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모나드론 외
- 책 밑줄긋기/읽은 책
- 2026.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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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드론 외 | 고전의 세계 리커버 | 라이프니츠 - ![]()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지은이),배선복 (옮긴이)책세상 |
들어가는 말
이성에 근거한 자연과 은총의 원리
모나드론
해제│라이프니츠-신, 세계, 모나드를 말하다
1. 17세기 보편천재의 일생
2. 이성과 신앙의 원리, <이성에 근거한 자연과 은총의 원리>
3. 라이프니츠 철학의 유언서, <모나드론>
4. 현대적 의의
주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이성에 근거한 자연과 은총의 원리
§1. 실체는 활동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다. 이것은 단순하거나 합성되어 있다. 단순실체는 부분을 갖지 않는 존재자다. 합성된 것은 단순실체들의 집합이거나 모나드들이다. 모나스Monas는 통일 또는 하나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합성된 것들은 다수성을 지닌다. 단순실체, 살아 있는 것, 영혼들 또는 정신들은 통일성을 지닌다. 단순실체 없이는 복합실체도 없기 때문에, 도처에 단순실체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전체 자연은 풍요로운 생명으로 가득 찼다.
§2. 모나드는 부분을 갖지 않기 때문에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 당연히 그들은 시작할 수도 끝날 수도 없다. 모나드는 변화하기는 하지만, 파괴될 수 없는 우주처럼 오랫동안 지속된다. 모나드는 형태를 가질 수 없다. 형태가 있다는 것은 부분을 가졌다는 것을 전제한다. 따라서 하나의 모나드를 그 자체로서 그리고 한 시점에서 이해하자면, 그 모나드는 오직 그의 내적인 질과 상호활동에 의해서만 하나의 다른 모나드와 구분된다. 이들은 (말하자면 합성된 것의 표상이거나, 또는 단순한 것에서 외부에 있는 것에 대한) 지각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욕구는 변화의 원칙(말하자면 하나의 지각에서 다른 하나의 지각으로 나아가려는 지향으로서의 성향)과 다르지 않다. 실체의 단순성은 바로 동일한 이 단순실체 안에서 발견되어야 양태의 상이한 다수성을 방해하지 않고 그리고 그들은 그들 외부의 사물들과 관계의 다양성에서 존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의 중심점과 같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게 있어서, 거기에서 선이 형성되므로 하나의 무수한 각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3. 만물은 자연 안에 꽉 찼다. 자연에는 도처에 끊임없이 그들 상호 간의 비율을 변화시키는 적절한 활동에 따라 사실적으로 구분되는 단순실체들이 있다. 그리고 모든 단순실체나 선별된 모나드는, (예를 들어 하나의 동물에서처럼) 하나의 복합실체의 중심에서 그 자신을 통일성의 원칙으로 만들고 무수한 다른 모나드로 합성된 하나의 질량에 둘러싸인다. 이러한 것들은 정서에 따라, 중심을 따라 (무수한 선분들과 각을 만드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외부에 놓인 사물들을 표상하는 모나드의 고유한 몸을 형성한다. 그리고 만약 이 몸이 주의를 기울여 전체뿐 아니라 아주 작은 부분까지 알아차릴 수 있는 기계라면, 일종의 자동기계 또는 자연기계라면, 그 몸은 유기적이다. 만물은 세계의 충만으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몸은 다른 몸과 거리에 따라 작용하고 또 그것에서 반작용하기 때문에, 모든 모나드는 자신의 방식으로 우주를 표상하고 또한 우주 자신처럼 통제되어 있는 하나의 생생하고도 내적인 활동 능력이 있는 거울이다. 모나드 안에 있는 지각들은 규칙적이든 불규칙적이든 지각에 존립하는 상호 간에 일어나는 욕망의 법칙이나 선과 악에 대한 최종원인에 따라 생겨난다. 몸의 변화와 그의 외적인 현상들은 작용원인, 말하자면 운동법칙에 따라 생겨나는 듯하다. 그래서 모나드의 지각과 몸의 운동 사이에는 처음부터 작용원인 체계와 목적원인 체계 사이에 예정되어 있는 완전한 조화가 있다. 또한 거기에는 하나가 다른 하나의 법칙을 변경하지 않고 일어나는 영육의 일치와 물리적 합일이 있다.
모나드론
§1. 우리가 여기서 말하려는 모나드는 복합적인 것 안에 있는 단순실체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부분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2. 복합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단순실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복합적인 것은 단순실체들의 무더기나 집적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3. 그러나 부분이 없는 곳에서는 연장도 형태도 없으며 나뉠 수도 없다. 그래서 모나드는 자연의 참된 원자이고 한마디로 만물의 원소다.
§4. 만물의 원소들 또한 자신들의 해체를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어떤 방식으로도 하나의 단순실체가 자연스럽게 소멸될 수 있는지를 파악할 길은 없다.
§5. 어떤 단순실체도 합성된 것에서 형성되지 않는다. 같은 이유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하나의 단순실체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지를 파악할 길은 없다.
§6. 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나드가 오직 한순간에서만 생겨나거나 끝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모나드는 오직 창조를 통해서만 생겨날 수 있고 파멸을 통해서만 사라질 수 있다. 반면 복합적인 것은 부분에 의해 시작하거나 끝난다.
§7. 어떻게 하나의 모나드가 어떤 다른 피조물에 의해 질적으로 또는 내적으로 변경되거나 변화될 수 있는지 또한 설명할 수단이 없다. 왜냐하면 모나드 내부에서는 위치를 변경하거나 생산 증가· 감소하는 운동을 지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합적인 것에는 부분과 부분의 변화가 있으므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모나드들에는 만물이 들락날락할 창이 없다. 스콜라철학자들이 감각 종을 그렇게 취급했던 것처럼, 우유는 실체와 분리할 수도 없고 실체와 별도로 외부에서 배회할 수도 없다. 따라서 실체나 우유는 모나드의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갈 수 없다.
§14. 통일이나 단순실체 안에서 하나의 다수성을 포함하고 표상하는 경과 상태는 사람이 지각이라고 부르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은 뒤이어 보는 대로 통각 또는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명백하게 구분해야 한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는 지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이 실수는 정신들만이 모나드이고, 짐승들의 영혼이나 다른 완전현실물체들은 없다는 가정을 낳았다. 그리고 이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무의식 상태를 대중적인 관점에 따라 죽음과 혼동하게 했으며, 영혼이 물체와 철저하게 분리되었다고 여기는 스콜라적인 선입견과 영혼도 죽는다는 왜곡된 견해를 강화시켰다.
§29. 그러나 필연적이고 영원한 진리에 대한 인식은 우리를 단순한 동물과 구분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우리를 신의 인식으로 끌어올리며 우리에게 이성과 과학을 부여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우리 안에 있는 합리적 영혼 또는 정신이라는 것이다.
§30. 필연적인 진리 인식과 추상력은 우리로 하여금 나라고 불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우리 안에 이것이 있는지 아니면 저것이 있는지 헤아리는 반성작용을 유도한다. 우리가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한우리는 존재, 실체, 단순한 것 또는 복합적인 것을 생각하고, 우리 안에서 유한한 것은 신 안에서는 무한하게 발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작용은 우리의 이성 인식에 중요한 내용을 제공한다.
§37. 그리고 각각의 사안은 유사한 분석이 필요한 선행하는 다른 우연성 또는 특수한 우연성을 포함하기 때문에 이 모든 범례적인 사안에 대해 사람이 이유를 캐내려고 한다면 진전될 수 없다. 충족이유 또는 궁극이유는 이들이 얼마나 무한하게 나아갈 수 있건 간에 귀결이나 우연성에 있는 범례화의 잇달음 외부에 놓여 있어야 한다.
§38. 그래서 사물의 최종원인은 세부적인 변화의 범례성보다 근원적으로 탁월하게 존재하는 필연적 실체 안에 놓여 있어야 한다. 이 실체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신이다.
§90. 마지막으로 이 완전한 정부에서는 상없는 선한 행위가 없을 것이고, 벌 없는 악한 행위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만물은 선한 복에 봉사해야 한다. 만물, 즉 이 위대한 국가에 불만이 없는 자, 자신의 의무를 다한 뒤에 예견을 신뢰하는 자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의 행복에 기쁨을 솟구치게 하는 진실로 순수한 사랑의 본질을 따라서 만복의 창조자를 사랑하고 모방하며 그의 완전성을 고찰하는 기쁨에 봉사하게 된다. 이러한 고량考에서 현명하고 유덕한 인간은 추정할 근거가 있거나 선취된 신의 의지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일에 헌신한다. 만약 우리가 우주의 질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건축가나 존재의 작용원인으로서뿐 아니라 의지의 전체 목표를 형성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목적원인으로서 만물의 창조자에게만 헌신한다고 하자. 가장 현명한 자의 모든 희망을 초월해서 지금의 우주보다 더 좋은 우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점을 인정하는 한 유덕한 인간은 일반적으로 전체를 위할 뿐 아니라 특별히 우리 자신을 위해서 신이 그의 비밀, 추론이나 결정으로 일정한 의지에 따라 세계에 실제로 일어나도록 하는 경우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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