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10 ━ 갇힌 여인 2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10 - 10점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이형식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갇힌 여인 2

옮긴이 주



334 그러나 문득 무대의 배경이 바뀌었다. 나의 앞에 다른 봄철 하나가, 더 이상 녹음 짙은 봄철이 아닌, 반대로 내가 이제 막 나에게 중얼거린 ‘베네치아’라는 명칭으로 인해 그 나무들과 꽃들이 순식간에 박탈당한 봄철 하나가, 정수만 남았고, 봄철의 것이로되 꽃부리들 지니지 않은, 따라서 5월이 도래하여도 오직 반사광으로밖에 그것에 화답할 수 없을, 또한 봄철에 의해 세공되었고, 짙은 사파이어의 반짝이되 고정된 자기의 나신으로 봄과 정확한 조화를 이루는, 더 이상 불순한 흙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결하고 푸른 물의 점진적인 발효에 의해 그 나날들의 길어짐과 따스해짐과 단계적인 개화가 대변되는 봄철 하나를 내 앞에 펼쳐놓은 주체는, 옛날에 내가 느꼈던 인상들의 추억이 아니라, 하늘색과 황금빛으로 이루어진 포르뚜니의 드레스로 인해 최근에 다시 깨어난, 옛날에 품었던 열망의 추억이었다. 그리하여, 꽃들이 피어날 수 없는 그곳 운하들에게 계절들이 그러지 못하는 것처럼, 근대 세월도 그 고딕풍 도시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함을 내가 알고 있었을 뿐, 그곳을 상상할 수 없었거나, 그보다는 그곳을 상상할 때에는, 옛날 어렸던 시절, 그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에 흥분된 나머지, 나에게 남았던 여행할 기력마저 소진시킨 그 열망으로 내가 원하던 바로 그것을 상상하였으니, 그것은 베네치아에 대한 나의 상상들을 품은 채 마주 선 다음, 오케아노스 강의 굽이들이 그러듯, 세련되었으되 창해의 띠에 의해 고립된 채 별도로 발전하여 고유의 미술 및 건축 유파를 갖게 된 하나의 도시 문명을, 분리된 바다가 자기의 지류들로 어떻게 조이고 있는지 관조하고자 하는 열망이었으며―내 상상 속의 그 도시는, 몸소 다가와 그것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기도 하고, 밀물로 그곳의 원주들 밑동을 후려치다가는, 어둠 속에서 그곳을 지키고 있는 짙은 창해의 시선처럼, 기둥머리들의 힘찬 돌출부 위에다 반점들 형태로 빛을 던져 끊임없이 아른거리게 하는 바다 한가운데에 피어난, 색깔 다양한 돌들로 이루어진 과일과 새들의 신화적인 정원이었다.


그렇다, 떠나야 했다, 그래야 할 순간이었다. 알베르띤느가 나에 대하여 화가 난 기색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이후부터는, 그녀를 소유하는 것이 더 이상, 다른 그 무엇과도 선뜻 교환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아마 어떤 슬픔이나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하여 그러한 교환을 거부하겠으나, 그것들이 이제 진정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저히 통과할 수 없을 것으로 잠시나마 생각하였던 올가미를 거쳐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는 폭풍우를 진정시키고 미소의 평온을 회복하였다. 알려진 원인 없는 그리고 아마 목적도 없는, 어떤 증오의 극도로 불안한 신비도 해소되었다. 그 순간부터는 우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아는, 잠시 제쳐두었던 행복의 문제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알베르띤느와 함께 영위하는 생활이 다시 가능해진 이제,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지라, 내가 그러한 생활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불행뿐임을 직감하였고, 따라서 그녀의 동의에서 비롯된 행복감을―그리고 추억의 형태로 내가 연장시킬―느끼면서 떠나는 것이 나았다. 그렇다, 적합한 때였고, 따라서 앙드레가 빠리를 떠나는 날짜를 정확히 알아두고, 그 무렵에 알베르띤느가 홀랜드에도 몽쥬뱅에도 갈 수 없도록, 봉땅 부인을 만나 단단히 당부해 두어야 했고, [우리가 우리의 사랑들을 더 면밀하게 분석할 줄 안다면, 여인들이 우리 마음에 드는 것은, 그녀들을 두고 우리가 맞서 다투어야 할 다른 남자들의 견제 때문만임을, 그리하여 그 견제가 사라지면 여인들의 매력도 함께 사라짐을 깨닫는 경우가 빈번할 것이다. 그러한 사랑의 고통스럽고 예방적인 예를, 자기들과 사귀기 전에 순결을 잃은 여인들, 그리하여 위험에 빠져 있다고 느껴, 사랑이 지속되는 동안 내내 구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여인들에게로 향한 몇몇 남자들의 편애에서 발견할 수 있고, 다른 하나의 예는, 반대로 사후에 생기며 전혀 심각하지 않은 경우로,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취향이 약해짐을 느껴, 자신이 발견한 법칙들을 기꺼이 적용하면서, 자기가 그 여인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신시키기 위하여, 자기가 매일 그녀를 보호해야 할 만큼 위험한 환경에 그녀가 처하게 하는 남자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여인이 무대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건만, 그 여인에게 이제 그만 무대를 떠나라고 강요하는 남자들과 반대되는 경우이다.)] 또한 그렇게 그 출발에 더 이상 지장을 주는 것이 없을 때, 그날처럼 알베르띤느에 대해 내가 무심해질, 또한 내가 수천의 욕망에 유혹될, 아름다운 날을―그러한 날들이 많을 것 같았다―택하고, 그녀를 만나지 않은 채 그녀가 외출하도록 내버려둔 후, 잠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하는 한편, 몇 마디 적은 쪽지를 그녀에게 남기고, 그 계절에는 그녀가 나를 불안하게 할 어떤 곳에도 갈 수 없는지라, 여행 기간 동안, 그녀가 저지를 수 있을, 그러나 그 순간에는 내가 무심할 수 있었던, 못된 짓들을 나의 뇌리에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은 채 베네치아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어린 시절, 현재 품고 있는 것만큼이나 격렬한 열망의 실현이었던, 베네치아 여행을 준비하고 싶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여행 안내서와 열차 시간표를 사 오라고 부탁하기 위하여 초인종을 눌러 프랑수와즈를 불렀으나, 그러면서도, 그 시절 이후, 내가 아무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충족시킨 열망 하나가 있었으며, 즉 발백에 대한 열망이 있었으며, 베네치아 또한, 하나의 가시적인 현상인지라, 필시 발백 이상으로 어떤 형언할 수 없는 꿈을, 즉 봄바다에 의해 구체화되었고, 마법 어린, 애무하는, 포착할 수 없는, 신비하고 모호한 영상으로 가끔 다가와 나의 오성을 스쳐 지나가던, 고딕 시대의 꿈을 실현시켜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은 잊고 있었다. 나의 초인종 소리를 듣고 프랑수와즈가 나의 방으로 들어서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도련님께서 오늘은 이토록 늦게 초인종을 누르셔서 무척 난처했어요. 제가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어요. 오늘 아침 여덟 시에 알베르띤느 아가씨께서 자기의 트렁크들을 달라고 하셨을 때, 제가 감히 거절하지 못하였고, 도련님을 깨우러 오자니 저를 꾸짖으실까 두려웠어요. 도련님께서 초인종을 누르실 것이라 생각하면서, 아가씨를 타일러 한 시간만 더 기다리라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어요. 아가씨가 그러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도련님께 드리라고 편지 한 통을 남긴 다음 아홉 시에 떠나셨어요.” 그 순간―그토록 우리는 자신 속에 무엇이 있는지 까맣게 모르는 법, 그 순간까지 나는 알베르띤느에 대한 나의 무관심을 확신하고 있었다―나의 호흡이 끊겼고, 나의 벗님께서 뱅뙤이유 아가씨의 친구와 관련하여 협궤 열차에서 나에게 뜻밖의 사실을 밝히던 날 저녁 이후에는 다시 경험하지 못한 특이한 땀에 젖은 두 손으로, 내가 나의 가슴을 움켜잡은 채, 다른 말은 못하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좋아요, 프랑수와즈, 고마워요, 저를 깨우시지 않은 것은 물론 잘하신 일이에요, 잠시 홀로 있게 해줘요, 잠시 후 부르겠어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