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햄릿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4. 6. 2.
햄릿 -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아침이슬 |
1막 2장
23 햄릿: 오 이 견고한 너무도 견고한 육신이 녹아
풀려 버렸으면, 그리고 이슬로 해체되어 버렸으면,
아니면 차라리 영생자 하느님께서
자살을 금하는 법을 정하지 마셨든가! 오 하나님, 오 하나님,
정말 지겹고, 곰팡내 나고, 진부하고, 또 무익하구나,
이 세상의 온갖 잡사가 그래 보인다!
1막 5장
45 유령: 덴마크 왕의 침대가
음탕과 저주받은 근친상간의 잠자리로 될 수는 없는 법.
그러나 비록 네가 복수를 추구하더라도,
네 심성을 부패시키지 말 것, 네 영혼이
네 어머니께 어떤 벌도 획책하지 말 것, 그녀는 하늘에 맡길 것,
그리고 그녀 가슴에 박힌 그 가시들이
그녀를 쑤시고 찌르게 둘 것, 자 이제 작별이다.
반딧불을 보니 아침이 가까이 왔다,
힘없는 불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면,
안녕, 안녕, 햄릿, 나를 기억해 다오.
51 햄릿: 나사 빠진 시간이다, 오 저주받은 양심,
내가 어쩌다 태어나 그걸 수리해야 하다니!
아니, 오라니까, 함께 가자구.
2막 2장
84 햄릿: 집어쳐라, 하! - 회전하라, 두뇌여.
죄지은 짐승이 연극을 보다가
장면의 교묘함 바로 그것 때문에
너무도 영혼에 충격을 받아 즉시
자기들의 범죄를 공표하는 수가 있다고들 하지,
왜냐면 살인은, 비록 혀가 없지만, 말할 것이야,
가장 기적적인 기관을 통해, 이 배우들을 시켜
내 아버지 살해를 연상시키는 연극을 하게 하자,
내 삼촌 앞에서, 그의 표정을 살펴봐야지,
급습해 보는 거야. 움찔하기만 해도,
내가 할 일은 정해진다. 내가 본 유령이
악마일지도 모르지, 악마는 능력이 있어,
보기 좋은 모양을 취하는, 그래, 그리고 아마도,
내가 몸이 허약하고 우울한 틈을 타서 -
악마는 그런 기질에 강하거든 -
나를 속여 저주하려는 걸지도 모르지. 좀 더
타당한 근거가 필요하다. 연극이 바로 그거야.
그걸로 왕의 양심을 체포해 볼란다.
3막 1장
89 햄릿: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마음에 더 숭고한 태도는, 고통으로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견디는 것인가,
아니면 무기를 쳐들어 난관의 바다에 맞서는,
그리고, 거부하며 그것을 끝장내는 것인가, 죽는다, 잠든다 -
그뿐, 그리고 잠든다는 말이 끝장,
상심과 천 가지 당연한 충격,
육신이 물려받은 충격의 끝장이라면 - 그건 완료지,
몸 바쳐 바라 마지않을, 죽는다, 잠든다
잠든다, 어쩌면 꿈꾼다, 아하, 그게 골치로다,
그 죽음의 잠 속에 어떤 꿈이 올지
우리가 이 필멸의 육신을 벗어 버린 다음에 말야,
망설일밖에. 그런 고로
그토록 오랜 삶이라는 재앙이 생겨나는 거야,
왜냐면 누가 견디겠는가, 시간의 채찍과 경멸을,
압제자의 횡포를, 오만한 자의 방자함을,
응답 없는 사랑의 격통을, 법의 지지부진을,
관료의 시건방을, 그리고 모욕
근사한 자가 비천한 자한테 감내하는 모욕을,
견디겠는가, 단도 한 자루면
생애를 끝장낼 수 있는데? 누가 이 짐을 지려 하겠는가,
지겨운 삶 아래 툴툴거리고 땀 흘리는 짐을,
죽음 이후 그 무엇에 대한 공포,
왜냐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그 영토의 경계로부터
돌아온 여행자 누구도 없으므로, 그 공포가 의지를 당혹케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미지의 저승으로 날아가 버리느니
차라리 그런 해악을 견디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강요치 않는다면?
그렇게 의식과 양심이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드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원래 결심했던 붉은 끼 안색이
창백한 생각으로 빛바랜다.
그리고 매우 심오하고 중요한 기획들이,
이러 면으로 흐름을 방해받는다,
그리고 행동의 이름을 상실한다. 잠깐, 아니,
아름다운 오필리아! - 요정이여, 기도하고 있구나,
나의 모든 죄를 기억해 주시오.
3막 2장
95 햄릿: 대사를 할 때, 제발 부탁이네만, 발음을 내가 지시한 대로 해주게 - 혀 놀림을 경쾌하게. 하지만 너무 과장하면, 당신네 배우들 중 그런 사람이 많네만, 차라리 포고를 외치는 읍 직원한테 내 대사를 맡기고 말지. 허공을 손으로 너무 톱질하지도 말아, 이렇게 말야, 모든 걸 부드럽게 쓰라구. 감정의 폭포수, 폭풍, 그리고 말하자면 소용돌이 속에서도 절제를 주거나 자아내서 부드럽게 해야 하거든. 오, 정말 지긋지긋해, 허풍 떠는, 가발을 치덕치덕 바른 자가 감정을 산산조각으로 거덜내며 땅바닥 삼류 관객들의 귀를 찢으려 기를 쓰는 꼴은, 땅바닥 관객들이야 기껏해야 알아먹을 수 없는 막간 마임과 소음에나 어울리잖나. 그런 자들은 회초리를 맞아야지. 계집 앵앵대는 거보다 더 하니까, 헤롯을 능가한다니까, 제발 그건 피해 주게.
한 배우: 염려마십시오, 마마.
햄릿: 너무 무기력해서도 안 되네, 자네 자신의 분별을 따르라는 얘기야. 행동을 대사에 어울리게, 대사를 행동에 어울리게, 덧붙여 이 점을 특히 명심하게, 자연의 중용을 넘어서지 말 것, 무엇인든 과도하면 연기의 목적에 위배되지, 연기의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말하자면 자연에 거울을 비추어, 미덕의 자태를 보여 주고, 그녀 자신의 상을 비웃고, 그리고 시대의 나이와 육신의 현재 모양과 꼴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지금도 그래. 이제 이게 과하거나 모자란다면, 뭘 모르는 자들은 웃겠지만, 사려 깊은 자들은 슬플밖에, 사려 깊은 자 한 명의 평가는 다른 관객 전체보다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오, 내가 본 배우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은 연기가 좋다고, 그것도 아주 좋다고 칭찬하지만, 나는, 하느님을 모독하자는 게 아니라, 억양이나, 걸음걸이가 기독교도도 아니고 이교도도 아니고, 아예 사람 같지도 않은 종종걸음에 고함을 질러 대니 하느님이 아니라 자연의 견습생 따위가 인간을 만든게 아닌가, 또 잘못 만든게 아닌가 생각했었다네, 그들이 모방하는 인간은 그렇게 역겨웠다구.
110 햄릿: 이런, 이봐, 자넨 나를 아주 우습게 보는구먼! 자넨 나를 연주하려 들었어, 내 구멍을 아는 체하면서, 자넨 내 비밀의 핵심을 끄집어내려 했지, 내 음역의 가장 낮은 음표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내게 하려 했어, 이 작은 악기에는 숱한 음악이, 탁월한 목소리들이 들어 있는데도, 이 악기조차 소리 내게 못하면서, 맙소사, 자넨 내가 한낱 피리보다 더 연주하기 수월타고 생각하나? 자네가 날 어떤 악기로 보든, 나를 만지작대며 성가시게 할지는 몰라도, 자네가 날 연주할 수는 없네,
190 햄릿: 추호도 그리 말게, 예감이 별건가.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데도 특별한 섭리가 있는 법. 그게 지금이라면, 앞으로 오지 않을 것, 앞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면, 지금일 것. 지금이 아니라면, 그래도 올 것이야. 흔쾌히 하는 게 최선이지. 죽으면 진정 아무것도 못 챙겨 가는데, 더 일찍 떠난들 무슨 상관이겠나?
5막 2장
197 햄릿: 하늘이 그대에게 그것을 면케 해 주리라! 내 그대를 따르나니.
나는 죽네, 호레이쇼, 비참한 왕비여, 안녕!
창백한 얼굴로 떨며 이 광경을 지켜보는 당신들,
이 막에 무언 배우거나 관객인 당신들,
시간만 있다면 - 왜냐면 죽음은 사나운 보안관이라
사정없이 체포해 간다 - 오, 당신들한테 말해 줄 텐데 -
하지만 그만. 호레이쇼, 나는 죽고,
자네는 사네, 나와 내 명분을 옳게 전해 주게,
미흡한 사람들에게.
역자해설
205 왕비 - 어머니는 약한 여자다. 그녀는 시동생의 광포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동생이 형수를 취한다. 예민한 왕자 - 아들 햄릿은 그런 사태에 연민과 악취를 동시에 느끼고, 아버지 유령과 암살의 진실은 예민함을 더 예민하게 한다. 삽시간에 세상은 난해하다 ... 그에게는 그 사실이 가장 중요하고, 그의 예민한 정신이 삶의 난해를 감당하는 쪽으로 온통 기울어 있으므로 사실 그는 복수를 주저하는 게 아니라, 복수를 통해 옛날을 복원하려는 탈난해의 유혹을 견디고 있다. 그에게 유령은 난해한 진실의 신비화고, 복수는 난해를 정치적으로, 그렇게 대중적으로 범주화 혹은 도식화하는 일이다. 어느 쪽도 진정한 해결(방식)이 아니므로 햄릿은 난해를 난해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고통으로 감내한다. 햄릿이 현대인의 전형이자 신의 어린 양으로, 또 진정한 예술가로, 진정 미래지향적인 인간으로 되는 대목이다.
난해한 진리 혹은 난해의 진리는 오로지 예술의, 열린 고통의 몸으로써만 (이해가 아니라) 포괄될 수 있다. 마임 공연을 통한 사실 확인. 햄릿에게는 그것이 난해를 포괄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 속에서 '이해의 창' 몇개가 세계의 본질 속으로 열리고, 낸해한 것이 난해한 채로 투명해진다. <<햄릿>>의 '극중극'은 격변기를 맞은 위대한 예술가의 위대한 예술 옹호 선언이다. 예술가는 시대 변화에 정치적으로 보수 입장을 취할 수도 있고 진보 입장을 취할 수도 있으나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술의 예술적 내용이다. 햄릿은 자신의 이해력 부족을 탓할 뿐 갈수록 심화하는 현실을 탓하지 않는다.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심화시키면서 심화가 훨씬 더 많은 난해를 낳는다는 점 또한 고통으로 받아들이므로 그는 격변기 대중의 전형이고 그렇게 영원히 고통의 방식으로써 당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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