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11 ━ 탈주하는 여인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11 - 10점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이형식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1장 슬픔과 망각
2장 포르슈빌 아가씨
3장 베네치아 여행
4장 로베르 드 쌩-루의 새로운 면모
옮긴이 주

 


102 그리고 다시 앵까르빌부터 발백까지,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바래다주기를 새벽녘까지 무수히 반복하곤 하였던 그 여름의 감미로움을, 새벽이 나에게 다시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더 이상 장차 기대할 것이 하나밖에 없었고―하나의 근심보다도 더 폐부를 갈가리 찢는 기대였다―그것은 알베르띤느를 언젠가는 망각하리라는 희망이었다. 내가 언젠가는 그녀를 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 내가 이미 질베르뜨를, 게르망뜨 부인을, 심지어 나의 할머니도 능히 망각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아직도 사랑하는 이들 역시 언젠가는 불가피하게 망각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언뜻 예감하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이들로부터 우리들을 떼어놓은 망각, 묘지에 감도는 것만큼이나 완벽하고 태평스러운 그 망각에 대한 응보로 우리에게 가해지는, 더 정당하고 더 가혹한 형벌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리는 그 망각이 하나의 괴롭지 않은 상태이고 무관심의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생각할 수 없었던지라, 내가 머지않아 영영 벗어던져야 할 애무와 입맞춤과 다정한 잠자리 등과 같은 그 모든 껍데기를 생각하면서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알베르띤느가 죽었다는 사념에게로 와서 부딪쳐 스스로 부서지는 그토록 다정한 추억들의 격정이, 그러한 정반대 조류와의 충돌로 나를 짓누르는지라, 나는 부동의 상태에 머물 수 없었고, 그리하여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문득 일격을 당하여 쓰러지듯 멈추곤 하였으니, 내가 새벽에 알베르띤느와 헤어진 직후 보곤 하던, 그리하여 여전히 찬연하고 그녀의 입맞춤으로 인해 뜨겁던 옛날의 그 새벽 햇살이, 이제 막 음산해진 자기의 칼날을 커튼들 위로 드리웠고, 그 칼날의 차갑고 무자비하며 밀도 높은 백색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나를 찌르곤 하였기 때문이다.

109 그러나 훨씬 후, 내가 알베르띤느를 그토록 사랑하기 전에 겪은 세월들을 거꾸로 조금씩 다시 통과하였을 때, 상처 아문 나의 심장이 죽은 알베르띤느와 고통을 느끼지 않고 헤어질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리하여 알베르띤느가 트로까데로에 머무는 대신 프랑수와즈와 함께 장을 보러 갔던 그날을 드디어 괴로움을 느끼지 않고 상기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내가 그때까지는 경험하지 못하였던 하나의 정신적 계절에 속하는 그날을 상기하며 기뻐하였으니, 내가 드디어 괴로움을 덧붙이지 않고 정확하게 그리고 일찍이 겪을 때에는 너무 덥다고 여겼던 특정 여름날들을 상기하듯, 또한 사후에야 비로소 그러한 여름날들에서 검증 각인이 찍힌 순수한 황금과 파괴될 수 없는 쪽빛을 추출하듯 그날을 상기하였다.

182 나는 그 시기에 많은 괴로움에 시달렸을 것이나, 이제 깨닫거니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떤 괴로움이 치유되는 조건은, 그것에 의해 우리가 충분히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알베르띤느를 일체의 외부 접촉으로부터 보호함으로써, 또한 그녀가 결백하다는 환상을 억지로 주조하여 가짐으로써, 훗날 그녀가 살아 있다는 사념을 내 모든 사유의 근거로 삼으면서 그랬던 것만큼이나, 내가 치유의 시기를 지체시켰을 뿐이니, 선행되어야 할 불가피한 괴로움의 긴 순간들의 도래를 내가 늦어지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베르띤느가 잘못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사념에 습관이 작용하게 될 경우, 습관은 그 일을 내가 이미 나의 생애 동안에 겪은 것과 같은 법칙들에 따라 수행하게 되어 있었다. 게르망뜨라는 명칭이 일찍이, 수련꽃들과 질베르 르 모베의 모습이 그려진 교회당 그림 유리창 등으로 장식된 시골길의 의미와 매력을 상실한 후 알베르띤느의 존재가 푸른 파도에 내포되었던 의미와 매력을 상실한 후, 그리고 스완이나 승강기 담당 종업원이나 게르망뜨 대공 부인 등과 같은 명칭들 및 기타 숱한 명칭들이 나에게 의미하던 모든 것을 상실한 후, 자기가 고용한 사람에게 몇 주 동안 일의 요령을 가르친 후 물러가는 상전이 그러듯, 그 매력과 의미를, 홀로 존속하기에 충분할 만큼 성숙하였다고 여기는 단순한 단어 하나에 담아 나에게 위탁하였던 것과 같이, 마찬가지로, 알베르띤느가 잘못을 저질렀으리라는 상념의 괴로운 세력 또한 습관에 의해 나의 밖으로 내쫓기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러는 동안, 양쪽 측면에서 동시에 전개되는 공격에서처럼, 습관의 그러한 작용에서는 두 연합 세력이 서로 지원하게 되어 있었다. 알베르띤느가 잘못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사념이 나에게 덜 괴로워지게 되어 있었던 것은, 그 사념이 내가 보기에 더 개연성 크고 더 일상적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사념이 덜 괴로워질 것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잘못이 있으리라는 확신에 제기되었던 그리고 오직 지나치게 괴로워하지 않으려는 나의 욕구에 의해서만 나의 지성에 고취되었던 그 반론들도 하나씩 수그러들게 되어 있었고, 게다가 그 각 작용이 서로를 재촉하게 되어 있었던지라, 알베르띤느가 결백하다는 확신으로부터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는 확신으로, 나는 신속히 건너가게 되어 있었다. 알베르띤느가 죽었고, 그녀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등의 사념들이 나에게 익숙해지려면, 다시 말해 내가 그 사념들을 잊을 수 있으려면 그리고 드디어 내가 알베르띤느 자체를 잊을 수 있으려면, 내가 우선 그 사념들을 품고 살아야 했다.
나는 아직 그 상태에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때로는, 예를 들어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일종의 지적 자극에 의해 더 명료해진 기억이 나의 슬픔을 되살아나게 하였고, 또 어떤 때에는 반대로, 폭풍우 심한 날씨에 의해 유발된 나의 슬픔이, 우리 사랑의 추억 하나를 준설하여 빛 가까이로 끌어 올리기도 하였다.

281 특정 행복들처럼 너무 늦게 도래하는 불행들이 있으며, 따라서 그것들이 조금 더 일찍 도래하였다면 띠었을 중요성을 우리의 내면에서 한껏 발휘하지 못한다. 앙드레의 가혹한 폭로가 나에게는 그러한 불행이었다. 물론, 나쁜 소식들이 우리에게 슬픔을 가져다주게 되어 있을 때에도, 대화의 기분 전환이나 균형 잡힌 유희 속에서, 그 소식들이 우리 앞에서 멈추지 않고 지나가거나, 우리가, 대꾸할 숱한 것들에 몰두한 나머지, 우리 앞에 있는 이들의 호감을 사려는 욕구에 의해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그 새로운 과정 속에서,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내버려두었으나 그 짧은 마법이 풀리면 다시 만나게 될 격정이나 괴로움 들로부터 보호받는지라, 그 나쁜 소식들을 받아들일 시간을 갖지 못하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그 격정이나 괴로움 들이 지나치게 우세할 경우, 그 새롭고 일시적인 세계의 권역으로 우리가 멍해진 상태로밖에 들어갈 수 없는지라, 그 속에서조차 고통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나머지 우리는 다른 존재로 변할 수 없고, 그러면 나쁜 소식들을 전하는 말들이 즉각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는 우리의 심정과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알베르띤느에 관한 말들은, 증발하여 묽어진 독약처럼 더 이상 중독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거리가 이미 너무 멀었던지라, 오후에 산책하던 사람이 구름 조각처럼 희미한 초승달을 보고, 거대한 달이라는 것이 저것인가 하는 상념에 잠기듯,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찌 이럴 수가! 내가 그토록 찾으려 하였고, 그토록 두려워하던 진실이 고작, 하나의 대화 도중에 발설된 그리고 홀로 있지 않은지라 깊이 생각할 수조차 없는 그 몇 마디 말에 불과하다니!’ 게다가 그 진실이 나를 불시에 덮치고 있었으니, 내가 앙드레와 어울려 심하게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 그러한 진실에 바칠 수 있을 더 많은 기력이 내게 있어야 했으니, 내가 그것을 위한 자리를 나의 심정 속에서 발견하지 못하였던지라 그것은 나의 밖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진실이, 우리가 그토록 무수히 속으로 되뇌던 구절의 형태가 아닌 새로운 징후들의 형태로 우리에게 드러나기를 바란다. 생각하는 습성이 우리로 하여금 때로는 현실을 실감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그것에 대한 면역성을 증대해, 그것 또한 하나의 생각처럼 보이게 한다. 가능한 반론 내포하지 않은 생각 없으며, 반의어 내포하지 않은 단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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