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12 ━ 되찾은 시절, 완결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12 - 10점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이형식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되찾은 시절

옮긴이 주

 


12 내가 어린 시절에 저승의 입구만큼이나 지구 밖의 것처럼 상상하곤 하였으나, 수포들이 가끔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정사각형 빨래터에 불과한 비본느의 수원을 목격하는 순간 느낀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놀란 것은 질베르뜨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을 때이다. “혹시 원하시면, 우리가 어느 날 오후에 산책에 나서, 메제글리즈를 거쳐 게르망뜨에 갈 수 있으며, 그 길이 가장 아름다워요.” 내가 어린 시절에 품었던 모든 생각들을 무너뜨리면서, 그 두 방면이 내가 믿던 것처럼 그토록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님을 일깨워 준 말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심한 충격을 준 것은, 그 체류 동안 내가 옛 시절을 거의 다시 느끼지 못하였고, 꽁브레를 다시 보고 싶은 욕구를 거의 품지 못하였으며, 비본느가 나의 눈에 좁고 지저분해 보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옛날 메제글리즈 쪽에 대하여 상상하였던 것들을 나에게 검증해 준 것은, 비록 저녁 식사 전이었지만 야간에 이루어지던―질베르뜨는 그토록 늦은 시각에 저녁 식사를 하였다!―산책들 중 하나였다. 달빛이 융단처럼 깔린 완벽하고 깊은 골짜기의 신비 속으로 내려가려던 순간, 우리는 푸르스름한 꽃받침 심장부로 깊숙이 들어가려는 두 마리 곤충처럼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 순간 질베르뜨가, 어떤 사람이 곧 떠난다는 사실을 아쉬워하고 또 그가 좋아하는 듯한 그 고장을 더 친절히 구경시켜 주려 하였을 안주인의 단순한 예절 때문이었는지, 감정 표현에 있어서 침묵과 소박함과 절제를 이용할 줄 아는 사교계 여인의 능란함이,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그녀의 삶에서 다른 아무도 차지할 수 없는 자리를 점하고 있으리라 믿도록 하는, 그러한 말을 하였다.

269 그러나 우리를 구출할 수 있는 기별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순간일 경우가 가끔 있으니, 그동안 우리는, 어느 쪽으로도 통하지 않는 모든 문들을 두드리다가,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그리고 백 년 동안 헛되이 찾으려 애를 써야 할 수도 있을 유일한 문에 우연히 부딪혀, 그 문이 스스로 열리기도 한다. 조금 전에 술회한 그 슬픈 상념에 잠겨, 나는 게르망뜨 대공의 저택 내정으로 들어섰고, 방심한 탓에 나에게로 다가오는 자동차를 발견하지 못하였으며, 운전사의 고함에 급히 옆으로 비켜설 겨를밖에 없었는데, 나의 발이 상당히 거칠게 다듬어진 포석에 걸릴 만큼 내가 뒷걸음질을 하였으며, 그 포석들 뒤쪽에는 차고 하나가 있었다. 그러나 다시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내가 바로 앞의 것보다 조금 낮은 포석 위에 발을 올려놓는 순간, 내 생애의 여러 시기에 걸쳐, 가령 마차를 타고 발백 인근을 산책하던 중 내가 이미 어디에선가 본 적 있다고 생각할 만큼 낯익은 나무들의 모습, 마르땡빌 교회당 종루들의 모습, 차에 적신 마들렌느 과자의 맛, 내가 이미 술회하였고 뱅뙤이유의 마지막 작품들이 종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다른 숱한 느낌 등이 나에게 안겨주었던 것과 같은 환희 앞에서, 나의 의기소침 증세가 깨끗이 자취를 감추었다. 일찍이 마들렌느 과자의 맛을 느끼던 순간에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일체의 지적 의구심이 씻긴 듯 사라졌다. 조금 전, 나의 문학적 재능의 실체와 심지어 문학 자체의 실재성에 관련되어 나를 엄습하던 의구심들도, 마치 마법에 의해 그렇게 된 듯 말끔히 걷히었다. 새로운 어떤 추론도 펼치지 않았건만, 어떤 결정적인 논거도 발견하지 못하였건만, 조금 전까지 해결할 수 없었던 어려움들이 어느덧 일체의 중요성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찍이 내가 차에 적신 마들렌느 과자를 맛본 그날처럼 (희열의) 원인을 밝히기를 체념하지는 않겠노라 단단히 작정하였다.


530 나는, 그토록 긴 세월을 내가 단 한순간도 중단하지 않은 채 겪었고 생각하여 분비하였으며, 그 세월이 곧 나의 생애였고 또 나 자신이었으되, 아직도 내가 매 순간 그 세월을 나에게 부착해 지탱해야 하며, 이동시키지 않고는 내가 움직일 수 없는 그것의 현기증을 일으키는 정상에 새처럼 올라앉아 있는 나를, 그것이 떠받치고 있음을 감지하는 순간, 피로와 두려움의 감정에 휩싸였다. 그토록 멀되 나의 내면에 있던 꽁브레의 정원 방울 소리를 내가 처음 들은 날이, 나 자신이 간직하고 있음을 나 자신조차 모르던 그 거대한 세계 속에 있는 하나의 지표였다. 나는 내 밑에, 하지만 나의 내면에, 마치 내가 수십 리를 상승한 듯, 그토록 여러 해가 중첩되어 있음을 보고 현기증을 느꼈다.
나는 게르망뜨 공작이 왜―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음에도 의자에 앉아 있는 그를 보고 그가 별로 늙지 않은 것에 감탄하였건만―자리에서 일어나 서 있으려 하기 무섭게, 견고한 것이라고는 금속제 십자가밖에 없으되 주위에 활기찬 젊은 신학생들이 몰려드는 늙은 대주교들의 다리처럼 휘청거리는 두 다리 위에서 흔들거렸는지 그리고 모든 인간이 마치, 끊임없이 자라 때로는 교회당의 종루보다 더 높은지라 타기 어렵고 위험해져 문득 그것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살아 있는 죽마들 위에 올라앉은 듯, 사람이 다니기 어려운 팔십삼 세라는 봉우리 위에 있는 나뭇잎처럼 덜덜 떨면서 걸었는지, 그 순간에야 이해하게 되었다. [일정 나이가 지난 남자들의 얼굴이, 가장 무지한 사람이 보기에도, 젊은이의 얼굴과 혼동되기 불가능하고, 일종의 진지한 분위기에 감싸여 나타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까?] 나는 나의 발밑에 있는 죽마들이 벌써 그토록 높은 것에 두려움을 느꼈고, 이미 그토록 멀리 내려가고 있던 그 과거를 나에게 접착해 오랫동안 지탱할 힘이 아직도 나에게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힘이 나의 작품을 완성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오랫동안 나에게 맡겨진다면, 나는 먼저 그 책에, 그럴 경우 그들이 비록 괴물처럼 보이게 될지라도, 그들에게 허용된 그토록 제한된 공간 속의 자리에 비해, 반대로 세월 속에 한없이 연장된―그들이, 세월 속에 잠긴 거인들처럼, 그 사이사이에 그토록 많은 날들이 와서 자리를 잡은 그토록 서로 멀리 있는 시기들에 동시에 닿아 있는지라―자리를 점하고 있는 인간들을 묘사하기를 잊지 않을 것이다.

 

 

 

댓글(0)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