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노 다강: 앙코르 - 장엄한 성벽도시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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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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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 장엄한 성벽도시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46 | 브뤼노 다강 - ![]() 브뤼노 다강 (지은이)시공사 |
제1장 발견? 이것이 진정 발견인가?
제2장 정열을 불사른 발견자들
제3장 앙코르 탐험
제4장 마지막 탐험가들
제5장 복원된 앙코르
제6장 앙코르, 국가의 영광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그림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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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874년이 되면서 앙리 무오의 사후 영광은 확실히 정립되었다. 각종 논문과 저작들이 발간되면서 그는 캄보디아의 옛 수도를 "발견한 사람"으로 칭송되었다. 당시 에르네스트 두다르 드 라그레와 프랑시스 가르니에가 공동 저작한 여행담은 무오와 그 후예들의 여행기를 증보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찬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샤를 에밀 부유보라는 프랑스 선교사로서 그러한 발견을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앙코르는 실종되거나 망각된 적이 없기 때문에 발견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선 부유보 자신이 무오가 유럽을 떠나기 이전에 이미 앙코르를 방문하여 그곳에 관한 간단한 여행기를 출간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부유보도 최초의 방문자는 아니었다. 선교사들이 이미 여러 번 앙코르를 언급했으며, 16세기에는 포르투갈 여행객들이, 또 그 이전인 13세기에도 중국 기록자들이 관련 자료를 남겨 놓았다.
13 1296년, 주달관은 그보다 몇 년 전에 마르코 폴로가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베트남 해안을 따라 항해했다. 그러나 그는 인도차이나까지 직접 항해하는 대신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가 캄보디아 평원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호수 톤레사프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그 호수를 건너 호수의 북동쪽 둑에 하선했는데 앙코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는 캄보디아로부터 조공을 얻어 내기 위해 파견된 원나라 황제의 사절로서 1296년 4월부터 1297년 7월까지 앙코르에 머물렀다.
그의 여행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었다.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당시 첸라(진랍국)로 알려진 캄보디아와 외교 관계를 체결하고 무역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주달관이 봉행한 무역 사절이 최초도 마지막도 아니었다. 당시의 앙코르에는 중국 상인들과 뱃사람들이 사는 중국인 촌(村)이 벌써 오래전부터 번성하고 있었다.
16 캄보디아인들이 앙코르톰("위대한 앙코르" 혹은 "위대한 도시"라는 뜻)이라고 부르는 성벽도시는 거대한 장방형 단지 위에 조성되어 있는데, 사방을 벽과 해자(垓子)가 둘러싸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주달관이 특히 감명을 받은 것은 다섯 개의 출입문이 있는 성벽이었는데, 이것은 16세기의 포르투갈 여행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도시 안에 있는 거대한 사원들도 성벽만큼 주달관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한 듯하다. 하지만 그가 사원의 복잡한 구도, 도금과 금속 장식으로 단장된 상층부, 황금 조상 등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음은 틀림없다. 그는 이렇게 썼다. "외국 상인들이 캄보디아가 부귀한 나라라고 보는 이유는 아마도 이 사원 때문일 것이다."
22 발견의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서구는 캄보디아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 나라는 황금이나 향료를 취급하는 무역로에 들어 있지도 않았고 강력하거나 부유하지도 않았다. 상인이나 정복자를 끌어들일 만한 매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6세기 중반까지 소수의 무역업자, 탐험가, 선교사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뿐이었으나, 16세기 말 캄보디아의 왕들이 말라카의 포르투갈 사람과 마닐라의 스페인 사람들에게 원조를 요청하면서 방문객의 수가 늘어났다.
스페인 탐험대는 캄보디아 탐험에서 별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서구의 이목을 캄보디아에 집중시켰다. 이 나라를 소개한 자료와 책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당연히 앙코르톰이 거론되었다. 전문 문필가는 아니었으나 돈벌이에 나선 군인이나 무역업자의 글이 널리 유통되었고, 선교사들도 상급자들에게 자세한 사정을 적은 보고서를 보냈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편찬자들은 이런 자료들을 수집하여 책으로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성벽도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중 어떤 이는 그 도시를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을 만큼 경이적인 유적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지만, 다른 이는 플라톤의 "공화국"이나 "아틀란티스" 같은 이 "환상의 도시"를 선뜻 소개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선교사들이 제시한 확실한 증거 앞에서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들 초기 간행물에는 경탄과 의혹이 뒤섞여 있었다.
26 기념물의 성격과 목적을 설명하는 디오고 도 코우토의 이야기는 이 도시의 역사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들려주는 유일한 자료이다. 성벽에는 인도어 기명이 있는데, 코우토는 이 도시가 "20명에 달하는 왕의 명령에 따라 완공까지 700년이 걸렸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여행자들은 그 기명의 뜻을 해독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대와 구약시대의 역사에 근거하여, 그 기명을 알렉산더 대왕, 로마인, 혹은 중국계 유대인이 남겨 놓은 게 아닐까 추측했을 뿐이다. 결국 그들은 주변에 사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앙코르를 건축했다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편견은 19세기에 불거져 나온 것인데, 이로써 앙코르의 신비감은 더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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