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기: 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21. 4. 15.
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 - 최영기 지음/21세기북스 |
들어가는 글 - 수학에는 감동이 있다
1부 삶에 수학이 들어오는 순간 _사색으로 푸는 수학
2부 마음속 관념이 형태를 찾는 순간 _아름다움으로 푸는 수학
3부 사유의 시선이 높아지는 순간 _수학으로 풀어내는 세상
나가는 글 -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것
나가는 글 -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것<
『원론』을 여기서 상세히 다 설명할 수는 없는 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원론을 자세히 읽어보면 감동적인 서사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원론』이 왜 감동적인지를 이해하는 일이 곧 그것을 되살리는 일이다. 현재 죽어 있는 『원론』의 활자에서 당시 유클리드의 진리에 대한 처절한 갈구와 진정성을 이해하고, 수학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 이 시대가 수학에서 필요로 하는 점일 것이다.
원론의 구성은 상식적인 공리 다섯 개와 기하에 관계된 공리 다섯 개를 바탕으로, 결코 자명하지 않은 465개의 명제를 증명했다. 유클리드의 『원론』이 정말로 놀라운 것은 465개의 명제에 대한 증명에 모두 그림을 그려 넣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는 종이 대신 양피지를 사용했는데 그것의 가격이 대단히 비쌌다. 어떤 명제는 굳이 그림을 넣을 필요가 없는데도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런데 유클리드는 정작 가장 중요한 공리를 이해시키는 부분에서는 그림을 그려 넣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이런 대비되는 점을 통해 후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 가장 중요한 공리 다섯 개는 다움과 같다.
공리 1: 모든 점에서 다른 모든 점으로 직선을 그릴 수 있다.
공리 2: 유한한 직선을 한 직선 안에서 계속해서 확장할 수 있다.
공리 3: 모든 점에서 모든 거리를 반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릴 수 있다.
공리 4: 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
공리 5: 두 직선과 만나도록 그린 한 직선이 만드는 어느 한 쪽의 두내각을 더한 것이 두배의 직각보다 작다고 하자. 그러면 두 직선을 무한히 길게 늘렸을 때 두 직선은 내각의 합이 두배의 직각보다 작은 쪽에서 만난다.
이 다섯 개의 공리야말로 가장 중요하며,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유클리드 『원론』의 핵심이다. 그런데 유클리드는 왜 가장 중요한 이 공리를 이해시키는 부분에서 그림을 그려 넣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유클리드는 이 다섯 개의 공리를 진리라고 보고, 진리는 그림이라는 보조수단을 통하지 않고도 직관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어떤 대상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비추어볼 때 너무나 당연한 진리라면 그것을 설명하는 데 더 이상의 도움말은 필요 없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유클리드는 기하학의 다섯 개 공리를, 한낱 지식의 명제로 보지 않고 인간 본연의 마음으로 읽으면 당연히 알 수 있는 진리라고 인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진리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은 오히려 그것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클리드는 『원론』을 통해 수학이라는 한 분야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근원적인 학문방법,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논하고자 했다.
유클리드의 공리 다섯 개는 플라톤이 말하는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인 이데아다. 그는 진리를 통해 그것이 나타내는 의미를 표현하고 싶었으며, 그래서 책의 제목을 '원론'이라고 했다. 이것은 유클리드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피타고라스로부터 플라톤을 거쳐 그리스의 지성 사회 바탕에 흐르고 있는 수학에 대한 성향이다. 그리스인들은 수학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며 인간의 본질적인 향상을 꿈꾸었다.
그리스인들은 수학에는 자연을 해석하고 묘사하는 방법론으로서의 한측면과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하나의 진리이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고결하게 하는 종교와도 같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서는 진리가 곧 신의 말씀이었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고,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그리스 정신을 복원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수학분야에도 동일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격률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전개했다. 인간은 신이 없어도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하며 인간의 중요성을 언급했고, 그 생각은 그리스의 인본주의를 되살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그리스의 수학을 되살리면서도 그리스 수학이 갖고 있던 이데아적인 측면과 인간의 본질을 향상시키는 종교적인 측면은 배제했다. 그는 인간이 가진 본유관념을 통해 자연과학의 기초 진리를 건설하고자 했고, 수학으로 환원할 수 있다면 그 것은 본유관념과 일치하는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모든 자연과학을 수학화하는 게 진리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인식했다.
다시 말해 수학을 진리를 전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했으며, 그런 가운데 그리스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목적으로서의 이데아라는 개념을 잃게 됐다. 수학에 대한 이런 태도는 근대와 현대로 이어졌으며, 이로써 그리스 시대에 종교화될 만큼 본질을 추구하던 수학의 매우 중요한 측면은 안타깝게도 도외시됐다.
이후로 수학은 자연과학의 아버지 또는 반대로 자연과학의 시녀로써 논리적 전개에 대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 이후로도 수학에 대한 논의는 이데아적인 측면보다 논리적 정확성과 활용성 등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런 양상은 근대를 거쳐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유클리드 시대의 기하는 기원전 300년 때쯤의 지식인데, 그때의 지식이 2300여 년을 거쳐 우리에게까지 고스란히 전수되고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긴 세월 동안 변치 않고 그 모습을 지켜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는 일이며, 그 과정 속에 감동이 없을 수는 없다.
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수학이 원래 가지고 있던 깊고 역동적인 의미의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며, 이 과정을 통해 감동을 갖는 일이다. 그러므로 수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가장 큰 목표는 어떻게든지 이 감동을 되찾아내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이제라도 방법론적인 측면보다 본질을 추구하는 정신에 입각해 수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환경에서 아름다움의 가치를 체득하며 성장하기를 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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