름이 건국자가 살던 지역을 따서 지었는데 원나라부터는 하늘을 가리키는 말인 원, 명, 청, 추상적인 명칭을 따다가 나라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나라가 쇠퇴하면서 이 지역은 다시금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다시 정리를 해보면 중화라고 하는 것이 본격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은 한족의 나라가 아니라 당나라였고, 송나라에서는 그런 이념 자체가 등장하지 않았고 원나라는 무관심했고, 그리고 원나라가 망한 다음에 명나라가 등장하면서 하나의 본격적으로 중화, 이적, 화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되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명나라가 등장하기 전에 동아시아 지역의 국제질서가 혼란스러우면서 해적이 이 시기에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것에 관해서는 《명대 왜구의 연구》라는 책이 있다. 왜구가 일본 쪽바리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왜국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번쯤은 읽어봐도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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