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 - 10점
강유원 지음/라티오


서문: 통합적 인문학 공부로서의 고전읽기와 글쓰기

1장. 고전을 읽을 때 유념할 점들
2장. 플라톤의 ≪국가≫와 ≪정치가≫
3장.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4장.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5장. 로크의 ≪통치론≫

결문: 정치사상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이후의 공부

 



서문: 통합적 인문학 공부로서의 고전읽기와 글쓰기

대개 인문학은 대학에서 교양으로 배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대학은 취직을 위한 '전문지식' 습득의 공간으로 변해 일종의 '비즈니스맨 트레이닝 센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인문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대학생도 찾아보기 어렵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해가 1980년인대 그때는 시절이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전공 공부는 물론이고 교양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교양과목을 수강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것일까? 교양의 전 영역이 무엇인지, 무엇을 배워야 제대로 된 범위를 배운 것인지, 그리고 평생에 걸쳐 스스로 교양을 쌓아 나가려면 어떤 식으로 책을 읽고 정리하고 글을 써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문의 세계 전체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학생이 이것저것 수강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래저래 교양을 습득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 출신 30, 40대는 교양에 목말라 하면서도 그것을 익힐 기초지식과 방법이 없어 안타까워 하고―물론 그런 안타까움 없이 사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20대는 교양 따위는 아랑곳할 겨를이 없는 삶을 영위하는 기묘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교양인이 되려는 사람은 스스로 방법을 터득하여 인문학을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교양은 어떻게 쌓아야 하며, 교양의 기초라고 하는 인문학 고전은 어떻게 읽어야하는가.

   인문학은 문학, 역사, 철학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사실 인문학 고전이라 알려진 책들을 보면 딱히 어디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이는 과거의 고전들이 오늘날의 학문 분류와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문학 고전을 공부하려면 문학, 역사, 철학은 물론이고 정치, 경제, 사회 등까지 포함한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다.

   영국의 유명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비극작품들을 읽는다고 해보자. 오늘날 대학에서는 그의 작품을 영문학과에서 주로 배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그의 작품을 문학으로만 읽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의 작품 속에는 정치사상이 들어있기도 할 것이다. 주인공이 왕들인 경우가 많으니 그럴만 하리라고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실제로 그것을 연구해서 책으로 펴낸 정치철학자들도 있다. 또다른 예로 고대 희랍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를 한번 보자. 이것 역시 기본적으로는 문학의 영역에 속하겠지만 우리는 거기서 여주인공 안티고네가 대변하는 영원불변한 신의 법칙과 크레온 왕이 대변하는 인간의 법칙 사이의 대립이라는 주제를 발견할 수도 있다. 반역죄를 저질러 시체를 장례 치르지 못하는 형벌을 받는 오빠를 위해 나라의 법을 어기는 안티고네와 그것을 단죄하는 크레온 왕사이의 갈등은 천륜과 인륜 사이의 갈등이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따져볼 만한 주제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 역시 정치사상의 영역에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다루는 고전 중의 하나인 플라톤의 《국가》는 또 어떤가. 이 책은 일반적으로 철학과에서 배우는 책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너무도 다양한 주제가 담겨 있다. 참다운 국가가 어떤 것인지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정치학에 속할 만한 책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국가의 궁극적 기초가 초월적인 좋음의 이데아에 있다는 논증을 펼치고 있으므로 철학의 한 분과인 형이상학에 속하기도 하고, 철인 정치가를 양성하는 방법도 다루고 있으니 교육학에도 속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을 쓴 플라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살았던 시대인 서기전 5세기의 희랍에 대해서도 잘 알이야 하니 역사적 지식도 필요하다. 세부적으로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므로 전쟁에 관한 책도 좀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국가》라는 책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다.

   다음은 어떤 소설의 첫 머리이다.

   우리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비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큰 격변이 일어났고 우리는 폐허 가운데 서있다. 우리는 자그마한 보금자리를 새로 짓고 자그마한 희망을 새로 품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좀 어려운 일이다. 미래로 나아가는 순탄한 길이 이제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장애물을 돌아가든지 기어 넘어가든지 한다. 아무리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 무엇이겠는가? '음란물'로 널리 알려진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다. 그런데 첫머리가 왜 이렇게 음울할까. 이 소설에서 로렌스는 20세기 초에 벌어진 제1차 대전의 잔혹함을 이야기한다. 여주인공의 남편은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귀족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제1차 대전과 19세기 말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이처럼 소설도 고전급에 해당하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챙겨야 할 것들이 제법 된다. 그러니 영문학만 배워서는 안되는 것이다. 동양 고전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동양고전 《논어》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거기에는 공자가 말하는 제대로 된 인간 됨됨이에 대한 것도 나오고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간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심지어 공자가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누구는 야단을 치고 누구는 칭찬을 했는지도 나온다. 한마디로 온갖 것이 다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논어》를 단순한 철학 책이라고 할 수가 없다. 이처럼 우리가 고전을 읽고자 할 때에는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본다면 고전은 오늘날의 학문분류로는 나누기 곤란한 일종의 통합교과적 텍스트일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읽으려면 말 그대로 통합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고전읽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힘들더라도 고전을 열심히 읽으면 '통합적 지식인(polymath)' 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고전은 이러한 지식인을 훈련시키는 데에도 아주 좋은 교재라 하겠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 한 권의 고전 전체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고전읽기를 하는 독자의 기본적인 물음이다. 아래는 몇 가지 대답이다.

   첫째, 저자와 그의 시대를 철저하게 이해하기, 저자가 그 책을 쓰던 순간을 상상하기. 이로써 읽는 이는 텍스트의 저자와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신도 저자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둘째, 전체를 통독하고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해보기. 한권의 책이 많은 주장을 담고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딱 집어서 이것 하나라고 할 만한 것은 반드시 있다. 책 한 권을 읽고 '이 책의 주장은 한마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은 고도의 추상적 사유를 할 줄 안다는 증거이다. 자주 해보면 늘어난다.

   이상 두 가지는 일종의 몸풀기에 해당할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 그 책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책은 살아 숨쉬는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읽으면서 일종의 대화를 하려면 이런 종류의 몸풀기가 많이 요구된다. 읽고자 하는 책과 정말 가까워지고 싶으면 읽든 읽지 않든 늘 책을 끼고 다니면서 자꾸 쓰다듬어 보고, 들춰 보고 하면서 표지의 질감, 활자 자체의 물질성에도 익숙해지는 노력을 할 필요도 있다.

   셋째, 구조를 파악하기.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종의 질서를 상상해보고, 그것이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고전의 저자는 분명히 책을 쓰면서 구조를 세우고 작업했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은 자연과학자들이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자연 현상 안에 숨어있는 질서를 찾아내고 아주 간단명료한 법칙으로 추상화하는 활동과 마찬가지의 것이다.

   넷째, 독특한 표현과 비유들을 찾아내기. 어떠한 저자든지 손가락의 지문과 같은 고유한 표현 습관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책읽기의 흥미를 더해주며, 동시에 자신의 글쓰기 훈련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고전의 저자가 자연과학의 언어들을 자주 사용한다면 그가 관심있는 지식의 영역 또는 그가 모범으로 삼고있는 지식이 자연과학임을 짐작할 수도 있다.

   이상 두 가지는 책을 본격적으로 읽어 나가면서 내용을 파악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구조가 뼈에 해당한다면 표현과 비유는 살에 해당한다. 이것들이 책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치밀하게 읽다가 건성건성 읽다가 하는 과정을 되풀이 해보는 것도 책에 질리지 않는 방법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책과 아주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소리내어 읽기. 어떤 책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소리내어 읽는 것이다. 다 읽을 수 없으니 자신이 맘에 드는 부분만 골라서 저자가 독자에게 읽어준다는 기분으로 한번 낭독해보자. 이렇게 함으로써 책을 몸으로써 느끼게 된다. 자신이 쓴 글도 소리내어 읽어보면 말이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여 문장을 다듬을 때도 도움이 된다.

   여섯째, 문장 다시 써보기. 고전의 문장들 중에는 멋진 것이 많다. 흉내내어 베껴보는 것도 좋고, 그와 똑같은 취지로 자신 이 다시 써 보는 것도 좋다. 이것은 아주 좋은 문장 훈련이다. 이상 두 가지는 한마디로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해당한다.

이 정도되면 책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책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게 되어 다음 책을 읽을 수 있는 준비가 된다.

   일곱째, 핵심만 추려내어 써보기. 자연과학자들이 법칙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버리고 핵심만 골라내는 행위이다. 고전을 한 권 읽고서 모든 내용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정리하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파악한 핵심을 A4 한 장 정도로 쓸 줄 아는 것 이것은 진정한 추상화 능력이다.



   이 책은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2007년 6월 8일부터 2007년 7월 27일까지 8회에 걸쳐 진행한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 강의를 정리한 것이다. 이 강의의 기본 목적은 인문학 고전이 어떤 시대에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것은 인간의 현실적인 삶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 그러한 고전은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하며 그것들끼리는 또한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특히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는 고전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정치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렇게 읽는 것만이 인문학 공부의 전부가 아니다. 고전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그걸 읽고 요약문을 써보거나 주제를 정해 보고서를 써보고 더 나아가 자신의 주장을 담은 소논문 정도까지 쓸 줄 알아야 인문학 공부를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통합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기에, 언제까지 어디 다니면서 배울 수만도 없다. 따라서 혼자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여러 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선정된 저작들은 정치사상의 고전으로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에 관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는 그 책 자체가 분량이 많기도 하지만 공부하는 태도나 고전을 읽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제자이자 서양 학문의 토대를 놓은 것으로 간주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관한 설명은 보고서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과 맞물려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 이어서는 근대 정치사상의 혁신을 불러온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다루었다. 《군주론》은 나쁜 짓을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무엇보다도 근대에 쓰여진 책이어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 텔레스의 책들과는 달리 용어가 이해하기 쉽고 사태를 바라보는 태도가 오늘날의 것과 유사하다. 또한 무엇보다도 분량이 적고 구조가 명확해서 단번에 읽기가 좋다. 따라서 이 책은 정치사상 고전을 처음 읽는 이가 도전하기에 적합할 것이다. 로크의 《통치론》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계약론을 확립한 이론서'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꼭 정확한 평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낯설지 않은 것이어서 손에 잡기가 수월하다. 인문학 고전 공부는 대학에 다니거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세계의 근본적인 바탕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한국에서 통성명을 하기 위해 '몇 학번입니까?"라고 묻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사람도 꽤 많다. 대학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집단에 속해 보지 않으면 그런 식의 안면트기가 얼마나 낯설고 거북스러운 것인지 결코 알지 못한다. 이 책에서 나는 이런 식의 통성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독자로 생각하였다.


2008년 4월
강유원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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