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05 맥베스/오셀로 3

 

 

맥베스 - 10점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아침이슬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0718 22강 맥베스/오셀로(1)

20130725 23강 맥베스/오셀로(2)

20130801 24강 맥베스/오셀로(3)

20130808 25강 맥베스/오셀로(4)

20130822 26강 맥베스/오셀로(5)

 


20130801 24강 맥베스/오셀로(3)

<맥베스> 3막을 보자.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읽을 때 <맥베스>부터 읽으면 좋다. 스토리가 우선 단순하고, 맥베스의 성격 변화, 내면의 변화가 없다. 외부에서 주어진 요건에 따라서 변화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고대 드라마와 같이 인간의 성격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미 정해진 운명에 따라서 운명에 순응하느냐 거부하느냐 뿐이다. 근대 드라마는 성격의 내면의 변화가 있다. <맥베스>에서는 없지만  <오셀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말그대로 드라마틱한 내면의 변화가 <오셀로>에 있다. 

 

<맥베스>는 고대 희랍 드라마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고뇌하는 인간형이라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1막, 2막을 지나서 3막부터가 파멸로 향해가는 데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어떻게 파멸하는가는 외부의 요건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만 잘 추적해서 들어가면 찾아낼 수 있다. 

 

3막1장

뱅쿼가 등장한다.

59 뱅쿼: 그대는 이제 손에 쥐었다. 왕, 코더, 글래미스, 모든 것을

          운명 자매들이 약속했던 대로, 그리고 아무래도

          그걸 위해 아주 비열한 행동을 했어. 

 

맥베스는 자기가 용감하기 때문에 왕이되었다고 생각한다. 왕이 되었을 때 확실하게 자기가 왕이 되는데 필요한 정당화 근거들을 찾아나간다. 

 

62 맥베스: 그게 지금 우리가 두 번째로 만나는 요점일세.  자네들은 정말

          천성에 인내가 얼마나 압도적이라고 보길래

          이런 일을 그냥 둔단 말인가? 그렇게 복음 정신이 충만한가,

          이런 자를 위해, 이런 자의 자손을 위해 기도를 할 정도로?

          이자의 무거운 손이 자네들을 무덤을 향해 짓누르고

          자네들 가족을 영원히 거지로 만들지 않았나?

 

그렇게 복음 정신이 충만한가, 중요한 대사다. 기독교를 경멸하는 태도. 지난 번에  christian tradition과 pagan tradition의 대립구도를 설명했다. 맥베스는 지금 자신이 기독교 정신으로 충만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자객을 보내서 덩컨의 아들들을 죽이려고 보낸다. 맬컴은 잉글랜드로 갔고, 도널베인은아일랜드로 갔다. 그 다음에 맥베스가 조치를 취하고 있을 때 맥베스 부인이 나온다. 이제부터 맥베스 부인을 살펴볼 때가 되었다. 사실은 굉장히 극악무도 했는데 먼저 무너진다. 무너질 때는 징조가있어야 한다.

 

3막 2장

66 맥베스 부인: 아무것도 차지 모하고, 모든 걸 탕진한 셈이 되지,

          욕망이 행복 없이 이뤄진다면.

          더 편하겠지. 우리가 파괴한 바로 그것이 되는게,

          파괴 때문에 의심스로운 기쁨으로 사는 것보다는.

 

66 맥베스: 우린 뱀을 물어뜯었을 뿐이오, 죽이지는 못했어.

맥베스는 여전히 갈등을 하고 있고 불안한다.

 

3막에서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주고받는 대화는 굉장히 멋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절정의 순간에 올랐을 때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원하는 만큼 더 빨리 절정의 순간에서 떨어져 내린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 오바하면 죽는다는 것. 갑의 자리에 올랐을 때 일수록 겸손해야 하는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욕망을 확 드러내어보이는것. 이렇게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3막 4장

72 맥베스: 발작이 다시 도진다. 그놈 아니면 난 완벽했어.

          대리석처럼 온전하고, 바위처럼 꿈쩍도 않고,

          주변 공기처럼 드넓고 거리낌 없었겠지.

 

자객들을 보냈는데 플린스가 도망을 가버렸다. 다 없애버리고 싶은 완벽하게 자기의 왕위를 만들어두고자 하는, 완벽을 향한 욕망이 무한히 증폭되어서 뿜어져 나오는 것. 인간이라는 존재는 근본적으로 필멸의 존재이고, 완벽을 향해서 욕망을 뿜어봤자 완벽해 지지도 않는데 그렇게 뿜고 있다. 고대 희랍 드라마나 근대의 드라마나 마찬가지로 필멸의 존재를 바닥에 깔고 있다. 깔지 않은 텍스트는 <신곡> 밖에 없다. 

 

그리고 맥베스가 욕망을 무한한 증폭시켜가면서 판타스틱한 자기과시, 비현실적인 자기 과시가 나온다. 오셀로에서도 나오기 때문에 알아두어야 한다. 3막 4장의 바로 이 말이 맥베스가 비현실적 자기 과시의 절정에 이르렀는데 하는 말이다.

 

76 맥베스: 사내대장부가 하는 일은, 나도 다 할 수 있어.

          다가오라, 누덕옷 러시아 곰처럼.

          중무장한 코뿔소처럼, 혹은 히르카니아 호랑이처럼.

          와 보라고, 그런 모습으로만 말고, 그럼 결코 떨지 않는다,

          내 단단한 힘줄은. 아니면 다시 살아나든지,

 

'사내대장부'라는 말은 맥베스 정체성을 이루는 것에서 핵심적인 부분.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규정하느냐 ,드라마 같은 것을 읽을 때 이 부분을 유념할 것. 

 

76 맥베스: 그리고 사막 끝까지 맞서 보거라, 네 칼로.

          그때도 내가 벌벌 떨며 주저한다면, 나를

          계집애 인형이라 불러도 좋다. 꺼져라, 끔찍한 그림자,

          비현실적인 조롱이로다, 꺼지라니까!

                    (유령 퇴장)

          그렇군, 가 버리까,

          난 다시 사내가 되었어.

 

유령은 supernatural한 것. 그런데 사실은 이 말 자체에 맥베스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 있다. 처음에 드라마를 시작할 때 마녀들이 하는 말을 듣고 신났었다. 결국은 이 사람은 supernatural한 힘에 의존하는 사람. 그런데 왕이 되니까 더이상 의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것이고, 자신이 유령을 진정으로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이런 말을 했던 맥베스가 마녀를 다시 찾아간다든가 하면 끝장이 나는 것. 어느 지점에서 맥베스가 다시 supernatural한 것을 다시 찾는지 찾아봐야한다. 맥베스는 여기서 오버의 절정에 이르렀고, supernatural을 잘 다룰 수 있는 것처럼 호언장담을 했다.

 

78 맥베스: 피를 볼 거냐고, 사람들은 말하지. 피는 피를 부른다고.

          돌들이 움직이고, 나무들이 말을 한단다,

          점괘와 숨겨졌다 드러난 인과 관계를,

          점쟁이 까치와 붉은 부리까마귀와 당까마귀들이 발설했단다,

          가장 은밀한 살인의 비밀을. 밤은 어떤가?

 

78 맥베스 부인: 아침과 사이가 나쁘군요, 밤인지 아침인지 모를 정도로.

 

여기서부터 반전이 시작되고 맥베스가 파멸에 이르는 계기들이 하나씩 차곡 차곡 들어난다.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은 음로를 꾸며서 덩컨왕을 죽였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밤의 상태에 있는 사람. 아침과 사이가 나쁘군요라는 말은 세상은 아침이 되지만 맥베스 부인은 밤 속에 있는 것. 

 

78 맥베스: 맥더프가 짐의 부름에 

          불응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78 맥베스: 그리고 일찍, 그 운명 자매들한테 가 볼거야.

 

맥베스는 사실 밤인지 아침인지 모를 정도로 불안한다. 앞장에서는 유령을 퇴장시켜놓고 세 마디도 안되서 다시 운명을 자매들을 부른다. supernatural한 힘에 기대려고 한다. 권력을 얻었기 때문에 맥베스가 가지게 되는 강력한 집착이 무엇이냐면 미래를 갖고 싶어한다. 운명의 자매들한테 가본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예언을 더욱더 갈증나게 찾고 자기자신은 초자연적인 것 또는 미래를 다룰 힘도 없으면서 갈구한다. 그런데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이제 결국에는 운명의 자매들에게 계속해서 물어보는 것. 분에 넘치는 것을 바라고 있다. 

 

여기서 아직까지는 맥베스 부인은 제정신이다. 

 

78 맥베스 부인: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온갖 자연의 보존자, 잠이에요.

자연의 보존자라는 말에 유념할 것.

 

3막 6장.

85 영주: 덩컨의 아들 맬컴이

          이 폭군한테 장남 왕위 계승권을 빼앗기고

          잉글랜드 궁전에 머무는데, 거기서

          성자 왕 에드워드가 워낙 정중하게 대하는지라

          운명의 악의도 전혀

          깎아 내리지 못했죠,

 

성자왕이라는 것에 유념할 것. 원문으로 보면 the most pious Edward with such grace, 아주 경건한 에드워드로 나와있다. 덩컨왕은 기독교적인 정당화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삼지는 못했지만 에드워드를 만난 맬컴은the most pious Edward를 만났기 때문에 기독교 적인 정당화를 얻었다고 하겠다. 

 

86  레녹스: 그게 맥더프에게 올바른

          경고일지 모르지요, 가능한 한 맥베스한테

          멀리 떨어져 있으라는. 성스러운 어떤 천사가

          잉글랜드 궁정으로 날아가 일어 주었으면,

          그의 메시지를. 그가 도착하기 전에 말예요, 그래야 빠른 축복이

          곧 고통받는 이 조국으로 돌아오겠지요,

          저주받은 손이 다스리는 이 조국으로.

 

기독교의 힘으로 맥베스를 물리쳐 버리겠다고 하는, 성전을 하겠다는 것. 맥베스는 애초에 마녀의 힘이 되었건 기독교적인 되었건 초자연적인 영역을 통제하지 못한다. 맥베스를 물리칠 수 있는 핵심적인 힘이 여기서 뚜렷하게 나타내 보이고 있다.

 

4막1장

92 첫 번째 망령: 멕베스. 맥베스, 맥베스, 맥더프를 조심하라. 

93 두 번째 망령: 여인에게서 태어난 자 아무도 맥베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나니.

 

있는 그대로 읽으면 세상의 모든 사람, 이 말은 다르게 말하면 맥베스가 맥더프를 두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래서 맥베스는 이렇게 말한다.

 

93 맥베스: 그럼담 살거라, 맥더프 - 너를 두려워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맥더프는 정상 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여인에게서 태어난 자로 간주되지 않는다. 피 칠갑한 아이 사실은 자궁을 찢고 나온 아이, 즉 맥더프를 상징한다. 맥베스는 확신을 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구나. 마치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 수수께끼를 풀었을 때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현명한 것으로 확신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5막 1장

의사와 시녀 등장.  a Doctor of Physics and a Waiting Gentle-woman.

 

118 의사: 매우 혼란 스러운 상태야.

 

A great perturbation in nature. '본성이 몹시 어지럽혀져있어' 정도로 번역 할 수있다. nature라는 단어에 대해 유념 할 것. 맥베스 부인이 미쳐가는 과정. 이 당시에 nature라고 하는 것은 대상세계 일반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까지도 포함하는 것. 인간 본성의 혼란이 오는 것이 미친 것이다. 

 

 well-ordered mind 잘 질서잡힌 정신이라고 하는 것에 혼란이 오면 미친 것. 그래서 A great perturbation in nature라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관객들이 이 대사를 들었을 때 맥베스 부인이 슬슬 맛이 가는구나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맥베스 부인이 등장한다. 

 

119 맥베스 부인: 지워져라, 저주받는 얼룩, 지워지라니까, 명령이다.

 

120 의사: 더러운 속삭임들이 유포된 상태요, 자연에 역행하는 행위들이 

          자연에 역행하는 괴로움을 낳는 법.

 

멋있는 말이다. 

여기서 소동파 얘기를 잠시 하겠다.

詩酒趁年華(시주진년화 ) 시읊고 술마시며 세월을 좇으리라 - 東坡

 

소동파 읽는 법. 시는 응축되어있기 때문에 읽기가 어렵다. 우선 산문부터 먼저 읽는다. 적벽부를 읽으면 좋다. 사는 일단 제쳐두고. 시를 한두개 씩 마음에 드는 것을 읽는다. 산문의 특징은 이렇다. 적벽부가 아주 전형적인 것인데 우선 어떠한 사태가 일어났는지 객관적인 사태를 서술하고,  자연 경관이나 설명이 한 문단이 나온다.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자연경관을 설명하는 것. 그 다음에 자연경관에 대한 간략한 해설이 이어진다.  앞에 나온 두 개의 문단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이어진다. 그 다음 문단이 에필로그. 항상 그래서 동파의 시를 읽을 때는 2,3,4문단에 유념해야 한다. 적벽부를 여러번 문단 단위로 읽고, 앞에 나오는 자연에 대한 어떤 서술이 뒤에 나오는 어떤 것과 대응되는 가, 그 다음에 4번째 문단에 나와있는 심정에 대해 파악하면 된다.

 

소동파의 시가 앞으로 백년후에 없어질거라 생각이 드는가. 앞으로 백년 후에 없어지지 않을 것에 대해서 애정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무한한 존숭심을 가지면 그 마음 자리(심처)에서 거기서부터 인문 정신이 생기는 것.

 

 

120 의사: 더러운 속삭임들이 유포된 상태요, 자연에 역행하는 행위들이 

          자연에 역행하는 괴로움을 낳는 법.

 

Unnatural deeds

Do breed unnatural troubles; infected minds 

To their deaf pillows will discharge their secrets.

완벽하게 대구가 된다. 영어가 하나의 레토릭을 만들어 내는 시기.

 

지금 의사가 그렇게 말해놓고 나서 자기는 안된다고 얘기하면서 그녀는 의사보다 성직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미 손을 떠 난 것.

 

120 의사: 그녀에게는 의사보다 성직자가 더 필요합니다.

More needs she the divine than the physician.

그녀는 자연적인 것보다 신성한 것이 더 필요하는 것. 이렇게 해서 맥베스 부인은 끝났다.

 

5막 3장

126 맥베스: 그럼 약은 개나 주시게, 난 싫으니까.

Throw physic to the dogs.

 

5막 5장

131 맥베스: 다음 날에 죽어도 되겠거늘.

          이런 말을 할 날 있었으리라.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

          기어간다. 이런 사소한 속도로 매일매일,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에 이를 때까지.

          그리고 우리들의 모든 어제는 밝혀 주었다, 바보들에게

          먼지투성이 죽음에 이르는 길을. 꺼져라, 꺼져, 짧은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나디는 그림자일 뿐, 불쌍한 연기자가

          무대 위를 잰 체 활보하며 자신의 시간을 안달복달하는 것일 뿐,

          그러고는 더 이상 듣는 이 없는 것일 뿐, 그것은

          백치가 들여주는 이야기,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찼으나,

          아무 의미도 없는.

 

맥베스의 니힐리즘이 정절에 이르는 부분. 죽음은 두렵고, 그런데 여인에게 태어난 자는 나를 죽이지 못하리라는 자심감도 깔려 있고, 자기를 왕으로 세워줬던 맥베스 부인은 이 지경이 되었다. 초자연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사이에서 인간이 왔다갔다 하다보면 인간이 이렇게 되는 것. 여기서 맥베스는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에 이를 때까지', 즉 종말에 이를 때까지. 종말을 느끼고 있다.

 

완전히 자연적인 것을 넘어섰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초자연적인 상태에 이른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서 자기의 과대망상과 지나칠정도로 판타스틱한 자기 과시. 이런 것들이 자기의 아내가 죽음에서 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나서 맥베스는 맥더프의 칼에 죽는다.

 

5막 10장

139 맥더프: 좌절하라, 네 마법,

          그리고 네가 항상 섬겼던 그 악령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맥더프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때 이르게 절제되었다고.

 

 

<맥베스>는 권력과 정의의 문제를 제기하고 시작하였으나 결국 맥베스는 natural힌 것과 supernatural 한 것 사이에서의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좌절하면서 끝났다. 이제 논의가 어떻게 마무리를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맥베스>는 내면의 변화가 없었다. 어떤 권력이 가지고 있는 정당성이 내면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말한 사람들은 플라톤과 공자가 대표적인 사람.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를 알고있는 자만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철학적 통치자를 얘기했다. 좋음의 이데아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내면을 극도로 끌어올려서 숭고하고도 아름답게 끌어올려서 좋음의 이데아를 본 자만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통치자라고 하는 것은 철학적 통치자이어야 하는데 그는 좋음의 이데아를 알고 있는 자이고 본자다. 그러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정당한 근거는 내면에 있는 것. 

 

그 다음에 공자가 있다. 공자는 어진 것으로 다스린다. 仁政 인정이다. 仁政이 모호하니까 왕이 덕을 닦아서 덕으로서 백성을 교화한다고 하는 德敎 덕교.  德敎는 한나라 때 유가를 가리키는 별칭이기도 했다. 유가의 전통이라는 것은 인간의 내면이 권력의 정당한 근거라는 것. 이것을 극대화해서 권력만이 아니라 세상의 살고있는 모든 사람이 또는 리더라고 하는 존재들은 모두다 다 인간의 내면으로서 자기의 리더쉽의 정당성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면 송명이학인 것. 그리고 덕이라고 하는 것이 내면에 있는 것이니까 측정이 불가능하다하여 예로써 교화한다 이것이 순자의 이야기 禮敎. 朱子주자가 송명이학을 정리하면서 道統 도통을 만들어 놨는데 그때 순자를 빼버렸다. 맹자로부터 자신의 정통 학설이 내려왔다고 하면서 순자가 유가에서 빠져나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주자의 판단일 뿐이고, 유가 전통 교리안에 들어간다. 덕교와 예교.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게 뭐냐면 공자가 인으로써 다스린다. 그러나 인만 가지고는 안되니까 正名정명. 이름이 똑바로 있어야 한다. 君君臣臣父父子子. 仁政과 正名. 공자가 말하는 정치적 권력의 정당성 근거에서 仁政부분을 이어 받은 사람이 맹자, 正名 부분은 순자. 이 것을 극대화 하면 천명을 인간이 내려받아서 천명이 즉 성이 된다. 天命之謂性 천명지위성. 송명이학에서는 논어나 맹자보다 중요한 텍스트를 中庸으로 잡는다. 중국 유가의 권력과 정의라고 하는 기본 중에 기본인데 상당히 낡아빠진 얘기인것 같은데 호소력이 강하다.

 

*  中庸(중용)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천명이라는 것, 하늘의 명한 바 또는 하늘의 이치가 성이다. 성은 인간 내부에 있는 것.

인간이 내면을 닦으면 하늘의 이치에 이를 수 있다. 인간 내면의 근거를 하늘에 두는 것.

유가의 전통이라고 하는 것이 사라져서 없어진 것 같지만 권력과 정의의 문제를 다룰 때 꼭 한번씩은 건드려진다. 인간 내면에 있는 덕을 권력의 정당성 근거로 삼는 것도 충분히 호소력이 있는 얘기. 그것 따위도 필요없다고 말하면 마키아벨리가 되는 것.

 

어쨋든 <맥베스>의 내면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이 셰익스피어 드라마에서 근대 르네상스 이후에 드러나는 내면의 변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맥베스>는 그렇지만 셰익 드라마를 읽는 입문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영문판을 꼭 읽을 것

 

 

 

 

 


 

 


MR. WILLIAM SHAKESPEARE - 오셀로

저자
윌리엄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지음
출판사
아침이슬 | 2008-08-01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영웅적인 무어 인(흑인)으로 베니스 군사령관에 오른 오셀로에게 ...
가격비교

 

 

이제부터 <오셀로>를 읽겠다. <오셀로>는 도전적인 드라마다. 일단 이 드라마를 읽을 때 아주 당연한 것이겠지만 우리가 드라마 대본을 가지고 공연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여러분이 감독이라고 해보자. 

 

첫째로 일단 등장은 했는데 퇴장이 없다. 한번 들어오면 다 있어야 한다. 두번째로 등장인물의 나이가 오셀로 말고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 사람을 캐스팅해서 무대를 올린다고 하면 따져봐야 할 것이 많다. 그 다음에 밋밋하게 할 수 없으니 음악도 넣어야 하는데 어떤 음악을 넣어야할지 난감하다. 내가 이 드라마를 실제로 무대에 올린다고 할 때 어느 부분을 어떻게 강조할 것인가는 차지하고서라도 드라마를 만드는 부수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상당히 신경쓰인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일단 드라마를 읽는 힘이 생긴다. 단순히 텍스트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고려할 때 읽는 힘이 생기는 것.

 

그리고 흔히 말하는 대사를 어떻게 칠 것인가. 이아고는 어떤 스타일로 말하게 말 것인가, 그리고 침묵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중요. 대사와 대사 사이의 간격들, 고려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 다음에 드라마를 보면 광대가 나온다. 광대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비극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오락적인 요소가 극대화되어 있는 드라마. 이아고도 사실 이 부분에 기여를 한다. 중간중간에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맥베스>와 달리 드라마가 길기 때문에 광대가 들어가 있는 것. 실제로 퍼포먼스를 한다고 생각하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여기에 보면 드라마의 전개와 관계 없어 보이는 재치있는 말장난. 만담 스타일의 말장난도 잘 처리를 해야한다. 이런 것들이 실제로 공연을 하는 경우에 있어서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하겠다.

 

방금까지 말한 것들은 부수적인 장치지만 필연적으로 반드시 고려해야 할점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핵심은 뭐냐.

첫째 아키텍쳐가 있다. 이 아키텍쳐의 핵심은 오셀로.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못믿어서 사태가 벌어졌는데 못믿었는지 질투였는지, 데스데모나를 바라보는 오셀로의 시선은 어떻게 변해가는가. 그에 따라서 관계가 변화는 부분.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관계 설정을 셰익스피어가 교묘하게 잘 만들어 놨다. 아주 대조적인 인간 두 명을 대놓고 예를 들면 오셀로는 기독교도로 개종한 이교도이면서 나이가 지긋한 검은 무어인이다. 그런데 데스데모나는 베니스 출신의 기독교도이고 어린 백인 여성. 서로 대척점에 서있다. 

 

출발점부터 굉장한 대립구도를 만들어놨기 때문에 확연히 이 둘의 관계가 도대체 관객들은 처음 이 연극을 본 사람은 미리보기가 없으니 오셀로와 데스데모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어떻겠었는가. 나이 많은 검은 무어인하고 백인 기독교 여성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나온다. 엄청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관계 자체가 성립이 안될 것 같은 사람들을 일단 성립을 시켜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그러니 셰익스피어는 표면적으로 오셀로가 이아고의 부추김을 받아 질투에 눈이 멀어 데스데모나를 죽였다라고 하면 그 당시 관객들의 생각들과 똑같은 것이고, 그러면 셰익스피어는 표면적으로 그것을 의도한 것이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에게 지는 것. 데스데모나를 순백의 죄없는 여성으로 본다면 셰익스피어한테 지는 것이다. 독자도 극작가를 이겨버리려는 어떻게 해서라도 데스데모나의 잘못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야 한다. 

 

데스데모나는 과연 순백의 순진무구한 아무런 죄없는 여자 일 뿐인가, 그저 수동적으로 당하는 존재인가, 이아고의 부추김과 오셀로의 변심과 질투만이 이 사태를 이끌고 가는 거다 그러면 이 드라마는 성립이 안된다. 왜냐 데스데모나라는 사람이 하나의 actor로서 있을 필요가 없다. 데스데모나가 하는 짓이 분명히 있다. 그러니가 읽을 때 데스데모나와 오셀로의 관계를 보는데 특히나 데스데모나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철저하게 대립되는 설정에서 시작해서 이 파멸에 이르기까지 데스데모나가 얼마나 기여하는 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게 <오셀로>를 읽을 때 중요한 점이다.

 

그 다음에 두번째로는 이아고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야 한다. 단순하게 나쁜 놈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아고가 악인이냐 선인이냐가 아니라 이아고라고 하는 사람의 성격을 드러내는 대사와 행위들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아고가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오셀로가 움직이지 않은 지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찾아야 한다. 

 

이아고는 이 드라마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 오셀로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데스데모나를 변화시키고 결국 드라마를 역동적으로 가게 만드는 것. 이아고가 연기를 잘해야 한다. 민음사 판의 <오셀로> 해설을 보면 이아고를 비존재로 표현했다. 비존재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비어있는 그릇과 같은 것. 있기는 있는데 구체성이 확정되지 않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것. 이 말이 철학 용어이기 때문에 어렵다. 독일어로 Nicht-Sein 니히트-자인. 이것 자체로 잠재적인 악일수도 선일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다른 것을 계기를 만나서야 비로소 구체화 되는 것이다.

 

이아고가 자기의 성격을 백퍼센트 드러내는 지점도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오셀로 앞에 가면 오셀로 안에 완전히 빨려들어가 있어야 한다. 오셀로가 가지고있는 악한 그것을 건드려서 악을 구현화시키는 것. 뚜렷하게 악인 것은 악이 아니다. 

 

Nicht-Sein 이 개념은 서양철학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전통 속에서만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으려면 예를 들어서 노자 <도덕경>을 보면 수레바퀴가 있는데 구멍이 뚫려 있어야 굴대를 집어 넣어 수레바퀴 역할을 한다. 구멍이 뚫여있으니 空. 실체성이 없다. 하지만 채우면 더 이상 수레바퀴일 수 없다. 비어있는데 분명히 function이 있다. 없는데 있다. 이것이 Nicht-Sein. 이것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형이상학을 하지 못한다. 수레바퀴는 비어있음으로써 쓸모가 있다고 한다. 

 

진짜 악은 악인 것 같지 않은데 스며 들어와서 악을 만들어 주는 미묘한 씨앗들이 앗. 이아고가 악이이다 말할 때는 악인으로 규정되어있기 때문에 악이 아니라 상대방의 내재해있는 악을 발현시키는 악. 

어느 지점에서 오셀로를 건드렸는가, 어느 지점에서 데스데모나를 건드렸는가, 어느 지점에서 캐시오를 건드렸는가, 어느 지점에서 로드리고를 건드렸는가, 이것을 보는 것이 <오셀로> 드라마의특징.

 

오셀로가 하는 말과 행위가 일치되는 지점이 어디에 있고, 일치되지 않는 지점이 어디에 있는가, 또 데스데모나는 남에게 보여지고 싶은 데스데모나, 즉 공공영역의 데스데모나, 외관상의 데스데모나, desdemona in appearance. 즉 겉으로 드러나는 데스데모나와 내면에 있는 실제의 데스데모나하고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는가를 봐야한다. 그것이 떠있으면 이것을 데스데모나의 허위의식이라고 하겠다. 

 

Schein 샤인: 假象 가상. 거짓형상. 

Erschein 에어샤인: 현상.

Wesen 베젠: 본질이라는 뜻도 있고 존재라는 뜻도 있다.

 

Wesen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면 Erschein이라고 한다. Wesen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지 않고, 중간에 뭔가 이물질이 끼면 Schein =가상. 

그러면 데스데모나의 경우를 보자. 데스데모나에게 몇가지를 물어볼 수 있다. 

첫째 우리가 이 드라마를 읽어서 데스데모나의 Wesen을 알 수 있는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섬에서 혼자 살면 Wesen과 Erschein의 구별이 필요없다. 사회생활에서라면 우리는 이것을 전제한다. 즉 저 사람의 말과 행위에서 그의 본질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깔고 있기 때문에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지금 <오셀로> 드라마에서 데스데모나의 말과 행위에서 데스데모나의 내면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에 데스데모나가 하는 말이 자기의 희망사항, 즉 내가 이런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것을 계속 코스프레를 하고 있이라면 Wesen은 없는 것. 데스데모나가 하는 말이 Erschein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파악 불능이다. 오셀로도 그런 측면을 보이는 부분이 있다. 

 

본질과 현상의 관계, 즉 Wesen과 Erschein의 관계. 내가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하나 있다. 그럼 이 모습은 나의 Wesen에서 나온게 아니다. Schein이고, Erschein이 아니다. Schein을 다시 나에게 투사시켜서 그것을 나의 Wesen으로 삼아서 Erschein인 것처럼 보이면 그게 뭐가 되는 것인가. 그것을 셰익스피어가 <오셀로>에서 보여주는 것.

 

그러면 이제 세부적으로 드라마에 들어갔을 때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사랑은 어떻게 결합되는가, 그들의 Schein이 결합되는가, Wesen이 결합되는가를 봐야한다. 흔히 쇼윈도 부부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문제들에 걸려 들어가는것. 나중에 되면 오셀로와 데스데모나가 파탄에 이르렀는데 단순한 관객들은 오셀로의 질투라고 말하겠지만 이렇게 설명을 하고나니 이미 복잡해졌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오셀로를 편들 수도 없고, 데스데모나를 편들 수도 없다. 이아고도 마찬가지이다. 곤란한 선택에 압박되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져묻게 되면 관객은 괴로운 것.

이게 바로 희랍 비극과 르네상스 비극의 차이가 생기는 것 희랍 비극은 신이 정한 운명 때문.

이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르네상스 드라마는 현대인의 삶을 담고 있다. 그래서 관객에서 아주 곤란한 선택을 압박하는 것이 바로 <오셀로>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를 단순히 누가 나쁘네 누가 원인이네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계속해서 바라는 것과 바라지만 도저히 Wesen에서는 성취 할 수 없는 것들, 결국에는 Schein에 불과한 것인데 자꾸 Erschein이라고 하려고 하는 이 사이의 간격, 이 지점을 미묘하게 잠식해서 들어오는 비존재 Night-Sein로서의 이아고를 보면 이 드라마가 재밌다.

 

특히나 그 당당하고 잘나보이는 오셀로가 결국에는 아주 하찮은 질투쟁이에 불과한 놈으로 전락해 가는 모습이 이 드라마의 압권. 오셀로의 전락이다. 달리보면 위대한 남성성의 파멸.

 

 

등장인물

오셀로 베니스의 무어 인

데스데모나 오셀로의 아내

마이클 캐시오 오셀로의 부관 장교

비앙카 캐시오한테 반한 고급 매춘부

이아고 무어 인의 깃발 장교

에밀리아 이아고의 아내

광대 오셀로의 하인

베니스 공작

브라반치오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베니스의 신사

몬타노 키프로스 행정관

사자 

전령

시종들, 관리들, 선원들, 키프로스 신사들, 악사들

 

 

1막 1장

이아고가 로드리고가 제일 처음에 등장한다. 1막에 중요한 사람이 다 나오는데 특히 1막 1장 맨처음에 이아고가 등장한다. 여기서 이아고와 로드리고가 하는 얘기, 특히 오셀로 대해서 하는 것을 잘봐야 한다.

 

10 이아고: 그를 따르는 것은 뒤통수를 치기 위해서니까.

 

이아고가 오셀로와의 관계속에서 자기를 규정하는 말.

이아고가 가지고 있는 어떤 네거티브한 성격을 드러내 보인다. 그런데 그 이아고 대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사가 꽤나 긴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하는 말도 아주 중요한다. 

 

10 이아고: 그를 따르면서 나는 단지 내 자신을 따를 뿐이네.

 

이아고는 어떤 사람이냐. 절대로 다른 사람에 의해서 변하지 않는 놈이다. 무서운 놈이다. 

 

10 이아고: 하늘이 알지, 사랑과 의무감이 아니라,

          그렇게 보임으로써 내 개인적인 목적을 따른다는 걸.

 

이아고는 뚜렷하게 알고있다. 말 그대로 제정신인 놈이다.

Schein과 Erschein의 구별이 뚜렷한 것. 어디까지가 Schein이고 어디까지가 Erschein인지 알고 있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는 모르는 것. 멍청한 것이 죄는 아니지만 멍청함이 죄를 저지른다.

 

10 이아고: 내 겉보기 행동이 

          내 마음의 본질적인 행동과 모양을

          정말 외양으로 드러낸단들, 오래잖아

          나는 심장을 내 옷소매에 입고

          갈까마귀한테 쪼아 먹게 할 걸세. 나는 지금 내가 아니야.

 

이아고는 절대로 마음의 본질적인 모양과 행동들을 행동과 모양을 겉보기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겠다는 것. Wesen은 있는데 항상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Schein만 있다. 무서운 놈이지 악인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를 읽는 사람들의 99%는 일반적인 정서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아고를 악인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사람이 악인인가, 너무나 냉정하고 제정신인 사람을 악인으로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가 아니야의 대사를 보면 정말 무서운 놈이다. 

 

그래게 자기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나서 이아고가 오셀로를 가리키는 단어들을 보자.

 

11 이아고: 도둑 

12 이아고: 늙고 시커먼 숫양

 

관객들은 이아고가 오셀로에 대해서 말할 때 기분이 나빠지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전. 오셀로에 대한 엄청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는다. 그런데 브라반치오는

 

13 브라반치오: 여긴 베니스다,

          내 집은 시골 오두막이 아니야.

 

브라반치오는 베니스의 정형적인 귀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브라반치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도 그 정체성이 변하지 않는다. 근데 이아고가 또 건드린다.

 

13 이아고: 따님을 바바리 야생마

13 이아고: 그 무어 인

 

13 이아고: 그런데 등 두개 달린 짐승을 만들고 있노라고.

 

14 이아고: 일반 서민용 뱃사공 한 놈만 딸려 실려 가신 곳이,

          음탕한 무어 놈의 털투성이 품이라면

 

14 이아고: 그녀의 의무, 아름다움, 명석함, 그리고 재산을 주어 버렸어요,

          괴상하고 정신없이 빙빙 도는 이방인,

          떠돌이 부랑자한테 말이죠. 지금 바로 확인해 보세요.

 

여러분은 관객이니까 오셀로에 대한 인상이 심어졌다. 그리고 나서 이아고는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15 이아고: 아직도 진행 진행중이거든, 그래서, 그들 깜냥에는,

          그만한 인물이 다시 없는 거라,

          그런 일을 이끌기에는, 그런 그런 점에서 - 

          비록 나는 정말 지옥의 고통처럼 그놈을 증오하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형편상

          펼쳐야 하네, 사랑의 깃발과 표식을,

          정말 표식만, 그를 확실하게 찾으려면

          잠깬 수색꾼들을 그 사람 반 짐승 반인 놈 여관으로 데려가게,

          난 거기에 그놈과 함께 있겠네.

 

지금 오셀로를 그렇게까지 얘기해놓고는 형편상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한다. 이아고가 얼마나 냉정한 사람이고, 얼마나 상황판단이 정확한지를 알 수있다.

 

반면 불쌍한 브라반치오는

16 브라반치오: 아버지들이여, 지금부터는 믿지 말라, 딸들의 마음을,

 

1막 1장에서 지금 이아고의 성격 구조와 오셀로에 대해서 셰익스피어가 관객들에게 어떤 인상을 심어주려고 의도를 했는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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