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도어 래브: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 - 10점
시어도어 래브 지음, 강유원.정지인 옮김/르네상스

감사의 말......................................................007
서문.............................................................009
1장 중세 서구의 통일성들.................................019
2장 다시 만들어진 유럽: 르네상스를 향하여...........045
3장 르네상스 문명..........................................065
4장 위기에 처한 문명......................................123
5장 르네상스의 마지막 나날들............................169
6장 예술, 예언 그리고 르네상스의 종말................215
7장 혁명과 근대.............................................269
더 읽어볼 책들................................................293
역자 후기.......................................................295
그림목록........................................................301

 


 

역자후기

  르네상스는 '재생'을 의미한다. 이는 중세에 묻혀 있던 고대의 가치들을 되살린다는 의미로, 이탈리아의 인문주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그 시대 문화 전반에 중심적인 지향점을 부여하였다. 가톨릭의 의전주의를 물리치고 성서에 근거할 것을 요구한 종교개혁이나, 고대 그리스인들의 자연철학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어 결국 전혀 다른 세계상을 창출한 과학혁명 등이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가 살펴보는 시기는 그러한 의미의 르네상스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보다 넓은 의미와 범위를 지닌다. 이 시기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중세를 무너뜨리고 근대의 기틀을 놓은 이행기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며, 그런 까닭에 그러한 이행기적 성격이 잘 부각된 '근대 초기'라는 명칭을 써도 무방할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날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역사학자들이 대체로 시대를 구분할 때 출발점에만 주목하고 한 시대가 끝난 시기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 시대의 종결기를 살펴보는 것이 그 시대의 핵심적인 특징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며, 그 과정에서 어떤 시대를 하나로 통합해주는 요소들과 또 그 결속력을 파괴하는 새로운 변화의 추동력들을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시대들 간의 경계선을 확정하는 것이 과거를 파악하는데 핵심적이라고 믿는다. 그에 따라 이 책은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을 중심으로 하되, 그 시기를 전후한 중세부터 현재까지 여러 역사적 시기들을 차례로 탐구하면서 각 시기에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들을 추려낸다. 그러니 우리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단순히 르네상스의 특징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중세의 저변에 놓여 있던 통일적인 구조와 가치들이 무엇인지 알수 있고, 그러한 중세의 가치를 공격하면서 르네상스 시대를 이룩한 요인들을 발견할 뿐 아니라, 그 요인들이 어떤 전개를 거쳐 자신이 확립한 그 시대를 오히려 파괴하는 힘으로 변질되는지, 그리고 그 힘들이 다시 어떻게 새로운 시대를 형성하는 요소로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고대의 우월성에 대한 르네상스적 믿음이 힘을 잃었고, 영토를 중심으로 한 세속적 중앙집권 국가체제가 확립되었으며, 국가들간에 합의된 외교의 원칙이 세워지면서 국제관계가 안정된 토대를 찾았고, 학문과 종교와 문화의 영역에서는 과학과 이성이 최고의 지위를 확보하며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상을 확립했다. 이 모든 일은 혼란과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당대 사람들의 강렬한 열망이 없었다면 이루어 질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시기는 극심한 혼란과 위기의 시기였으며, 그 위기를 초래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속에서 구조와 전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그 결과 더 이상 르네상스라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았다.

  연대적으로 이 시기는 대략 1620년대부터 1640년대에 걸쳐 있는데, 이는 30 년전쟁 시기와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르네상스에 종말을 가져온 변화의 근저에 그 전쟁이 놓여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종교개혁 이후 신교와 구교로 분열된 유럽의 갈등관계는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전유럽을 아우른 30년전쟁으로 폭발했다. 시작은 종교전쟁이었으나 거기에는 각 나라 간의 다양한 정치적 ·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여기서 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중세를 무너뜨리며 르네상스에 걸쳐 그 영향력을 계속 확장했던 화약이었다. 화약 전쟁은 이전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규모의 파괴력으로 전유럽을 참혹한 폐허로 바꾸어 놓으며, 유럽인들을 그 혼란에서 다시는 회복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에 빠뜨렸다. 이제 반전이 주된 정서로 자리 잡았고, 사람들이 무엇보다 바란 것은 안정이었다. 그리하여 유럽은 전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전례 없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결국 극단에 다다른 혼란만이 역설적으로 그 혼란을 타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 전쟁 이후 종교는 더 이상 국제적인 분쟁의 원인이 되지 못했고, 종교 자체라는 별도의 영역 속에 자리를 잡았다. 종교의 영향력을 걷어내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게 된 세속국가가 근대세계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가 지속적으로 균열을 가해온 종교의 힘에 대한 국가의 궁극적인 승리였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르네상스시대 동안 자본주의가 유럽의 경제생활에서 기본적인 제도로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이후로 자본주의는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막강한 힘으로 군림해왔고, 그것은 아직 진행중인 근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자본주의는 이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막강한 생명력을 지닌 괴물처럼 그악스럽게 인간 사회의 질서를 왜곡시키고 있다. 약 4백 년 전 전유럽을 혼란에 빠뜨렸던 종교적 열정이 그랬듯이, 자본의 탐욕이 오늘날을 그에 못지않은 혼란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면 과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점증하는 긴장과 혼란의 압력이 한계치에 다다르면 그것은 결국 또 하나의 파국으로 이어지고, 그리하여 또 다른 새로운 시대를 불러올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는 시간이라는 연속체 위에서 일어나는 인간사회의 변화들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밝혀내려는 시도이다. 우리는 과거의 그 변화들 속에서 오늘의 우리를 형성한 뿌리를 희미하게나마 발견한다. 우리가 역사에서 무언가 배울 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반성적 사유를 통해 과거의 사태들을 의미화할 수 있다면, 근대 초기의 그 격변의 시기를 돌아봄으로써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듯이 보이는 오늘날의 세계가 앞으로 전개될 방향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08년 11월
강유원, 정지인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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