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 책 밑줄긋기/읽은 책
- 2026.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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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 에셔, 바흐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지은이),안병서,박여성 (옮긴이)까치 |
GEB 20주년 기념판 서문
책의 구성
감사의 말
한국어판 GEB에 부쳐
일러두기
제I부:GEB
서론:음악-논리학의 헌정
제1장 MU-수수께끼
제2장 수학에서의 의미와 형식
제3장 전경과 배경
제4장 무모순성, 완전성 그리고 기하학
제5장 재귀적 구조와 과정
제6장 의미는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가
제7장 명제계산
제8장 활자형 수론
제9장 무문과 괴델
제II부:EGB
전주곡……
제10장 기술층위와 컴퓨터 체계
제11장 뇌와 사고
제12장 마음과 사고
제13장 BlooP와 FlooP와 GlooP
제14장 TNT 및 그것과 연관된 체계들의 형식적으로 결정 불가능한 명제
제15장 체계에서 벗어나기
제16장 자기-지시와 자기-증식
제17장 처치, 튜링, 타르스키 등
제18장 인공지능:회고
제19장 인공지능:전망
제20장 이상한 고리들 또는 뒤엉킨 계층질서들
참고 문헌
추가 참고 문헌
초판 역자 후기
개역판 역자 후기
인명 색인
사항 색인
GEB 20주년 기념판 서문
5 흔히 GEB라고 부르는 이 책 「괴델, 에서, 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은 정말로 무엇을 말하려는 책인가?
내가 이 책의 초고를 펜으로 쓰기 시작한 1973년 이래로 이 질문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친구들은 내가 무엇에 그렇게 사로잡혀 있는지 묻고는 했지만, 나는 그것을 간결하게 설명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몇 년 후인 1980년 GEB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을 때, 책 제목 아래 꼭 써야 하는 한 줄 요약에는 몇 주일 동안 다음과 같은 글이 달려 있었다. "실체는 서로 연결된 노끈들의 체계라고 말하는 한 과학자의 논증." 내가 말도 안 되는 이런 엉터리 문구에 대해서 격렬하게 항의하고 나서야 그들은 마침내 내가 다시 난리치지 않을 정도의 조금 나은, 그저 간신히 들어맞는 문구로 대체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책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수학자, 화가, 음악가에 관한 책. 그러나 비록 이 세 사람의 인물 자체가 탁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책을 대충 훑어보면 이들이 책의 내용에서는 미미한 역할밖에는 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들 세 사람에 관한 책이 전혀 아니다! 자, 그러면 GEB를 "수학, 미술, 음악이 핵심에서 모두 어떻게 같은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하면 어떤가? 이것 또한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를 책을 읽지 않은 사람 뿐만 아니라, 읽은 사람, 심지어 열혈 독자로부터도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서점에서 GEB가 매우 다양한 분야의 선반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학, 일반 과학, 철학, 인지과학(이것은 모두 괜찮다)뿐만 아니라 종교, 비학, 그밖에 신만이 알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분야에 이 책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설명하기가 왜 이다지도 어려운가? 분명히 책 분량 때문만은 아니다. 아니, 그것은 부분적으로 GEB가 꽤 많은 잡다한 주제를 피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푸가와 카논, 논리와 참(truth), 기하, 재귀(recursion), 통사구조(syntactic structure), 환원주의(reductionism)와 전일주의(holism), 개미 군락(ant colony), 개념과 정신표상(mental representation), 번역(translation), 컴퓨터와 컴퓨터 언어, DNA, 단백질(protein), 유전자 코드(Genetic Code), 인공지능, 창조성, 의식(consciousness)과 자유의지(free will), 때로는 미술과 음악조차 이 모든 것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핵심 초점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6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광범위한 혼란은 수년간 나에게 매우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나는 본문에서 내 목적을 되풀이하여 말했다고 분명히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내가 충분히 자주, 또는 충분히 분명하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한 번 더 그렇게 할 기회를 가졌으므로―그것도 책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마지막으로 말하고자 한다. 왜 나는 이 책을 썼는가, 무엇에 관한 것인가, 주요 주제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GEB는 어떻게 생명이 있는 존재가 생명이 없는 물질로부터 나올 수 있는지 이야기하려는 매우 개인적인 시도이다. 자아란 무엇인가? 어떻게 돌이나 흙처럼 자아가 없는 물질로부터 자아가 나올 수 있는가? "나"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이러한 것들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시인 러셀 에드슨이 멋지게 표현한 것처럼 "불안과 희망의 흔들거리는 머리통"과 연관지어서만 나타나는가? 즉 솜털로 덮이고 관절이 있는 두 다리 위에 얹혀져 세상을 어슬렁거리는 움직이는 좌대 위에 놓인 단단한 보호껍질에 들어 있는 끈적거리는 덩어리와 연관지어서만 말이다.
GEB는 다음과 같은 유추(analogy)를 서서히 구축해감으로써 이 질문에 접근한다. 무생물 분자를 의미(meaning) 없는 기호에 비유하고 자아들(또는 "나" 또는 당신이 원한다면 "영혼"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무엇이든)을 특별한, 회전하는, 뒤틀리는, 소용돌이(vortex) 같은 의미 있는 패턴에 비유한다. 그런데 이 패턴은 특정 유형의 의미 없는 기호체계에서만 일어난다. 이 책이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쏟아부은 것은 이 이상하고 뒤틀린 패턴들이다. 왜냐하면 그 패턴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거의 평가되고 있지 않으며, 반직관적이고, 신비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너무 어려워 가늠할 수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이상하고 고리 같은 패턴을 책 전체에서 "이상한 고리(strange loop)"라고 불렀는데, 후반부 장에서이기는 하지만 또한 기본적으로 똑같은 아이디어를 기술하기 위서 "뒤엉킨 계층질서(tangled hierarchy)"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이것이 여러 면에서 왜 M. C. 에셔─더욱 정확히는 그의 미술─가 "황금 노끈"에서 두드러지는가 하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에셔는 자기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내가 이상한 고리에 열광하는 만큼이나 열광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다양한맥락 속에서 그 고리들을 그렸는데, 모두 놀랍도록 혼란스럽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내가 처음 책을 쓰고 있을 때 에셔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또는 우리가 지금 말하는 대로 (이 책의) 고리 바깥에 있었다). 내 책의 임시 제목은 "괴델의 정리와 인간두뇌"라는 좀 밋밋한 문구였다. 나는 장난기 있는 대화는 말할 것도 없고 역설적인 그림을 집어넣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이상한 고리라는 개념에 대해서 쓰는 동안, 나는 내 마음의 눈 앞에 부지불식간에 번뜩이는 이러저러한 에셔의 판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을 붙잡고는 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나는 이 이미지들이 내가 쓰고 있는 아이디어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이 그렇게 강렬하게 느꼈던 그 연결을 독자들에게서 박탈하는 것은 사악한 것 못지않은 일이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에셔의 그림이 책에 실리는 것은 환영받을 수 있었다. 바흐에 대해서는 잠시 후 나의 "마음과 기계에 대한 은유적 푸가" 속에 그가 등장할 때 언급하겠다.
다시 이상한 고리로 돌아와보자. GEB는 내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확신에 의해서 영감을 받았다. 그것은 "이상한 고리"라는 개념이 우리 의식 있는 존재가 존재 또는 의식이라고 부르는 신비를 푸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내게 처음 이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십대 때였다. 그때 나는 쿠르트 괴델의 유명한 불완전성 정리(Incompleteness Theorem)의 증명(proof)의 핵심에 있는 완벽한 이상한 고리의 생각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수리논리학 분야가 자기와 "나"의 본질의 배후에 있는 비밀과 마주치기에는 불가해한 장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네이글과 뉴먼이 쓴 「괴델의 증명(Gödel's Proof)」을 읽을 때에는 책이 나에게 이 책은 이상한 고리에 "나"에 대한 비밀이 있다는 것에 관한 책이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을 들었다.
이 서문이 더 세부적으로 파고들어갈 장소가 아니고 시점도 아니다. 세부적인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 당신이 들고 있는 이 두툼한 책이 쓰인 이유이다. 따라서 몇 쪽 안 되는 글로 내가 저자를 능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주제넘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바로 말해야겠다. 수학의 형식체계(formal system)(즉, 조작되고 있는 형태 속에 숨어 있는 뜻이나 아이디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완전히 기계적인 기호조작으로 끝없이 수학적 참을 생산하기 위한 규칙 모음)에서 발생하는 괴델류의 이상한 고리는 이러한 체계가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하고 자신에 대해서 말하도록 하게 하고 "자기 인식이 되도록 하는 고리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고리가 있음으로써 형식체계가 "자기 자신을 획득한다"고 말하는 것이 너무 나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의미한 기호가 무의미한 기호임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획득한다.
8 여기서 정말로 기묘한 것은 이 뼈대들을 갖춘 "자기들(selves)"이 생겨나는 형식체계는 다름 아닌 의미(meaning)가 없는 기호들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자기는, 의미가 없는 기호들 가운데서 오로지 특수한 유형의 비틀리고 헝클어진 패턴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지금 고백한다. 내가 반복해서 "의미가 없는 기호들"이라는 말을 (위의 두 문장 속에서처럼) 쓸 때, 나는 다소 거북하다. 왜냐하면 내 책 속에서 핵심적인 논증 부분은, 충분히 복잡한 동형성(isomorphism)이 일어날 경우, 형식체계로부터 의미가 끼어들지 않게 할 수 없다는 아이디어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의미는 기호들이 의미가 없도록 최대의 노력을 기울임에도 불구하고 들어온다!
조금 전문적인 용어인 "동형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바로 앞에 있는 몇 개의 문장을 다시 말해보겠다. "의미가 없는" 기호들로 이루어진 체계에 세상의 여러 현상들을 정확히 추적하거나 반영하는 패턴이 그 속에 있을 때, 그 추적이나 반영은 기호들에 어느 정도 의미를 불어넣는다─사실 그러한 추적이나 반영은 더 도 덜도 아닌 의미이다. 추적이 얼마나 복잡하고 교묘하고 신뢰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의미의 정도가 다르게 일어난다. 여기에서는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겠다. 왜냐하면 이것은 본문에서 특히 제2, 4, 6, 9, 11장에서 매우 자주 다루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형식체계와 비교하여, 인간 언어는 현실을 추적하는 패턴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동적이고 미묘하다.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형식체계 속의 기호들은 상당히 무미건조해 보일 수 있다. 사실 별 어려움 없이, 우리는 그것들이 완전히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낯선 표기체계로 쓰인 신문을 쳐다볼 수 있는데 그 이상한 모양들은 놀랍도록 복잡하지만 완전히 무의미한 패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따라서, 인간 언어 조차도, 그것이 비록 풍부하지만, 외견상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사실, 기호들 자체의 패턴들(얼마나 복잡하거나 역동적이든 상관없이 책, 영화, 장서, 시디롬, 혹은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것들)은 자체에는 결코 의미가 없고, 대신 의미는, 어떤 매우 신비한 방법으로, 탄소를 기초로 하는 생물의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의 유기화학 또는 아마도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에서만 튀어나온다고 믿는 철학자나 과학자들 등이 아직도 상당수 있다. 나는 비록 이 편협하고 생물-중심적인 견해를 참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견해가 직관에 호소하는 바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뇌의 우위, 특이성을 믿는 사람의 입장에 서 보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의미론적 마술”이 우리의 "흔들거리는 머리통" 속, 두 눈동자 뒤쪽 어딘가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들은 이것이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런지에 대해서 전혀 확실하게 지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그들은 이 의미론적 마술이야말로 인간의 자기(human selves), 영혼, 의식, "나들"("T"'s)이 존재하는 원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사실, 자기와 의미─달리 말하면 그 나들과 의미들─가 한 가지 같은 원천에서 튀어나오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과 상당히 일치한다. 내가 이 사람들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지점은 이러한 현상들이 전적으로, 비록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뇌의 미시적인 하드웨어에 갖추어진 어떤 특별한 특성 때문이라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이다.
내가 보기에는, "나"와 의식이 무엇인가라는 이 마술적 견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비록 불쾌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자신에게 다음 사항을 일깨우는 것이다. 즉 우리 자신의 두개골 속에 안전하게 자리잡고 있는 "불안과 희망의 흔들거리는 머리통"은 순수하게 물리적인 물체로서 그것을 구성하는 성분은 완전히 메마르고 생명이 없으며, 모두 텍스트 조각이나 시디롬이나 컴퓨터와 같은 우주의 다른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법칙들과 똑같은 법칙들을 정확히 따른다. 우리가 이 혼란스런 사실을 향해서 계속 부딪쳐야만 의식의 신비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감을 서서히 키우기 시작할 수 있다: 핵심은 뇌를 구성하는 물질이 아니라 뇌의 물질 내부에서 생길 수 있는 패턴들이다.
이것은 획기적인 전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뇌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다른 차원으로 옮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즉 비록 완벽과는 거리가 멀지만, 세상을 반영하는 복잡한 패턴들을 지원하는 매체로서 뇌를 보게 해준다. 말할 필요도 없이 뇌 자체는 자신이 반영하는 세상의 주민이다. 그리고 의식의 이상한 고리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는 것은, 아무리 공정하거나 또는 불완전하더라도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자기-반영(self-mirroring) 속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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