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진리와 방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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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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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방법 2 |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3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지은이),임홍배 (옮긴이)문학동네 |
2부 정신과학에서 진리의 문제를 이해의 문제로 확장하기
I. 역사적 준비
1. 낭만주의 해석학과 그 역사학적 적용의 문제점
2. 딜타이와 역사주의의 난관
3. 현상학적 탐구를 통한 인식론적 문제의 극복
Ⅱ. 해석학적 경험 이론의 개요
1. 해석학적 원리로 격상된 이해의 역사성
2. 해석학적 근본문제의 재발견
3부 언어를 통한 해석학의 존재론적 전환
1. 해석학적 경험매체로서의 언어
2. 서구 사상사에서 '언어' 개념의 형성
3. 해석학적 존재론의 지평으로서의 언어
주|가다머 연보|해설|옮긴이의 말|인명 찾아보기|개념 찾아보기
28 이제부터는 이해의 난관이나 잘못된 이해의 가능성이 그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해석의 과정에서 반드시 걸러내야 할 필수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슐라이어마허는 "해석학이란 잘못된 이해를 피하는 기술이다"라고 말한다. "잘못된 이해는 당연히 생겨나게 마련이므로 이해는 철두철미하게 의식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라고 보며, 그런 한에는 해석학이 단지 교육적 방편을 넘어서 독자적 방법론으로 격상된다.
37 슐라이어마허의 명제가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슐라이어마허는 텍스트 해석을 창작행위의 재구성으로 보는 것이다. 창작과정을 재구성해보면 원저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가 보편적 해석학의 목표로 설정한 이 명제는 당대의 천재 미학Genicisthetik을 원용한 것이 분명하다. 독창적인 예술가의 창작방식은 무의식적인 창작행위를 해석을 통해 재구성함으로써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해석학적 입장을 뒷받침해주는 모델인 것이다.
45 세계사의 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나온 역사 자체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했다. 그런데 이것은 개별 텍스트의 의미를 그 텍스트 자체로부터 해석해야 한다는 문헌학적 해석학의 요청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역사학의 토대는 곧 해석학이었던 것이다.
140 언어사용에 작용하는 그런 선의견은 그에 못지않게 내용에 관한 선의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는 선의견을 가지고 텍스트를 읽고 선의견이 우리의 선先이해Vorverstindnis를 규정한다. 내용적 측면에서도 과연 어떻게 자기 자신의 선의견의 막강한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어떤 텍스트가 나에게 뜻하는 의미가 나 자신의 견해나 기대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경우를 일반적으로 전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누군가가 대화는 편지는 책이든 혹은 다른 어떤 형식으로든 나에게 말하는 것은 그의 생각이지 나의 생각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게 언표된 말을 내가 그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는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142 해석학에 단련된 의식은 처음부터 텍스트의 생소함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소한 텍스트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엄정히 '중립성'만 지켜야 한다거나 자신의 생각은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며, 오히려 자신의 선의견과 선입견까지도 명시적으로 취할 수 있다. 다만 텍스트 자체가 내 생각과는 다른 의미를 드러내고 텍스트의 객관적 진실이 나의 선의견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선의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고 있어야만 한다.
143 그처럼 이해의 모든 과정이 그 본질상 선입견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해석학의 문제는 정말로 첨예해진다. 이런 인식에 비추어볼 때 역사주의가 아무리 합리주의와 자연법 사상을 비판했다 하더라도 결국 근대 계몽주의를 기반으로 했으며, 계몽주의의 선입견을 꿰뚫어보지 못한 채 그대로 물려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계몽주의의 핵심적 본질을 이루는 선입견이란 일체의 편견 자체를 무시하는 또다른 선입견으로서, 그로 인해 역사적 전승의 권위는 완전히 박탈된다.
151 일체의 선입견을 극복해야 한다는 계몽주의의 전면적인 요구 자체가 또 하나의 선입견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러한 선입견을 바로잡을 때만 우리 인간존재뿐 아니라 역사의식까지도 지배하는 유한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역사적 전통의 영향하에 있는 상태가 과연 정말로 선입견에 지배되고 자유를 제한당하는 것을 뜻하는가? 오히려 모든 인간 실존은─심지어 아무리 자유로운 삶도─다양한 형태로 제한과 제약을 받지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절대적 이성의 이념은 결코 역사 속의 인간존재를 규명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이성이라는 것은 오로지 실재하는 역사적 이성일 뿐이다.
152 사실 역사가 우리에게 귀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에 귀속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스스로를 이해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삶의 터전인 가족과 사회와 국가를 통해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 주관성이라는 렌즈는 대상을 왜곡시켜서 보여주는 거울이다. 개인의 자기의식이라는 것은 역사적 삶이라는 거대한 전기장 안에서 명멸하는 작은 불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이 갖는 선입견은 개개인의 올바른 판단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개인적 존재의 역사적 현실성을 규정한다.
160 어떻든 정신과학에서 이해의 문제는 전통을 보존하는 관점과 근본적인 전제를 공유하는데, 그것은 곧 전통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온다는 것이다. 전통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정신과학의 탐구대상 역시 그것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때만 비로소 그 의미를 생생히 경험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는 탐구대상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매개될 수 있으며, 현재와는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역사적 관심의 결과로 생겨날 수도 있다. 그리고 제아무리 '객관적인' 역사탐구를 추구한다 하더라도 탐구대상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는 데서 역사탐구의 과제는 완수된다. 그런데 탐구대상의 의미는 탐구의 결과로 얻어질 뿐 아니라 탐구의 시작단계에서도 형성된다. 다시 말해 탐구주제를 선택하고, 탐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이미 의미가 형성되는 것이다.
171 이해라는 것은 주관성의 활동이라기보다는 과거와 현재가 부단히 상호매개 작용을 하는 전통의 전승이라는 사건 속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바로 이런 생각이 해석학 이론에서 타당성을 인정받기에 이르는데, 이러한 사고는 탐구의 과정과 방법을 특별히 중시한다.
183 해석학은 이해의 과정 자체에서 역사현실을 드러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요청을 '영향사Wirkungsgeschichte'라 일컫고자 한다. 이해라는 것은 그 본질상 영향사적 과정이다.
186 영향사적 자각은 무엇보다 우선 해석학적 상황에 대한 자각이다. 어떤 경우든 어떤 상황을 자각한다는 것은 각별한 난관이 수반되는 과제이다. 상황이라는 개념의 핵심적 특징은 그 상황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둘 만한 위치에 있지 못하고 따라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 상황의 해명이 결코 완수될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해석학적 상황에도 적용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이해해야 할 역사적 전통을 마주 대하는 상황도 결코 완결될 수 없는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해석학적 상황을 해명하는 것, 즉 영향사적 성찰은 결코 완결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완결 불가능성은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속해 있는 역사적 존재의 본질에 연유한다. 역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자기인식이 결코 종결될 수 없음을 뜻한다
192 현재와 무관하게 추구해야 할 역사적 지평이 존재할 수 없듯이 현재의 지평 역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해라는 것은 서로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이한 지평들의 상호융합 과정이다.
193 이런 식으로 서로를 부각시켜주는 상이한 지평들이 존재함으로써 '지평융합Horizontverschmelzung'이라는 말이 성립되며, 전통 깊숙이까지 자신의 경계선을 설정하는 배타적 지평의 형성은 성립될 수 없다.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이해가 학문적 과제가 되는 상황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또 그러한 상황을 해석학적 상황으로 탐구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194 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낭만주의를 통해 이해intelligere와 분석explicare의 내적 통일성이 인식되면서 비로소 해석학의 문제는 체계적인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해석Auslegung이라는 것은 먼저 이해를 한 연후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행위가 아니고 이해 자체가 이미 해석이다. 따라서 해석은 이해의 명시적 형태라 할 수 있다.
235 그렇게 보면 원칙적으로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는 전승된 텍스트를 텍스트 자체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역사학자는 언제나 텍스트의 배후맥락을 규명해야 하고, 텍스트가 표현하는 저자의 생각을 넘어서서 저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현실적 맥락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따라서 역사학자가 해석하는 텍스트는 혼히 부차적 잔여물로 간주되는 여타의 역사적 자료들과 대등하게 다루어진다. 역사학자는 텍스트 자체가 진술하는 것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증언하는 다른 맥락까지도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235 문헌학자는 어떤 텍스트를 그것의 아름다움과 진실성에 비추어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반면 역사학자는 텍스트 자체는 진술하지 않는, 그리고 텍스트 자체의 의미로 설정된 필요도 없는, 현실적 맥락에 근거하여 텍스트를 해석한다.
364 기독교 신학이 고대 그리스의 논리학에 관한 사고를 철저히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이 싹트는데, 즉 언어가 말씀의 현현이라는 사건을 매개하는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온전히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유한한 인간정신을 신적 무한성과 새로운 방식으로 매개하는 새로운 인간학을 개척한다. 이미 살펴보았던 해석학적 경험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인식에 근거한다.
381 언어형식과 전승된 내용은 해석학적 경험에서는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 하나의 개별언어가 그 나름의 고유한 세계관을 반영한다면 개별언어는 우선 (언어학자들이 보는 시각과 달리) 언어의 특정한 유형으로서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전승된 것을 통해 세계관을 반영한다.
384 언어라는 것은 단지 인간이 이 세상에서 획득한 여러 가지 필수품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모름지기 인간이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태 자체가 언어에 근거하며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인간에게 이 세계가 세계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생명체의 경우와도 비할 바 없이 전혀 다른 차원에서 그러하다. 인간의 세계는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다
388 의사소통은 삶의 공동체가 영위되는 삶의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인간의 의사소통은 동물들이 주고받는 의사소통과 다르지 않다. 그렇긴 하지만 인간의 언어는 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 '세계'가 개현된다는 점에서는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삶의 과정이다.
393 세계경험의 언어적 특성은 존재자로 인식되고 언명되는 모든 것에 선행한다. 언어와 세계가 근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따라서 세계가 언어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인식과 언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히려 이미 언어의 세계지평Welthorizont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세계경험의 언어적 특성 자체는 세계의 대상화를 뜻하지 않는다.
411 과학적 방법론과는 너무나 상치되는 해석학적 경험의 이러한 구조는 이미 상세히 서술했던 언어의 사건적 특성에 연유한다. 언어의 사용과 언어적 표현수단의 지속적인 발전은 개개인의 의식을 통해 선별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그런 과정이 아니다. 그런 한에는 우리가 언어를 말한다기보다는 언어가 우리에게 말을 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이다.
412 전승을 통해 말해진 내용이 언어로 표현됨으로써 비로소 본래적인 의미에서 해석학적 사건, 즉 해석을 통해 전유하는 해석학적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사건은 우리가 사물에 가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물 자체가 행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427 이해될 수 있는 존재는 곧 언어이다. 여기서 해석학적 현상은 그 고유한 보편성을 보편적 의미에서 언어로 규정하고 존재자와의 관계를 해석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보편성을 이해대상의 존재론적 구조에 역으로 투영한다. 이것은 비단 예술의 언어뿐 아니라 자연의 언어, 나아가서 사물의 언어 전반에도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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