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10점
유성호 지음/21세기북스

 

이 책을 읽기 전에 - 학문의 분류
주요 키워드
들어가는 글 - 삶의 품격을 높이는 ‘죽음’ 공부

1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법의학자 가방엔 누군가의 일생이 있다
죽음과 동반을 결심하다
진실, 그것이 알고 싶다
법의학 앞에 완전 범죄는 없다

2부
우리는 왜 죽는가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 ‘생명의 시작’
죽음의 과학적 이해-
‘죽을 권리’와 ‘살릴 의무’
어떤 죽음은 사회를 바꾼다
자살, 남겨진 자가 해야 할 것들-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이제야 깨달았다. 생이 이렇게 짧은 줄” -
죽음은 내 인생의 마지막 스토리
장례식장에서 탱고를!
2045년, 죽지 않는 시대가 온다


나가는 글
서가명강 시리즈를 펴내며
참고문헌

 


죽음의 시점' , 뇌사에 관한 논쟁과 다툼

앞서 언급했듯 임상적인 죽음의 판정 기준은 분명하게 장기의 죽음이다. 그래서 죽음을 정의하는 첫 번째 이론이 '심폐기능종지설'이다. 심장과 폐의 기능이 멈추었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하더라도 이미 사용해오던 심장사나 폐사를 개인의 사망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대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이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가슴에 귀를 대보든지 코에 귀를 대본다. 그래서 숨을 쉬지 않고 심장이 뛰지 않으면 바로 죽음을 떠올린다. 보통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일반적으로 '숨을 거두셨다'고 하듯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데 숨과 심장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뇌사설'이라는 학설이 등장하며 첨예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뇌는 사실상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평균적으로 1.5킬로그램 정도의 무게를 갖는다. 그 딱딱한 정도는 콩으로 만든 두부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 머리뼈 속의 뇌는 물, 즉 뇌척수액에 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정말 연약한 부위가 아닐 수 없다. 뇌수술을 할 때 신경외과 의사가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 이유 또한 연약한 만큼 손상의 위험이 크고, 뇌를 비롯한 심장, 폐의 손상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뇌사설에 대한 논란이 처음 대두된 것은 1967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크리스티안 네틀링 바너드 박사가 세계 최초로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후부터다. 그때부터 뇌사가 개체의 사망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었다. 이후 영국은 '뇌간사'를 사람의 죽음으로 정했고, 미국은 1981년에 독일은 1982년에 뇌사를 사람의 죽음으로 인정했다. 일본은 1992년에 뇌사를 의학적으로나 법적·사회적으로 사람의 죽음이라고 인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후반에 TV 프로그램 〈100분 토론〉에서 뇌사설을 인정해야 할 것인가, 인정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두고 몇 번에 걸쳐 토론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었는데 그 이유는 장기 이식 때문이었다.

의학 기술이 발달해 뇌가 이미 죽었음에도 호흡과 심장운동을 유지할 수 있게 되자 이러한 환자에게 인공호흡기와 같은 생명 유지 장치를 언제 제거하며, 뇌의 죽음으로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인체에서 아직 살아 있는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해 질병 치료나 건강회복에 이용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대두한 것이다. 뇌는 죽었어도 심장이 뛰고 있는 사람의 심장을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한테 주면 그야말로 새 생명을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러한 논쟁에서 앞선 이유는 사실상 의료비가 천문학적으로 비싼 나라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의료 보험 시스템만큼은 정말 좋은 나라라고 꼽을 수 있을 만큼 잘 갖춰져 있다. 과거 미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2년 정도 했었는데 그때 당시 내가 속해 있던 미국 보건복지부의 보험은 10달러만 지불하면 뇌 수술까지 해주는 보험에 자동으로 가입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반사람의 경우는 똑같은 보장을 받기 위해서 1년에 3만 달러, 즉 3천만원 이상을 내야 했었다. 이를 알고 상당히 놀랐었는 데, 공무원만 상당한 혜택을 보는 구조인 것이다.

미국은 이처럼 비싼 의료비 탓에 위급한 환자라도 계속 중환자실에 두면 비용 측면에서 상당히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나라보다도 뇌사설이 일찍 부상한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뇌사설이 본격적인 이슈로 떠올랐는데, 아산병원 이승규 교수의 간 이식 수술이 그 진폭제 역할을 했다. 이승규 교수는 1997년 성인 대 성인의 간이식을 성공시켰으며 당시 이러한 수술은 일본 교토대학병원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성공 사례였다. 이후 간이식이 활발해지면서 뇌사자의 간을 이식하는 의료행위에 대한 문제가 돌출되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에는 뇌사설이라는 논의도, 관련된 법도 없었기 때문에 검사가 이 의사를 구속할 수도 있었다. 심장이 뛰는 사람의 배를 열고 간을 떼어서 사망에 이르게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법이 과학을 못 쫓아온 것이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에 장기 이식 때문에 첨예한 토론이 벌어지게 된다. 그때 변호사, 의사, 종교인, 윤리학자 등이 각축을 벌였는데 그 중에서도 종교인들의 반대가 상당했다. 심장이 뛰고 있으니 살아 있는 것이고 뇌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많은 논란 끝에 1999년 2월 8일에 비로소 ‘장기등이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2000년 2월 9일부터 시행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누구도 뇌사설을 반대하지 않는다. 뇌사 판정을 받으면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한다. 죽음의 시점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현대 의학의 발달은 죽음의 판단에서 뇌사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게 했다. 그리고 이는 이후 펼쳐질 안락사 등 많은 논란들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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