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교개혁 - 루터와 칼뱅, 프로테스탄트의 탄생 - ![]() 올리비에 크리스텡 (지은이), 채계병 (옮긴이) | 시공사 |
1. 종교개혁
2. 내부 혁신인가, 종교개혁인가?
3. 루터와 종교개혁
4. 칼뱅과 유럽의 종교개혁
5. 로마 교회의 대응
6. 혼돈의 시대
7.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그림목록
찾아보기
27 당시의 비판적인 인문주의자들은 성서의 원본으로 복귀하기 위해서 번역의 오류나 군더더기, 주석 등을 성서에서 제거하려고 했다. 성서의 재발견은 비잔틴 제국의 몰락(1453년 오스만 제국에 함락됨)으로 가속화되었다. 비잔틴 제국의 몰락과 함께 그리스 문화와 필사본들을 소지한 학자들이 피난을 오게 된 것이다. 학자들은 점점 더 히브리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에 따른 출처 캐기나 원본으로의 회귀는 곧 독일 종교개혁사에서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활기찬 논쟁의 길을 열어 놓았다.
성서가 쓰인 3대 언어인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에 대한 연구는 새로운 학교에서 이루어졌다. 당시의 보수적인 대학들은 성서 원본으로의 복귀에 대해서 빈번하게 적대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루뱅에 있는 3대 언어 칼리지와 파리의 왕립 렉퇴르 칼리지, 에스파냐의 알칼라 데 에나레 대학 등은 모두 이러한 연유에서 탄생한 대학들이다. 이와 같은 언어 연구와 역사 비평, 문헌학 비평 등의 학문 발전에 힘입어 인문주의자들은 라틴어역 성서인 불가타의 여러 수정판을 내놓았다.
새로운 번역판 성서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르페브르 데타플(사도 바울로의 편지들, 1512)과 에라스무스(신약성서, 1516), 파그니누스(1528년 히브리어 성서)의 것들이 그것이다.
인문주의자들은 신약성서, 특히 그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성 바울로에게서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성인, 성례, 성체 등으로 특징되는 14세기 말의 기독교와 사도들의 소박한 초기 교회를 가르고 있는 엄청난 거리감이었다.
그때부터 신약성서는 르페브르 데타플의 말대로 "생명의 책이자 기독교 신자들의 유일한 지침"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인문주의 학자들은 당시 기독교 신자들이 수행하는 일부 행위와 도덕적인 의무들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르페브르가 말한 것처럼 "하느님께서 인간의 모든 것을 주재하시기 때문이다."
34 나중에 루터는 정열적이고 학구적이며 경건하고 순종적인 수도사로 묘사되지만, 그에게는 훈련과 고행으로 다스릴 수 없는 불안과 번민이 있었다. 동시대의 여느 사람들처럼 구원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마르틴 신부는 하느님의 최후 심판대 앞에 서게 되리라는 생각으로 떨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에 그는 수도원장인 슈타우피츠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에게서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게 되었다. 그렇지만 루터는 자신의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했고, 특히 프란체스코 수도사인 영국인 윌리엄 오컴의 영향을 받은 철학자 가브리엘 비엘(1495년 사망)의 가르침을 발견한 후 구원에 대한 문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사실상 루터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이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구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간의 자유와 하느님의 절대적인 초월성을 동시에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자들은 자신의 선행이 하느님의 의도에 순응하고 있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그 선행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구원의 성취에서 하느님의 전능하심은 인간의 공로에 대한 하느님의 역할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사람의 역할과 하느님의 역할을 분리하면서 은총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은 비엘의 사상(오컴주의)은 루터를 절망하게 했다 .
36 하지만 루터는 끈기 있게 묵상하는 도중 〈로마인들에게 편지〉의 구절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하느님의 정의)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와 〈시편〉의 구절 "당신의 정의로 나를 보호하시고 구해 주소서"를 찾아서 연결해 마침내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된다. 여기서 "하느님의 정의"란 표현은 기독교 신자들이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하느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아마 1545년부터 쓰인 〈선집〉에서 루터는 1513년의 어느 날 그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게 된 그 구절을 발견했노라고 했다. "마침내 하느님은 나를 불쌍히 여기고 받아들이셨다. 내가 밤낮으로 명상하며,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하는 동안 나는 하느님의 정의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정의를 의미함을 깨달았다."
'책 밑줄긋기 >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진리와 방법 2 (0) | 2026.10.20 |
|---|---|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진리와 방법 1 (0) | 2026.10.20 |
| 재니스 헨드릭슨: 로이 리히텐슈타인 | 베이식 아트 2.0 (0) | 2026.10.20 |
| 브뤼노 다강: 앙코르 - 장엄한 성벽도시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46 (0) | 2026.10.20 |
| 알랭 에르랑드 브랑당뷔르: 성당 - 빛과 색이 있는 건축물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45 (0) | 2026.10.20 |
| 에르베르 토마: 인류의 기원 - 화석 인류를 찾아서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44 (0) | 2026.10.20 |
| 존 베어: 그리고 신학이 시작되었다 (0) | 2026.10.06 |
| 올리버 지몬스: 한권으로 읽는 문학이론 (0) | 2026.10.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