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06 허먼 멜빌의 모비딕2


모비 딕 - 10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작가정신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0303_18 허먼 멜빌의 모비딕 2

프롤로그부터 시작을 하겠다.

모비딕》를 그냥 길다고 생각하면 안되고 《오뒷세이아》와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1장이 프롤로그이고, 135장을 에필로그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멜빌이 에필로그라고 이름을 붙여놓은 부분이 있는데 거기서부터라고 생각하지 말고 135장부터라고 보면 된다. 1장은 호메로스 서사시처럼 전체적인 내용이 다 들어있다. 


1장 프롤로그를 읽을 때 제목만 모비딕이지 고래 얘기는 안나오고, 이 전체에 걸쳐서 고래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해도 바다에 사는 생물로서의 고래라기 보다는 뭔가 멜빌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뚜렷하게 형상화할 수 없는 어떤 진리에 관한 얘기, 세상에 관한 얘기를 고래를 빌려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짐작을 하여야 한다.


"call me ishmael"

흔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나를 이슈메일이라고 부르라고 하는 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 나를 규정해도 괜찮다는 뜻도 되지만 나는 당분간 내가 가진 정체성을 너희들은 알 필요가 없고, 내가 던져주는 정체성은 이슈메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2장부터 22장부터 이슈메일에 관한 얘기다. 무대는 땅이다. 중요한 장을 보면 16장에서 나오는 피쿼드 호. 피쿼드 호에 대한 자세한 얘기가 나온다. 그러고 나서 두번째 파트인 에이해브 선장에 대해서 나온다. 여기서는 에이해브가 누구인가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그 배를 탄 선원들에 대한 얘기가 23장에서 45장까지의 얘기다.


에이해브가 왜 모비딕과 싸우는지 모디빅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왜 에이해브는 모비딕과 싸우려고 하는가. 그런데 배를 탄 선원들은 고래 기름을 얻으려고 하는 것인데, 선원과 선장과 목적이 다르다. 그 부분을 보면 갈등들이 보인다. 그러고 나서 고래 얘기가 드디어 나오는데, 고래와 바다에 관한 일반적인 얘기들이 나온다. 73장에서 105장 부분이 멜빌의 진리관이 나와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모비딕》이라고 하는 작품이 바다에서 삶을 다룬 46장에서 72장, 그리고 진리에 대해서, 고래는 무언인가에 대해서 다룬 73장에서 105장이 중간에 끼어들어감으로 해서 앞에 나온 얘기는 이슈메일과 에이해브라고 하는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고, 중간은 세계로서의 바다, 바다에 있는 우리가 잡아낼 수 없는 진리 덩어리로서의 고래, 그리고 고래를 발견하는 방식이 있어서 갑자기 인식론의 책이 되는 것이고, 그 다음에 고래에 대한 추적과 수색 얘기가 106장에서 134장이다. 이 부분에서도 고래 잡는 얘기는 없고, 계속 에이해브가 얼마나 운명에 도전하는 용감한 자인가, 비극적인 영웅인가, 에이해브의 인성은 어떠한가에 대해서만 계속한다. 이것을 앞부분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에이해브는 진리탐구자로서 등장하는 것. 진리를 탐구하는 에이해브가 있고, 얼마나 용감하게 평생에 걸쳐서 진리를 발견하려고 노력했는가 이해를 할 수 있다.


알수 없는 신비의 세계를 바다로 놓고, 그 안에 고대한 고래를 신적 존재나 거대한 운명이라고 놓고, 거기에 대응하는 인간의 군상들을 에이해브처럼 도전하는 사람이 있고, 스타벅처럼 합리적인 사람, 즉 여러가지 시선이 있다.

에이해브는 분명히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신을 닮은 사람이라고 얘기를 한다. 그래서 모비딕을 죽였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없는 상태로 죽어가면서 에이해브는 결국 자기가 진리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것. 고래를 죽였든 못죽였든 간에 고래를 만났고, 그 고래에 포경 창을 찔러넣었기 때문에 자기는 진리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삶의 의미를 충분히 확보했다고 보는 것이다.


피쿼드호는 말 그대로 소우주이다. 피쿼드 호의 설명을 살펴보면 호메로스 서사시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오뒷세이아》를 읽을 때도 얘기했었는데 바다와 땅이 만나는 지점이 중요하다. 23장에서 이슈메일이 바다를 만나는 지점들이 《오뒷세이아》에서 오뒷세우스가 바다에서 땅으로 올라오는 지점과 반대되는 점. 멜빌은 이런 서사시를 읽었고, 명백하게 이런 계기들을 가져다가 자기 작품에 넣었다. 그래서 바다와 땅이 만나는 지점들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우리가 봐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call me ishmael"의 번역

이 첫 문장을 어떻게 번역하느냐는 이슈메일에 대해서 번역자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또 작품 전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나타낸다. 그래서 첫 문장을 책을 다 읽어본 다음에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김석희 선생은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라고 번역했다. "나를"이 아닌 "내 이름"이라고 했다. 직역을 하면 나를 이슈메일이라고 부르라고 해석이 되는데 " 내 이름"이라는 말을 썼다.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는 알 필요도 없고, 내 이름이 이것이니까 내 본질과 이름이 일치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필요 없다는 약간의 거절의 뉘앙스와 거리를 두려는 것이 있다. 적극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이슈메일이라는 사람은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라고 하면 창세기에 나오는 것처럼 골육의 형제와 등지고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수도 있겠다.


31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저만 홀로 살아남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에필로그가 시작되는 시점에 욥기 1장에 나오는 하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저만 홀로 살아남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하인이 계속되는 불행을 보고하러 오는데 에필로그 처음에 인용을 한다.


683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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