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06 허먼 멜빌의 모비딕 1


모비 딕 - 10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작가정신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0224_17 허먼 멜빌의 모비딕 1

오늘 시작할 책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다. 

모비딕》의 첫문장이 "call me ishmael"이다. 검색을 해보니 "call me ishmael"이 문학사에서 유명한 첫문장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한지에 대해 토론이 벌어진다. 직역을 하면 나를 이스마엘이라고 부르라는 것이다. 우리말로 의역을 많이 하면 '니들이 나에 대해서 궁금하긴 할텐데 그냥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지'라는 의미이다. 작가정신에서 나온 책을 번역하신 김석희 선생을 만나본 적이 있는데 이 문장을 어떤 뜻으로 했는지 여쭈어 보려다가 설명이 길어질까봐 그만 둔 적이 있다.


ishmael은 성경에서 가져온 말인 것 같다.

창세기에 나온 말이다. 아브라함이 본처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애가 없고, 하나님은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고, 부인의 몸종인 하갈이라는 여인을 취해서 아들을 얻는데 그러고 나서 본부인이 임신을 한다. 그러니까 여종으로부터 낳은 아들을 내팽겨쳐야 할 시점에 이르렀는데 그 아들이 이슈메일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추방당한 자가 된다. 


우선 《모비딕》의 저자인 멜빌부터 이야기해보자.

허먼 멜빌이 1819~1891년이니 미국 독립이 얼마되지 않았을 때의 사람이다. 그 다음 작품 연대기를 봐야 하고, 또한 미합중국이라는 나라는 독립 이후에 큰 변곡점을 맞이하는 때였다. 그런 시대이기도 하고 지금 현대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라는 시대가 과거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19세기 후반 또는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세계가 지금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초기 형성기이니 허먼 멜빌의 시대를 보면 미국의 유아기이다. 오늘날 미국이 가진 알수 없는 묘한 것들이 맹아적인 형태로 들어있다.


사실 《모비딕》를 읽어보면 굉장히 성서 욥기의 구절도 인용되고 있고, 뭔가에 사로잡혀 있는 구약성서적 세계관이 드러나 보인다. 오늘날 미합중국이라는 나라를 보면 미국 남부지역의 침례교를 보면 우리가 보기에는 미신과 다름없어보이는 것들, 온갖 낡은 종교적 신념들이 뭉쳐있는 나라이다. 오늘날의 프랑스를 보면 무슬림들이 히잡을 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계몽주의 전통인데, 공화국의 문화적 코드를 지키라는 것, 종교과 대립 또는 투쟁하면서 계몽주의가 전개되었고, 거기서부터 프랑스 유물론이나 과학이 발전되었는데, 똑같은 계몽주의가 미국에서는 과학은 과학대로 가고, 종교는 종교대로 여전히 그대로 갔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일관된 원칙도 없이, 철저한 과학이다 못해 실용주의로 가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거의 미신에 가까울 정도로 불합리하고도 광기어린 청교도적인 신념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잉글랜드로부터 자유와 인권을 찾아왔다고 하면서도 남의 자유와 인권은 완전히 뭉개버리는, 이 세가지가 교묘하게 맞물리지 않고 미묘하게 있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썼는데 멜빌과 같은 시대사람으로, 미국은 서사가 문화가 없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멜빌의 작품을 읽을 때면 미국의 사정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한다.


파스칼의 《팡세》를 읽을 때는 그 시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읽을 때는 세계의 상황은 어떠한가,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문학작품을 읽을 때 모든 작품들을 시대와 연결고리 속에서 읽어야 하는가. 더러 어떤 문학가들은 시대를 충실하게 살아가지 않는다. 시대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기 세계 안에 갇혀서 문학이 되고, 그렇다 해도 호소력 있는 문학을 만들어낸다. 어떤 경우에는 치밀할 정도로 문학사회학적인 분석도 하고 심지어 그 작품을 완전히 분해하고 해체해서 시대의 사건으로 환원시켜버릴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잘게 분석을 할 수 있는 반면에, 어떤 작품은 전혀 그럴 필요 없이 이를테면 괴테 《파우스트》는 시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이유는 허멀 멜빌의 이 작품은 이 두 가지가 교묘하게 있다는 것이다. 멜빌 인생을 살펴보고 작품연대기가 있고, 또 동시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연대기가 있다. 멜빌의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의 삶이 있을 테고, 또 겉으로 드러난 멜빌의 인생이 있을 테고, 거기에 상응하는 작품이 있다. 그것이 굉장히 잘 들어맞는데도 불구하고 《모비딕》이라는 작품은 특정한 시대로 환원시킬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 그런데 또 읽을 때 그 시대를 잘 봐야 읽을 수 있는, 그런 점에서 아주 탁월한 작품이다.


철저하게 시대로 환원된 작품은 문학에서 고전이 될 수 없고, 차라리 그냥 자기 안에 갇혀서 어쩌다 한번씩 끄집어내는 것이 고전이 될 수 있다.


모비딕은 시대를 반영하기도 하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끈질기게 물고늘어진 탐구정신도 있다. 또한 한가지를 덧붙여보면 과연 우리가 파스칼이 말한 '숨은 신', 알지 못하지만 거기 있어야만 한다고 강박관념을 느끼거나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신에 대한 탐구를 계속 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세계의 주인이라고 선언하고 그런 신들을 죽이고 살 것인가에 대한 것도 있다. 


니체의 초인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거대한 파도와 거대한 고래, 무언가 신적인 도전할 수 없는 영역을 상정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몸을 던지는 에이해브 선장을 보면 니체의 초인이 생각될 때도 있다.

그래서 19세기 문학작품이 만들어 낸 여러 인물들이 있는데 최고의 인물이 에이해브라고 생각한다. 


멜빌이 살았던 시대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제임스 쿠퍼가 쓴 《모히칸족의 최후》가 1826년이니까 멜빌 시대에 나온 것이다. 그런 것이 미국문학의 시작이다. 그래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1935년에 1권이 나왔고 1940년에 2권이 나왔다. 토크밀도 멜빌도 같은 시대 사람. 미국에는 문학이 없다. 대영제국의 식민지에서 독립을 했지만 서사를 만들어 낼 사건이나 또는 반성적 사유 이런 것이 없으니까 고작해야  《모히칸족의 최후》인데 이런 책들은 전형적인 미국 이데올로기가 들어가 있는 것. 잭슨 대통령 시기에 루이지애나를 1803년에 샀는데 미국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사건. 미대륙을 벗어나지 않아서 식민지 쟁탈이 아닌 것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남의 땅을 뺏은 것. 그때부터 인디언 전쟁도 시작되는 것. 그러던 와중에 영국에서는 노예제도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는데, 여전히 면화가 필요하니 미국 남부지역에서는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남북전쟁이 벌어진다. 남북전쟁이 1861~1865년인데 멜빌이 살았던 장년기의 경험. 그리고 남북전쟁 이후 이른바 재건기라고 불리는 시대, 복잡다단한 시대를 살던 사람이고, 동시에 전세계적으로도 아편전쟁, 격동의 19세기 후반, 1889년의 파리 산업박람회. 


19세기 후반에 제2차 산업혁명 시기에 중요한 자연물 중 하나가 고래이고, 그러니까 고래는 결국 시대와 잘 맞물린 동물이었던 셈이다. 고래를 잡는 포경산업이 그 당시 굉장히 중요한 산업이었고, 멜빌도 포경선에 탄 경험이 있다. 


멜빌은 30대 후반 무렵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남태평양 얘기를 쓴다. 선교사들의 위선과 제국주의적인 침탈을 비판하는 작품을 쓰다가 모비딕을 쓴다. 《모비딕》은 1951년에 나왔는데 그 이전에 대중소설을 써서 돈을 좀 벌면 재미없는 것을 써서 말아먹는 과정을 두어번 거치다가 《모비딕》을 썼다. 《모비딕》은 그 이전에 썼던 여러 작품들의 주제나 방식들의 총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가난히 말하면 장사는 안됐다. 19세기에는 잊혀져 있었고, 심지어 《모비딕》 이후의 작품들은 소설의 무대가 바다가 아닌 육지로 바뀐다. 그때 나온 것이 《필경사 바틀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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