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베커: 죽음의 부정

 

죽음의 부정 | 어니스트 베커 죽음의 부정 | 어니스트 베커 - 10점
어니스트 베커 (지은이),노승영 (옮긴이)복복서가

2023년판 서문 | 브라이언 그린(물리학자)
서문 | 샘 킨(철학자)
저자 서문
1장. 머리말: 인간 본성과 영웅적인 것
1부. 영웅주의의 심층심리
2장. 죽음의 공포
3장. 정신분석학 기초 개념의 재정립
4장. 필수적 거짓으로서의 인간 성격
5장. 정신분석가 키르케고르
6장. 프로이트의 성격 문제를 재조명하다
2부. 영웅주의의 실패
7장. 인격이 부리는 주술_부자유의 핵심
8장. 오토 랑크_키르케고르 정신분석의 완결
9장. 정신분석의 현재 결과
10장. 정신질환의 원인
3부. 회고와 결론: 영웅주의의 딜레마
11장. 정신분석과 종교: 영웅적 개인이란 무엇인가?
주



21 「죽음의 부정과 악에서 벗어나기에 나타난 베커의 철학은 네 가닥의 끈으로 꼰 수술이다.

첫번째 가닥 세상은 끔찍하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자연에 대한 베커의 해석은 월트 디즈니와 공통점이 거의 없다. 어머니 자연은 이빨과 발톱을 피로 물들인 채 자신의 피조물을 찢어발기는 잔혹한 암캐다. 베커 말마따나 우리가 살아가는 창조 세계에서 유기체의 일상적 활동은 "온갖 종류의 이빨로 물어뜯고, 식물의 줄기와 동물의 살과 뼈를 어금니로 짓이기고, 기뻐하며 육질을 게걸스럽게 식도로 내려보내고, 먹이의 정수를 자신의 체제에 통합하고, 그러고 나서 악취와 가스를 내뿜으며 잔여물을 배설"하는 것이다.

두번째 가닥 인간 행동의 기본적 동기는 자신의 기본적 불안을 다스리고 죽음의 공포를 부정해야 하는 생물학적 욕구다. 인간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죽을 운명인 세상에서 결국 무력하고 버려진 신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공포의 근원이다. 무에서 생겨나 이름, 자의식, 깊은 내적 감정, 삶과 자기표현에 대한 고통스러운 내적 열망을 가지는 것, 이 모든 것을 가지고도 죽어야 한다는것."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어니스트 베커는 죽음과 죽어감을 공론화하는 문화혁명에 앞장선 기묘한 동맹이었다. 퀴블러 로스가 우리로 하여금 품위 있게 죽는 법을 실천하게 해주었다면 베커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 두려움과 공포와 존재론적 불안을 동반할 수밖에 없음을 일깨웠다. 

22 사회는 우리의 타고난 무력함에 맞서는 두번째 방어선을 치는데, 그것은 영웅 체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영속적 가치가 있는 일에 동참하여 죽음을 초월한다고 믿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제국을 정복하고 신전을 건설하고 책을 쓰고 가족을 이루고 부를 쌓고 발전과 번영에 이바지하고 정보사회와 전 세계적 자유시장을 창조하는 일에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가짜 불멸을 얻는다. 인간의 삶에서 주된 임무는 영웅이 되어 죽음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모든 문화는 은밀한 종교성이 깃든 교묘한 상징체계를 구성원에게 제공해야 한다. 이는 문화 간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본질적으로 불멸 기획 사이의 전투, 즉 성전임을 뜻한다. 

30 이 책에서 나는 죽음의 공포가 보편적임을 밝히고자 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의 보편성은 인간학의 여러 분야에서 수집된 자료를 하나로 묶는 끈이며 (사실의 산더미 아래에 묻히고 '진정한' 인간 동기에 대한지리한 논란으로 모호해진) 인간 행위를 놀랍도록 명료하게 이해하는 열쇠다. 우리 시대의 식자는 자신이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짐을 짊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소비할 수 없을 만큼 과잉생산되는 진실이다.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은 진실이 호리호리하고 날렵하며 일단 발견하기만 하면 인류의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21세기를 몇십 년 앞둔 지금 우리는 진실에 짓눌려 질식할 지경이다. 빼어난 글이 이토록 넘쳐나고 천재적 발견이 이토록 많은데다 발견의 넓이와 깊이가 이토록 엄청난데도 세상은 여전히 악의 길을 걷고 마음은 여전히 침묵한다. 

54 여기서 현대사상의 위대한 재발견 중 하나를 직접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을 움직이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죽음의 공포라는 사실이다. 다윈 이후로 진화적 문제로서의 죽음의 문제가 수면에 떠올랐으며 많은 사상가들은 이것이 인간에게 주요한 심리적 문제임을 즉시 간파했다. 또한 그들은 20세기 들머리에 셰일러가 썼듯' 진정한 영웅주의가 어떤 것인지 재빨리 알아차렸다. 영웅주의란 무엇보다 죽음의 공포에 대한 반사작용이다. 우리는 죽음과 맞서는 용기를 무엇보다 존경한다. 그런 용기에 가장 높고 꾸준한 경배를 바친다. 

82 인간 조건의 진실을 부정하는 데 따르는 복합적 처벌을 정신분석학이 우리에게 드러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을 미치지 않은 척하려고 치르는 대가라고 불러도 좋다. 유사 이래 오늘날까지 인간이 스스로와 세상에 저지른 온갖 악을 한마디로 설명해야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동물적 유산, 그의 본능과 진화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진정한 조건을 부정하려 안간힘을 쓰면서 자신이 멀쩡한 척하려고 치르는 대가일 것이다 

135 인간조건의 아이러니는 죽음과 소멸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가장 깊숙한 욕구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불안을 깨우는 것은 삶 자체이므로 우리는 온전히 살아가는 것을 회피해야 한다. 

265 불멸 충동은 죽음 불안에 대한 단순한 반사작용이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로서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오로지 피조물의 이 자연적 확장으로만 전이가 그토록 보편적인 열정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268 우리는 인간이 불가능한 것을 바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고립을 떨쳐내는 동시에 간직하고 싶어한다. 분리감을 견디지 못하나 자신의 활력이 완전히 질식되는 것도 허용하지 못한다. 자신을 초월하는 강한 존재에게 합쳐짐으로써 확장하고 싶어하면서도 개별적이고 동떨어진 채로 남아 사적이고 소규모로 자기확장을 해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 위업은 불가능하다. 양면성의 실제 긴장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의 힘에 합쳐지는 동시에 자신의 개인적 힘을 발달시킬 수 없음은 분명하다. 

269 우리는 자신이 누구이고 왜 여기 있는지 까맣게 모른 채 살아가지만 삶에 의미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안다. 그렇다면 영웅적 행위를 다른 인간에게 위임하여 이 행위가 우리에게 영생을 가져다줄 만큼 좋은지 하루하루 알아감으로써 이 말할 수 없는 신비를 단번에 떨쳐버리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 행위가 나쁘다면 그의 반응으로 그 사실을 알아 즉시 바꿀 수 있다. 
 
308 살아 있는 피조물이 삶과 죽음을 피할 방법은 전혀 없으며 그러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을 파괴하게 된다는 것은 아마도 역설적 진실일 것이다. 

350 사람이 자존감과 관련하여 가장 어려움을 겪는 때는 언제일까? 그것은 바로 운명의 영웅적 초월이 가장 의문시될 때, 삶의 영속적 가치인 자신의 불멸에 의심이 들 때다. 즉, 자신의 지난 삶이 우주적 차이를 조금이라도 만들어냈다는 확신을 하지 못할 때다. 이 관점에서 우리는 정신질환이란 피조물성의 부정에 사로잡히는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351 삶의 어려움과 부담으로부터 물러설수록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부적절한 존재로 느끼며 자기평가가 낮아진다. 이것은 불가피한 결과다. 삶이 일련의 고요한 후퇴'라면 인간은 결국 구석에 단단히 처박혀 그 어디에도 물러서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우울증에 사로잡힌 상태다. 보스가 이 장의 제사에서 상기시키듯 삶을 두려워하면 죽음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우울증 환자는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며칠을 내리 침대에 누워 집안일이 쌓이도록 내버려두고 이불을 더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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