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06 허먼 멜빌의 모비딕 3


모비 딕 - 10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작가정신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0310_19 허먼 멜빌의 모비딕 3

이제 《모비딕》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간이 왔다.

모비딕이라는 고래를 잡으러 떠난 포경선의 이야기. 도대체 무엇이길래 대단한 소설로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읽는가. 국제정치학적인 맥락에서 보면 태평양에서 고래잡이가 많이 되었다. 그때만해도 증기선을 타고 다녔는데 태평양에 있던 미합중국의 증기선들이 석탄을 보충하고, 쉬었다가 가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 일본의 개국이라는 것이 이른바 페리 제독의 흑선이 내항해서 그랬는데 그것이 고래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시간에 목차도 보았고, 전반적으로 멜빌이라는 작가가 어떤 시대를 살면서 이런 작품을 남겼는지 살펴보았다. 이제는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줄거리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에이해브 선장이 고래에 대한 집념을 가지고 등장해서 고래를 잡아야 하는데, 소설책을 읽어도 고래도 선장도 나타나지 않는다. 모비딕이 소설이다 라고 하면 스토리를 얘기하려고 하는데, 《모비딕》은 그렇게 읽으려고 하다 보면 절대로 끝까지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선은 《모비딕》이라는 작품에 많은 사람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슈메일과 에이해브의 캐릭터 특성을 생각해보는 것, 달리말하면 과연 이슈메일은 어떤 사람인가, 에이해브는 어떤 사람인가를 세밀하게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여기 나오는 여러 조각들, 어떤 잘라진 면을 읽을 것인가 하면 두 사람의 성격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이슈메일이라는 사람은 창세기 16장에 나온다. 11절을 보면 야훼의 천사는 다시 "너는 아들을 배었으니 낳거든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여라. 네 울부짖음을 야훼께서 들어주셨다. 네 아들은 들나귀 같은 사람이라, 닥치는 대로 치고 받아 모든 골육의 형제와 등지고 살리라."(공동번역 성서)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원래 창세기에 나온 것에 근거하자면 그 사람은 태어나면서 추방당한 자이다. 세상밖에서 사는 사람이다. 이스마엘처럼 신이 '얘는 나면서 추방당한 애야'라고 규정한다면 공동체에 있을 수 없는 것.


육지에서 경계를 떠돌면서 지냈는데, 악순화에서 벗어나보자. 바다는 받아주겠지라고 한 것인가.

그런데 이슈메일이 바다로 떠난다고 할 때 자기의 의지에 따라 떠난다는 강력한 뭔가를 보이지는 않는다. 영어 단어로 말하면 simply, 그저 바다를 간다는 것이다. 이슈메일이 바다로 갈 때 하는 행동이 "조용히 배를 탄다." 배를 타러 가는 것이 땅을 벗어나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인데 사실 고난을 겪으러 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원래 신이 정해놓은 추방의 명령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슈메일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신은 믿지 않는 사람인 것 같고, 회의주의자니까, 그렇지만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을 자기의 의지에 따라서 적극적으로 결단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처지이고, 그래서 여기에 운명의 여신을 등장시킨다. 그것이 바로 튀케이다. 처음에는 그냥 간다고 말하지만, 나중에 에필로그를 보면 "배화교도가 사라진 뒤 에이해브의 노잡이가 그의 빈자리를 매웠고, 운명의 여신들이 그 노잡이의 빈자리에 앉힌 것이 우연히도 나였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바다를 가는 것은 조용히 가는 것이고, 이슈메일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운명의 여신들 덕분인 것이다. 


31 (1장) 카토는 철학적 미사여구를 뇌까리면서 칼 위에 몸을 던졌지만, 나는 조용히 배를 타러 간다.


683 (에필로그) 배화교도가 사라진 뒤 에이해브의 노잡이가 그의 빈자리를 매웠고, 운명의 여신들이 그 노잡이의 빈자리에 앉힌 것이 우연히도 나였다.


그래서 그가 배를 타러 가는 목적은 흥미있고, 성장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바다를 겪음을 통해서 자신의 앎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다. 바다를 이루고 있는 물은 "명상과 물은 영원히 결합되어 있다." 구절이 있다. 명상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contemplation, 관조를 의미한다. 철학적 의미에서의 진리를 꿰뚫어 보려는 형이상학적 노력, 탐색, 탐구를 의미한다. contemplation과 물이 결합되어 있다고 말을 하면, 이론적 관조를 얘기하는 것이니까 이슈메일이 바다로 나아가서 형이상학적인 탐색을 시도한다고 볼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다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관조를 한다는 것. 그렇게 해서 얻으려고 하는 것이 영상 image이다. 거짓된 허상이 아닌 진리의 모사물로서의 영상이다. 


33 (1장) 누구나 알다시피, 명상과 물은 영원히 결합되어 있다.


이슈메일이 바다에 가서 하는 것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바다의 일을 겪고, 겪으면서 동시에 관조를 하고, 겪기만하고 관조를 하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 고생했는데" 이런 생각만 한다. 그렇게 관조를 했기 때문에 모든 사건이 끝난 다음에 회고하면서 튀케 여신에 의해서 우연히 살아남았고, 그리고 나는 일개 선원으로 살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나면서부터 추방당한 사람인데 그 추방의 완성은 결국 자기가 자기를 추방하는 것에서 완성된다고 할 수 있겠다.


멜빌은 과여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사람 중에 누구에게 자기를 투사하고 있을까 생각하기 쉬운데 얼핏 보기에는 에이해브일 것 같은데, 사실 소설가는 이 소설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를 투사할 것이고, 그런데 특히 이슈메일에게 투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이슈메일은 충분히 고난을 겪었고, 그 고난을 겪은 자기를 스스로 관조할 수 있었고, 그런 까닭에 이슈메일은 탁월한 자기성찰에 이른 사람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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