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콩파뇽 외: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 10점
앙투안 콩파뇽 외 지음, 길혜연 옮김/책세상



소개의 글 …로라 엘 마키

제1장 시간 …앙투안 콩파뇽
제2장 등장인물 …장 이브 타디에
제3장 프루스트와 사교계 …제롬 프리외르
제4장 사랑 …니콜라 그리말디
제5장 상상의 세계 …줄리아 크리스테바
제6장 장소들 …미셸 에르망
제7장 프루스트와 철학자들 …라파엘 앙토벤
제8장 예술 …아드리앵 괴츠

옮긴이의 말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로의 여행

 


 

1 독자의 초상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어 환히 밝혀진 삶,
결국엔 충만히 살아낸 단 하나의 삶, 그것이 문학이다."
- 《되찾은 시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난 화자는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서야 그 시간을 어떻게 구해낼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글쓰기 덕분이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소명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의 소명 그리고 그 소명을 통해 불완전한 만큼이나 아름다운 이 책을 집필하는 데 일생의 대부분을 바친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명을 이야기한다.

★★★
마르셀 프루스트는 어느 날 아침 짧은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 누운 채 자신의 충직한 가정부 셀레스트 알바레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끝'이라는 단어를 썼소. 이젠 죽을 수 있겠어" 이 일화는 1962년 마르셀 프루스트를 대중에게 소개한 로제 스테판의 〈추억의 인물〉이라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프루스트의 비서이기도 했던 이 여인이 직접 전해준 것이다. 이 순간은 자신의 작품을 출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프루스트가 전후 베이비붐 세대 아이들에게 비로소 이해받기 시작한 작가가 된 날로 기록된다. 그의 작품은 1930년대와 1940년 대의 시련기를 거친 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이내 포켓판으로 출간되었고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는 비록 — 그리고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훌륭한 찬사인데 ━ 조금은 괴물 같고 다행히 실패한 작가였다고는 해도, 오늘날 그의 작품은 고전의 목록에 포함되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매우 중요한 책으로 인정받는다.

완벽한 것들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이 책은 《클레브 공작부인》을 표본으로 삼고 그 이후 폴 부르제적 작품에 이르는 프랑스식 심리소설과는 닮은 점이 없다. 그리고 이 책은 이론의 여지없이 읽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한다. 그러므로 프루스트가 베르나르 그라세 출판사에서 비싼 자비를 들여 책을 찍어내기 전에 이 책의 출간을 거부했던 출판사들을 지나치게 원망해서는 안 될지도 모르겠다. 프루스트는 타이핑을 했으나 그의 하인들이 다시 베껴 써서 종종 읽기 힘든 육필 원고가 잔뜩 들어 있는, 8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물건을 그 출판사들에게 넘겼다. 그러고는 아직 준비되지는 않았지만 외설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는데다 남색과 관련이 있는 한 두 권이 더 이어질거라고 덧붙였다. 출판사들이 낙담할 만도 했다. 그럼에도 드디어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초기의 비평들은 호의적이었으므로 1913년 11월에서 1914년 8월 사이의 판매 부수는 약 3,000 부에 달했는데, 그 당시의 난해한 서적으로서는 많은 편이었다. 평단에서는 이 소설이 뭔가 새롭고 중요하다는 것을 재빨리 간파했다. 외국에서도 이 위대한 작가를 즉시 알아보았다. 《타임스 문학 부록》은 이 소설이 출간된 지 한 달 후에 이 사실을 알렸으며, 이탈리아의 어느 잡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지드가 뤽상부르 공원의 작가였던 반면 프루스트는 센 강 우안에 자리한 플랜몽소의 작가라는 인식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사정이 한층 어려웠다. 프루스트는 1896년에 아나톨 프랑스의 서문과 살롱 모임을 주재하던 화가 마들렌 르메르의 수채화를 곁들인 단편집 《즐거움과 나날》을 출간한 바 있었다. 이러한 선입견들이 작용하여 출판사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독창성을 가늠하지 못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결코 한 범주로 분류할 수 없는 책들에 속한다.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의 힘과 깊이를 이룬다. 사람들은 10년 후에 이 책을 다시 읽고 다음 세대가 이 책을 또다시 읽는다. 그리고 매번 또다른 것을 발견한다. 이 작품은 사랑 질투, 야망, 욕망, 기억과 같은 영원한 문제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거론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이 그토록 유명하다 해도, 전편을 읽은 사람은 드물다. 처음에 생겨나 계속 변치 않는 규칙 하나가 존재한다. 제1권<스완의 집 쪽으로>를 구입한 사람의 반수만이 제2권 《꽃다운 소녀들의 그늘에>를 구입하고, <꽃다운 소녀들의 그늘에> 구매자의 반수만이 제3권인 <게르망트 쪽을 구입한다는 규칙이다. 그런데 이 단계에 다다른 독자들은 더는 포기하지 않고 연이어 <소돔과 고모라>, <갇힌 여인>, <사라진 알베르틴>, <되찾은 시간>을 섭렵했다.

프루스트는 쉬운 작가가 아니다. 그의 문장은 길고, 그의 사교계 파티는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독자에게 두려움을 준다. 그런데 우리가 그의 책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책들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소설과 같은 작품에 과감히 뛰어들어 그 작품을 진정으로 끝까지 읽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나온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열여덟 살이 되던 해인 1968년에 읽었는데, 〈콩브레〉를 읽고 느낀 놀라움과, 그 후 곧장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일종의 프루스트 모방작을 써본 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 나는 프루스트의 문장에 익숙해져서 이 소설의 중반부를 점점 빨리 읽게 되었다. 나는 쉬지 않고 반복해서 읽었다. 요즘 들어 가장 자주 들춰보는 것은 《사라진 알베르틴》이다. 내가 아는 한, 그것은 죽음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책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각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일단 처음 30페이지를 통과하면 내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꽃다운 소녀들의 그늘에》의 초반에 노르푸아 씨 ― 젊은 화자가 문학의 길로 들어서도록 격려해주게 될 사교계 인사 — 는 주인공의 부모님 댁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이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몇 년이 지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대원리이기도 한 인생의 대원리를 깨닫게 되는데, 그 원리는 다름 아니라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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