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8 ━ 소돔과 고모라 2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8 - 10점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이형식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2부 2장 · 9
2부 3장 · 186
2부 4장 · 384

옮긴이 주 · 412



406 시각이란 얼마나 기만적인 감각인가! 인간의 몸뚱이란, 비록 알베르띤느의 것처럼 사랑 받는 몸뚱이라 해도, 불과 몇 미터, 아니 몇 쎈티미터만 떨어져 있어도, 우리들로부터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그 몸뚱이에 속하는 영혼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어떤 일이 우리와의 관계에서 그 영혼의 자리를 난폭하게 바꾸어, 그 영혼이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우리에게 입증해 줄 경우, 우리는 와해된 우리 심장의 격한 박동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몇 걸음 떨어진 곳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었음을 감지한다. 우리들 속에, 그러나 다소 피상적인 구역에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그 여자 친구는 뱅뙤이유 아가씨에요’라는 말은, 내 스스로는 발견할 수 없었을, 그리고 알베르띤느를 찢어진 나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 들여보낸 ‘참깨’였다. 그리고 그녀 뒤로 다시 닫힌 문은, 내가 백년 동안을 찾아도 그것을 다시 열 방도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 전 알베르띤느가 내 곁에 있을 동안에는 그 말이 나에게 들리기를 잠시 멈추었다. 꽁브레에서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나의 어머니를 포옹하곤 하였던 것처럼, 그녀를 포옹하면서 나는 알베르띤느의 결백함을 거의 믿었거나, 적어도 그녀의 악벽 발견한 사실을 지속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내가 홀로 남자, 그 말이 다시 울려 퍼졌고,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멈추기 무섭게 다시 들리는 귓속의 소음 같았다. 그리하여 이제 그녀의 악습이 나에게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떠오르려 하던 태양의 빛이, 내 주위의 사물들을 변모시키면서, 마치 그녀를 대하는 나의 위치를 이동시키면서 그러듯, 나로 하여금 다시 나의 괴로움을 더욱 혹독하게 의식하도록 하였다. 일찍이 내가, 그토록 아름다운 아침나절의 시작도, 또 그토록 괴로운 아침나절의 시작도, 겪은 적이 없었다. 이제 곧 햇볕을 받아 반짝일, 그리고 전날까지만 해도 그것들을 방문할 열망만으로 나를 가득 채웠을, 그 무심한 모든 풍경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흐느낌 한 가닥을 억제할 수 없었고, 그때, 기계적으로 수행된, 그리고 나에게는 나의 생이 끝날 때까지 매일 아침 나의 모든 기쁨을 희생물로 바쳐야 할 유혈 낭자한 의식을, 즉 매일 먼동이 틀 무렵이면 날마다 돋아나는 나의 슬픔과 내 상처의 피로 엄숙하게 거행하는 거듭된 신앙고백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던 성체 봉헌례 행하는 동작으로, 황금빛 계란 같은 태양이, 응고되는 순간 밀도의 변화가 초래할 균형의 파괴에 의해 격렬하게 사출된듯, 화폭들 속에서처럼 불꽃들이 가시처럼 돋은 상태로 단걸음에 커튼을 찢었는데, 잠시 전부터 그것이 커튼 뒤에서 전율하며 무대 위로 돌진할 준비를 갖춘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것이 결국 밀물같은 빛으로 커튼의 신비하고 응고된 진주홍색을 지워 버렸다. 내가 우는 소리가 나에게 들렸다. 하지만 그 순간, 전혀 뜻밖에 나의 방 출입문이 열렸고, 나의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내가 이미 본, 그러나 꿈 속에서만 본 그 환영들 중 하나처럼, 나의 할머니가 내 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겪고 있던 그 모든 일이 그렇다면 한 마당 꿈에 불과했단 말인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분명 깨어 있었다. “내가 너의 가엾은 할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하는구나.” 엄마가—들어선 사람이 엄마였다—부드럽게, 나의 놀라움을 진정시켜 주시려는 듯, 아울러, 일찍이 교태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겸허한 자긍심에서 비롯된 그 아름다운 미소를 포함한, 할머니와의 유사성을 고백하시면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회색 타래들이 감추어지지 않고 불안한 두 눈 주위와 부쩍 늙은 두 볼 위로 굼실거리던, 어머니의 흩어진 머리채와, 입고 계시던 할머니의 그 실내용 드레스 등,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잠시 어머니를 알아볼 수 없게 하였고, 내가 자고 있는지 혹은 할머니께서 부활하셨는지 알 수 없어 머뭇거리게 하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어머니는, 내 어린 시절의 젊고 웃음 띤 엄마보다 나의 할머니를 더 닮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점에 대해 아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가 방심한 상태로 오랫동안 독서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깨닫지 못하다가, 문득 태양이 전날 같은 시각에 있던 자리에 와 있음을, 그리고 우리 주위에 석양을 준비하고 있는 전날의 것과 같은 조화들과 사물들간의 감응을 일깨우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의 착각을 나에게 일깨워 주시면서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셨는데, 당신의 모친과 자신이 그토록 닮으셨다는 것이 기쁘셨기 때문이다. “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와 보았다.” 어머니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소리가 나를 깨웠단다. 하지만,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으니 어찌 된 영문이냐? 게다가 너의 눈에 눈물이 그득하구나. 무슨 일이냐?” 내가 어머니의 머리를 두 팔로 감싸 잡았다. “엄마, 실은, 제가 너무 변덕스럽다고 생각하실까 겁나요. 우선 어제는 제가 엄마에게 알베르띤느에 대해 별로 호의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엄마에게 드린 말씀은 부당했어요.”—“하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이냐?” 어머니가 나에게 말씀하셨고,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시더니, 당신의 모친을 생각하시며 구슬픈 미소를 지으셨고, 내가 단 한 번도 응시하지 않는다고 할머니가 애석해하시던 광경의 결실을 놓치지 말라고 말씀하시려는 듯, 나에게 창문을 가리키셨다. 그러나, 발백 해변과 바다와 엄마가 나에게 가리키시던 일출 광경 등의 뒤에 나타나 내 눈에 보이던 것은, 어머니로부터 발산되지 않던 절망의 격정과 아울러, 커다란 암코양이처럼 몸을 둥글게 웅크린 발그레한 알베르띤느가 장난기 가득한 코를 쳐들고 뱅뙤이유 아가씨의 자리를 차지한 다음 그녀 특유의 관능적인 웃음을 터뜨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던 몽쥬뱅의 방이었다. “그래, 좋아! 누가 우리를 보면 오히려 더 좋겠어. 내가! 이 늙은 원숭이에게 감히 침을 뱉지 못할 거라고?” 창틀 안에 펼쳐지던 풍경 뒤에서 내가 발견하던 것은 그 광경이었고, 창틀 속의 풍경은 그 다른 광경 위에 반사광처럼 포개진 한 폭의 음울한 너울에 불과했다. 그 풍경 자체가 실제로 한 폭의 풍경화처럼 거의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우리들 맞은편 빠르빌 절벽 돌출부에서는, 나와 소녀들이 그 속에서 고리 찾기 놀이를 하던 작은 숲이, 내가 알베르띤느와 함께 낮잠을 자러 갔다가 저녁나절에 해가 지는 것을 보고 그녀와 함께 다시 일어서곤 하던 그 시각처럼, 화폭 같은 자기의 우거진 나뭇가지들을 바다까지, 아직도 온통 황금빛인 광택제 같은 수면 밑까지, 경사를 이루며 이끌어내리고 있었다. 여명의 진주질 부스러기 가득한 수면 위에 분홍색과 하늘색 넝마 형태로 아직까지도 어슬렁거리고 있던 밤안개의 무질서를 가로질러, 자기들이 저녁에 돌아올 때처럼 자기들의 돛포와 이물에 비스듬히 세운 돛대 끝을 노랗게 물들이던 비스듬한 빛에 미소를 보내면서, 배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일상 보던 바와 같이, 낮 시각들이 앞서 나아간 다음 그 행렬 끝에서 저녁처럼 쉬지도 못하는 석양의 순전한 환기일 뿐, 가냘프고 가필되었으며, 자신이 없애거나 덮거나 감추기에 이르지 못하는 몽쥬뱅의 끔찍한 영상보다도 더 알맹이 없는, 상상 속의, 오들오들 떠는, 그리고 적막한 광경일 뿐이었으니—결국 추억과 꿈에서 비롯된 시적이고 헛된 영상이었다. “하지만 얘야,”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네가 나에게 그 아이에 대해 어떤 험담도 하지 않았고, 그 아이가 조금 귀찮다고 하였으며, 그 아이와 결혼할 생각을 그만둔 것이 만족스럽다고 말하였을 뿐이다. 그것이 그렇게 울 이유는 되지 못한다. 네 엄마가 오늘 출발하고, 따라서 자기의 커다란 늑대를 이러한 상태로 내버려두는 것이 가슴 아플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아라. 게다가, 가엾은 어린 것, 너를 위로해 줄 시간이 나에게 별로 없어 더욱 그렇구나. 나의 물건들을 이미 챙겼어도 소용없으니, 출발일에는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그것이 아니에요.” 그렇게 대꾸한 다음, 미래를 산정해 보면서, 나의 의지를 신중히 가늠해 보면서, 뱅뙤이유 아가씨의 친구 여자에게로 향한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된 알베르띤느의 그러한 다정함이 순진무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알베르띤느가 이미 입문하였을 것이고, 또한 그녀의 모든 행위들이 나에게 그것을 입증해 주었던 만큼, 나의 염려하던 마음이 이미 여러 차례 예감하였던 그 악벽의 성향을 그녀가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고, 따라서 그 악벽에 자신을 끊임없이 내맡겼을 뿐만 아니라, 내가 자기 곁에 없는 틈을 이용하여 아마 이 순간에도 그 짓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내가 어머니에게 안겨드릴 괴로움을 잘 알면서도—어머니가 그 괴로움을 나에게 보이시지 않았고, 그것은 오직 어머니께서 나를 슬프게 하는 것과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지 비교하실 때에만 보이시던 심각하게 몰두하시는 기색, 가령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내 곁에서 밤을 보내기로 체념하실 때 꽁브레에서 보이신 그 기색, 혹은 나에게 꼬냑을 마셔도 좋다고 하시면서 할머니가 띠셨던 것과 놀랄만큼 닮은 그 순간의 기색 등만을 통해서만 드러나던 괴로움이었다—이렇게 말씀드렸다. “내가 엄마에게 안겨드릴 괴로움을 잘 알아요. 우선 엄마의 뜻에 따라 이곳에 머무는 대신, 저도 엄마와 동시에 떠나겠어요. 하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괴로워 차라리 돌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제가 드리는 말씀 잘 들으시고 너무 슬퍼하시지 말아요. 드릴 말씀은 이거예요. 제가 잘못 생각하였고, 따라서 어제는 선의 때문에 엄마를 속이게 되었으며, 밤새도록 심사숙고 하였어요. 반드시, 그러니 즉시 결단을 내리도록 해요, 이제야 확실히 깨닫겠고, 제가 더 이상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지 않으면 제가 살 수 없을 것이니, 반드시 제가 알베르띤느와 결혼해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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