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길더러스: 역사와 역사가들 ━ 서양사 연구를 위한 입문

 

역사와 역사가들 - 10점
마크 길더러스 지음, 강유원, 이재만 옮김/이론과실천

 

원저자 서문

1장 역사 연구의 목적과 의도
2장 역사의식의 등장
3장 근대의 역사의식
4장 역사철학: 사변적 접근
5장 역사철학: 분석적 접근
6장 최근의 전문적 역사학
7장 문화전쟁, 포스트모더니즘, 그 밖에 다른 쟁점들


역자 후기

 


역사 후기

이 책의 제목은 ‘‘역사와 역사가들’’ 이다. 제목에 굳이 ‘‘역사가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한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의 삶의 궤적은 똑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과 방식은 역사가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고대 희랍의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각각 페르시아전쟁과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 여겼고, 세속적 관점에서 전쟁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밝힘으로써 역사학의 초석을 다졌다. 반면 기독교적 역사관을 대표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에 신을 끌어들여 세속적인 것과 신성한 것을 근본적으로 구별하는 이원론을 정립했으며, 신이 이 세상에서 행하는 방식을 밝히고 인간사를 성서의 서술과 연관짓는 것을 역사 서술의 목적으로 삼았다. 이들에게 역사서술의 대상을 물어본다면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전쟁이라 답할 것이고,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는 신의 손길이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이처럼 각자 다른 역사서술의 대상을 가진 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묻는다면 이 역시 서로 다른 대답들을 내놓을 것이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목격자의 서술, 국가의 기록, 자신의 관찰과 같은 입증 가능한 정보를 사용한 비판적 서술을 자신들의 방법으로 제시한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역사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실현함을 보이기 위해, 천지창조로 시작해서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을 거쳐 최후의 날에 신자들을 구원하는 것으로 끝나는 보편사를 주장할 것이다. 고대와 중세의 역사는 분명 똑같은 것일터인데 역사가들의 서술 대상과 방법은 이처럼 다르다. "역사가들’’이라는 말에는 바로 이와 같은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근대에 들어 역사가들의 대립은 심화되었다. 16세기와 17세기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개혁과 뒤따른 종교적 · 정치적 격변으로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1천 년 넘게 역사가들을 지배해왔던 기독교적 역사 해석이 분열되었다. 역사가들이 새로운 통합적 접근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17세기 과학혁명의 후예들은 역사학과 종교를 궁지에 몰아넣을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과학적 세계관을 갖춘 그들은 역사처럼 부정확한 탐구 분야에서는 입증 가능한 지식을 얻는 것이 불기능하다고 여겼으며, 역사학이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하려면 수학적 이상에 부합하는 형태로 지식을 표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과학적 탐구 양식이야말로 모든 학문이 본받아야 할, 영원히 타당한 모형이었다. 뒤이은 18세기에 계몽주의자들은 전통적 종교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계몽주의를 선도했던 볼테르는 인간의 진보를 방해하는 “사악한 것", 곧 종교를 쳐부수자고 요청했고, 미신이 아니라 이성이 인간의 진보를 인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특히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가 멸망한 데에는 기독교도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보아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제를 뒤집었다. 이로써 근대는 세속적인 역사관의 시대를 열었고, 우리는 시간이 건너온 다리를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는다.

   전통적인 역사학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 이래 역사가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논쟁을 시작했다. 19세기 중반 실증주의의 등장으로 특히 두드러졌던 이 논쟁에서 자연과학으로 기울어진 역사가들은 자연 현상들에서 높은 수준의 일반성을 도출해내는 자연과학자들처럼, 인간 세계의 사건들에서 선행 조건과 결과 사이의 변하지 않는 관계를 도출해 일반적 명제들로 제시하려 했다. 오귀스트 콩트의 영향을 받은 실증주의자들은 독특하거나 개별적인 사건보다는 역사의 행로에서 나타나는 균일성과 유사성에 주목했고, 인간 활동의 결과들을 지배하는 일반법칙을 가정했으며, 그 법칙을 발견할 만한 역량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주장은 격렬한 적대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일찍이 18세기 초에 잠바티스타 비코는 전통적인 서술은 환상과 공상의 표명이라는 데카르트의 비판에 맞서, 자연은 신이 창조했기에 오직 신만이 자연의 총체성을 파악할 수 있지만, 역사는 인간이 만들었기에 인간에게는 역사를 올바로 이해할 역량이 있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관념론자” 라 불린 학자들은 자연과학에서 이끌어낸 유추는 역사학에서
는 유효하지 않으며, 복잡한 역사 저술에는 매우 다른 개념적 틀과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빌헬름 딜타이는 자연과학자는 자 연 내의 규칙성과 균일성을 다루는 반면, 역사가는 자연 밖의 독특하고 되풀이될 수 없는 사건들을 다룬다고 하였다. 또한 로빈 콜링우드는 사건의 안쪽과 바깥쪽을 구별하여, 자연과학자는 현상을 알아내는 데 그치지만, 역사가의 주된 과업은 사건의 안쪽을 탐구하는 것, 곧 역사적 행위자의 사유를 알아내기 위해 ‘‘그 행위 속으로 들어가 사유하는 것” 혹은 ‘‘자기 자신의 정신 속에서 과거의 사유를 재연하는 것" 임을 지적하여 실증주의의 비판을 내리눌렀다.

   이것이 역사를 둘러싼 논쟁의 전부가 아니다. 역사의 행로와 목적, 역사에서의 인과관계와 객관성, 역사적 설명의 필요조건, 역사에서의 일반적인 것과 특수한 것, 역사학의 서구 중심주의와 남성중심주의, 집단정체성의 형성에서 역사의 역할 등과 같은 수많은 쟁점들을 두고 역사가들은 줄곧 대립해왔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쟁점들이 계속 더해질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역사가들이 항상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은 옳지만, 동일한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이 반드시 지적으로 양립 불가능하거나 오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엇갈리는 견해들은 더욱 포괄적이고 보완적인 형태의 이해로 귀결될 것이고, 각 견해는 개별적인 관점에 의거하여 다른 견해를 풍요롭고 생기 있게 만들 것이다." 물론 이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역사학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낯설고 어려운 학문” 이라는 철학자 월시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역사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역사 공부 입문서로서, 서구의 역사적 사유를 간략하게 개관하고 역사서술, 역사철학, 역사적 방법론의 주요한 쟁점과 문제들을 소개한다. 다른 역사 입문서와 구별되는 이 책의 특징은, 역사가들의 실제작업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되 그들의 작업이 ‘‘역사적 사유의 역사”에서 어떤 맥락에 속하고 또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독지들은 한 역사가 가 선행 역사가들로부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부했는지, 역사적 사유에 어떤 새로운 측면을 더했는지, 후대 역사가들은 선행 역사가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전유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억은 인간의 자기 정체성의 핵심을 이룬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바로 역사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인간집단은 언제나 역사를 둘러싸고 심각한 정체성 싸움을 벌인다. 하나의 역사적 사태를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 집단의 필연적 운명이며, 이 싸움에는 아주 천박한 유사역사학부터 고도의 역사철학에 이르는 여러 가지 전선이 겹쳐 있다. 21세기 한국 사회 역시 이러한 전선이 중첩된 시공간이다. 더욱이 오늘날은 유연한 자본주의가 만연했던 지난 30여 년을 마무리하고 뭔가 다른 것을 모색하는 이른바 ‘이행기’ 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각별한 이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만일의 사태에 대해서 재산을 쌓아놓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어려움에서 구원해줄 영도자를 찾아 나설 것인가. 그런 덧없고 황당한 일들은 벌이지 않는 것이 좋다. 오히려 우리는 과거를, 역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들여다보기를 위해 역사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얇지만 단단한 이 책을 번역하여 내놓은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2009년 10월
강유원, 이재만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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