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 베린스탱: 무굴 제국 - 인도이슬람왕조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81

 

무굴 제국 - 인도이슬람왕조 무굴 제국 - 인도이슬람왕조 - 10점
발레리 베린스탱 (지은이), 변지현 (옮긴이) | 시공사

1. 무굴 제국
2. 무굴 제국의 태동
3. 악바르, 대무굴 제국
4. 부유한 제국: 자한기르와 샤 자한
5. 왕조의 황혼
6.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그림목록
찾아보기

 


14 16세기 초 인도는 힌두교나 이슬람교의 군주가 지배하는, 제법 힘이 센 여러 개의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인도에서는 불교가 쇠퇴하자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어 있었다. 7세기에 이슬람교가 확장되자마자 곧 인도에도 이슬람의 손길이 뻗쳤다. 인도의 남부에서 마라타 지방은 라스트라쿠타족이, 타밀 지방은 촐라 왕조가 지배하고 있어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던 데 반해, 북부에서는 카나우지 지역의 구르자라-프라티하라, 타르 지방의 라지푸트 공국들, 펀자브 지방의 샤히족 등 힌두교 부족들 간에 경쟁이 존재했다.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711년에 아랍 장군들은 공격을 감행하였고, 서구 침략자들에게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던 지방인 신드 지방이 점령되기에 이르렀다. 그 외에도 인도 대륙과 인도의 부(富)를 탐낸 아라비아반도의 많은 상인들은 인도 항구에 정착하여 교역을 했다. 그들은 힌두교의 관용에 힘입어 이슬람교가 인도에 전파되는 데 한몫을 담당했다. 

16 11세기 초에 가즈니라는 도시 출신의 투르크족이 마흐무드 가즈니를 왕으로 하여 인도 북부를 합병시키고 1022년 인도의 첫 이슬람 수도인 라호르를 세웠다. 12세기 말에 가즈니와 헤라트 사이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소공국인 고르의 왕은 가즈니 왕조의 이슬람 세력권 안에 있던 갠지스강 유역을 정복하였고, 호라즘에 정착한 투르크족의 다른 지파는 아프가니스탄을 탈취하였다. 

1191년 힌두교가 보인 저항의 상징이었던 라지푸트의 영웅, 프리트비라지가 무하마드 고르의 공격에 무너지고, 무하마드는 인도를 차지하였다. 이 투르크의 술탄은 닥치는 대로 힌두교 사원을 파괴한 후, 인도 북부에 이슬람 세력을 견고하게 확립하였다. 그는 델리를 정복한 후, 노예인 쿠트부딘 아이바크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주둔시키고 고르로 돌아갔다. 노예왕조라 불리는 인도의 첫 이슬람 왕조는 이렇게 정복자의 핵심 세력에서 나왔다. 바그다드의 칼리프 밑에 있던 노예왕조는 바그다드와 분리되어 1258년 독립하였다. 그때부터 인도의 이슬람 술탄과 이슬람의 발생지인 중동을 이어주는 어떠한 후견 제도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노예왕조(1210~1290)를 이은 것이 할지 왕조(1290~1320)이다. 이들은 투르크족 반란자들로서, 당시 벵골을 통치하고 있었다. 할지 왕조는 알라딘이라는 술탄으로 유명하다. 1320년에 할지 왕조를 대체하고 들어선 투글루크 왕조는 처음으로 인도 남부를 지배한 이슬람 왕조이다. 1327년에 무하마드 이븐 투글루크는 수도를 델리에서 남부 데칸 지방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옛 데오가르에 다울라타바드라는 도시를 세웠다. 5년 후, 그는 몽고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다시 북쪽으로 돌아와야 했으므로 새 수도를 포기하였다. 

20년이 흐른 후, 다울라타바드는 분열되고 알라딘 왕조의 옛 장군인 바흐만 샤가 바흐마니드 왕조를 세워 당시까지만 해도 전역이 힌두교였던 데칸 지방의 대부분을 1세기 이상 통치하게 된다. 15세기와 16세기의 전환기에 이 왕국은 또다시 분열되어 베라르, 아마드나가르, 비다르, 골콘다, 비자푸르 등 다섯 왕국이 생겨난다. 그중에서 골콘다와 비자푸르는 그 부유함으로 유명하였다. 

14세기 말 무정부 상태에 있던 투글루크 왕조는 동이란과 서이란의 대정복자이자 일명 "철의 군주"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티무르가 이끄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슬람 원정대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20 사마르칸트: 불가능한 꿈
1497년 바부르는 사촌 바이순쿠르 미르자에게서 사마르칸트를 빼앗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는 파괴된 도시에 입성하여 겨우 100일 동안만 지배했을 뿐이었다. 3년 후에 그는 우즈베크인에게 점령되었던 선조의 도시를 되찾기 위해 다시 떠난다. 15세기 이래 티무르인과 대립해온 우즈베크의 무리가 트란스옥시아나의 강성한 국가를 차지하려는 중이었다. 우즈베크 군주는 정치적으로 영리한 자로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티무르인을 쫓아내고 중앙아시아의 이 부분을 지배하고자 했다. 바부르는 투르크족을 동원하여, 환희에 찬 인파의 환영을 받으며 사마르칸트에 다시 입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의 휴식에 불과했다. 1501년 봄, 우즈베크인은 또다시 아직 열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군주의 군대를 공격하여 살육했고, 포위가 지속되자 바부르는 다시 도시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바부르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몸을 돌렸다. 1504년 그는 카불을 점령하는 데 성공하고 권력을 공고히 해 파드샤(아랍어의 술탄에 해당되는 페르시아어)라는 칭호를 얻었다. 상업의 요충지인 카불은 부유한 도시였다. 중국, 페르시아, 이란, 인도의 대상(隊商)과 상인들이 면제품, 설탕, 말, 노예를 팔기 위해 카불로 몰려들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