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리즈: 도시, 문명의 꽃


도시, 문명의 꽃 - 10점
앤드류 리즈 지음, 허지은 옮김/다른세상


한국어판을 출간하며

1장 최초의 도시와 문명의 탄생

2장 위대한 도시로 가는 길

3장 새로이 피고 지는 도시들

4장 정복과 혁명의 시대

5장 대도시의 빛과 어둠

6장 도시를 휩쓴 제국주의 열풍

7장 파괴와 재건의 시대

8장 희망과 환멸이 공존하는 곳

감사의 말

연표

참고 도서 및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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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을 출간하며

8 기원전 3500년경에 일어난 신석기 혁명은 농경생활을 가능하게 했고, 그 결과 우르크나 서남아시아의 다른 도시들은 높은 인구밀도와 계급 형성, 문자 기록, 방어 시설과 같은 도시의 핵심적인 특징을 드러내고 있었다.


8 그로부터 몇 세기 후, 남아시아의 인더스 강 유역에 하라파나 모헨조다로와 같은 도시들이 나타났다.


8 오늘날 유럽이라고 알려진 지역은 300년경에 시작된 로마 제국의 몰락과 도시 자체의 쇠락 이후 도시가 침체되거나 쇠퇴하는 시기에 돌입했다.


9 18세기 후반, 파리에서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고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도시 역사의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10 1914년 이후, 도시들은 여러 가지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10 1950년경부터 도시에 살던 주민들이 교외 지역으로 빠져나가면서 몇몇 도시의 규모가 작아졌고, 그로 인해 도시는 경제적·재정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10 한편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어 2011년에 이르면 이곳에 26개의 '메가시티'가 존재하게 되었다.


11 나는 이 책에서 도시 발전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펼치는 것 외에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학자들과 논객들이 각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가끔은 충돌하기도 하는 다양한 의견들을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11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 책이 그리 두껍지는 않으나 '세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1장 최초의 도시와 문명의 탄생

16 '문명civilization'이라는 단어는 '도시국가'라는 뜻의 라틴어 'civitas'에서 비롯되었다.


19 우리는 구석기 시대 뒤에 찾아온 신석기 시대에서 도시가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 조건을 찾을 수 있다.


20 초기 도시들은 식량의 원거리 교역이 이루어지기 전에 생겨났기 때문에 식량이 충분히 생산되어 남아도는 지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21 물의 공급량을 관리하고 잉여 농작물을 거둬들이기 위해서는 사회·정치적 조직이 필요했는데, 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도시가 생성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22 기원전 6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도시는 바빌론이었다.


23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도시들은 다른 지역의 도시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건축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방어용 해자 뒤에 세워진 대부분의 도시 성벽이었다.


24 신전과 더불어 도시 경관에서 두드러지는 건축물이었던 왕궁은 흔히 반신으로 여겨지던 왕의 권위를 드러내 보였다.


27 이집트에서는 남쪽의 아스완 폭포에서부터 북쪽의 비옥한 삼각주 지역에 이르기까지 약 2,500킬로미터에 걸친 나일 강 유역에 여러 왕국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 강의 수혜를 입어 풍부한 농산물을 생산하며 번성했다.


27 수메르 문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집트의 도시들이 탄생하는 데 기여했다.


27 초기 메소포타미아 도시들과 달리 이집트의 도시들은 도시국가가 아니었다. 대신 이집트의 도시들은 자신들이 속한 영토 국가의 수도 역할을 했다.


29 기원전 3000년대에,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으나 지금의 레바논과 시리아 지역의 지중해 동쪽 해안가에서도 도시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곳은 페니키아라고 알려져 있었다. 페니키아의 문명의 도시로는 비블로스가 대표적인데, 이곳 주민들은 타 지역을 정복하기 보다는 전적으로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30 페니키아의 도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티레로, 구약성서의 선지자 에제키엘(에스겔)도 이 도시를 찬양한 바 있다.


30 페니키아인들은 표음식 알파벳 체계를 발달시키기도 했는데, 덕분에 기록이 용이해졌다. 문서 기록은 도시 생활의 중요한 기반으로서 그 비중이 점차 확대되었다.


그리고 다시 서남아시아를 지나서 남아시아로 오면 인더스 강 계곡에 있던 하라파와 모헨조다로가 있다. 중국은 상왕조와 주왕조 시대의 은허가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중부와 북부에서도 도시들이 건설되었다.


31 농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장대한 인더스 강의 수혜를 입은 이 지역주민들은 기원전 약 25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인더스 계곡에 존재했던 몇몇 도시에 모여 살았다. 이 지역의 주요도시로는 하라파와 모헨조다로가 있었으며, 이들 도시는 수천 킬로미터 너머로까지 뻗어나간 하라파 제국의 수도 역할을 했다.


2장 위대한 도시로 가는 길

37 기원전 1000년 후반기와 그 후의 몇 세기까지는 지중해 연안의 도시 문화가 활짝 꽃피던 시기였다.


37 도시국가 아테네와 제국의 도시 로마는 도시 네트워크를 만든 후 그 안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한편, 다른 여러 지역에 있는 도시들을 지배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 두 곳은 고대 지중해 지역의 선두격인 중심 도시로 떠올랐다.


40 아테네의 이미지가 좋아진 데는 민주정치로 쌓은 명성이나 강한 군사력 외에도 건축을 비롯한 여러 문화적인 업적이 큰 몫을 했다.


44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을 딴 많은 도시들 중 하나로 기원전 332년 이집트 북부에 항구 도시로 계획되어 건립되었다.


46 알렉산드리아는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단지 건축물 때문이 아니라 그 도시가 보유하고 있는 여러가지 중요한 지적 자산들 때문에 더욱 뛰어난 도시로 평가받았다.


57 기원전 500년경 중국인들은 주 왕조 후기에 인구가 밀집한 도시 네트워크를 건설하여 상업과 행정중심지로 활용했다.


57 한 왕조의 도시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 장안과 뤄양은 각각 한나라의 수도 역할을 담당했고, 궁전·영모·종교 건축물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3장 새로이 피고 지는 도시들

62 안전을 위해 도시를 빠져나간 로마인들은 시골의 작은 마을이나 성, 수도원 등을 거처로 삼았다. 기독교의 세력이 커지면서 사후세계가 강조되자 시민들은 도시의 세속적인 활동에 참여하기를 꺼려 했다.


62 주교의 관할 구역이 도시의 중심부 역할을 하면서, 기독교 교회가 로마인들이 건설한 격자 형태의 도시를 넘겨받았다고 볼 수 있다.


63 2세기만 해도 약 100만 명에 달하던 로마의 인구는 700년경에는 5만명으로, 11세기가 시작할 무렵에는 3만 5,000명으로까지 줄어들었다.


63 도시의 활력은 유럽의 동쪽으로 넘어갔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비잔티움이라는 그리스 마을을 새로운 수도로 정했다.


64 콘스탄티노플이 이토록 번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제국의 수도라는 정치적 입지와 더불어 국제교역으로 구축한 부가 크게 작용했다.


67 11세기 중엽, 이슬람 학자이자 지도자인 알-카티브 알-바그다디는 바그다드의 역사를 이렇게 기록했다. 이 세상에 규모나 화려함에 있어서, 혹은 얼마나 많은 학자나 위대한 인물이 모여 있는가라는 점에 비추어 볼때, 바그다드와 견줄 만한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그다드가 다른 도시들보다 뛰어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시내의 각 구역이 널찍널찍하고, 도시의 규모가 크고, 집들과 왕궁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에 거주하는 훌륭한 저명인사들과 아량 있는 서민들의 덕분이기도 하다.


68 작가가 보기에 수많은 '저명인사'들과 훌륭한 개인주택 및 공공건물들은 몇 백 년 전에 이미 파급되기 시작한 이 도시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69 바그다드는 페르시아인·투르크인·아랍인·이슬람교도·기독교도·유대교도·조로아스터교도가 혼재하는 가운데 통치자들의 야심까지 더해져서 범세계적 도시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과학과 교육의 활기 넘치는 중심지가 되었는데, 통치자들은 바그다드를 제국의 정치적 수도이자 학문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굳혔다.


70 제국의 수도 중에서 가장 비범한 도시는 장안으로, 이 도시는 바그다드의 번영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와 거의 비슷한 때에 중국의 지리적 중심지라는 위치에 올랐다.


82 15세기 후반 이후, 지롤라모 디 사보나롤라라는 과격 신자가 득세하고,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침략하면서, 또 예술가들이 점점 로마로 빠져나가면서 예술과 인문학의 패권을 잡았던 피렌체의 위대한 시대는 막을 내렸다. 1600년 작곡가 자코포 페리가 현존하는 오페라 형식으로 최초의 작품을 쓰는 등, 피렌체에는 여전히 문화적 활기가 살아있었지만 전처럼 월등하게 높은 위치를 고수하지는 못했다.


83 서기 300년에서 1500년까지, 로마 제국의 쇠락과 몰락으로 서구의 많은 도시들이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도시는 여전히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며 번성해나갔다.


4장 정복과 혁명의 시대

85 근세시대에 접어들자, 유럽의 수도들은 중앙집권화 정책의 수혜를 입어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85 이 과정에서 국가의 형태가 확고해지고, 경제적으로도 발전한 덕분에 도시가 더욱 더 성장할 수 있었다.


86 규모 면에서나 영향력 면에서나 파리와 런던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87 7세기부터 8세기 초반까지 파리에는 엄청난 건설 붐이 일어났다.


90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런던과 파리에서는 공론장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90 이 시기에 파리는 유럽 지성의 수도라는 지위를 얻었다.


91 런던의 공론장에는 파리에 비해 널리 확산된 커피하우스 문화가 있었고, 그곳에서 접할 수 있는 출판물도 상당히 많았다.


91 계몽주의는 영국에서도 뿌리를 내렸는데 특히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고향인 에든버러가 주 무대가 되었다.


94 유럽인들은 이미 근세 초기에 자신들의 존재감과 세력을 해외로 넓혀 나갔다.


99 주로 섬이나 해안 지역으로 이루어진 동남아시아에서는 수 세기전부터 항구 도시들의 강력한 네트워크가 존재해왔다.


100 이러한 국제도시들 중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말라카였다.


101 1567년 스페인은 필리핀의 마닐라를 점령했고, 네덜란드는 아시아에 상륙해서 도시 바타비아를 차지하고, 지금의 인도네시아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건립했다.


102 네덜란드인이 1653년에 세운 뉴 암스테르담은 1664년 영국인들의 손에 넘어갔고, 1665년에 뉴욕이라는 이름으로 재통합되었다.


5장 대도시의 빛과 어둠

110 19세기에는 특히 서유럽, 중부 유럽, 미국, 일본에서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각 국가의 전체 인구 대비 도시 인구의 점유율이 크게 늘어났다. 맨체스터·필라델피아·오사카 같은 도시의 발전은 산업혁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행정상의 중앙 집권화나 새로운 민족국가의 설립처럼 다른 분야의 발전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1800-1914년 사이의 변화를 보면 도시 거주 인구가 40%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중요한 수치이다.


110 베를린은 이러한 발전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1800년에서 1910년까지 무려 12배나 성장하였다.


111 동시대인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소규모 도시들의 성장이 아니라 독일인들이' The Big City'라고 지칭한 대도시의 출현이었다.


113 신석기 혁명이 일어난 덕분에 고대 도시들이 탄생했던 것처럼, 산업혁명은 19세기와 20세치 초에 도시가 급증할 수 있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124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도시 개혁자들은 더 큰 야망을 품고 국가나 시 당국의 산하로 운영되는, 좀 더 큰 규모의 공공기관이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25 파리에서는 오스만 남작의 지휘 아래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훨씬 더 전면적인 도시 개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125 오스만은 대부분의 파리 주민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특색 있는 사회기반시설을 도입한 일로 역사에 남았다. 바로 1870년에 560킬로미터에 달하는 상수도 망을 갖춘 것이다.


133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이러한 기회들이 더해지자, 도시는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점점 더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해갔다.


6장 도시를 휩쓴 제국주의 열풍

138 제국주의와 도시화의 관계는 다면적이고 복잡하다.


138 유럽인들 입장에서는 식민 도시가 자신들의 세력을 투영하고 지배체제를 정립하여 통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 이러한 도시들은 대부분 항구에 위치에 있었으며, 도로와 철도로 연결되어 산업화된 서구 경제와 내륙 경제 사이에서 매개자 역할을 했다.


138 예를 들어 면화는 인도의 항구 도시를 거쳐 대서양을 건너거나, 수에즈 운화를 통과하고 지중해를 건너 마르세유·리버풀·함부르크와 같은 유럽의 항구로 들어갔다. 이 면화들은 릴·맨체스터·바르멘의 공장이나 다른 공업 도시로 옮겨졌는데, 이 도시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크게 성장했다. 이렇게 수출된 원재료들은 완제품으로 거듭나 다시 배에 실려 그것들이 처음에 수출되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139 서구의 지배는 경제적인 면만이 아니라 행정과 군사적인 면에서도 이루어졌다.


141 포르투갈인들은 홍콩 인근의 중국 해안에 위치하여 국제 무역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또 하나의 항구도시 마카오를 손에 넣었다.


144 정착형 식민지가 아닌 지역의 도시 내에서는 권력 관계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150 공중위생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에는 인종에 따라 거주 지역을 차별화하는 방법도 포함됐는데, 이것은 때로 토착민들의 출입이 차단된 지역에 서구인들이 살 수 있도록 하는 '이중 도시'를 만들려는 노력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152 이러한 건축물들은 대부분 기능적인 효과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효과도 노리고 있었다.


152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은 건축 프로젝트에 대단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 자금을 투자함으로써 도시에 거주하는 토착민들에게 그들이 계속된 입장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들이 영원히 그 도시에 남아 있을 거라는 사실을 끊임없지 상기시키려 하였다.


7장 파괴와 재건의 시대

178 전쟁과 연관된 대도시라고 해서 모두 같은 피해를 입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득을 본 도시도 있었다. 베를린 시민들은 런던 시민들보다 더 심한 파괴의 고통을 겪었고, 런던은 파리보다 더 심하게 손상되었지만, 뉴욕과 디트로이트는 역으로 수혜를 입었다.


185 1945년부터 1960년까지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파괴된 지역을 재건한 기록은 그야말로 인상적이었다. 비록 사회주의 국가들보다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는 했지만, 도시 재건은 문화 중심지로서 도시에 주어진 가치를 증명해줄 또 하나의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184 한국은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이후 일본 식민지 통치의 상징물들을 한국의 독립을 표현할 수 있는 건축물로 대치하고자 했다. 서울시는 이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인 결과, 한참 후인 1990년대에 일본제국이 한국의 옛 왕궁을 파괴하고 세운 식민 통치 기관인 '조선 총독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원래 있었던 유서 깊은 건물들을 복원했다.


8장 희망과 환멸이 공존하는 곳

187 기자인 찰리 르뒤프는 《디트로이트: 미국을 해부하다》에서 자신의 고향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188 1950년, 디트로이트의 인구는 185만 명에 달했다.


188 한때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던 디트로이트는 지금 가장 가난한 도시가 되었다.


188 디트로이트의 경제적 번창은 한참 전인 1920년대의 상황에서 비롯된다. 세계의 자동차 제조를 선도하는 업체가 이 지역에 자리를 잡았는데, 전쟁 전이던 당시의 몇 년 동안 미국 소비자의 자동차 수요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188 1950년 이후 디트로이트의 인구는 77만 7,000명으로 줄어들었는데 백분율로 따지면 58퍼센트가 감소한 것이다. 2013년의 인구는 70만 명밖에 되지 않았다. 제조업 관련 일자리는 29만 6,000개에서 2만 7,000개로 감소하였다.


189 미국 전체에 타격을 입힌 탈산업화 현상도 도시의 쇠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190 한때 미국의 한업 발전을 앞장서서 이끌다가 불황을 맞은, '러스트 벨트'라고 불리게 된 여러 도시에 무엇보다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던 것은 따로 있었다.


190 탈산업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교외화도 심화되었다.


191 교외지역은 1945년 이후로 눈에 띄게 성장했다.


191 2000년에 접어들면 미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교외 지역에서 살게 되었다.


193 이렇게 급격하게 성장한 도시들은 캐롤라이나 북부 경계선에서부터 애리조나 북부 경계선인 남부 캘리포니아에 이르는, 미국 남부와 남서부를 아우르는 '선벨트'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임금이 낮고 세금이 적으며, 강력한 노동조합도 없는데다가, 몇몇의 경우에는 첨단 기술 산업의 등장으로 최적의 비즈니스 환경이 갖추어진 이곳에서 많은 도시들이 기하급수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195 개발도상국의 도시화는 20세기 후반과 그 이후에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197 개발도상국들의 대도시 성장에는 자연적인 인구 증가, 다시 말해 출생수가 사망자 수보다 많아진 것과, 시골 지역에서 도시 지역으로 인구가 유입된 현상이 비슷하게 영향을 미쳤다.


198 도시 성장에 작용한 다른 인자들이 있었다. 교육과 대중 매체도 그 중 하나였다.


198 개발도상국들의 새 정부는 도시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199 도시민들의 삶을 관찰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급성장한 도시에서 사는 일의 부정적인 면들과 단점들을 지적했다.


200 2006년, 영향력있는 사회 비평가이자 이론가인 마이크 데이비스는 슬럼으로 뒤덮인 지구에 대한 심판을 요구했다. 아시아의 방콕·베이징·다카·이스탄불·카라치·상하이, 아프리카의 카이로·나이로비·라고스·루안다·킨샤사, 라틴 아메리카의 멕시코 시티·보고타·카라카스·상파울로·리우데자네이루·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례들을 수집한 그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관점을 요약해냈다.


200 대충 찍어낸 벽돌과 짚, 재활용 플라스틱, 시멘트 블록, 버려진 나무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21세기의 많은 도시들은 하늘을 향해 치솟은 빛의 도시 대신 공해와 인간의 배설물과 썩은 쓰레기들에 둘러싸인 불결한 상태에서 쪼그려 앉아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슬럼에 거주하는 100억 도시민들은,


204 최근에는 중국의 도시들이 점점 늘어나는 자동차와 다른 원인들로 발생한 과도한 스모그의 피해를 받고 있다.


204 인구가 밀집된 도시 지역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발전이라는 동기를 부여하며, 그러한 발전이 일어나는 중심지가 될 수 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도시가 거둔 승리'에 찬사를 보냈다.


205 글레이저는 도시 거주민들이 고안해 낸 발명품들이 사회에 전반적으로 이득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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