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테일러: 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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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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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 프리즘 총서 12 | 찰스 테일러 - ![]() 찰스 테일러 (지은이),정대성 (옮긴이)그린비 |
서문 | 약어표
1부 사변 이성의 요청
1장 새 시대의 목표
2장 헤겔의 청년기
3장 자기 정립하는 정신
2부 정신현상학
4장 의식의 변증법
5장 자기 의식
6장 정신의 형성
7장 계시 종교로의 길
8장 해석적 변증법으로서의 현상학
3부 논리학
9장 범주들의 변증법
10장 존재
11장 본질
12장 개념
13장 자연 안의 이념
4부 역사와 정치
14장 인륜적 실체
15장 이성과 역사
16장 실현된 국가
5부 절대 정신
17장 예술
18장 종교
19장 철학
6부 결론
20장 헤겔과 현대
부록
헤겔의 생애 | 참고문헌 | 옮긴이 후기 | 찾아보기
994 낭만주의 세대는 그 시대가 갈망했듯이, 칸트적 주체의 합리적이고 자기 입법적인 자유를 인간 내부에서 표현적 통일과 결합하고자 했으며 그 자유를 자연과 결합하고자 했다. 헤겔은 이러한 종합을 완전히 합리적인 형식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이것은 그를 계몽의 상속자로 만들었으며, 그를 낭만주의자와 구별시켰다. 그러나 그가 계몽의 주된 흐름을 넘어섰고 또 그 흐름에 저항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계몽의 주된 흐름은 이신론 아니면 유물론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1장에서 거칠게나마 자기 규정하는 정체성 [동일성]이라는 개념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17세기의 혁명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더 이상 우주적 질서와의 연관에서 정의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상을 스스로 소유할 뿐 아니라 내적인 동기나 자신만의 목적 혹은 충동을 가진 주체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주체 개념과 더불어 세계의 '객체화' [대상화]가 진행되었다. 즉 세계는 더 이상 인간을 본질적으로 포섭하고 있는 우주적 질서의 반영이 아니라 중립적·우연적 사실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이 영역은 상호 연관들을 추적함으로써 배치되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 조작된다. 객체화된 중립적 세계라는 상은,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의 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선결 조건이 되었으며, 세계의 새로운 정체성 [동일성]으로 확립되었다.
995 내가 '표현주의적'이라 부른 인간의 삶의 개념은 특히 헤르더와 루소 등이 발전시켰는데, 이 표현주의적 인간상은 부분적으로 이런 운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왔다. 표현주의적 인간상은 인간의 삶을 요소들 사이의 내적인 연관이 없이 단지 외적인 연합으로 보는 관점을 거부한다. 모든 것을 객체화시키는 근대의 정신은 인간의 정신을'기능'의 집적으로 인간을 육체와 영혼의 복합체로, 사회를 개별자들의 연속된 그물로, 행위를 외적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들의 선택으로 쾌락을 어떤 행위들의 우연적 결과로 옮음과 그름을 행위들의 외적 결과에 거주하는 것으로, 덕과 악덕을 상이한 연합의 망을 산출하는 환경들의 상이한 연쇄들의 결과로 본다. 표현주의는 어떤 행위나 삶의 양식의 내적 가치라는 의미로 귀환하며, 선과 악 사이의 질적 구별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이런 행위와 삶의 양식은 전체로, 우리의 진정한 현재의 모습의 참된 표현 아니면 왜곡으로 간주된다. 표현주의는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정신과 자연으로 이분화하는 것을 거부하며, 사회를 독립적 개인들의 도구로 보는 관점에 비판적이고 자연을 인간의 목적을 위한 단순한 원료로 보는 견해를 반박한다.
997 낭만주의적 요소는 확실히 근대 서구 문명에 함유되어 있었다. 물론 근대 세계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주요 제도들은 그 근본 아이디어에서 계몽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경제 제도에서 잘 드러나지만, 동시에 계속 성장하고 있는 합리화된 관료주의에도 해당하며, 또한 정치 구조에도 반영되어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정치 구조는 대개 (투표 행위를 통해) 일련의 개별적 결단들로부터 집합적 결정을 산출하도록, 그리고/혹은 집단들 사이의 절충을 산출하도록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발전된 산업사회의 거대한 집합적 구조들은 기껏해야 생산이나 결단의 도구로(최악의 경우 억압자들을 위협하는 도구로)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이 도구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이 도구가 개별자들의 역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의해 측정된다.
998 근대 문명은 집합적 구조들의 점증하는 합리화와 관료주의, 그리고 자연에 대한 착취적 태도뿐 아니라 이와 더불어 사적 삶과 완성이라는 낭만주의적 견해의 발흥도 보았다. 근대 사회는 사적인 삶과 상상적 삶의 영역에서 낭만주의적이었으며, 공적이고 효율적인 삶의 영역에서는 공리주의적이고 도구주의적이었다. 후자의 모습을 형성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구조들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들이 행한 것이다. 근대 사회는 이러한 구조들을 객체화된 중립적 영역으로 취급해야 하고 이 구조들이 최고의 효과라는 관점에서 다시 조직되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이 영역은 낭만주의 시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강력한 집합적 감정에 의해 주로는 민족주의에 의해 억제되거나 혹은 때때로 제지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집합적 구조들은 날마다 사적인 낭만주의를 압도해 가는데, 이러한 사실은 우리 시대의 많은 광고에서 드러나듯이 산업의 바퀴를 계속 돌아가게 하기 위해 완성이라는 낭만주의적 상들을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데서 명백히 드러난다. 이것이 낭만주의적 혹은 표현주의적 전통에 서 있는 모든 사상가가 근대 서구사회를 낯설게 느끼는 이유이다.
1034 헤겔은 칸트의 도덕성과 절대적 자유의 정치를 비판하는 가운데 자유로운 자아와 순수한 합리적 의지가 갖는 공허함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리고 그는 합리적 의지 개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에게 상황을 부여함으로써 이런 공허함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분절적 명료화들을 산출하는 우주적 이성의 담지자라는 것을 보임으로써 이뤄졌다. 그러나 우주적 정신이라는 개념으로 수행되는 이런 해결책이 우리가 위에서 검토한 이유들 때문에 유지될 수 없다면 문제는 이전보다 더 크게 발생한다. 왜냐하면 독일 관념론과 그 계승자인 맑스의 유물론적 변형의 체현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에 위치시킨다.
1048 헤겔은 헤르더에서 이어지는 이 전통에 본질적으로 귀속되면서도 동시에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런 이중의 관계는 근대 철학과의 그의 연관성을 잘 보여준다. 내가 처음에 말한 것처럼 그의 결론은 이미 의미 없게 되어 버렸지만, 그의 철학적 반성의 과정은 매우 중요한 요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 이유를 이제 좀더 분명히 볼 수 있다. 헤겔의 철학은 근대 자유 개념의 발전에서 중요한 진전이다. 그는 총체적 자기 창조라는 자유관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물론 총체적 자기 창조는 그의 철학에서 오로지 우주적 정신에만 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의존으로서의 자유 개념을 궁극적 딜레마로까지 밀고 가기 위해서는 그 개념을 인간에게 전가하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그는 근대 자유 개념을 둘러싼 갈등의 증폭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왜냐하면 절대적 자유는 맑스와 그의 후계자들을 통해(이들이 헤겔에게 빚지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치적 삶과 열망에 유래가 없는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니체는 이런 사유의 허무주의적 결론을 이끌어 내는데, 그의 사유의 자원들 중 하나는 1840년대 청년 헤겔주의 운동이었다.
1049 동시에 헤겔은 자기 의존으로서의 자유 개념에 대한 심대한 비판가들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 자유의 공허함과 잠재적 파괴성을 놀랄만한 통찰력과 혜안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역설적으로 이런 근대적 교실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우리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 교의 딜레마를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이런 딜레마를 넘어서서 주체를 객체화하는 자연의 기능으로 환원하지 않고 오히려 주체를 우리의 삶과 연관시켜 상황화하고 주체를 체현된 것으로 사회적 존재로 보고자 하는 시도가 있는데, 이런 시도는 무엇보다도 헤겔에게 빚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상황화된 주체에 대한 근대의 추구는 급진적 자율과 자연과의 완벽한 표현적 통일을 결합하고자 한 낭만주의 시기의 주된 열망을 상속하는 것인데 해결은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답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다. 자연은 우리에게 그 시대에 이해된 자연, 즉 정신적 힘들의 표현일 수 없기 때문에 그 시대의 종합은 오늘날 우리에게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러나 그 세대의 관심을 끈 문제, 그들이 화해시키고자 한 대립은 우리 시대에 다른 형식들로 계속된다. 그 문제는 근대 문명에서 불가피하게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근대 문명은 계몽의 상속자로서 표현주의적 저항을 꾸준히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동시에 절대적 자유에 대한 요청도 제기했다. 이러한 요청은 긴요하게 제기되었는데, 이런 긴요함은 상황적 주체에 대한 탐구를 더 활기차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욕구는 오늘날 공공의식 속에 급진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생태 위기의 영향 아래 아주 중대한 문제로 성장했다. 우리가 여전히 자유와 자연을 화해시키고자 한다는 사실은 낭만주의 시기의 문제 의식이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 있음을 보인다. 낭만주의가 가끔 환상적인 방식으로 출현하기는 하지만 그 가르침들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1050 상황적 주체에 대한 탐구가 철학적 형태를 취하는 한 헤겔의 사유는 반드시 거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존재론적 비전이 우리의 비전과 다르다 하더라도 사실 우리가 오늘날 받아들이는 문제들을 그의 존재론은 부정하는 것 같다. 삶의 흐름에서 출현하는 사회적 실존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그리고 그런 실존의 형식을 자연과 역사의 관계에서 드러내는 체현된 주체상, 체현된 사유와 자유의 상을 얻고자 할 때 헤겔의 글들은 가장 심오하고 설득력 있는 시도들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유를 상황화하려는 철학적 시도가 특정한 인간 개념, 즉 자유로운 행위를 어떤 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으로 여기는 그런 인간 개념혹은 자유로운 행위를 자연으로부터, 혹은 자연을 넘어선 곳에 있는 신으로부터 우리에게 다가온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 여기는 그런 인간 개념(이에 대해서는 오늘날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을 얻는데 그 본질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체현된 정신에 대한 끈질기고 정열적인 숙고를 수행한 헤겔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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