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니스 헨드릭슨: 로이 리히텐슈타인 | 베이식 아트 2.0
- 책 밑줄긋기/읽은 책
- 2026.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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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 | 베이식 아트 2.0 | 재니스 헨드릭슨 - ![]() 재니스 헨드릭슨 (지은이),권근영 (옮긴이)마로니에북스 |
6쪽 시작
24쪽 리히텐슈타인이 유명하게 만든 그림, 혹은 리히텐슈타인을 유명하게 만든 그림
40쪽 벤데이 점에 대한 자세한 분석
50쪽 리히텐슈타인이 미술을 보다
74쪽 한 걸음 비켜선 추상
84쪽 편집, 생략, 뒤섞기
92쪽 로이 리히텐슈타인
7 팝아트의 '창시자? 1962년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연필로 스케치하고 유화로 완성한 초상화 <조시 워싱턴>(6쪽)이 오늘날 미술가 자신과 아주 닮아 보이는 것은 우연일 뿐이다. 리히텐슈타인의 크고 둥그런 눈, 거의 네모진 매끈한 얼굴은 실제로는 미국 초대 대통령의 통통한 얼굴과 거의 닮지 않았다. 그러나 두 얼굴이 닮아 보이는 이유는 쉽게 설명된다. 리히텐슈타인은 흔히 짐작하듯 1달러 지폐를 참고한 것이 아니라, 길버트 스튜어트가 그린 조지 워싱턴의 유명한 초상화 중 하나가 리놀륨 판화로 개작되어 헝가리어 신문에 게재된 것을 보고 그린 것이다. 이 초상화는 한때 미국 달러 지폐에 담겼던 바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인생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1962년경 리히텐슈타인은 미국 미술계의 리더가 되었다. 그보다 한 해 전 그는 가끔 보여주던 불손한 유머 감각에 어울리는 회화양식을 발견했으며, 뉴욕의 유명한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곧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 강사직을 그만두었다. 사실 <조지 워싱턴>은 리히텐슈타인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연재만화에 속하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이 '초상화'는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세계를 탐색하는 동안 만나게 될 많은 생각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전형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첫째로, 작품의 주제가 유명하고 영웅적이면서 평범하고 심지어 촌스럽기까지 하다. 둘째, 18세기 미국 회화의 싸구려 복제화에서 이미지를 차용했다. 길버트 스튜어트는 이미 100점 이상의 워싱턴 초상화 복제화를 그렸다. 그러니 리히텐슈타인의 워싱턴 초상화는 원작의 복제의 복제의 복제쯤 될 것이다. 유머뿐 아니라 이 작품의 모순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셋째, 리히텐슈타인의 회화 기법은 대량 생산되어 신문에 인쇄된 원본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런 성공은 오랜 기다림 끝에 이룬 것이었다. 1962년 마흔에 가까웠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이렇다 할 경력도 없었고 그저 반쯤 출세한 정도였다. 그는 1923년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정상적'이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듯하다. 아버지는 차고 및 주차장 전문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그의 가정에 예술적인 경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말할 때 굳이 그런 사실까지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열두 살까지 공립학교에 다녔고, 이후에는 사설 아카데미에 다녔다. 미술과목이 없었는데도 드로잉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집에서 취미로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무렵 재즈 팬이 된 그는 할렘의 아폴로 극장과 52번가의 재즈 클럽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보러 다녔다. 그는 벤 샨 같은 미국 화가들처럼 음악가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종종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그리기도 했다. 청년 리히텐슈타인은 가장 흥미진진한 문화적 영감을 찾아 뉴욕을 배회했다. 재즈에 매혹된 일은 그가 시각예술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입체주의 화가들이 흑인 문화를 애호한 것에 공감했고, 아프리카 미술뿐 아니라 미국 재즈도 좋아했다.
아카데미에서 보낸 마지막 해인 1939년에 리히텐슈타인은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 개설된 레지널드 마시의 여름 강좌에 등록했다. 그는 마시가 학생들의 작업을 가까이서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둘 사이에 인간적 관계는 형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시는 리히텐슈타인의 첫 스승이었으므로 그의 영향, 혹은 반(反)영향을 간단히 살펴보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마시는 마치 풍자화처럼 알아보기 쉽게 일상의 주제를 그리는 데 중점을 두었던 국가미술에 찬동한 수많은 미국 화가 중 하나였다. 그는 알아볼 수 있는 세계를 다루었으며, 입체주의나 미래주의 같은 전위적인 유럽 추상미술을 거부했다. 이 사조들은 1913년 뉴욕, 시카고, 보스턴에서 열린 아모리 쇼를 통해 미국에 소개된 이후 더 유명해졌다. 그러나 마시의 관점에서는 유명해졌다기보다는 '악명 높아진' 것이었다. 이런 전위미술은 마시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는 추상을 거부하고 오히려 회화성을 고수했다. 마시는 대중에게 매력을 느껴 사람들의 얼굴을 빠른 붓놀림으로 묘사했으며, 놀이공원과 해변, 코니아일랜드, 지하철 등 색과 움직임으로 가득찬 도시풍경을 주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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