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시학 - 10점
아리스토텔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문예출판사



아리스토텔레스 <시학>...5 

호라티우스 <시학>...163 

플라톤 <시론>...209 

롱기누스 <숭고에 관하여>...255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내용

A. 모방의 주요 형식으로서 비극과 서사시와 희극에 관한 예비적 고찰

제 1장 시는 (1) 사용한는 수단에 의하여 구별된다

제 2장 시는 (2) 그 대상에 의하여 구별된다

제 3장 시는 (3) 모방의 양식에 의하여 구별된다

제 4장 시와 그 여러 종류의 기원과 발견

제 5장 희극과 서사시


B. 비극의 정의와 그 구성 법칙

제 6장 비극의 정의와 그 질적 요소들의 분석

제 7~11장 플롯

제 7장 극(劇)의 배열과 길이

제 8장 행동의 통일성

제 9장 시인은 개연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제 10장 단순한 플롯과 복잡한 플롯

제 11장 급전(急轉)•발견•파토스

제 12장 비극의 양적 요소들

제 13~14장 플롯은 어떻게 해야 비극의 감정적 효과를 가장 훌륭하게 산출할 수 있는가

제 13장 비극의 주인공

제 14장 비극적 행위

제 15장 비극의 등장 인물의 성격에 관한 법칙들, 무대 위의 기계 장치의 사용에 관한 주의

제 16장 발견의 여러 형태

제 17~18장 극의 구성에 대한 부칙

제 19장 비극의 등장 인물의 사상

제 20~22장 비극의 조사(措辭)

제 20장 언어의 궁극적 구성 요소

제 21장 조사의 종류

제 22장 조사의 특징


C. 서사시의 구성 법칙

제 23장 서사시는 행동의 통일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 24장 서사시와 비극의 유사점과 차이점

제 25장 서사시 또는 비극에 대한 가능한 비판과 이에 대한 답변

제 26장 비극은 서사시보다 더 우수한 예술이다


제 5장 희극과 서사시

47 서사시는 장중한 운율로 고상한 대상을 모방한다는 점에서는 비극과 일치하지만, 1) 한가지 운율만을 사용하며 서술체라는 점에서는 비극과 상이하다. 2) 양자는 길이에 있어서도 상이하다. 비극은 가능한 한 태양이 일 회전하는 동안이나 이를 과히 초과하지 않는 시간 안에 사건의 결말을 지으려는 경향이 있는 데 반해 서사시는 시간적으로 제한이 없다. 이것이 양자의 차이점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비극에도 서사시와 마찬가지로 시간적인 제한이 없었다. 3) 양자는 또한 구성 요소에 있어서도 상이한데 어떤 것은 양자에게 공통되고, 어떤 것은 비극에만 고유하다. 따라서 어떤 비극이 좋고 어떤 비극이 나쁜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서사시에 관해서도 판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서사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는 비극에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극이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가 서사시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제 6장 비극의 정의와 그 질적 요소들의 분석

49 우선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으로부터 비극의 본질을 정의해보자.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며,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를 사용하되 각종 장식은 작품의 상이한 제 부분에 따로따로 삽입된다.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바로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란 말은 율동과 화성을 가진 언어 또는 노래를 의미하고, '작품의 상이한 제 부분에 따로 따로 삽입된다'는 말은 어떤 부분은 운문에 의해서만 진행되고 어떤 부분은 노래에 의해서 의해서 진행됨을 의미한다.

  배우가 스토리를 실연(實演)하기 때문에, 첫째 장경(場景, 또는 배우의 분장)이 불가피하게 비극의 일부분이 될 것이고, 다음은 노래와 조사(措辭)다. 왜냐하면 이 양자는 모방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조사란 다음 아니라 운문의 작성을 의미하며,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비극은 행동의 모방이고 행동은 행동자에 의하여 행해지는 바 행동자는 필연적으로 성격과 사상에 있어 일정한 성질을 가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 양자에 의하여 우리는 그들의 행동의 원인은 자연히 두 가지인데 사상과 성격이 그것이며 그들의 생활에 있어서의 모든 성공과 실패도 이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행동의 모방은 플롯이다.

  나는 플롯이란 말을 이러한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플롯은 스토리 내에서 행해진 것, 즉 사건의 결합을 의미한다. 한편 성격은 행동자를 일정한 성질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바를 의미하며, 사상은 행동자들이 무엇을 증명하거나 또는 보편적인 진리를 말할 때 그들의 언사에 나타나는 바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든 비극은 여섯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되며 이 여섯 가지 요소에 의하여 비극의 일반적인 성질도 결정되는데, 플롯과 성격과 조사와 사상과 장경과 노래가 곧 그것이다. 이 가운데 두 가지는 모방의 수단에 속하고, 한 가지는 모방의 양식에 속하고, 세 가지는 모방의 대상에 속한다. (역주: 두 가지란 조사와 노래를, 한 가지란 장경을, 세 가지란 플롯, 성격, 사상을 말한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실상 모든 시인들이 이러한 요소들을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시인들이 이러한 요소들을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드라마는 장경, 성격, 플롯, 조사, 노래,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여섯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다. 비극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생활과 행복과 불행을 모방한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행동 가운데 있으며 비극의 목적도 일종의 행동이지 성질은 아니다.  인간의 성질은 성격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행•불행은 행동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드라마에 있어서의 행동은 성격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격이 행동을 위하여 드라마에 포함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 비극의 목적이며 목적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또 행동 없는 비극은 불가능하겠지만 성격 없는 비극은 가능할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 작가들의 비극에는 성격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시인들에게 공통된 결함이다. 그것은 화가들 중에서 제욱시스를 폴뤼그노토스와 비교할 때 볼 수 있는 바와 같다. 왜냐하면 폴뤼그노토스는 우수한 성격 화가인데 비해 제욱시스의 그림에는 아무런 성격이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시인이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그리고 조사와 사상에 있어서 훌륭하게 손질된 일련의 대사를 차례 차례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아직 비극의 진정한 효과를 산출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점에서는 다소 미비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플롯, 즉 사건의 결합을 구비한 비극이 훨씬 더 훌륭한 효과를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비극에서 우리를 가장 매혹하는 것은 급전(急轉)과 발견인데 이것들은 플롯에 속하는 부분이다. 또 한가지 증거로 작시의 초심자들이 사건의 결합보다 조사와 성격 묘사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초기 시인들 거의 전부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비극의 제1원리, 또는 비극의 생명과 영혼은 플롯이고 성격은 제2위인 것이다(이와 유사한 예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색채라도 아무렇게나 칠한 것은 흑백의 초상화만큼도 쾌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비극은 행동의 모방이며 비극이 행동자를 모방하는 것도 주로 행동을 모방하기 위해서이다. 제3은 사상이다. 사상이란 상황에 따라 해야 할 말과 적당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사에 관한 한 이 능력은 정치학과 수사학의 연구 분야에 속한다. 왜냐하면 옛날 시인들은 등장 인물들로 하여금 정치가와 같이 말하게 했고, 오늘날의 시인들은 수사학자와 같이 말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상을 성격과 혼돈해서는 안된다. 


제 9장 시인은 개연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

62 따라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더 강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것을 말한다' 함은 다시 말해 이러이러한 성질의 인간은 개연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말하거나 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시가 등장 인물들에게 고유한 이름을 붙인다 하더라도 시가 추구하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다.


제 11장 급전(急轉)•발견•파토스

69 급전이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태가 반대 방향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변화는 앞서 말했듯이 개연적 또는 필연적 인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71 발견이란 그 말 자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무지의 상태에서 지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등장 인물들이 행운의 숙명을 지녔느냐 불행의 숙명을 지녔느냐에 따라 우호 관계를 맺게도 되고 적대 관계를 맺게도 된다. 


제 13장 비극의 주인공

80 훌륭한 플롯은 단일한 결말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며, 일부 사람들이 말하듯이 이중의 결말을 가져서는 안된다. 주인공의 운명은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뀌어서는 안되고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 원인은 비행에 있어서는 안되고 중대한 과실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우리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인물이거나, 혹은 그보다 훌륭한 인물이어야지 그보다 열등한 인물이어서는 안 된다. 사실이 또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초기에 시인들은 아무 스토리나 닥치는 대로 취급했으나 오늘날 가장 훌륭한 비극들은 몇몇 가문의 스토리에서 취재하고 있다. 


제 15장 비극의 등장 인물의 성격에 관한 법칙들, 무대 위의 기계 장치의 사용에 관한 주의

93 성격에 있어서도 사건의 구성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필연적인 것 혹은 개연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러이러한 사람이 이러이러한 것을 말하거나 행할 때 그것은 그의 성격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라야 하며, 두 사건이 이어서 일어날 때는 후자는 전자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라야 한다. 따라서 사건의 해결도 플롯 자체에 의하여 이루어져야지, [메데이아] 나 [일리아스]에서 그리스 군의 출범이 저지당했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계 장치에 의존해서는 안 됨이 명백하다. 기계 장치는 드라마 밖의 사건, 즉 인간이 알 수 없는 과거의 사건이나 예언 또는 고지할 필요가 있는 미래의 사건에 한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신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비극 내의 사건에서는 사소한 불합리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불가피한 경우에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비극 밖에 있어야 한다.


제 26장 비극은 서사시보다 더 우수한 예술이다

161 둘째, 1) 비극은 서사시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서사시의 운율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 그 밖에 중요한 요소로서 음악과 장경을 가지고 있는데 전자는 드라마의 쾌감을 가장 생생하게 산출한다. 2) 비극은 우리가 그것을 읽을 때에도 무대 위에서 연출되는 것을 관람할 때나 다름없이 생생하게 실감된다. 3) 비극적 모방은 더 짧은 시간에 그 목적을 달성한다. 보다 압축된 효과는 많은 시간에 걸쳐 분산된 효과보다 더 큰 쾌감을 준다. 예컨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를 [일리아스]와 같은 정도의 행수로 늘였을 때의 효과를 생각해보라. 4) 서사 시인들의 모방은 통일성이 적다. 그 증거로 그들의 어떤 작품으로부터라도 여러 개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취급하는 것이 단 하나의 스토리일 경우 짤막하게 표현되면 꼬리가 잘린 것 같은 인상을 줄 것이고, 서사시가 보통 갖는 길이로 표현되면 물을 많이 탄 술과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서사시가 통일성이 적다 함은 서사시가 다수의 행위로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그와 같은 부분을 많이 갖고 있는데 각 부분은 또 그것대로 일정한 크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두 편의 시는 가능한 한 가장 완전한 구성을 갖고 있으며 가능한 한 하나의 행위를 모방하고 있다. 따라서 비극이 이러한 모든 점에서 그리고 또 시적 효과를 산출함에 있어 (왜냐하면 비극과 서사시는 임의의 쾌감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바 있는 특정한 쾌감을 산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더 우수하다면 서사시보다 시의 목적을 더 훌륭하게 달성하므로 더 우수한 형식의 예술임이 명백하다.





호라티우스 <시학>


내용

1~37행 시는 하나의 유기적인 통일체라야 한다

38~44행 그러기 위해선 능력에 맞는 소재를 택해야 한다. 능력에 맞는 소재를 택한 시인은 조사(措辭)와 언어의 배열 때문에 곤란을 당하지 않는다.

45~72행 훌륭한 조사가 되려면 말을 잘 선택해야 한다

73~88행 내용에 따라 운율도 달라져야 한다

89~118행 대사는 작품 내용과 화자(話者)의 성격에 적합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는 아름답고 감미로워야 하지만 또한 청중을 감동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119~152행 소재는 창작일 수도 있고 전래된 것일 수도 있지만 후자의 경우가 더 안전하다. 독창성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있다, 호메로스의 본보기

153~178행 드라마를 쓰려면 각 연령별로 그 특징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179~201행 드라마에 있어서 몇 가지 주의 사항, 특히 코로스에 관하여

202~219행 음악에 관한 주의 사항

220~250행 비극과 희극의 중간인 사튀로스 극의 조사에 관한 주의 사항

251~274행 로마의 비극 및 희극 시인들은 얌부스 운율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몰랐다

275~294행 그리스의 본보기와 로마, 언어의 조탁(彫琢)에 관하여

295~308행 그릇된 천재론(天才論)의 해악(害惡), 시인의 임무

309~322행 작시(作詩)의 근본은 분별력이다. 내용이 풍부한 훌륭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철학과 도덕론을 공부해야 한다.

323~332행 그리스 인과 로마인의 성격 차이

333~346행 시의 목적은 교훈과 쾌감을 주는 데 있다

347~360행 용서할 수 있는 과오와 용서할 수 없는 과오

361~365행 시와 그림의 비교

366~390행 시에서는 범용이 용납되지 않는다

391~407행 시의 가치와 기능

408~418행 재능과 숙련

419~452행 올바른 비판과 그릇된 비판

453~476행 광기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시인의 추악한 모습





롱기누스 <숭고에 관하여>


내용

제 1장 카이킬리오스(Kaikilios)의 논문과 그 결점들

제 2장 숭고한 예술은 존재하는가

제 3장 숭고를 저해하는 실수들

제 4장 냉담함

제 5장 부적절한 표현의 원인

제 6장 숭고에 대한 식별력

제 7장 진정한 숭고

제 8장 숭고의 다섯 가지 원천

제 9장 위대한 사상·[일리아스 Ilias]와 [오뒷세이아 Odysseia] 비교

제 10장 소재의 선택과 결합

제 11장 확장(擴張)

제 12장 확장의 정의·플라톤(Platon)과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 비교·키케로(Cicero)에 대한 간단한 언급

제 13장 플라톤과 숭고·모방

제 14장 몇 가지 실용적 조언

제 15장 상상(想像)

제 16장 문채(文彩): 맹세

제 17장 문채와 숭고

제 18장 수사 의문(修辭疑問)

제 19장 접속사 생략

제 20장 문채의 중첩

제 21장 접속사의 몇 가지 불리한 점

제 22장 전치법(轉置法)

제 23장 격(格), 시제(時制), 인칭(人稱), 수(數), 성(性) 바꾸기·단수를 복수로 바꾸기

제 24장 단수를 단수로 바꾸기

제 25장 시제 바꾸기

제 26장 인칭 바꾸기

제 27장 1인칭으로 바꾸기

제 28장 우회적 표현(迂廻的表現)

제 29장 우회적 표현의 위험들

제 30장 표현법

제 31장 일상어(日常語)의 사용

제 32장 은유(隱喩)

제 33장 천재와 범인·흠 있는 숭고가 흠 없는 범용보다 낫다

제 34장 휘페레이데스(Hypereides)와 데모스테네스

제 35장 플라톤과 뤼시아스(Lysias)

제 36장 숭고와 문학적 명성

제 37장 직유(直喩)

제 38장 과장법(誇張法)

제 39장 조사(措辭) 또는 단어의 배열

제 40장 문장 구조

제 41장 숭고를 저해하는 것들: 젠체하는 저질 리듬

제 42장 지나친 간결

제 43장 진부한 표현

제 44장 여담(餘談): 문학 쇠퇴의 여러 가지 원인


제 7장 진정한 숭고

282 (1) 친구여, 일상생활에서도 그것을 경멸하는 것이 위대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오, 예컨대, 부와 명예와 권력과 기타 겉보기에 매우 화려한 것들이 그렇소.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이 큰 선(善)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오. 그런 것들을 경시하는 것 자체가 적잖은 선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것들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가질 수 있는데도 경멸할 수 있을 만큼 고결한 사람들이 더 경탄의 대상이 되는 법이오. 마찬가지로 시와 산문에 있어서의 숭고한 표현에 관해서도 우리는 그 중 어떤 것은 부수적인 장식물을 많이 달아 겉보기에는 장대하지만 그것들이 벗겨지고 나면 허풍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오. 그런 표현들은 경탄하기보다는 경멸하는 것이 더 고상한 법이오. (2) 우리 마음은 그 본성상 진실로 숭고한 것에 의하여 고양되기 때문이오. 우리는 우리가 들은 것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양 의기양양해지고 환희와 긍지로 가득 차게 되지요. (3) 사려 깊고 문학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어떤 구절을 몇 번이나 들어도 그것이 그의 마음에 어떤 고양감을 주지 않거나 아무리 숙고해보아도 말해진 것 이상을 그의 마음속에 남기지 않는다면, 아니 오히려 유심히 살펴볼수록 아래로 처지고 진부해진다면, 그것은 진실로 숭고한 것일 수 없소. 그것은 귀에 들리는 순간보다 더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이오. 진실로 위한 것은 거듭된 검토도 견뎌내고, 강력하고도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마음 속에 남기기 때문이오. (4) 간단히 말해서, 그대는 언제나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이 진실로 그리고 아름답게 숭고하다고 생각하시오. 직업과 생활방식과 취미와 나이와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같은 작품들에 대하여 똑같은 의견을 갖는다면 그토록 목소리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치된 판단은 그들의 경탄이 정당하다는 우리의 신념을 강하고 논박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법이오.


제 8장 숭고의 다섯 가지 원천

284 (1) 숭고한 문체의 가장 생산적인 원천은 다섯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이 다섯 가지의 공통된 토대는 언어 구사력이고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될 수 없소.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크세노폰에 대한 나의 저서에서 설명했듯이, 위대한 구상 능력이오. 두 번째는 강력하고도 열광적인 감정이오. 숭고의 이 두 가지 원천은 대체로 타고나는 것이오. 나머지 세 가지는 예술에 의하여 습득될 수 있으니, 문채의 - 여기에는 사상의 문채와 언어의 문채 두 가지가 있소 - 적절한 구성과 이에 덧붙여 고상한 표현법이 그것인데, 여기에는 또 어휘의 선택, 은유의 사용, 언어의 조탁이 포함되오. 위대함의 다섯 번째 원인은 앞서 말한 것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서 품위 있고 고상한 조사가 그것이오. 자, 이제는 이들 각 항목에는 무엇이 포함되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러나 그에 앞서 카이킬리오스는 이 다섯가지 가운데 어떤 것을, 말하자면 감정을 명백히 생략했다는 점을 지적해두고자 하오. (2) 만약 그가 이 두 가지, 즉 숭고와 감정은 같은 것이고 언제나 함께 속하고 함께 존재한다고 생각했다면 그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의 감정들, 예컨대 연민과 슬픔과 공포는 숭고하기는 커녕 저속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가 하면, 또 숭고한 구절들에 감정이 전혀 수반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오. 수많은 예들 중에서 나는 알로에우스의 아들들에 관한 호메로스의 대담한 시구들을 택하겠소. 

    

    그들은 하늘에 오를 수 있도록 올륌포스 위에 옷사를 쌓고

    옷사 위에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펠리온을 쌓으려 했소.


그리고 여기에 이어지는 것은 더욱더 거창하오.

    

    그리고....... 그들은 그 일을 해냈을 것이다.


(3) 그리고 연설가들의 경우에도 그들의 찬사와 축사화 과시적 연설에는 으레 장엄과 숭고가 내포되어 있으나 대체로 감정은 결여되어 있소. 따라서 감정적인 연설가들이 찬사에서 가장 뛰어나지 못할 수 있는가 하면, 찬사 작가들이 또 가장 감정적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이오. (4) 그러나 카이킬리오스가 감정은 숭고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언급할 가치도 없다면 여겼다면 그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오. 왜냐하면 내 장담하거니와, 적소(適所)에서의 진정한 감정만큼 장대한 문체에 기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오. 그럴 때면 감정은 말에 열광과 황홀을 불어넣으면 그것을 아폴론의 힘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오.


제 44장 여담(餘談): 문학 쇠퇴의 여러 가지 원인

393 "친구여, 언제나 현재 상황을 헐뜯는 것은 쉬운 일이며 또 인간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아마도 위대한 인물들을 망쳐 놓은 것은 세계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욕망들을 움켜 잡고 있는 이 끝없는 전쟁과 오늘날 우리의 생활을 점거하여 이를 뿌리째 파괴하고 있는 열정들일 것이오.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탐욕스런 병인 금전욕과 향락욕은 우리를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고 있소. 아니, 그것들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익사시킨다고 해야겠지요. 금적욕은 우리를 시들게 하는 병이고, 항락욕은 가장 비열한 것이오. (7)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무한한 부를 그렇게 존중하고도, 아니 신격화하고도 어떻게 거기에 수반되는 악들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소. 제어되지 않은 무한한 부에는 사치가 가까이서 사람들 말마따나 보조를 맞추며 뒤따르기 때문이오. 부가 도시들이나 집들의 문을 여는 순간 사치도 함께 들어가 그 안에서 살지요.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 생활 속에 얼마 동안 머물게 되면 철학자들 말마따나 그곳에 둥지를 틀고는 곧 새끼를 치기 시작하는데, 탐욕과 교만과 허영이 곧 그것이오. 이것들은 서자가 아니라 그것들의 적자들이오. 그리고 이들 부의 자식은 성년이 되면 곧 우리 마음속에 사정없는 폭군들인 오만과 무법과 파렴치를 낳게 되지요. (8) 이것들은 불가피한 과정이오. 그러면 사람들은 더 이상 위를 쳐다보지 않고 자신들의 미래의 명성에 유념하지도 않을 것이오. 이러한 악덕들이 순환하는 가운데 인간들의 삶은 점진적으로 파괴되고 정신의 위대성은 이울다가 사라지며 더 이상 추구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인간들은 자신들에게서 필멸의 부분은 존중하고 불사의 부분은 개발하기를 게을리하기 때문이오. (9) 뇌물 받고 재판하는 자는 정당하고 아름다운 것에 관하여 결코 자유롭고 건전한 재판관이 될 수 없소. 뇌물 받은 자에게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익만이 아름답고 정당해 보일 테니까요. 지금 우리 모두의 삶은 전적으로 뇌물의 지배를 받고 있고, 우리는 또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노리는가 하면 유산을 타기 위하여 덫을 놓고 있소. 우리는 또 저마다 탐욕의 노예가 되어 모든 것에서 이익을 얻고자 영혼도 팔아먹었소. 하거늘 이렇듯 역병으로 삶이 파괴된 가운데서 영원히 지속되는 위대한 것들의 자유롭고 부패하지 않은 재판관이 아직도 남아 있기를, 그리고 그가 이익에 대한 욕망에 압도되지 않기를 우리가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소. (10) 사실 우리 같은 인간들에게는 자유로운 것보다는 지배받는 편이 더 낫소.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가 주어져 우리가 말하자면 풀려난 죄수들처럼 이웃들에게 덤벼들게 된다면 탐욕은 악의 홍수로 세상을 뒤덮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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