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에로스를 찾아서 ━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한 성찰


에로스를 찾아서 - 10점
강유원 지음/라티오


하늘 한구석의 미인을 바라본다.

진실처럼 들리는 거짓말,

무사 여신이여!

당신은 아마도 알고 계시겠지만

어떤 놀라운 것,

모든 좋은 것,

이런 건 조금도 겪어 본 적이 없네.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혼 안에 비로소 생겨나서,

때는 밤이었다.

아름다움을 넘어선 아름다움,

닮은 것은 닮은 것에서 태어나니…

예술적으로 재현한 것,

끝없는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게 해주시길 빕니다.

사랑이 당당하게.

위기,

탈취,

정신은 감각적인 것에 발을 내딛으면서도

이후 심하게 아팠다.

당신이 한 말은 모두 도리에 맞는 말이오!


주해註解





8 우리 자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이 이렇게 생겨나듯이 동파가 손님과 함께 만들어서 내놓은 아름다움도 그렇게 생겨 났을 것이다. 동파는 머나 먼 옛날에서 오늘의 우리에게로 손을 내밀어, 그가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하늘 한 구석에 비쳐 바라보던 미인을 함께 보자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와 동조할 것인가. 그러한 동조가 가능한 것은 어떠할 때인가. 우리도 적벽 아래 가서 배를 띄우고 손님과 더불어 술을 마셔야만 하는가. 동파의 정감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라 여긴다면, 아무리 노를 저어도 우리는 하늘의 미인을 바라 볼 수 없을 것이다.


23 아폴로도로스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간직한 상태에서 남에게 이야기하는 연습을 충분히 하였다. 그 연습은 거의 10년 동안 이루어졌다. 아폴로도로스는 글라우콘에게도 그 연습의 성과를 보여 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에 가득 차 그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이들과 함께 시내로 올라가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폴로도로스는 아리스토데모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복제가 아닌, 연습을 거친 모방이다. 그런데 그러한 연습과 모방은 아폴로도로스에게 자부심을 안겨주는 일이다. 아폴로도로스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 이들은 부유하고 돈 잘 버는 사람들인데 아폴로도로스의 핀잔에 약간은 불쾌해하면서도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무엇이 아폴로도로스를 이처럼 자부심 넘치는 이로 만들었을까? 10년에 걸친 모방의 연습이었을 것이다. 연습!


28 디오티마는 상승의 노력으로써 연습을 거듭하면 갑자기 최고의 앎에 이를 것이라 조언하지만 그것은 무녀에게만 도달 가능한 경지인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배움으로 올라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러면서도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에게 들은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뒤 스스로가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면서 다른 이들에게도 그것을 권한다. 


29 소크라테스의 권유를 받은 우리는 그가 디오티마에게 듣고 전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하나 하나 상승의 길을 따라 절정에 이르려고 한다. 하나의 몸에서 두 개의 몸으로, 두 개의 몸에서 모든 아름다운 몸으로, 모든 아름다운 몸에 서 아름다운 행실로, 아름다운 행실에서 저 너머에 있는 배움으로, 저 너머에 있는 배움에서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배움으로,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배움에서 아름다움 바로 그 자체로,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우리의 눈앞에 느닷없이 나타난다. 우리 혼 안의 에로스라는 힘이 우리를 이끌고 어딘가로 데려가는데 앞의 것을 감싸안은 채 다음 것으로 이행하고, 그렇게하는 과정의 종국에서 우리의 지성이 문득 아름다움 자체를 관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신비한 것을 보는 자가 된다.


35 알키비아데스는 아름다움에 이르지 못한 그러나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그는 알키비아데스와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에게 이야기를 들었고, 어떻게해야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밤새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으려 하고, 남들이 다 잠들었을 때 아침에 목욕을 한 뒤 하루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멀쩡하게 보낸다. 알키비아데스는 술을 마시지 말고 일찌감치 아가톤의 집에 도착하여 소크라테스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담긴 것들을 날마다 실천하려 했어야만 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폴로도로스의 부지런함을 보라!


37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를 쫓아다닌 까닭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또한 아름다움을 찾아 다녔으니, 알키비아데스를 돌아볼 틈이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갈망에서 다른 인간의 몸을 탐하고,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들이 마시고, 그것을 마시고 자신을 발산 함으로써 무아無我의 순간을 향해 간다. 그리하여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의 차원에 올라선다. 이는 갈망에서 시작되었으니 에로틱erotic하고, 전혀 낯선 것이니 엑조틱exotic하며, 절정의 환희를 경험하는 것이니 엑스타틱ecstatic 할 것이다.


41 유다는 예수의 말을 거역하지 않았다. 그가 예수의 말을 거역하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더라면 구약의 예언은 성취되지 않았을 것이요, 그에 따라 하느님의 계획은 무너졌을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의 말을 충실히 따른 유다는 예수를 사랑하지 않았는가. 누가 예수를 가장 사랑하였는가.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인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 예수와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 예수와 유다, 스승과 제자의 사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64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며, 인간의 산물의 하나인 예술미는 역사적 공동체적 행위에 의해 산출된 것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헤겔은 그것이 그저 덧없는, 한 때의 행위의 소산에 그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영원히 존재하는 절대적 정신이 구체적 현존을 얻어 지상에 현현하는 것이라 강변한다. 그렇다 하여도 우리 시대는 절대적인 것을 놓아 버렸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것 뒤에 어떤 보이지 않는 빛의 실이 연결되어 있음을, 절대적 정신이 숨 어 있음을 승인하지 않는다.


72 지금 내가 가진 것에서 뭔가 아쉬움을, 결핍을 자각하면서 이러한 갈증이 생겨난다. 결핍의 자각과 필연적이지는 않아도 그에 이어지는 충족에의 갈망이 '에로스'라 불리는 것일 게다. 현학을 자부하는 이들은 결핍과 갈망의 이중적 계기를 철학과 시에서 이리저리 논변해 왔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그저 내 것이 좋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좋고 아름다운 것을 내 것으로 하자고 결심해 두기로 한다. 그러면 사랑은?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내 곁에 있는 것을 사랑하기로 하자.


94 알키비아데스는 무엇 때문에 배움에 실패하였는가? '연습 부족' 때문일 것이다. 《향연》은 아폴로도로스가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고, 그렇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연습 한 바를 바탕으로 전해 준 것을 기록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아폴로도로스는 소크라테스를 직접 만나지도 못했으며, 그에 따라 당연하게도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직접 듣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아폴로도로스는 전해들은 이야기를 부지런히 연습하였으며, 그 결과 그에게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직접적 전수가 아니라 해도 가르침은 이렇게 연습을 통해서 전해질 수 있음을 아폴로도로스가 실증해 보인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직접적 교유와 전수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적인 앎, 신적인 봄(見)이 전수될 수 있다는 보장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리 전수에 작용하는 기술은 참으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시미치 떼기도 그것들 중의 하나이다.


100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이어진 사람들이다. 이들 중 누가 스승의 말을 충실히 따랐는지는 알 수 없다.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의 훌륭한 학생이 아니었음은 분명해 보이지만, 이 또한 플라톤이 창작한 허구인 《향연》에 등장한 것이므로 사실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향연》을 '문자 그대로' 읽는다면, 가장 훌륭한 학생은 소크라테스의 권유를 일상에서 실천한 아폴로도로스라 할 수 있다. '선생과 학생'이라는 주제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들은 예수와 그 제자들이다. 열두 명의 제자들은 성인으로 추앙 받으며, 유다는 예수를 팔아 넘긴 자로 지탄받는다. <요한복음>의 '최후의 만찬' 장면(13장 이하)은 예수와 제자들 사이의 대화를, 이 복음서 전체가 가진 특징 중의 하나인 표면의 의미와 심층의 의미가 서로 어긋나는 듯하면서도 대응하는 복합적인 층위의 텍스트들로 구성하여 전하고 있다. <요한 복음> 13장은 사건들을 세세하게 설명한다. 갑자기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을 한 명씩 모두 챙긴다. 발을 닦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눈에 띄는 제자는 두 명이다. 한 명은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이다. 그는 예수의 품에 안겨 있고 시몬 베드로도 차마 물어보지 못하는 것을 물어볼 수가 있다. 이 제자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예수의 말을 잘못 알아 듣는 적도 없으며, 유일하게 십자가 밑에서 예수의 처형을 목격하였다. 그는 '제자다운 제자'의 전형을 보이기 위해 요한이 설정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찬 장면에서 눈에 띄는 또 한 명의 제자인 유다 역시 예수의 말을 충실하게, '문자 그대로' 따랐다. 유다는 예수가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하자, "곧 밖으로 나갔다." 유다는 자신이 밖으로 나가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면서도 스승의 말을 그대로 따름으로써 스승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 어떤 함축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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