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쿠미코: 도해 서양화
- 책 밑줄긋기/읽은 책
- 2026.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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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 서양화 |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28 | 다나카 쿠미코 - ![]() 다나카 쿠미코 (지은이),김상호 (옮긴이)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시작하며
이 책을 읽는 법
1장 서양화란 무엇인가?
기원전~14세기 서양화의 원류
15세기~16세기 미의 대혁명 「르네상스」
19세기 후반 인상파와 그 시대
2장 미의 약동, 르네상스~바로크 시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 관계도
프로토 르네상스(후기 고틱) 지오토 디 본도네 /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
전성기 르네상스 산드로 보티첼리 / 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모나리자(라 조콘다)
후기 르네상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최후의 심판
전성기 르네상스 라파엘로 산치오 / 아테네 학당
북부 르네상스 얀 반 에이크 /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알브레히트 뒤러 / 1500년의 자화상
전성기 르네상스(베네치아파) 티치아노 베셀리오 / 성모 승천
마니에리슴 아뇰로 브론치노 / 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
바로크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 성 마테오의 소명
페테르 파울 루벤스 / 십자가를 세움
렘브란트 판 레인 / 목욕하는 밧세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요하네스 베르메르 / 우유 따르는 여인
로코코 앙투안 와토 / 키테라 섬의 순례
전기 낭만주의 프란시스코 데 고야 / 옷을 벗은 마하
3장 격동의 19세기, 근대의 명화
인상파 탄생까지의 인물 관계도
신고전주의 자크 루이 다비드 / 소크라테스의 죽음
도미니크 앵그르 /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낭만주의 외젠 들라크루아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 비, 증기 그리고 속도¬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바르비종파(사실주의) 장 프랑수아 밀레 / 이삭 줍는 사람들
상징주의 귀스타브 모로 / 환영
라파엘 전파 존 에버렛 밀레이 / 오필리아
인상파 에두아르 마네 /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오귀스트 르누아르 /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
클로드 모네 / 수련의 연못, 녹색의 조화
후기 인상파 빈센트 반 고흐 / 해바라기(15송이)
신인상주의(후기 인상파) 조르주 쇠라 /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후기 인상파 폴 고갱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신인상주의(후기 인상파) 폴 시냐크 / 빨간 부표, 생 트로페
후기 인상파 폴 세잔 / 커다란 소나무와 생트 빅투아르 산
상징&표현주의 에드바르 뭉크 / 절규
아카데미즘 회화 장 레옹 제롬 /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여신에서 시작된 나부(裸婦)의 변천
4장 자유분방한 20세기의 명화
유겐트슈틸 구스타프 클림트 / 키스
추상주의 바실리 칸딘스키 / 콤포지션Ⅷ
표현주의 외 파울 클레 / 세네시오
에콜 드 파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잔 에뷔테른
세계사와 함께 보는 서양회화사 연표
주요 참고문헌.사진제공
작가명순 게재사진 INDEX
10 서양화의 원류
기원전 30세기경,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는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후, 신을 모방한 조각이 생겨나고, 예술은 마침내 그리스도교와 융합하여 발전해갔다.
고대 조각과 그리스도교 서양화의 두 갈래 흐름
서양화의 원류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700년 이래,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조각 작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약동감 넘치는 육체미는 그 후 그리스를 멸망시킨 고대 로마인도 매료시켜, 복제 작품도 많이 제작되었다. 그것들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서양 회화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회화 작품은 조각과 달리 거의 남아있지 않다. 기껏해야 건축물에 그려진 벽화나 도기 정도이다. 그중 하나가 79년에 화쇄류에 파묻힌 폼페이 벽화다. 신화를 주제로 한 사실적인 인체 표현에서 고대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그리스도교 미술이 탄생하는 것은 로마 제국 때의 일이다. 카타콤베라고 불리는 지하공동묘지에서 상징적인 색조가 두드러진 장례 미술로서 탄생했다.
313년, 그리스도교가 정식으로 인정되자 그리스도교 미술은 지상으로 그 무대를 옮겨 전개되었다. 새로 건립된 교회당을 장식하는 벽화,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이나 전례에 관계된 회화, 공예품 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비잔틴 미술과 로마네스크 미술
중세의 서양미술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시작된 인간을 중심으로 한 자연주의적 표현, 다른 하나는 켈트 민족과 게르만 민족에서 유래하는 인간 표현을 모르는 추상적, 장식적 표현이다.
비잔틴 미술은 콘스탄티노폴리스(현재의 이스탄불)를 수도로 하는 동(東)로마 제국에서 꽃핀 미술로, 1453년에 오스만 터키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이어진다. 고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고대 아시아나 사산조 페르시아의 미술을 받아들여 동방 특유의 그리스도교 미술을 발전시켰다.
서(西)로마 제국은 476년에 게르만족에게 함락되었고, 이후 서유럽에는 게르만 민족의 국가가 세워졌다. 그리고 그곳에 그리스도교가 침투하여 게르만 민족의 추상적, 장식적 표현과 엮이면서 미술도 독특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꽃핀 것이 11세기경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로마네스크 미술이다. 과장된 뒤틀림, 환상적인 부조 조각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다음 시대에 등장한 고딕 미술은 도시에 건설된 대성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교회를 장식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이 시기의 특징이다. 도시 문화가 발달하면서 미술 애호가는 성직자와 왕후 귀족뿐 아니라 시민계급까지 더해졌고, 조각과 회화는 더욱 친숙하고 자연주의적인 것으로 변화해간다. 또한, 템페라 기법으로 그려지고 운반이 가능했던 패널화(제단화)의 탄생도 빼놓을 수 없다.
12 미의 대혁명 르네상스」
15세기 초, 고대 문화의 부흥과 재생을 추구하는 예술운동인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등의 거장을 낳은 대변혁기의 굵직한 흐름을 살펴보자.
13세기 말에 싹튼 르네상스의 전야
15세기 초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을 휩쓴 예술운동이 바로 르네상스다. 「부흥·재생」을 의미하는 이 이름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인간미 넘치는 표현을 다시 되살리자는 취지에서 붙여졌다. 르네상스의 특징으로는 사실적이고 육감적인 인체 표현, 음영법과 원근법 등에 의한 입체감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다채로운 표현이 가능해진 것은 15세기 초부터 「유채화」가 보급된 점이 크게 작용했다. 르네상스 회화는 이미 13세기 말에 싹트기 시작했다. 그 무대는 당시 유럽 경제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였다. 시인 단테를 포함하여 많은 예술가들이 활약했던 피렌체에서는 이탈리아 회화의 시조로 불리는 치마부에와 그를 이은 제자 지오토가 혁신적인 화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오토는 「서양화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화가로, 극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종교화를 그려 회화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는 그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피렌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도시 시에나에도 르네상스의 선구자가 된 화가들인 「시에나파(派)」가 등장했다. 시에나파의 원조 격인 두치오는 섬세하고 정서적인 장식으로 종교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두치오의 제자인 시모네 마르티니도 프랑스 고틱을 도입하여, 우아하고 아름다운 성인(聖人)을 그리면서 이탈리아 각지에서 활약했다. 토스카나 주의 2대 도시인 피렌체와 시에나가 르네상스를 이끌어간 거점이었던 것이다.
천재들이 절차탁마했던 피렌체의 황금기
지오토와 제자들이 활약했던 13~14세기를 프로토 르네상스라고 부르며, 15세기 이후는 초기 르네상스로 구분된다. 그 무대는 역시 피렌체였으며, 조각가 도나텔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 화가 마사초가 초기 르네상스의 3대 거두로 불린다.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는 원근법을 도입한 최초의 회화작품 중 하나로 간주된다. 깊이감 있는 묘사, 고대풍의 건축모티프, 힘 있는 인물 표현은 그야말로 르네상스 회화의 진수다.
15세기 중반 이후는 전성기 르네상스다. 이 무렵부터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의 지배를 받으며 예술 활동이나 문화 활동이 보호받는 황금기를 맞이한다. 이런 시대, 이런 도시였기에 천재들이 모여들어 르네상스 최고의 풍요로운 시대를 누리게 된 것이다.
이런 천재들 중 한 명인 보티첼리는 메디치가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주문으로 명작인 <프리마베라(봄)>와 <비너스의 탄생>을 그렸다. 보티첼리가 일했던 공방에는 후배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있었다.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도 한때 피렌체에 머물렀던 라이벌이다. 이처럼 전성기 르네상스는 기라성 같은 거장들이 모여 실력을 갈고 닦으며 경쟁하는 시대였다.
16 인상파와 그 시대
19세기 후반의 프랑스에서는 고전 회화의 규범을 중시하는 아카데미에 대해 반기를 든 예술가들이 등장했다. 모네를 필두로 「인상파」라고 불린 그들에 대해서 살펴본다.
아카데미에 도전하는 반골의 화가 마네
17세기에는 드라마틱한 연출과 극적인 명암이 특징인 바로크가 등장한다. 18세기에는 화려하고 섬세한 로코코가 귀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태어난 것이 인상파다. 이 인상파는 이후 서양 회화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미술 역사에 대변혁을 가져온 화파이다.
인상파가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18세기 후반의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이 있다. 근대화가 진행되어 시민에 의한 변혁의 기운이 높아진 프랑스에서 젊은 화가들이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신고전주의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신고전주의란 바로크와 로코코의 과도한 표현을 거부하고,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의 부흥을 꾀한 르네상스로 회귀하자는 주장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아카데미의 심사에 합격하여 살롱(정부가 주최하는 전람회)에 출품된 작품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아카데미가 선호했던 것은 신고전주의다운 매끄러운 필치로 그려진 역사화나 종교화였다. 풍경화나 풍속화는 격이 낮은 것으로 치부되어 평가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그런 권위주의에 반발하여 살롱에 계속 도전했던 것이 마네였다. 그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에서 당시 터부시되었던 현실 세계의 여성 누드를 그려서 일대 스캔들을 일으켰다. 머지않아 마네의 옆에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젊은 화가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바로 이 화가들이 인상파라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게 된다.
젊은 화가들에 의한 인상파 전람회가 시작되다
1860년대, 마네의 아틀리에로 모여든 화가는 모네와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레, 세잔 등이다. 구태의연한 살롱에 실망해 있던 그들은 1874년에 자신들의 그룹 전람회를 개최했다. 훗날 「인상파전(展)」으로 불리며 제8회까지 계속된 전람회가 첫 시작을 알린 것이다.
이 전람회에 출품된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인상파라는 호칭의 유래이다. 비평가 루이 르로이는 이 그림과 연관지어 인상주의자의 전람회다라고 비판했다. 그 말에는 불완전한 것이라는 뉘앙스가 있었기에, 당초에는 부정적인 의미로서 이 화가들을 「인상파」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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